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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한 가족
최이정 지음 / 담다 / 2025년 7월
평점 :

최이정의 소설 『거의 완벽한 가족』은 제목부터 묘한 여운을 준다. 완벽한 가족이라는 말은 언제나 이상향처럼 들리지만, 그 앞에 붙은 ‘거의’라는 단어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틈과 균열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그 균열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사실은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드러낸다.
작품은 2025년으로 시작해 2025년으로 끝맺지만 이야기는 단순한 직선 구조가 아니다. 2018년과 2019년, 더 거슬러 올라가 1975년, 1995년, 2004년, 2020년, 혹은 ‘48년 전’이라는 지점까지 시선이 끊임없이 오가며 전개된다. 이러한 교차적 구성은 단순한 배경의 변화가 아니라, 각 인물들이 왜 지금의 선택에 이르렀는지, 그들의 감정과 관계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삶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기억과 사건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 속 인물은 다양하다. 중심에 서 있는 지원과 그의 딸 이봄을 비롯해 진수, 은주, 재식, 민아, 희영, 정례, 지원의 부모님(어머니 백자연), 그리고 민아의 남자친구 재훈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의 퍼즐 조각처럼 서로 얽히고 맞물리며 관계의 의미를 확장한다. 인물 하나하나의 서사는 따로 흩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이루어낸다.
지원의 삶은 특히 깊은 울림을 준다. 미혼모로서 반점에서 몇 년간 성실히 일하며 딸을 키우는 그의 모습은 치열하고도 현실적이다. 어느 날 만리장성 사장인 진수가 지원과 딸을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하는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계심이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오래 함께한 지원과 딸에게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범죄 소식과 사건 사고,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들이 뒤섞여 타인에 대한 불신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혹시 순수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안의 경계심과 불신을 풀어내야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이후 지원은 미혼모 센터에서 민아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되지만 곧 흩어진다. 민아는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고 미용실 보조로 취업해 일을 시작한다. 그 시기에 만난 재훈은 이 소설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인물로 등장한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알면 알수록 소름 끼치는 면모가 드러나며, 민아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된다. 힘들게 헤어졌지만 언젠가 민아를 찾아와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감은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시지 않고,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그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울 수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작품은 이렇게 결말 이후에도 인물들의 미래를 떠올리게 하며 여운을 남긴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울타리 속에도 빛과 그림자, 사랑과 갈등은 공존한다.
은주와 재식, 민아와 재훈, 지원의 집에서 23년간 일했던 가정부 임정례 등 각 인물들의 상처와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불완전하기에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진실하다.
‘거의 완벽한 가족’이라는 제목은 곧 우리 모두의 삶을 은유한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은 작품 전체를 다시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인생이 소설이고, 소설이 인생이다”라는 한 문장은 각자의 색과 향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뇌가 있었는지를 환기한다. 그렇기에 사람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으며, 그들의 경험과 무게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소설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여준 이유와 맞닿는다.
『거의 완벽한 가족』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다. 의심과 불신 속에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누군가의 선의와 따뜻한 시선을 통해 풀려나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믿을 이유를 찾는다. 완벽한 가족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실한 사랑과 연대가 드러난다. 인생이 곧 소설이고 소설이 곧 인생이라면, 『거의 완벽한 가족』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한 편의 거울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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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 2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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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돌아와. 내가 도와줄게.’ 지원은 불현듯 정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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