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 - 멈춘 사유의 감각을 되살리는 51가지 철학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편역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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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짧은 평>

<우선 짧은 평>

이 책은 깊이가 남다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삶이라는 공간을 철학적 시선으로 세밀하게 관찰해낸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에 가깝다. 단순히 표현력이 뛰어난 데 그치지 않고,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다시 사유할수록 더욱 깊은 맛이 배어난다.

철학서 가운데서도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읽다 보면 “아, 내가 말하고 싶었던 문장이었어. 이거야! 이거!”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이 온다. 통찰력과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서가에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본문 리뷰>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현대 시대에 다시 불러온다.

쇼펜하우어는 언제나 문제적 철학자로 불렸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해야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는가”라는 전통적인 물음보다,

“어떻게 이 불합리한 현실의 굴레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극단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 인물이었다. 편역자 김욱은 “그의 철학은 한 시대의 몰락을 예견한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잉태하려는 희생적 반전이었다”고 해설한다.

실제로 쇼펜하우어의 생애는 철저한 절망의 연속이었다. 상공인의 아들로 태어나 철학자의 뿌리를 의심해야 했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덤덤했던 어머니를 보며 사랑의 허망함을 깨달았으며,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자신의 사유 속에서 끝없는 고독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절망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 삶의 본질을 꿰뚫고자 했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흔히 ‘절망의 철학’으로 불리지만,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세계관을 예비하는 낙관적 토대였다.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중심 개념은 ‘의지’다. 모든 생명은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갖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지가 불행의 근원이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새로운 욕망을 낳고, 결코 끝나지 않는 사슬로 인간을 묶어버린다. 그는 이 구조 속에서 고통을 해방하려면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하고 ‘순수한 욕망’만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에게 잠재된 본능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는 것이라는 그의 사유는 지금도 강렬하다.

책 속의 본문은 이러한 사유를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한다. 그것은 재물일 수도, 명예나 권력일 수도, 때로는 단지 고통 없는 하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갈망은 곧 고통의 씨앗이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결코 종결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우리가 느끼는 공허와 반복되는 결핍의 근원을 날카롭게 찌른다.

성취는 순간의 위안일 뿐이며, 그 직후에는 또 다른 결핍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는 존재다.

이 통찰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의 불안을 근본적 차원에서 성찰하게 만든다.

또 다른 부분에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고독과 단절을 이야기한다.

탁월한 정신은 다수 속에 섞이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차갑고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자신을 지켜내려 한다.

그는 “삶의 본질이 고통임을 꿰뚫어본 자는 선택의 순간마다 쾌락보다 고통을 택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고통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존재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통로다.

그래서 노년의 철학자는 타인에게 설득이나 가르침을 베풀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이렇게 고백한다.

“어떤 이들은 고통을 싫어하고, 어떤 이들은 고통을 사랑한다.

나는 그 누구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다만 고통 속에 진실이 있음을 깨달은 자들 곁에서 함께 침묵하고 싶다.”

이 말은 철학이 삶의 지혜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쇼펜하우어에게 철학은 추상적인 사유가 아니라, 고통의 심연을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이었다.

또한, 이 책은 지식과 학문의 한계도 지적한다.

그는 “오늘날 학문은 기억보다는 기록에, 체험보다는 인용에 의존한다”고 비판한다.

고통 없는 지식은 피상에 머물 뿐이며, 진정한 앎은 언제나 고통의 심연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유는 전문 지식에 안주하는 사람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고통 속에서 생각하는가, 아니면 남이 쓴 문장을 되풀이하며 안주하는가?

책 말미에 실린 또 다른 구절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종류의 신선한 발언이나 참다운 사상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설령 바보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도 과소평가하지 말라.

진리는 그 출처가 어디든 여전히 진리다.” 이 구절은 철학적 진리가 누구의 입을 통해 전해지든 본질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지식의 권위가 무너지고, 다양한 경로에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철학적 고통을 단순히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것을 삶의 진실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축복된 서사로 보지 않았다.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불행이며,

인간은 충동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그의 선언은 냉혹하다.

그러나 그 냉혹함 속에 담긴 진실은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삶을 더욱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은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강렬한 울림을 준다.

그것은 철학이 추상적 개념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실천적 지혜라는 사실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고통이야말로 진실이며, 환희는 환상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 결론은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인정하고 견디는 가운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바로 그 고통의 철학을 통해 우리를 다시 삶의 본질로 불러낸다.


'북피티 @book_withppt'님을 통해

'레디투다이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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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궁극적으로 비극이다. 고귀한 정신을 가진자는 이런 사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분리해 인식하고,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감각을 불편함이 아닌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다수와 섞이지 못하며, 어쩌면 스스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단절은 인간의 타고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진정한 철학자는 그것을 고통이 아닌 숙명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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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진짜 직업
나심 엘 카블리 지음, 이나래 옮김 / 현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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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진짜 직업’은 무엇일까? 철학자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을까? 나심 엘 카블리의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은 철학을 거대한 사유의 역사로만 보지 않고, 철학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고대 라틴어 격언인 “먼저 살고, 그다음에 철학하라”처럼, 철학자들도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먹고 살아야 했다.

책 속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철학자뿐 아니라, 덜 알려진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그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했다. 예상대로 과학자, 교사, 화술가 같은 직업도 있었지만, 재즈 피아니스트, 사이클 선수, 오토바이 수리공 같은 뜻밖의 직업들도 등장한다. 심지어 노예였던 철학자 에픽테토스,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철학자들의 삶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문 철학자”라는 이미지와는 크게 달랐다.

책을 읽으며 특히 눈길을 끈 인물은 스피노자였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정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렌즈 세공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했지만, 이 일이 그의 철학적 태도와 맞닿아 있었다. 그는 “사물을 실제 존재하는 그대로 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광학기기를 통해 보이지 않던 세계를 관찰하는 것과 논증을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이 똑같다는 의미였다. 스피노자는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았고, 손으로 렌즈를 깎는 일이 곧 진리에 다가가는 철학적 행위라고 여겼다.

한나 아렌트의 경우도 흥미로웠다. 그녀는 독일에서 망명한 후 기자로 활동하며 현실을 기록했다. 기자로서는 사실을 빠르게 전달해야 했고, 철학자로서는 사건의 맥락을 길게 바라봐야 했다.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아렌트는 이를 ‘공개성’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했다. 그녀가 말한 공개성은 단순히 정보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공적 토론의 장이었다. 아이히만 재판 보도는 큰 논란을 불러왔지만, 아렌트는 물러서지 않고 지적 용기를 보여주었다. 기자이자 철학자로서, 그녀는 철학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디오게네스의 사례는 조금 특별하다. 그는 위조 화폐를 만든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불법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체계의 모순을 드러내려는 철학적 행동이었다. 그는 사회가 곡물 같은 필수품에는 낮은 가치를 매기고, 보석 같은 사치품에는 높은 가치를 매기는 불합리를 비판했다. “공식적으로는 진짜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짜”라는 화폐의 모순을 폭로한 그의 행동은, 개처럼 살라며 위선을 거부했던 견유학파 철학자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파스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철학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가졌다. 그는 파리 최초의 대중교통 시스템인 ‘다섯 솔 마차’를 발명한 사업가였다. 파스칼의 발명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적 사유와 닮아 있었다. 그는 수학적 계산으로 신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증명했던 것처럼, 비용과 효율을 따져 교통 시스템을 설계했다. 신앙과 계산, 철학과 사업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했던 것이다.

몽테뉴의 양녀로 불렸던 마리 르 자르 드 구르네도 눈에 띈다. 그는 몽테뉴의 『에세』를 교정하고 편집했을 뿐 아니라, 초기 페미니즘 사상가로서도 활동했다. 그녀가 18세에 『에세』를 접하고 인생 전체를 바꾸게 된 이야기는 책 한 권이 지닌 힘을 잘 보여준다. “다른 이들은 지혜를 가르치지만, 몽테뉴는 어리석음을 지우는 방법을 가르친다”라는 그녀의 말은 몽테뉴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 또한 이 대목에서,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몽테뉴가 기억력이 좋지 않음을 여러 번 고백한 작가라는 점을 떠올리며, 그의 『에세』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히파티아라는 인물은 처음 접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천문학자였던 그녀는 큰 영향력을 지녔지만 결국 광적인 수도사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녀의 저작은 전해지지 않지만,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흰옷의 여성 인물이 히파티아일 것이라는 추측은 이미 여러 차례 들어온 그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어떤 업적을 더 남겼을지, 아쉬움이 깊게 남았다.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은 철학자들을 책 속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하고 먹고살아야 했던 인간으로 보여준다. 스피노자가 렌즈를 갈며 진리를 보았고, 아렌트가 기사를 쓰며 시대를 기록했으며, 디오게네스가 위조 화폐를 만들며 사회의 위선을 고발했다. 파스칼은 마차를 발명하며 사람들의 이동을 바꾸었고, 마리 드 구르네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철학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직업 속에서 철학의 뿌리를 찾아보게 만든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고, 생계의 노동이 곧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사를 다시 읽는 동시에, 철학이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현암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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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2년 파스칼 덕분에 파리에서 최초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탄생했다. 바로 ‘다섯 솔(당시 화폐 단위) 마차’로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 파리대중교통공사(RATP)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방면의 천재로 산술 기계와 초기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하기도 한 파스칼은 또한 철학자이자 공학자로 우리가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교통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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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한 가족
최이정 지음 / 담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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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정의 소설 『거의 완벽한 가족』은 제목부터 묘한 여운을 준다. 완벽한 가족이라는 말은 언제나 이상향처럼 들리지만, 그 앞에 붙은 ‘거의’라는 단어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틈과 균열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그 균열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사실은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드러낸다.

작품은 2025년으로 시작해 2025년으로 끝맺지만 이야기는 단순한 직선 구조가 아니다. 2018년과 2019년, 더 거슬러 올라가 1975년, 1995년, 2004년, 2020년, 혹은 ‘48년 전’이라는 지점까지 시선이 끊임없이 오가며 전개된다. 이러한 교차적 구성은 단순한 배경의 변화가 아니라, 각 인물들이 왜 지금의 선택에 이르렀는지, 그들의 감정과 관계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삶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기억과 사건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 속 인물은 다양하다. 중심에 서 있는 지원과 그의 딸 이봄을 비롯해 진수, 은주, 재식, 민아, 희영, 정례, 지원의 부모님(어머니 백자연), 그리고 민아의 남자친구 재훈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의 퍼즐 조각처럼 서로 얽히고 맞물리며 관계의 의미를 확장한다. 인물 하나하나의 서사는 따로 흩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이루어낸다.

지원의 삶은 특히 깊은 울림을 준다. 미혼모로서 반점에서 몇 년간 성실히 일하며 딸을 키우는 그의 모습은 치열하고도 현실적이다. 어느 날 만리장성 사장인 진수가 지원과 딸을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하는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계심이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오래 함께한 지원과 딸에게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범죄 소식과 사건 사고,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들이 뒤섞여 타인에 대한 불신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혹시 순수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안의 경계심과 불신을 풀어내야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이후 지원은 미혼모 센터에서 민아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되지만 곧 흩어진다. 민아는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고 미용실 보조로 취업해 일을 시작한다. 그 시기에 만난 재훈은 이 소설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인물로 등장한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알면 알수록 소름 끼치는 면모가 드러나며, 민아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된다. 힘들게 헤어졌지만 언젠가 민아를 찾아와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감은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시지 않고,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그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울 수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작품은 이렇게 결말 이후에도 인물들의 미래를 떠올리게 하며 여운을 남긴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울타리 속에도 빛과 그림자, 사랑과 갈등은 공존한다.

은주와 재식, 민아와 재훈, 지원의 집에서 23년간 일했던 가정부 임정례 등 각 인물들의 상처와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불완전하기에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진실하다.

‘거의 완벽한 가족’이라는 제목은 곧 우리 모두의 삶을 은유한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은 작품 전체를 다시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인생이 소설이고, 소설이 인생이다”라는 한 문장은 각자의 색과 향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뇌가 있었는지를 환기한다. 그렇기에 사람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으며, 그들의 경험과 무게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소설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여준 이유와 맞닿는다.

『거의 완벽한 가족』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다. 의심과 불신 속에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누군가의 선의와 따뜻한 시선을 통해 풀려나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믿을 이유를 찾는다. 완벽한 가족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실한 사랑과 연대가 드러난다. 인생이 곧 소설이고 소설이 곧 인생이라면, 『거의 완벽한 가족』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한 편의 거울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담다 2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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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돌아와. 내가 도와줄게.’
지원은 불현듯 정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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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 반상 위의 전략으로 삶의 불확실성을 돌파하다
이세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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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은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기사이자, 세계적인 명승부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인생의 수읽기』는 그가 바둑판 위에서 겪은 경험과 성찰을 삶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단순히 자신의 바둑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책의 시작은 누구나 기억하는 알파고와의 대국이다.

그는 그것을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바뀌는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축적해온 지혜가 무너지는 순간, 그는 패배보다 더 큰 성찰을 경험했다.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감각이 착각일 수 있으며, 당연하다고 여긴 방식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경험은 그가 은퇴를 앞당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남들이 “아직 몇 년은 더 둘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흐름을 읽고 새로운 길을 찾기로 했다.

바둑에서 한 수를 결정하듯 인생에서도 때로는 끝낼 줄 아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것은 “흐름을 읽는 감각”이다.

유리한 순간에야말로 실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불리할 때는 오히려 단순해져 집중력이 발휘된다.

이는 바둑판만의 진리가 아니라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안정된 순간이 방심을 낳고, 위기 속에서 더 선명한 선택이 가능해진다.

이세돌은 망설임을 경계한다. 확신이 없어 결정을 미루다 보면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타이밍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순간에 결단을 내리는 용기다.

책의 중간에 실린 「Special Essay: 알파고와의 대국을 회고하며」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대국 직후 느꼈던 긴장과 심리적 압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감정이 없는 알파고는 흔들리지 않지만, 인간은 환경과 관중의 시선, 압박감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 독자는 그의 기록을 따라가며 마치 대국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낀다. 승부의 본질은 단순히 기술의 겨룸이 아니라, 감정과 심리, 그리고 인간적 체험의 집약임을 보여준다.

이세돌은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완성된 삶”보다 “미완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전함은 더 이상 나아갈 여지가 없지만, 미완은 불확실성을 품은 채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흔들리고 편차가 생기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와 창조의 씨앗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바둑판 위의 미생과 완생의 개념을 인생에 옮겨온 통찰이다. 불안정한 상태를 피하기보다, 그 불안정 속에서 성장을 꾀하라는 말은 오늘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또한 그는 “신중함은 때로 독이 된다”고 강조한다. 지나친 신중함은 결국 기회를 놓치게 하고, 망설임은 패착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경험한 32연승의 시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잘 가고 있구나”라는 확신을 준 시기였다. 그는 이를 뇌 과학적 메커니즘과 연결해 설명한다. 어떤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뇌에 각인되고,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그 성공의 흐름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성공 경험이 또 다른 성공을 부른다는 말은, 바둑뿐 아니라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생의 수읽기』는 결국 “정답을 찾으려는 태도”가 아니라 “흐름을 읽고 결단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바둑판에서는 한 번의 망설임이 판을 무너뜨리듯, 인생에서도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흐름이 달라진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결단과 책임, 그리고 미완 속의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다.

책을 덮으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수를 두고 있는가?”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세상이 달라졌듯, 우리 역시 매 순간의 수읽기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 망설임이 아닌 결단. 그것이 이세돌이 바둑판 위에서 배워 우리에게 전하는 ‘인생의 수읽기’다.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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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는 미생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미생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확장이 가능하다.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고 실패 위험을 감수하는 길이 때로는 더 큰 가능성을 만든다. 무한함 속에서 흔들리고 편차가 생기더라도, 그 안에는 진짜 성장과 창조의 씨앗이 숨어 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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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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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언제나 최첨단 과학 이론과 소설적 상상력을 결합해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작가다.
이번 신작 『키메라의 땅』(가제본)에서도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에 신화적 상징과 문학적 상상력을 덧입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스 신화 속 키메라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되,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인류와 동물의 유전자 결합으로 탄생하는 신인류라는 설정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이야기는 진화생물학자 앨리스 카메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앨리스는 인류가 오직 하나의 종, 호모 사피엔스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위험으로 본다. 단일 종으로 존재하는 인류는 외부 충격이나 대규모 재앙이 닥쳤을 때, 순식간에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위기에 대비해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결합시켜 새로운 신인류를 탄생시키려는 ‘변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사회적·윤리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앨리스는 우주 정거장으로 피신해 연구를 이어가게 된다.

이 연구 끝에 세 가지 혼종이 태어난다.
하늘을 나는 박쥐와 인간의 혼종 ‘헤르메스’,
지하를 파고드는 두더지와 인간의 혼종 ‘하데스’,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와 인간의 혼종 ‘포세이돈’.

각각의 존재는 하늘, 땅, 바다라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이 단순히 인류의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 귀환한 혼종들은 인류와 마주하면서 공존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겪는다.

혼종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구인류와도 어긋난다.
오히려 기존 인류의 약점을 드러내며 더 우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그 모습은 마치 3차 세계대전 이전 인류의 대립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혼종들은 구인류와의 합일에 실패하고, 내부 갈등 속에서 또다른 위기를 드러낸다.

많은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듯, 이 작품은 단순히 기발한 SF적 상상력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현대 사회의 자화상이다.

탐욕과 경쟁, 질투와 배제 속에서 혼종들이 실패하는 모습은 결국 인류가 걸어온 길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이 지점에서 베르베르는 ‘진화란 과연 진보를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인류가 태어난다 해도, 과연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뿐일까?

작품은 방대한 지식 위에 세워져 있다.
생물학, 유전학, 진화론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상징까지 엮어 철학적 성찰을 담아낸다.

현실 속에서도 이미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연구들은 진행되고 있다. 장기 이식용 돼지를 개발하거나, 유전자 편집을 통해 특정 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키메라의 땅』은 이런 실제 과학적 흐름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극대화하여, 우리가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미래를 소설적 시뮬레이션처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인가? 아니면 자연을 지배하려는 존재인가?

앨리스의 혼종 실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작품 속 혼종들이 서로를 배척하고, 구인류와의 공존에도 실패하는 모습은 곧 우리 사회가 여전히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과 겹쳐진다.

읽는 내내 ‘인간의 약함’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오히려 인간이 혼종보다 열등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불편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빠른 전개와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 덕분에 몰입도가 뛰어나고 어렵지 않다. 마치 스릴러처럼 긴박하게 읽히지만, 끝내 독자에게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특히 엔딩은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을 품게 한다.
기존 인류가 사라진 자리에 혼종들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한계는 인류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존재가 인간을 넘어설 수도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희미한 희망 말이다.

『키메라의 땅』은 단순히 “인간과 동물의 혼종”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인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진화란 과연 진보를 의미하는가.”
“우리는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베르베르는 새로운 종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실험하지만, 답을 직접 주지는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그 무거운 질문을 돌려준다.
우리가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길은 더 많은 지배와 창조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결국, 『키메라의 땅』은 단순한 SF 소설을 넘어,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전쟁, 그리고 기술 발전의 윤리 문제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우화라 할 수 있다.
총평하자면, 『키메라의 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상상력이 집약된 작품으로, 흥미롭고도 불편하며 동시에 사유를 자극한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만드는, 베르베르다운 강렬한 메시지의 소설이었다.



'열린책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하게 해둘 점이 있습니다. 변신은…프로젝트일 뿐입니다. 그저 프로젝트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점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싶었던 겁니다. 아직 마르티네스 기자의 기사를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자리에 담당자를 소개합니다. 변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주도한 진화 생물학 교수 알리스 카메러는 최신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세 가지 아종으로 다양화된 새로운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세 가지 아종으로 다양화된 새로운 인류를 개발하려 합니다. 공중을 나는 인간, 땅을 파고들어 가는 인간, 헤엄치는 인간이죠’
끝났어, 말하고 말았어, 이제 온 세상이 알게 됐어. 내가 너무나 두려워하던 이 순간…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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