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즈 비 Boys be
가쓰라 노조미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Boys be 보이즈 비]

 

글쎄다,요근래 딱히 손꼽아 책을 읽으면서 소위 말하는 아,이런 책을 왜

이제서야 만났을까 하며 탄성을 자아낸 적은 없었던 듯 하다.

저자가 우려속에 비친 말과는 사뭇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뻔 했다 하였는데 그 흔함 속에서

우리가 교감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우리를 깊이 있는 흡착력으로 몰아

세우더니 이내 고집불통 구두 직인 소노다 에이지와의 만남에서 나의

찬 머리 즉 이성을 감성으로 뒤바꿈 해 놓기까지 한다.

그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뭇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본디 양철 나뭇꾼은 사람이였으나 사랑때문에 동쪽 마녀의 마법에 걸려

심장을 잃는데 여행 중인 마법사 오즈를 통해 그 심장을 찾게 되는데.

이처럼 70세 노인에게 그저 같은 공간의 사람들은 그냥 늘상 존재하는 이들일뿐

그 이상의 것도 아니었다,그러던 그에게 잃어버린 심장을 찾고자 하는 이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것도 에이조와 같은 또래도 아닌 한참 어린 초등학생

하야토가 그 환상의 호흡을 할 친구인 것이다.

서로가 떠 안은 고민거리의 문제는 확연히 다르나 안으로 들여다 본 그 고민의

시작은 지극히 혼자 떠 안아야 할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열 두살인 하야토는 엄마의 죽음을 스스로도 부여잡고 감당하기 힘들지만 것조차

내색할 수 없는 것은 어린 동생 나오야가 아직도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혼돈 속에서 몸부림이 안스럽기만 하다.그것을 다 수용하기엔 아직 어린 잎이기에.

실상 자신보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이 길지 않았던 동생을 하야토의 방식대로 그렇게

동생을 한없이 감싸안고 보담아 주는 착한 형이다.

착한 형이기에 더더욱 그 존재가치를 알아주고 건넬 그 누군가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필연인지 우연인지 하야토와 에이조의 만남은 너무 자연스럽게 같은 빌딩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는 누구나 무관심에서 지나치다 어떤 계기로 인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동기가 중요한데 이들은 자석처럼 같은 극이였을까 처음에는 서로 미는 성질을 보이더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서로의 고민거리를 알게모르게 교통하고 위로하는 N극과

S극처럼 서로 당기려는 힘이 커지고 만다.

에이조는 70세 노인이자 성인이고 하야토는 아직 12세 어린이자 동생을 가진  형이다.

이들이 서로의 그늘을 햇살 내리쬐는 양지로 전환하기까지는 작가 특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필력에 여과없이 도드라지게 표현되고 있다.

또한 살아가면서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우리네가 완벽을 기하다보면 정작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교훈과 함께 에이조와 하야토의 오십하고도 여덟개의 기나긴 생각의 다리를

서로가 앓고 있는 고민에서 동질감으로 두터운 우정으로 건너 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마음의 창을 깨끗이 씻어 낸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그 둘의 우정으로 인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피케틀 -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 6
로버트 잉펜 지음, 신유선 옮김 / 푸른날개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포피케틀]

 

늘상 그랬던 것처럼 책을 선택한 후 기다리는 과정은 참 그다지 참을성

없는 내게서 잔잔히 파도를 치게 만들어 주곤 한다.

이내 그 파도는 거센 폭풍우로 내게 들려들기도 하며 때때로 겉잡을 수

없으리만큼의 큰 소용돌이가 되어 돌아와 나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 또한 지니고 있음이다.

작가인 로버트 잉펜의 책을 앞서 읽은 독자라면 족히 알 것이다.

꿈지기아저씨에서도 그래왔듯이 '포피케틀'역시나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표제의 덧칠을 해댄 유화그림의 조화를 이루는 일러스트를 보고 반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실상 그림책의 일러스트들이 요근래에 들어와 많은 발전을 꾀하고 거듭하고 있음을

느끼는 독자로서 바라보는 관점은 과히 높이 살 만한 일이 아닐 수 없기에.

그림책이 아동에게만 읽혀진다는 지극히 국한된 사고를 버리고 어른들의 시선 또한 

사로잡을 수 있는 혜안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앞서는 작가의 미학이 담긴 이야기다.

 

아주 먼 옛날,'털복숭이 페루인'의 등장과 함께 그들이 살아오던 자신들의 땅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쳐들어오면서 의지할 곳 없는 그들은 그렇게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과정 속의 벌어지는 일종의 항해일지다.

페루하면 일단은 그들이 찬란한 잉카문명을 꽃을 피웠으나 얼마되지 않아 스페인의

식민통치아래 많은 잉카 문명의 문화재들이 파괴 되었음을 익히 알고 있다.

그에 따른 일부가 그림책에도 묘사가 되어있다.작가의 면밀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서 사원에 있는 우물 난간 위에 이 책의 실마리인 '포피케틀'

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흙으로 빚은 주전자이며 이상한 동물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귀비차를 끓일 때

쓰는 물건이라고 한다.

대체 이 주전자가 무엇을 어찌한단 말인가?

참 의아함과 작가의 상상력에 또 한번 놀라지 아니할 수 없다.

허나 나의 걱정과 달리 '포피케틀'은 털복숭이 페루인 7명의 환호속에서 실버라도의

도움으로 해변까지 옮기어지면서 페루인들의 항해준비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1순위였으며 새로운 터전으로 가는 길에 유일한 수단이였음을.

페루의 모습들도 적잖이 가미되어 그려지는 동시에 은물고기,엘니뇨 신,용처럼 보이는

이구아나,갑작스레 바닷속에서 솟아 오르는 할머니의 얼굴등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상상하지 못했던 요소들로 가득찬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음이다.

물론 페루인들은 넓디넓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항해하면서 수없는 위험 속에서

난항을 겪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터전이 될 낯선 육지에 도착하게 된다.

바다로 나온 지 4년만에 그들의 새로운 터전을 찾은 것이다.

그 곳은 오스트레일리아라 불리워 지는 곳이다.

'포피케틀'을 통해 기나긴 항해 속에서 등장하는 것들과의 멋진 상상력을

교감할 수 있는 멋진 책이 아닌가 싶다.

 

내용이 허구성을 띈 것도 아니면서 그림책의 분량에 맞게 상상력을

가미하여 실어 놓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중간중간 멋드러진 그림에

심취할 수 있도록 글밥 없는 장치를 한 것도 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치 노래를 불러라
에스메이 라지 코델 지음, 르웬 팜 그림, 박영민 옮김 / 세용출판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치 노래를 불러라]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이유인즉 고만고만한 내 아이의 또래가 제법 그럴싸한

폼으로 자신있게 무언가를 털어 놓을 기세다.

물론 제목부터가 기이하다 못해 흥이 저절로 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충분히 그러했다.

참치 노래를 재잘재잘 새처럼 연신 부를 것 같은 상상도 해 보았고

그렇지 않으면 참치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엉뚱한 발상까지 동원된 책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에서 아동용 회고록임을 알고 있어서인지 거기에 무언가 더

나만의 색을 입히고팠는지 모르겠다.

고만고만한 아이는 바로 어른이 되어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에스메이 라지 코델의 책은 현실과 그 이상의 것의 궤도를 달리는 것 같다.

'참치노래를 불러라'는 초등학교 시절의 잡다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물론 실제 생활이 바탕이 되어 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반면 마법학교는 기존에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그만의 색깔있는 필력으로

이끌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덕분에 내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때 전학을 한 학년때 연거푸 3번을 한 적이 있었다.

워낙 작은 마음인 나로서는 새로운 환경,친구들,선생님,공간마저도 설레임이라는

멋진 포장보단 두려움이 더 앞선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들 속에 새로운 것들과의 낯섦은 이내 친숙하게 지금껏 이어질 수

있는 내게 있어 잃고 싶지 않은 순수 꿈 덩어리들의 황금같은 시간이 아니였나 싶다.

실상 작가의 말처럼 어렸을 적 기억은 모두 다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간혹 나도 모르게 삭제하고픈 기억도 있으리라.

내가 그 순간 아니였더라면 혹은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에서 밀려오는 것들에서만은

적어도 남들 모르게 그렇게 조용히  마우스를 힘없이 누름 깨끗하게 삭제 되듯이 말이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그 숱한 기억들로 인해 우리는 도태하지 아니하고 거듭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작가가 어린 시절 소중한 기억을 통해 우리가 훗 날 쓸모 있는 것들로 전환하거나

작가의 실생활에서의 모습을 놓치지 아니하고 그 기억들을 잘 간수한 것에 대해 본받을

수도 있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그의 또 다른 작은 세상을 소리소문 없이 빠져 나오고 싶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이미 나 역시도 내 소중한 기억들을 그 언제일지 모를 그 날을 대비하여

요목조목 머릿 속 다락방에 가슴 속 꿈 덩어리에 살을 보태기 시작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으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라루스 출판사 지음, 김현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으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어찌보면 '그리스로마신화'처럼 다양성을 갖추고 다각도로 열어볼 수 있는

주제도 없는 듯 하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로마신화'만이 갖는 특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한소재를

담고 우리네의 눈과 귀를 호사를 누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접해보지 아니한 이가 없을 것이며 나이,성별 불문하고 통틀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함께 보며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지식 또한 쌓게 하는 것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현 추세다.

물론 아이들에게 있어 내용면이 중요시 되는 부분도 있긴하나 그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칫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심심치 않게 잃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난제들을 말끔히 해소하기 위한 노력일지 모르나 아이들이 보는 데 있어서도

어렵지 않은 내용들과 그에 따른 그림들의 소소한 것의 설명들이 적절하게 혼합된

책인 듯 하다.사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오는 미술 관련 서적들을 보아 온 독자라면

금세 알 수 있을 그 무언가가 이 책에도 머무르고 있다.

각기 다른 문화를 알기란 우리는 간접적인 체험으로 얻어지는 것에서 일말의 지식을

얻곤 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번역이나 감수에 의하여 자칫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중대함을 아는 출판사이기에 미술서적 관련한 것들에 앎을 제대로 잘 옮겼으리라는

신뢰감이 더더욱 뿌리 내리게 한 책이기도 하다.

초등2학년인 아이 물론 이전에 만화든 책으로든 수없이 접한 내용이지만 그림으로 보는

새로운 책의 재미를 덧붙이고자 건네 준 그 도화선이 드디어 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았다.웃었다,그리고 줄을 그었고 곧 표기를 하더니 그린다는 설정까지 잡아두는 모습에

학년이 더 올라갔을때 건네주려 했던 내 생각에 착오가 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은 이렇게 여러 얼굴을 지닌 듯 하다.더욱이 글밥으로만 된 책이 아닌 그림으로 보는

의미는 더 다른 시각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 시각은 각자의 몫으로 남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장점은  기존에 수없이 나온 여타

책들과 달리 '쉽게','정확하게'구성을 이루어 독자들의 입맛을 날카롭게 맞춘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말 워쇼 사진, 이진 옮김 / 이레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뜨거운 태양을 너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마침내 서늘하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요?

마흔  두 살의 베스가 마지막 길을 가며 남긴 글을 보노라면

삶에 대한 말미를 얻은 기한내에 스스로 그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아름답게 마지막까지 자신을 가꾼 것에 대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실 나는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싶고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마지막

끝자락에서 정말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3년 전 증조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몹시도 분했던 기억이 한동안 진저리

치게 할 정도로 떨치기 힘들었던 그때가 떠오르면서 의사의 뒤늦은 병명보고에

따른 치료시기를 놓쳐버린 것을 아직도 우리 나라의 의료계에 몸 담고 있는 분들에게

호소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같은 의사가 있었다면 또는마지막 가는 길에

그들에게 있어 위안과 안락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호스피스가 있었다면

그 죽음은 보다 멀리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일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한번쯤 아니 여러 차례 죽음에 대해 생각을 안해 본 이는 없을 듯 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면서 인생의 마지막 길에 놓인 스스로에 대해

재평가를 내리는 귀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 남은 시간이 주는 기회는 온전히 자기자신의 몫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으리라.

20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앞서 '인생수업'을 통해 삶의 진실들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시사해 주기도 한 장본인이다.

'안녕이라고 말하는...'에서는


6개월 간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4명의 환자와 동행하며 기꺼이 이 세상과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들의 마지막 길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순간을 함께 했다.

실상 죽음을 앞둔 이들이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부정적인 사고가 아닌 긍정적인 사고로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과정들이 마치 불현듯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그 먼 훗날의 일일 것이라

생각했던 죽음이 찾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언젠가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싶기까지 하다.것도 바램이 아니길 바래보지만.

마지막 평화의 집이라 불리우는 '샨티 닐라야'가 미국 전역의 각 주마다 세워지는 것이

소망이라 하듯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평화의 장소가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넘치고 넘친다.

지금도 마지막 저 편에서 이름모를 병마와 싸우는 그들에게 있어 내면의 두려움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대신 그것들을 이겨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보낼 용기를

지닐 수 있도록 정녕 후회없이 살았다라고 할 수 있으리만큼 그렇게 헌신적으로 돕고 그러한

공간과 손길이 필요함을 절대절명하에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읽는내내 우는 가슴을 달래기 보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보여 주었던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들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 동시에 혹여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 내지 부정적인 사로고 사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에 대해 현명한  자구책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책의 내용과 맞물려 곳곳에 실린 사진은 보기 흉하기 보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삶이 묻어

나옴을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이렇게 세상을 또 다시 아름다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해 준 이 책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