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뜨거운 태양을 너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마침내 서늘하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요?
마흔 두 살의 베스가 마지막 길을 가며 남긴 글을 보노라면
삶에 대한 말미를 얻은 기한내에 스스로 그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아름답게 마지막까지 자신을 가꾼 것에 대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실 나는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싶고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마지막
끝자락에서 정말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3년 전 증조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몹시도 분했던 기억이 한동안 진저리
치게 할 정도로 떨치기 힘들었던 그때가 떠오르면서 의사의 뒤늦은 병명보고에
따른 치료시기를 놓쳐버린 것을 아직도 우리 나라의 의료계에 몸 담고 있는 분들에게
호소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같은 의사가 있었다면 또는마지막 가는 길에
그들에게 있어 위안과 안락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호스피스가 있었다면
그 죽음은 보다 멀리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일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한번쯤 아니 여러 차례 죽음에 대해 생각을 안해 본 이는 없을 듯 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면서 인생의 마지막 길에 놓인 스스로에 대해
재평가를 내리는 귀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 남은 시간이 주는 기회는 온전히 자기자신의 몫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으리라.
20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앞서 '인생수업'을 통해 삶의 진실들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시사해 주기도 한 장본인이다.
'안녕이라고 말하는...'에서는
6개월 간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4명의 환자와 동행하며 기꺼이 이 세상과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들의 마지막 길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순간을 함께 했다.
실상 죽음을 앞둔 이들이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부정적인 사고가 아닌 긍정적인 사고로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과정들이 마치 불현듯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그 먼 훗날의 일일 것이라
생각했던 죽음이 찾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언젠가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싶기까지 하다.것도 바램이 아니길 바래보지만.
마지막 평화의 집이라 불리우는 '샨티 닐라야'가 미국 전역의 각 주마다 세워지는 것이
소망이라 하듯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평화의 장소가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넘치고 넘친다.
지금도 마지막 저 편에서 이름모를 병마와 싸우는 그들에게 있어 내면의 두려움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대신 그것들을 이겨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보낼 용기를
지닐 수 있도록 정녕 후회없이 살았다라고 할 수 있으리만큼 그렇게 헌신적으로 돕고 그러한
공간과 손길이 필요함을 절대절명하에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읽는내내 우는 가슴을 달래기 보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보여 주었던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들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 동시에 혹여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 내지 부정적인 사로고 사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에 대해 현명한 자구책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책의 내용과 맞물려 곳곳에 실린 사진은 보기 흉하기 보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삶이 묻어
나옴을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이렇게 세상을 또 다시 아름다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해 준 이 책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