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카트린 벵사이드.장이브 를루프 지음, 박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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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랑을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내가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지(혹은 사랑이라고 믿는지)를

정신분석과 영성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풀어주는 인문 심리 에세이다.

연애나 관계 조언처럼 단정적으로 답을 내리기보다는,

사랑을 둘러싼 내 마음의 구조와 관계의 습관을 질문으로 정리해준다.

서문 첫머리에 인용된 카뮈의 말 ㅡ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이다.”

이 책 전체를 요약하기에 꽤 정확한 문장 같다.

이 문장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법은 그저 다정하게 말하고 잘해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저자들이 말하는 사랑은, 상대를 통해 내 결핍을 메우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를 나와 다른 한 사람으로 대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태도다.

그러니까 카뮈의 문장은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랑하는 방식이 삶을 바꾼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랑이란 말이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준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저자 조합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 다른 한 사람은 사제이자 신학·철학·심리학을 공부한 학자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두 사람 모두 정신분석과 영성에 관심이 깊다.

그래서 사랑을 다룰 때도 마음의 상처와 욕망(임상)과 삶의 의미와 관계의 태도(성경/영성)를 같이 놓고 본다. 사랑을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타인을 향한 마음(사랑의 대상)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사랑의 주체)를 동시에 살피는 방식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한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설명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저자들은 오히려 묻는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에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모습이 다르듯, 사랑하는 방식도 다양할 텐데

우리는 혹시 한 가지 방식만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닌가?

책에서 반복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갈증’이다.

사랑은 때때로 설렘보다 결핍에서 시작된다. 내가 외로울 때, 내 삶이 불안할 때, 누군가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랑은 더 강해진다. 저자들은 이런 상태를 너무 큰 사랑의 갈망 때문에 나도 상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갓난아기에 비유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당장 이 목마름만 해결하고 싶어지는 상태다. 그래서 사랑이 아름다운 감정인 동시에, 쉽게 흔들리고 아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좋은 건 여기서 ”그렇다면 사랑하지 마!”로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랑을 고독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쓰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고독을 샘물을 찾지 못하는 목마름으로 설명하고,

사랑을 그 목마름을 적셔주는 샘물에 비유한다.

핵심은 그 샘물이 기대를 채우기 위한 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사랑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가 ‘상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인정과 존중에 가깝다.

장이브 룰루프의 서문은 관계를 더 또렷하게 정리해준다.

“둘이 있으면 반드시 세 번째가 있다”는 말처럼,

모든 관계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둘을 이어주거나 구별해주는 ‘제삼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없으면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사라지는 밀착(융합)이 되거나, 서로를 밀어내는 대립(배척)으로 흐르기 쉽다.

결국 성숙한 사랑은 너와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만들고, 그 거리에서 우리가 자랄 수 있게 하는 관계에 가깝다.

“우린 취향도 똑같아, 너무 잘 맞아”로 시작한 관계가 시간이 지나며,

“왜 넌 그걸 안 해?” “네가 좀 더 이랬으면 좋겠어”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처음에는 상대를 내 꿈에 맞춰 해석하다가, 결국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결국 내가 사랑한 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결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랑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을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더 건강하게 만든다.

사랑이 의존으로 변하지 않게, 환상이 상대를 지우는 방식이 되지 않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해”라는 말이 끝맺음이 아니라 상대를 더 잘 알아가기 위한 시작이 되게 해준다.

결국 카뮈의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사랑하는 법’은 상대를 붙잡는 방법이 아니라,

내 결핍을 먼저 알아차리고 상대를 나와 다른 사람으로 존중하며 둘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사랑이 삶을 흔들기도 하지만, 제대로 사랑하는 방식은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삶을 넓혀준다. 이 책은 그것을 감정이 아닌 질문과 사례와 사유로 보여준다.


'열림원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 불친절한 세상에서 둘이 되어 함께 길을 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인생의 달콤함과 고됨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독이 야기하는 두려움을 치유하기 위한 사랑의 조급한 추구는 우리를 영원히 혼자 있게 할 수도 있다. 먼저 온전한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둘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가 내게 새로운 삶을 선사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로서 또 다른 살아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뿐이다. 내게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할 고독이 있고, 그에게는 자신만의 고독이 있는 법이다. 자신의 ’혼자 있음’을, 자신의 존재가 유일함을 인정할 때만이 비로소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유일한 존재이다. 따라서 둘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임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열어 보이고, 그와 하나로 합쳐지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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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사랑하는 대한민국 컬러링 여행
김규슬 지음 / 트러스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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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사랑하는 대한민국 컬러링 여행』은 ‘색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단순히 밑그림을 채우는 컬러링북이 아니라, 여행과 예술을 하나의 느낌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감성 여행서다.


작가 김규슬은 성균관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유럽과 아시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글과 그림으로 풍경을 기록해온 여행 에세이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현지를 직접 걷고 머물며 그려낸 스케치는 그곳의 공기와 분위기를 섬세하게 담아내며, 독자에게 단순한 정보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프랑스 스케치 여행』, 『아프리카 나미비아 컬러링 여행』, 『스위스·오스트리아 컬러링 여행』 등 다양한 시리즈로 이어진 그의 작업은 이번 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대한민국 소개로 시작한다.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이 만나는 동아시아 동안에 위치한 나라, 남북 약 1,100km에 이르는 육지와 4,000여 개의 섬, 태극기와 무궁화,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까지.

이 책은 특히 한글과 영어가 함께 병기되어 있어,

외국인 독자도 자연스럽게 한국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이 인상적이다. 컬러링북이면서 동시에 작은 문화 안내서이기도 하다.


이후 펼쳐지는 장면들은 한국의 계절, 역사, 현대적 분위기를 폭넓게 아우른다. 초여름 부여 궁남지의 연분홍 연꽃이 차례로 피어오르는 부여 서동 연꽃 축제 장면에서는 연못 위를 스치는 바람과 물결의 흐름이 그림 속에 살아 있다. 오전에 방문하면 꽃이 가장 활짝 핀다는 작은 팁까지 더해져 여행의 현실감도 놓치지 않는다.


북악산 아래 자리한 청와대 장면에서는 파란 기와와 단정한 선,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한 전통적 상징성이 강조된다.

산 그림자가 드리운 고요한 공간을 색으로 채우다 보면,

정치적 상징을 넘어 한 시대의 풍경을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성수동의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는 또 다른 결의 한국을 보여준다. 공장과 공방이 많던 동네가 패션과 예술의 공간으로 변모한 모습은 현대 서울의 역동성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곡선 외관과 도시적 분위기를 어떤 색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자아낼 수 있다.


해운대 해변 열차 장면에서는 푸른 바다와 등대,

곡선 철로가 어우러지며 부산 특유의 개방감과 속도감을 전달한다. 바다 쪽 좌석을 선택하라는 팁은 실제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색을 채우는 독자에게 장면의 방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색칠하는 행위가 곧 여행의 경험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 풍경에 가까운 색을 써도 좋고, 전혀 다른 나만의 색을 입혀도 무방하다. 연꽃을 더 짙게 물들이거나, 청와대의 하늘을 붉은 노을빛으로 바꿔도 된다. 선택하는 색마다 또 다른 대한민국이 완성된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 한 장면을 천천히 채워가는 시간은 명상과도 같다. 동시에 우리는 그 공간의 문화와 역사, 현재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을 키우는 책으로, 혹은 다녀온 뒤 추억을 되새기는 기록장으로도 충분하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대한민국 컬러링 여행』은 한국이라는 공간을 ‘본다’는 차원을 넘어, ‘느끼고 채워 넣는’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색연필을 들고 한 장을 완성할 때마다 우리는 그림 속 어딘가에 서 있게 된다. 여행과 예술을 동시에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가장 따뜻한 방식의 여행 안내서다.


'우주서평단'을 통해 '트러스트북스 출판사' 도서를 지원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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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청와대
The Blue House (Cheong Wa Dae)

산과 상징이 만난 풍경
북악산 아래 자리한 청와대는 파란 기와와 단정한 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한 건물 배치는 전통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청와대 경내를 걷다 보면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치의 상징적 공간을 느낄 수 있다.

TIP
북악산 둘레길에서 내려다보면 청와대 주변 산세가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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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넥 -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
댄 왕 지음, 우진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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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왕의 『브레이크넥』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응을 단순한 패권 경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국가 운영 방식의 충돌로 해석하는 책이다. 저자는 중국과 미국을 오랫동안 오가며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을 ‘엔지니어의 나라’, 미국을 ‘변호사의 나라’로 대비시킨다. 이 구도는 이 책의 핵심이자 오늘날 세계 질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책의 ‘들어가는 말’은 제목처럼 분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 안전해진다.” 저자는 신문 머리기사에서 미·중 지도부의 충돌 소식을 볼 때마다 지금의 상황이 단순히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에 미국과 중국만큼 닮은 나라는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미국과 중국이 모두 ‘생각 없는 물질주의’가 만연한 흐름 속에 있다고 말한다. 이 물질주의는 때로는 성공한 기업가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때로는 극단적일 정도로 자신을 제외한 주변 모두에 대한 무감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양국은 대체로 치열한 경쟁의식을 조장하며, 실용주의를 중시한 나머지 무엇이든 곧바로 해내려는 성급함으로 일을 처리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어떻게 움직이고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크고 중요한 변화 역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안전’은 감정적인 적대가 아니라, 서로를 제대로 알고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가깝다. 저자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단단하다. 미국인들이 중국을 더 잘 알수록, 중국인들이 미국을 더 잘 알수록, 불필요한 갈등에 휘말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댄 왕이 바라본 중국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실행력이 강한 사회다. 정책이 결정되면 곧바로 현실이 되고, 도로·철도·공장·신도시는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그는 중국 곳곳의 산업단지와 중소 도시를 직접 다니며,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는 현장의 역동성을 기록했다. 베이징 중심의 정치 뉴스만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살아 움직이는 중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속도와 효율은 언제나 대가를 동반한다. 저자는 중국에서 살며 생활수준이 높아지는 동시에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강화되는 모순을 체감했다. 강력한 정부와 기업 중심 구조는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낳았다. 한 자녀 정책, 제로 코로나 정책, 과도한 통제는 모두 기술적·관리적 사고가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였다.

이런 문제의식은 저자의 직업적 경험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투자 분석 회사에서 일하며 중국의 정치 구조, 기술 산업, 제조업, 대만 문제 등을 분석했다. “중국은 기술 중심 대기업을 키울 수 있는가”, “무역 장벽 속에서도 첨단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은 단순한 경제 전망이 아니라, 중국 체제의 본질을 묻는 질문이었다. 저자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시진핑의 연설문을 읽고, 공산당 문서를 분석하며, 중국의 낯선 지역까지 직접 찾아다녔다.

한편, 미국에 대한 분석 역시 날카롭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법과 절차, 이해관계 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가 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그 결과 대규모 인프라와 산업 정책은 번번이 지연된다. 중국이 빠르게 ‘만드는 나라’가 되는 동안, 미국은 ‘막고 조정하는 나라’로 변해갔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은 미국의 성공 모델을 집요하게 학습했다. 자본주의 시스템, 산업 구조, 국민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까지 흡수했다. 반면 미국은 정치적 분열과 행정 마비 속에서 점점 추진력을 잃었다. 저자는 디트로이트의 전성기를 떠올리고 싶다면 이제 미국이 아니라 중국 선전을 보라고 말한다. 이 한 문장은 현재의 역전된 산업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 시기와 미·중 갈등 심화는 저자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개인 웹사이트가 차단되고, 외국인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그는 결국 중국을 떠날지 고민해야 했다. 이런 경험은 이 책에 현실감을 더한다. 『브레이크넥』은 책상 위에서 쓰인 분석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며 만들어진 기록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미·중 사이의 적대가 과연 감당 가능한 수준에 머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만약 이 긴장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다면, 그 피해는 두 나라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 세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관심과 호기심’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미국인이 중국을 더 잘 알고, 중국인이 미국을 더 잘 알수록 불필요한 충돌은 줄어든다.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굴복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브레이크넥』의 통찰이 훌륭한 이유는 균형 잡힌 시각에 있다. 만약 중국이 건설한 것들을 찬양하며 미국은 중국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그쳤다면 절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의 공학적 효율과 실행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낳은 폭력성과 위험을 숨기지 않는다.

미국의 자유와 법치를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만들어낸 무기력함을 비판한다.

결국 이 책은 누가 더 강한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를 묻는다.

말과 규칙의 나라, 그리고 기술과 생산의 나라가 충돌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브레이크넥』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깊이 있는 사유를 제공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뉴스 속 미·중 갈등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구조적 경쟁으로 읽힌다. 빠르게 달리는 세계 속에서 잠시 멈춰 방향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자 불안한 시대를 이해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 같은 책이다.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법률가 중심 국가의 또 다른 문제는 부유층에 대해 편견이 쌓여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변호사가 그저 부자들의 하인 노릇만 한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는 부유층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부의 건설 계획을 가로막거나 세금을 덜 낼 방법을 찾는 일에만 몰두한다. 복잡한 지식재산권 소송에 휘말렸을 때 우리는 그 지지부진한 과정 뒤에 대부분 변호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판사들은 개인 투자회사가 정부를 상대로 채무 상환을 요구하는 일 같은 당혹스러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해묵은 문제를 이제는 그만 해결하고 싶을 때 소송은 해결 가능성을 제시하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리고 이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최고의 변호사를 찾아 고액의 수임료를 기꺼이 지급한다. 이쯤 되면 변호사는 단순히 부자들의 지킴이가 아니라 대부분 그 자신이 부자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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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 세계철학전집 7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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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날짜(1951.04.29)가 내가 태어난 날과 같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단지 날짜가 같다는 우연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내가 블로그와 인스타를 시작할 때 프로필 문장으로 고를 만큼 강렬했던 말이 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이 문장을 남긴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을 따라 펼친 책이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였다.

어렵게 느껴졌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일상 속 예시로 풀어내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만큼 그의 생각에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을 일상의 문장으로 설명하며, 말이 단순한 표현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크기와 형태를 결정짓는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한 문장,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를 중심에 두고,

우리가 느끼는 답답함의 원인을 ‘상황’이 아니라 ‘언어’에서 찾게 만든다.

살다 보면 인생이 참 답답할 때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도 모르겠고, 잘해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돈이 없어서 그래.” “내가 똑똑하지 않아서 그래.”

그래서 그나마 가진 것이라도 지키려고 아등바등 버티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익숙한 결론을 잠시 멈추게 한다.

내가 말하고 특정 지을 수 있는 세계가 곧 내 한계라면,

지금의 답답함은 돈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세계’가 내 삶에 남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여기서 질문을 바꾼다.

“지금 당신이 말할 수 있는 세계는 어디까지인가?”

즉, 우리가 힘든 이유는 정말 돈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범위’ 안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왔던 건 아닐까 싶어진다.

“내가 답답한 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세계를 좁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상황을 탓하기 전에 먼저 언어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내가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어떤 말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질문을 바꾸고, 쓰는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던 일들도 다른 가능성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언어는 우리의 한계를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넓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답답할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나 능력이 아니라,

내 삶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언어를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모르면 사랑을 느껴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고,

‘외로움’이라는 말을 모르면 그 감정을 막연하게만 느끼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쓰는 단어는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의 한계는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의 깊이, 시야의 넓이, 상상력까지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로 이어진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말이 거칠어지면 마음도 거칠어지고, 내가 쓰는 말이 단순해지면 생각도 얕아진다.

이 책은 그런 언어의 힘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계는 사물의 모음이 아니라, 사실들의 모음이다”라는 주장이다.

책, 의자, 컵을 많이 가진다고 해서 좋은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처럼 사물들이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즉,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세계를 만든다.

우리는 종종 좋은 차, 큰 집, 비싼 옷에 집착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 그 집에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지, 그 옷을 입고 무엇을 하는지다.

같은 칼이라도 요리를 하면 좋은 도구가 되고, 누군가를 해치면 무기가 된다.

의미는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쓰이는 상황에서 생긴다.

그래서 저자는 당신이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 세계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세계는 작은 사태들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생을 한 덩어리로 생각할 때가 많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는 왜 불행할까?”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하루를 잘게 나누어 보면 다르다.

아침에 일어난 일, 커피를 마신 일, 누군가와 대화한 일, 상처받은 일, 인정받지 못한 일.

이 작은 일들이 모여 하루를 만들고 인생을 만든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유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씩 살펴보면 무엇을 바꿔야 할지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변화 하나가 세계를 바꾼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 책은 또 말한다. “사상은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다.”

쉽게 말하면, 생각도 현실과 맞아야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성공하고 싶지만 노력은 하기 싫고, 건강하고 싶지만 운동은 하기 싫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마음은 이해되지만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무엇이 가능한지 구분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힘이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한다.

또 “사상은 의미 있는 명제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사실과 연결되지 않은 추측을 진짜 생각처럼 붙잡고 있으면 불안해진다.

“저 사람이 나 싫어하나?”

“앞으로 망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처럼 말이다.

이럴 때 내 생각이 현실에서 확인 가능한지 점검하면 머릿속이 훨씬 가벼워진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말은 꾸며내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정리하는 도구다.

말은 현실을 그리는 그림과 같다.

그림이 현실과 닮아야 의미가 있듯 말도 행동과 맞아야 힘을 가진다.

그래서 “잘 되겠지” 같은 막연한 말보다 “나는 이것을 하겠다”라는 구체적인 말이 중요하다.

틀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해야 움직이게 된다.

또 좋은 말만 한다고 삶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어울림’의 관점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결국 한 가지 생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언어는 세계를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그릇이 크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작으면 그만큼만 담을 수 있다.

내가 어떤 말로 하루를 설명하는지, 어떤 문장으로 나를 평가하는지에 따라

내가 사는 세계의 색깔도 달라진다.

행복과 불행 역시 상황보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갈라진다.

그래서 삶이 막힐 때 상황부터 탓하기보다 먼저 돌아보게 된다.

내가 쓰는 말이 현실과 맞는지, 내가 던지는 질문이 정말 답이 있는 질문인지 말이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분명하다.

삶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내가 쓰는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만들고, 조금 더 솔직하게 현실과 맞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변화가 결국 내 세계를 바꾼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매일 열심히 사는데도 이상하게 삶이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

- 머릿속 생각이 많아 자주 지치고 불안해지는 사람

- 관계에서 오해가 잦고 말이 자꾸 어긋난다고 느끼는 사람

- ‘좋은 말’을 배우기보다 ‘정확한 말’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


‘책읽는 쥬리 @happiness_jury 님의 서평단’ 활동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비트겐슈타인은 사람이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언어의 범위가 곧 그 사람이 바라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 감정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막연한 불편함으로만 느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경험하는 하나의 틀에 가깝다. 이 틀이 좁은 사람일수록 삶은 더 한정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고, 아는 단어가 적을수록 생각하는 것이 제한될 것이고,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좁을수록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역시 그만큼 좁아질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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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가슴에 꽂지 마라 - 한·중·일 50만 독자를 위로한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나토리 호겐 지음, 이정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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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배우는 ‘마음 관리법’”

현시대는 개인의 자유가 커졌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에 더 예민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남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미움받을 용기는 쉽게 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자유롭고 싶지만 고립되고 싶지는 않고, 솔직하고 싶지만 상처받고 싶지는 않은 모순적인 상태

ㅡ 그 사이에서 우리는 늘 중간쯤에 머뭇거리며 살아간다.

결국 사람들은 점점 자기 안으로 들어가 혼자 버티고, 혼자 해결하려 애쓴다.

저자는 이런 시대를 ‘신경 쓰는 사회’라고 부른다.

남을 의식하며 살다 보니 마음이 쉴 틈 없이 긴장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 표현은 요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SNS, 성과 평가, 비교, 평판 등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고, 이유 없이 피곤해질 때도 많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책은 삶의 피로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돌리지 않고,

이 시대의 구조 자체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나만 유난히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비슷한 환경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불교를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기 위한 콘텐츠라고 표현하는 점도 인상 깊다.

불교를 종교적 신앙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고, 삶을 다루는 기술로 풀어낸다.

신을 통해서가 아닌, 인간이 가진 지혜와 성찰의 힘으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민이 많은 사람에게 잊어버려라!라는 말이 거의 소용없다고 말한다.

신경 쓰는 습관은 이미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생각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카메라’에 비유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장면을 찍어 저장할지 스스로 선택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실패, 창피함, 분노, 굴욕 같은 장면만 반복해서 찍는다. 그러다 보니 그 장면이 인생 전체처럼 느껴진다.

이 설명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부정 편향’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쁜 기억을 더 강하게 저장한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집착이고,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생존 본능이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억지로 잊으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어디에 초점을 둘지 바꾸라고 말한다. 이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법이다.

결국 제목에서 가르키고 있는 화살은 사건이 아니라 기억이 아닐까.

이미 지나간 일인데 내가 계속 떠올리며 스스로를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쏜 화살보다 내가 다시 집어 든 화살이 더 아프다는 사실을 일깨우게 한다.

저자는 불교가 ‘좋은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말한다.

불교의 목표는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이다.

그래서 십선계도 더 잘하라는 뜻이 아니라 망가뜨리는 행동을 줄이라는 뜻이다.

욕심, 분노, 험담, 거짓말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삶은 훨씬 가벼워진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남의 기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인정받으면 안심하고, 외면받으면 무너진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잘 살아도 만족이 없다.

이 책은 그 기준을 바꾸라고 한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 편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남에게 잘 보이느라 지쳐온 삶에서, 이제는 내 마음이 편안한 삶으로 방향을 바꾸라고 권한다.

우리는 착한 사람 노릇을 하느라 너무 오래 자신을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완벽하게 살려고 애쓰는 태도가 오히려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점을 여러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빈틈이 전혀 없는 구조는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이지만,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어느 정도의 여유와 느슨함이 있을 때 사람은 오래 버틸 수 있고, 마음도 안정된다.

또한 저자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태도를 경계한다. 우리는 사실 누군가에게 특별히 좋아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한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웃고, 상대에게 맞추고, 하고 싶은 말도 삼킨 채 참는다. 그렇게 쌓인 피로는 어느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관계마저 힘들게 만든다.

험담에 대한 설명 역시 인상 깊다. 저자는 험담을 단순한 도덕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험담하는 순간, 그 공간 전체의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그 안에 있는 나 역시 편안할 수 없게 된다. 잠깐의 위로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결국 불안과 불신을 키우는 행동일 뿐이다.

이처럼 이 책은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방법’보다 ‘망가지지 않게 지키는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무리하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고, 쓸데없는 험담을 멀리하며, 적당한 거리와 여유를 지키는 것. 그것이 오래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임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보시’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진짜 보시란, 무엇을 주었는지조차 기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는 사람은 준 줄 모르고, 받는 사람은 받은 줄 모르는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라는 말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순간,

이미 그것은 순수한 베풂이 아니라 보답을 기대하는 거래가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선의에 기대가 섞이는 순간, 관계는 가볍게 흐르지 못하고 점점 무거워진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베풀었으면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기억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관계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관계에서의 갈등을 대하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참기만 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불만을 쌓아두는 대신, 초기에 조율하는 것이 오히려 진짜 배려라고 말한다. 솔직한 대화는 싸움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관계를 지키기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실패를 불교의 ‘무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모든 것은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오늘의 실패가 내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해마다 새로운 나이를 맞이하고,

매일 어제와는 다른 생각과 경험을 쌓으며 살아간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도 같지 않다.

그만큼 인간은 매일 조금씩 새로 태어나고 있는 존재다.

그래서 이 책은 끝까지 버텨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고 외치는

많은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무조건 참고 견디라고 다그치기보다, 힘들면 잠시 멈춰도 괜찮고,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말해준다.

완벽하게 버티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저자는 ‘자연체(自然體)’라는 개념을 통해 마음의 긴장을 풀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연체란 유도나 검도에서 말하는 기본 자세로, 공격과 방어에 가장 적합한 상태를 가리킨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경직된 자세가 아니라, 힘을 빼고 중심을 잡은 유연한 상태다.

이 개념을 삶에 적용하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항상 무언가를 대비하며 긴장하고, 혹시 모를 상황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하는 사람일수록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을 때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린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전제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경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라고 말한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성숙한 태도다.

아무리 준비해도 변수는 생긴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마음에 힘을 빼고 자연체로 설 수 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엇갈리는 일은 당연하다.

이때 “왜 저렇게 생각하지?”라고 설득하려 들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면 관계는 훨씬 덜 소모된다.

저자는 이해와 동의를 구분하라고 말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의 생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지,

그 생각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차이를 알지 못하면, 모든 관계가 설득과 논쟁의 장이 되어버린다.

모든 사람을 설득하려는 태도는 결국 나만 지치게 한다.

반대로 자연체로 서 있는 사람은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마음은 훨씬 오래 편안해진다.

저자는 사람을 서로 비교하는 태도가 마음을 가장 쉽게 병들게 만든다고 말한다.

비교해서 이기면 우쭐해지고 오만해지며 비교해서 지면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열등감에 빠진다.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해질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 자체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그 사람이 보여준 ‘행동’만을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저 사람보다 내가 낫다’거나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보다,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쪽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이다.

배신에 대해서도 저자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대를 경계한다.

인간관계에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영역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배신 앞에서도 마음이 덜 무너진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때로는 기대를 저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해준다’는 마음에 대한 고민 역시 깊다.

저자는 남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는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마음을 위선으로 오해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완벽한 동기와 순수한 마음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머릿속 생각에만 머무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화엄경』을 통해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쑤시개, 다리, 나뭇잎, 길처럼 일상의 사소한 대상에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인생에는 미리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선택한 해석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과 나를 비교하며 흔들리기보다, 배신과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완벽하지 않아도 행동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삼법인’을 통해 말한다.

인간은 결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삼법인은 불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진리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가리킨다.

모든 것은 변하고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그 사실을 깨달을 때 마음은 평온해진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 특히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무아(無我)’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가르침이다.

저자는 이를 책에 비유해 설명한다.

책은 읽을 때는 책이지만, 쌓아두면 받침대가 되고, 찢으면 불쏘시개가 되며, 버리면 쓰레기가 된다.

책의 본질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듯 사람 역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말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돼.”

“나는 안 변해.”

이 말들은 자신을 지키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가두는 말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자신을 묶어두기 때문이다.

무아 사상은 바로 이 믿음을 깨뜨린다.

나는 지금의 내가 전부가 아니며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실패한 나도, 흔들리는 나도, 지친 나도 모두 잠시 그런 상태일 뿐이다.

이 메시지는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중요하다.

변할 수 없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자신을 포기한다.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말로 가능성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불교는 그 포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너는 아직 끝난 존재가 아니며 지금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당신은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해준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더 알게 된 사실은,

우리는 이미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는데 거기에 스스로 상처를 더 얹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비교, 기대, 험담, 집착으로 이미 떨어진 화살을 다시 주워 굳이 자기 가슴에 꽂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우리에게 완벽해질 필요도 없고, 착한 척할 필요도 없고, 남을 이길 필요도 없다고 말해준다.

그저 마음을 덜 다치게 살면 된다고 말한다.

『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가슴에 꽂지 마라』는 더 잘 살라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친 사람에게 이제 좀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포레스트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불교는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도덕과 다른 부분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강조하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경지를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 경지에 다다라 깨달음을 얻은 마음을 보리심菩提心이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보리심을 토대로 하는 구체적인 생활 방식을 계로 설명한다. 흔히 계율이라고 표현하는데, 계와 율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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