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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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상처받은 여성들이 서로와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논하는 이야기. 따뜻하다도 뭉클하다도 때로는 서늘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니 절대 이 책이 윤이형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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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3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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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블린 사람들>을 처음 읽었던 것은 군인 시절이었다. 군대에 적응하려고 분투는 시기를 지나고 나자 내가 뭘 하던 간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다. 어마어마하게 지루한 시기였다.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어떻게든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일 것이다. 지루하고 심심한 나날의 연속이다.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휴가에 나갔을 때 산 책이나 진중 문고니 선임들의 책을 물려받아서 읽고는 했다. 심심풀이로 읽은 것도 많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읽기 힘든 고전들도 여럿 읽기도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무기여 잘 있거라> 같은 책들을 그때 읽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의 명성(세계 최고의 소설이지만 아무도 완독한 적은 없다는 악명)을 통해서 잘 알고 있던 작가였다. <더블린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앞에 적은 세 가지 경로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 읽은 것이 벌써 6년 전의 일이라 흐릿한 감상만이 남았었는데 어둡고 음습한 도시의 풍경을 상상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나서 여드름이 숭숭했던 20대 초의 군인은 팔자주름이 선명한 20대 후반의 남자가 되었다. 지난 세월이 밥만 먹고 똥만 싼 건 아니어서 그동안 사고의 흐름이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소망한다)

 

<더블린 사람들>은 말 그대로 더블린 사람들을 메인으로 한 연작 소설집이다. 더블린시의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다양한 이야기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식민지라는 어두운 시대적 배경은 우리나라 구한말~일제강점기 시절의 배경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았다. 가난한 노동자, 식민지 현실에 분열하는 지식인, 무거운 사회와 가부장제라는 억압에 고통받는 여성들, 북적이지만 어두운 도시의 풍경. <더블린 사람들><경성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지명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번안하면 과연 그럴듯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특징은 이러한 어두운 시대적 배경과 불행한 인간사를 어두운 톤으로 칠해 놓지만 그들의 불행을 메인으로 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이 조이스 후에 등장하는 리얼리즘 사조와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리얼리즘 소설의 특징은 인민의 고통을 적시해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러한 목적에 반대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일까. 긴 소설집의 분량에 수록된 단편의 개수는 열 편이 넘고 호흡은 짧지만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낸다. 그러한 인간군상이 모여서 살아가는 도시인 더블린’. 그렇기에 이 소설집의 주인공은 도시 더블린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집의 모든 소설의 질이 뛰어나 어느 소설이 더 좋다 아니다. 라고 함부로 평가하기에 에매한 작품집이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단편은 <작은 구름><선거 사무실에서 맞은 페넬의 기일> 이렇게 두 편이다. <작은 구름>은 법률 서기로 근무하는 리틀 챈들러가 오래전에 영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성공해 금의환향한 친구인 갤러허와 만나기로 하면서 시작되는 작품이다. 그 둘은 서로 비슷한 나잇대고 더블린에서 사귀었을 때는 비슷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만에 만난 갤러허는 성공해 이른바 속물이 되어 있었다. 미숙한 작가라면 챈들러가 변화한 갤러허에 위화감을 느끼게 하고 경멸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저자는 제임스 조이스다. 가정을 이루고 다른 형태의 성공을 쥐었다고도 할 수 있는 챈들러는 오히려 갤러허의 성공에 매료되어 자신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환상에 매료된다. 물론 챈들러에겐 육아라는 강력한 현실이 존재한다. 서재에서 아이를 돌보다 우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낸 챈들러는 아내에게 구박을 받으며 현실에 돌아온다. 이러한 현실의 장면을 조이스는 작가나 다른 화자의 시선이 아닌 철저하게 챈들러의 시선으로 이 모든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삶을 존중하고 그의 삶을 표현하려고 할 때 핍진성은 달성되고 리얼리즘은 완성된다.

 

<선거 사무실에서 맞은 페넬의 기일>은 아일랜드의 비극적인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아일랜드의 역사적 상황은 일본에게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비슷하다. 제임스 조이스가 활동하던 19-20세기의 시기에 아일랜드는 영국과 미국에서 하층민으로 혐오 받고 핍밥 받는 존재였다. 당시 아일랜드의 별명은 하얀 흑인영국인은 그보다 더 전에 많은 아일랜드인을 계약 하인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노예로 판매하기도 했다. 그 굴욕적인 역사는 이 소설 안에서 수다스러운 등장인물들의 대화 안에 녹여내 진다. 제목에 등장하는 페넬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로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나 사생활로 인해서 실각하고 몰락하는 인물이다.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운동가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할 것을 요구받으며 작은 잘못에도 큰 지탄을 받는다. 반대로 영국의 국왕인 에드워드 7세는 방종한 성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내답다라는 말로 포장되기도 한다. 위선자들은 강한 권력을 가진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만, 반대로 그에 도전하는 이는 아주 쉽게 공격하고 비난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페넬에게 바치는 추모시다. 비가 와 북적이는 사무실 한참 수다스럽던 사람들은 송시에 등장하고 허무하게 잃은 영웅을 추모한다. 심지어는 그를 욕하던 이도 은은한 감동에 젖어있다. 그런 장면이 그려지며 소설은 끝이 난다.

 

제임스 조이스가 영문학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은 인간에 의해 쓰여지고, 인간의 삶이 쓰였으며, 인간에 의해 읽히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은 충분히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예술에 인생을 바치는 것을 숭고하게 여기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에게 바쳐지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더블린 사람들>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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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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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를 하기 위해서 이 책을 빌리고 읽는 와중에 심너울 작가의 신작 단편집이 발견 되었다. 하이퍼 리얼리즘 SF인가가 홍보문구 였는데 몇 달 먼저 나온 이 소설집을 읽어보니 신작 소설집을 읽지 않고도 왜 그런 말을 달았는지 이해가 되기는 했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의 단편집은 심너울 작가의 짧은 단편집으로 소설들의 공통점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과학적 혹은 특이한 사건이 유발하는 블랙 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적>은 신촌을 중심으로 한 서대문구 일대가 인간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이 된다는 상상력으로 출발하는 소설이다. 허구의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불친절한 사회인지를 폭로하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특정한 사건이 유발하는 다양한 사건과 사회의 변화가 재밌게 풀이되어서 즐겁게 읽었다. 청각 장애인의 입장을 사회 전체가 체험한다는 상상력은 작가가 우리 사회에 가진 삐딱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경의 중앙선>1호선을 타는 입장에서 읽으면서 개 쪼개면서 읽은 소설이었다. 서울권 지하철에선 재앙과도 같은 두 개의 호선이 있는데 하나는 1호선이고, 두 번째는 경의 중앙선이다. 백마역에서 고인 출근자들의 원혼이 어쩌구 하는데 솔직히 웃겨서 이 소설집에서 재일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소설 장면 중에서 성하리가 원념들을 쫓아내며 경의중앙선에 속박된 정념들아, 산 사람을 건드리지마라.”하는 부분에선 개빠게며 웃었다. 작가도 이 부분 쓰면서 엄청 좋아했을 것 같다. 경의 중앙선이 강북의 눈물이라면 1호선은 인천, 경기권 시민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1호선을 매일 타야만 하는 입장에서 1호선이 연착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은 항상 서글프며 그 안에서 마주치는 온갖 인간 군상들을 피해서 1호선을 아예 타지 않는 지인도 있었다. 작가도 경의 중앙선을 다루면서 마음에 걸렸는지 창작노트에서 1호선을 다루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동감이다.

 

<땡스 갓, 잇츠프라이데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금요일을 반복하는 불쌍한 공무원의 생활을 다룬다. 일하는 날이 있으니깐 쉬는 날이 즐겁고 퇴근이 즐겁다. 라는 생각을 소설로 풀어낼 줄이야. 하지만 서사의 풀이가 급작스럽고 주인공이 자신이 참여한 실험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반전이 사건의 풀이를 굉장히 얼렁뚱땅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노동이라는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르며 살기 위해서 하는 요식행위라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K패치를 한 SF는 왜 하나같이 우리 사회인의 고민을 닮는구나 하는 결론이 재밌게 읽히는 부분이었다.

 

<신화의 해방자>는 마법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취직을 걱정하고 먹고사니즘에선 벗어나지 못한다는 서글픈 감정을 유발시킨다. 기존 웹소설이나 대여점 시절의 판타지 소설을 연상시키는 소설이어서 반가웠다. 드래곤과 마법, 마법사 혈통은 일종의 금수저로 어렸을 때부터 치열하게 수련한다는 부분은 뭔 SKY캐슬도 아니고 이것이 K패치인 건가. 싶었다. 마법이 등장해도 결국엔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는 설정은 재미있었다. 약간 능글맞은 이야기꾼의 작품이랄까.

 

<최고의 가축><신화의 해방자>와 연계되는 연작으로 <신화의 해방자>에서 등장하는 드래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영도 시절에 창조된 드래곤의 이미지는 30년이 넘어도 건재하다. 한때 판타지 죽돌이였던 내겐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이미지다. 한때는 신이었던 드래곤도 발전한 과학과 인간의 영악함 앞에서는 가축으로 전락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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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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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책장에 머물게 하다. 별생각 없이 집어들고 흡입하듯이 읽었다. 아름다운 글씨들에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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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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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엔트로피 서사인가? 서유미 작가의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의 첫 소설인 <에트르>를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엔트로피 서사는 권여선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20, 30대의 가난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들의 상황이 끝없이 나빠지는 서사를 나는 엔트로피 서사로 규정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에트르>는 확실히 그런 경향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을 때는 생활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일했지만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이 어떻게 저항하겠는가.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은 30대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직장이 아니다. 배운 것도 경력도 짧은 그녀에겐 어떤 삶의 대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삶은 끝없이 나빠지는 법이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사는 건 힘든 일이고 많은 여성 작가들이 그러한 현실에 대해서 토로하기 위해서 이런 유의 서사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비슷한 유형의 소설을 많이 본 듯해서 <에트르>는 많이 상투적인 소설로 느껴졌다.

 

<개의 나날>N번방 사건이 이슈가 되는 요즘엔 적절치 않은 소재를 사용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주인공이 직접 소설 속 여성을 착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공동종범으로 범행에 동조하고 있고 그에 따라 떨어지는 부산물을 얻는 것으로 묘사된다. 많은 소설이 불행한 삶 속에서 위안을 주는 문학이나 과거의 추억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위안은 지극히 상대적이므로 독자에게까지 감흥을 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서유미 작가가 취한 전략은 막장 중의 막장을 묘사하는 것으로 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여태까지 많은 막장 상황을 봐왔지만 이걸 이기는 막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완벽한 막장으로 토대를 쌓고 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는 변호사가 장의 유품을 준다고 하자 장의 유품을 다른 생활로 향하는 탈출구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물질적 가치는 아니더라도 탈출구가 된 것은 확실하다. ‘는 결말부분에서 조의 사무실로 돌아가지만 자신이 먹도 초코바(조가 주는 물질적 가치)를 개(,와 연)에게 주고 도망치게 풀어주는 장면은 나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 물질적 가치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뒷모습의 발견>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속초로 여행을 떠난 부부가 남편이 실종되고 아내만 돌아옴으로써 시작된다. 남편의 이유 없는 실종에 아내는 불안함을 느끼지만, 삶의 무게(직장, 할 일 등등)에 남편을 신경쓰면서도 적극적으로 찾지는 않는다. 남편의 직장에서도 남편이 실종되었다는데 당혹감을 느끼기 보다는 당장 바쁜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데에 더 당혹감을 느끼는 듯하다. 이런 듯 서유미 작가는 인간을 수단으로 다루는 사회 혹은 악인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일가견 있는 듯하다. 남편이 실종된 이유는 끝내 밟혀지지 않는데 그럼에도 세상은 무사히 돌아가고 심지어 아내인 자신마저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데 심한 무력감을 느끼는 것으로 결말짓는다.

 

서유미 작가의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를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고 작가는 이를 효과적으로 섞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섞임은 우리가 현재만을 사는 인간이 아닌 과거의 어떤 사건에 끝없이 영향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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