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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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이 등단한 후 10년 이내의 신인들에게만 부여하는 문학상이라면 김승욱 문학상은 등단 10년이 지난 중견 작가에게 수상한 작가이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인 만큼 수상자의 면면은 이미 알 만큼 안 작품이어서 젊은 작가상 만큼이나 의외의 작가는 별로 없었다. 수록된 여섯 편의 작품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보겠다.

 

먼저 대상 수상작인 <포도밭 묘지>는 편혜영 작가 특유의 사회적 구조를 탈출하려는 인간과 그에 좌절하다가 끝내 고꾸라지는 모습을 그려나가는 소설이다. 고졸 출신 여성 은행원이라는 어찌보면 한국 소설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그려진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등장인물이 나오면 열에 아홉은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직장에서 만난 회사원과 결혼을 해서 애 낳고 사는 전개가 나온다. 이 소설에선 세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 전개를 그대로 따라간다. 한국 소설 매니아인 나에게는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이 소설이 굳이 대상을 받을만한 것이 었나 싶기까지 했다.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홈>은 건강과 병자에 대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는 아이러니를 보여줘서 정말 좋았었는데 이 소설은 너무 자주 보이는 소재고 전개였던 지라 새로운 미학이나 전개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한아 작가의 <일시적인 일탈>은 소설가인 지인의 죽음으로 죽은 지인에게 빠져드는 를 그려나간다. 자아의 분열에 가깝고 그 일탈의 과정에서 뭐랄까. 정말 잔인하게 망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이 정도로 망하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한아 작가는 이걸 거침없이 해냈다. 그 거침없음이 유독 눈에 띄는 소설이었다.

 

문직혁 작가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의외의 작품이었고 가장 좋은 소설이었다. 문지혁 작가는 원래 SF를 쓰던 작가였는데 민음사에서 <초급 한국어>를 출판한 이후에는 뉴욕에서 유학한 시절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을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말 그대로 우리가 다리를 건너는 내용으로 논문을 준비하면서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가 등장한다. 다양한 사건과 지식이 혼재되지만 그를 감안 해서도 형식적으로도 재미 면에서도 새롭고 뛰어난 소설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그 외의 작품으로는 김연수 작가의 <진주의 결말>, 김애란의 <홈파티>, 그리고 백수린 작가의 <아주 환한 날들>이 있었다. 이들 작품은 다른 문예지나 소설집을 통해서 미리 읽어본 상태라 뭔가 후 순위로 느껴졌다. 그렇다해서 이들 소설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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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기다리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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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작가는 그의 전 작품집인 <우리는 같은 곳에서>에 수록된 빛과 물방울의 색을 읽고 팬이 되었다.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구매를 했다. 전작에도 작가가 퀴어 소설로 분류될 작품을 쓴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은 그 색이 더 진해졌달까.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퀴어 특유의 정체성의 규정에 대한 문제와 사회와의 갈등과 일명 헤테로라고 불리는 정상성애자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파열음이 중요한 소재라고 하겠다.

 

여기서 잠깐 요즘 중요하게 활동하는 퀴어 작가들을 간단하게 비교해보겠다. 먼저 이 분야에서 가장 인기있는 박상영 작가는 MZ세대의 발랄함과 고단함을 적당하게 잘 섞고 퀴어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차이 혹은 파열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앞에서 말한 발랄함이랄까. 친숙한 특징이랄까 하는 부분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해주었다.

김병운 작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공상표>라는 소설을 발표한 이후 본격적으로 퀴어 소설을 써온다. 클로짓으로 오래 살아왔고 그만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경험 덕분인지 그의 소설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과 고민이 주요한 소재이다.

 

박선우 작가의 소설은 위 두 작가에 비하면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이다. 그 관계는 엄마와 나일 때도 있고, 사랑하는 존재와 나일 때도 있다. 친구와 나일 때도 있다. 그 관계에는 언제나 하나의 벽이 쳐져 있으며 그 벽을 넘어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른다. 나와 너는 벽을 넘기 전에 한쪽이 사라지거나 관계가 단절, 혹은 이별을 겪는다. 벽은 성소수자에게 숨쉴 틈을 주지 않는 이 나라의 사회이기도 하고 그 사회과 만들어낸 협소한 상식과 관계에 대한 정형성이기도 하다.

 

작가가 꾹꾹 눌러쓴 문장들은 읽어 나갈 때마다 잠시 멈칫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이었지만 힘들여 쓴 문장을 접할 때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조금은 멈칫거리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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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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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출판된지 오래된 소설로 장강명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 책에서 <블랙 달리아>를 지침으로 썼다고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다. 한국에서 이런 느낌의 소설이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동시에 즐거운 독서이기도 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읽는 내내 손을 놓지 못할 정도로 재밌었다.


작가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소설의 앞부분에 몇 페이지를 할애해서 이 소설의 배경을 간단하게 소개해준다. 근 미래에 북한의 김씨 왕조가 무너지고 남한은 현재 대북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 통일을 이룩한다. 중국과 미국의 간섭은 최대한 배제되고 남한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에 의해서 북한이 통제되며, 대규모 난민이 남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은 상황이다. 적어도 남한의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의 인생을 지배했던 사회체제가 무너진 북한 인민들에게도 이 시나리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일까? 장강명 작가는 소설가다운 방식으로 이 질문에 대답한다.


북한의 옛 군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체를 만든다. 조선해방군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졌지만, 조선해방보다는 마약판매를 통해서 부를 축적하는 군벌이자 마피아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커다란 부를 안겨줄 작전을 추진하고 개성에 인접한 장풍군의 폭력단체와 연계하여 그 작전을 추진하고, 방해되는 것들을 하나 둘 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던 작전은 장리철이라는 인물이 장풍군에 등장하면서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고 장강명 작가의 속도감 있는 문체와 어우러지면서 흡입력이 대단하다. 사건이 뻥뻥 터지는데, 혼란스러운 북한의 사회를 입체감 있게 묘사하면서 그 사건들도 충분한 개연성을 획득한다. 장리철이라는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전직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투박하고 단순한 인간인 이 남자는 체제에 충성을 다하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마저 교육받지 못했지만, 소설 속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서서히 인간성과 윤리의식을 가지게 된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과정이 점진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등장한다는 점이다. 장리철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마약조직원들을 처단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그의 심리상태를 작가의 직접적인 묘사로 표현한 것은 옥의 티라고 느껴진다.


스릴러물에 취향이 없어서 딱히 찾아서 읽지는 않지만, 서점가 스릴러물 코너에 국내 작가의 이름이 거의 없는 것쯤은 알고 있다. 장르문학의 풀이 옅은 국내 문학계에 장강명이라는 작가는 소중한 이름일 것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스릴러물만 써도 칭찬받을 만한데, 평소에 사회비판적인 글을 쓴 작가이기에 독자들이 고민할 수 있게 만드는 재미마저 준다. 잘 찾지 않았던 작가였는데, 앞으로는 한 번쯤은 더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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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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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이유리 작가의 전작인 <브로콜리 펀치>는 독특한 설정과 그에 파생되는 인간관계를 그려나가는 소설인지라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덕분에 이유리 작가의 팬이 되었다.

 

<모든 것들의 세계>는 일종의 귀신 물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현실을 둥둥 떠다니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구소현 작가의 <시트론 호러>도 생각나며 귀신에 대한 상상력을 절묘하게 비튼 이산화 작가의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설정이 그렇게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역시 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 그런지 재밌게 느껴지긴 했다.

 

<마음 소라>는 누군가의 마음을 들려주는 소라가 등장한다는 소설인데. 참 재밌고 씁쓸한 작품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 제일 좋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듣지 않는 사람과 그 마음을 간절하게 듣고 싶은 사람의 대비가 재미있던 소설이었다. 이유리 작가가 잘 쓰는 씁쓸한 연애 소설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페어리 코인>은 전세 사기를 당한 부부가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서 마찬가지로 사기를 친다는 내용이었다. 대를 이어 키운 페어리에 대한 묘사가 참 귀여웠다. 뭔가 마지막 부분에서 인물에게 잔인하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이 비쳤다. 한국 소설의 특징은 망하는 이야기인데 망하긴 하는데 그래도 수습이 되는 결말인지라 이 작가 특유의 마음 씀씀이도 잘 보였다고나 할까.

 

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세 편의 단편을 엮어서 책을 낸다는 기획이다. 그 가벼운 분량 덕분에 나도 가볍게 사서 읽는다. 이유리 작가의 특징 때문일까. 그 기획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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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이유 워프 시리즈 1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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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하드 SF가 불모지가 아닌 시대다. 영화 <극한직업> 덕분에 테드 창(반쯤은 농담 같은 이유지만)이 유명해지고 SF 신간들이 줄줄이 출판되며 한국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SF소설들이 출판되는 시대다. 그렉 이건은 SF팬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작가로 하드, 소프트를 떠나서 현세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작가다. 하지만 대표작인 <쿼런턴>이 오래전에 출판된 이후로 그의 작품은 잘 번역되지 않았는데 허블에서 워프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옛 SF고전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SF팬으로서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집은 굉장히 두껍다. 오랫동안 소개되지 않은 작가의 대표작들을 모아 놓으니 거의 500페이지에 달한다. 가장 좋은 건 수록된 소설의 질이 균일하게 좋다는 것이다. 특히 좋았던 두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해보겠다.

 

<적절한 사랑>은 사랑하는 이의 뇌를 자신의 자궁에 보관하게 된 여자의 기구한 이야기다. 그러니깐 자기 아이처럼 남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이것이 가능할지는 둘째 치더라도 이 설정과 가정 자체가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주인공 본인도 자신의 처지를 역겹게 생각하지만, 결코 사랑하는 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약탈자 같은 자본의 속성과 아플 때 의료보험이 태클을 거는 미국 같은 나라에선 정말 크게 와 닿을 내용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도 쓰인지 20년은 넘은 소설임에도 현실의 냉혹함을 정말 잘 설명했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자궁에 보관한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식으로서 사랑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상황과 마음을 그려나감에도 인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작가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표제작인 <내가 행복한 이유>는 인간의 감정을 이루는 토대가 결국 몸. 그중에서 뇌의 일정 부분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는 어린 시절에 뇌에 생긴 종양으로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행복감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종양을 제공하자 나는 만성적인 우울감에 빠져든다. ‘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며 이를 극복하려 여러 의료 실험에 동원되고 인공적인 방식(설명하기에는 매우 복잡하다)으로 이를 극복한다. 인간은 보통 인간의 의식과 몸이 따로 구분된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이 소설을 이러한 구분이 틀린 것이며 우리의 감정, 의식, 생각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몸, 그중에서 뇌의 상태에 종속된다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그려내는 소설이다. 그렉 이건의 특징이랄까. 어떤 소설적 설정에 따른 현상을 잘 구현하며 이를 잘 장면화한다. 주인공 가 갓 의료 실험을 마치고 모든 인간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하필이면 이 소설이 앞머리에 있는 탓에 뒤에 소설도 이만큼 좋을 거로 생각을 했다. 당연히 아니었고 약간 실망을 하는 부당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 번역자도 빼놓을 뻔했다. SF소설은 유독 번역자 빨을 많이 타는 분야다. 번역자인 김상훈 씨는 국내에 소개된 테드 창의 책들을 번역한 작가라는 점에서 단연 믿음을 가지고 소설을 읽게 되었다. 모두 이 책을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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