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세트 - 전3권 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요니요니 지음 / 윌북주니어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신비한 고전책방: 춘향전 편』

학교에서 친구를 위해 싸웠던 주인공은 벌을 받고 낙심한다. “착하게 살면 뭐해?”라는 회의 속에 미요의 고전책방 문을 열게 되고, 그는 춘향이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춘향이는 억울하게 옥에 갇히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권력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태도, 그리고 ‘스스로를 아끼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통해 주인공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 메모: 착함은 무력하지 않다. 진짜 ‘나’를 지키는 용기가 곧 착함이다.


📖 『신비한 고전책방: 구운몽 편』

자신의 꿈이 너무 허황되다며 좌절한 주인공은 미요의 고전책방을 찾아간다. 이번에는 고전 『구운몽』 속으로 들어가, 화려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모두 누리는 양소유를 만난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양소유가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주인공도 깨닫는다.
진짜 중요한 건 ‘꿈의 크기’가 아니라, 꿈을 꾸는 마음 그 자체라는 걸.
🌙 메모: 허황돼 보여도 괜찮아. 너의 꿈은 네가 꾸는 순간부터 진짜야.


📖 『신비한 고전책방: 박씨전 편』

공주 역할을 하고 싶었던 주인공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탈락한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찾아간 고전책방에서, 그는 추녀라 놀림 받았지만 나라를 구한 ‘박씨 부인’을 만나게 된다.
추녀라는 외모 평가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전략과 말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내는 박씨의 모습은 ‘진짜 가치는 겉모습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 메모: 예쁨보다 중요한 건, 나를 아끼는 태도와 내면의 힘이다.


📚 세 권이 전하는 공통 메시지

『춘향전』은 정직과 자존감,
『구운몽』은 꿈의 의미,
『박씨전』은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 닿는 지점은 같다. “나를 믿고, 나답게 살아가는 용기.”
누구의 기준도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서 오늘도 한 걸음 내딛기를 응원하는 고전의 목소리다.


'월북주니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구운몽>이라는 제목의 뜻?
팔선녀들의 이름을 살펴 보니 사람들이 살면서 좇는 가치들이 각자의 이름에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니? 눈치 빠른 친구라면 이미 예상했겠지만, ‘구운몽’이라는 제목도 양소유와 팔선녀가 꾸는 구름 같은 꿈이라는 뜻이야.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표현하잖아. ‘구운몽’이라는 제목에서 운자가 뜻하는 구름도 이런 터무니없고 허망한 것을 뜻해. 즉, 구운몽이라는 제목은 ‘아홉 명이 꾸는 뜬구름처럼 덧없는 꿈’이라는 뜻이지. ’구운몽‘의 반전이 이제 이해되지? 하지만 원작 ’구운몽’에서는 이런 반전이 없어. 성진 스님과 팔선녀가 만나고 육관대사에게 벌을 받아 환생하는 것부터 보여주지. ‘미요의 고전책방’에서는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살짝 각색한 것이니 헷갈리면 안 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생각을 선택하라 그것이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욱 옮김 / 더좋은책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의 생각을 선택하라 그것이 될 것이다』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문장을 현대적 시선으로 엮어낸 책이다. 김욱 편역자는 니체의 아포리즘(짧지만 핵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구나 격언)을 단순히 시대를 초월한 지혜로서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살아 있는 철학으로 되살려낸다. 이 책은 니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오며 한 문장 한 문장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묵직함을 제공한다.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신은 죽었다”로 시작한다. 그는 기존의 도덕과 신 중심의 가치 체계를 부수고,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래서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이는 곧 그의 철학이 파괴가 아닌 재창조를 위한 고통의 여정임을 말해준다. 니체는 프로이트보다 앞서 무의식, 본능, 승화 같은 개념을 직관적으로 사유했고, 그의 사유는 이후 현대 심리학의 근간이 되었다. 융, 아들러, 프랭클, 로저스까지—심리학자들의 뿌리에는 니체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이 책 속에서 니체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독서는 나를 해방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진정한 독서는 나 자신을 빨아들이는 행위다.” 그는 책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소화해내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음식에 비유하며 “죽을 끓여 먹는다고 약해진 위장이 호전되진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요즘 지식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며 ‘안다고 착각하는’ 현대인들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니체는 삶의 시련 앞에서 꺾이지 않는 태도를 강조한다. 그는 “내가 두 손으로 이 나무를 흔들어도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람은 나무를 뿌리째 뽑을 수 있다.” 삶의 본질적인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견디며 성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괴테의 말을 빌려 그는 지금 흔들리는 존재야말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라 말하며 좌절 속에서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그 흔들림 자체를 긍지로 여겨야 함을 상기시킨다.

또한, 니체의 침묵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그는 침묵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침묵은 가장 잔인한 위선이다.” 그는 인간적인 관계란 때때로 예의에서 벗어나더라도 솔직하게 불평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착한 사람’이라는 껍데기 아래 자기표현을 포기한 삶은 상대에 대한 무례이자 자기 존재의 훼손이다. 진정한 배려는 침묵이 아니라 용기 있는 발언임을 그는 일깨운다.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고통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반응함을 언급한다. 작고 사소한 고통에도 무너지며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 재난조차 꿋꿋이 이겨내는 이도 있다. 그 차이는 고통 그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루는 태도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불합리하고 폭력적이며,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니체는 그런 세계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으려면 내면의 힘을 단단히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생존 방식이다.

우리는 긍지를 잃는 순간 가장 큰 상처를 입는다. “인간의 허영심이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경우는 긍지가 무너질 때다.” 이 말은 현대 사회의 경쟁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누구나 나름의 유일성과 존엄성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는 그것을 발견할 기회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니체는 우리에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삶이 의미 없어 보일 때일수록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욕망’에 대한 니체의 통찰도 흥미롭다. “인간이 독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려는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경험적 불쾌감에 의해 감정과 욕망이 조정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그는 인간이 욕망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살아가는 시대를 경계한다.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 감정은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 공동체는 절제와 양보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분명히 한다.

책 말미에 이르러 그는 “보라! 그대들 눈앞에 서 있는 그대들이 마지막 인간이다”라고 선언한다. 니체가 말하는 ‘마지막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하지 못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의지조차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진보의 종말이며, 자아의 죽음이다. 이와 대조되는 인간은 바로 ‘위버멘쉬(Übermensch)’—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하려는 존재다. 니체는 우리에게 그런 인간이 되길 요구한다.

그리고 그는 ‘공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포는 길들여져 과학이 되었다.” 인간은 맹수를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길들이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공포조차 논리로 치환했다. 이는 니체가 인간의 본능과 이성, 문명화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길들여진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을 뉴스라고 부르고, 데이터라고 말하며 예측 가능한 삶에 안도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점점 더 자유를 잃어간다.

『너의 생각을 선택하라 그것이 될 것이다』는 니체를 통해 우리 자신을 읽게 하는 책이다. 고통과 두려움, 욕망과 자유, 관계와 자아—그 모든 삶의 모순 한가운데에서 니체는 단호히 말한다.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더 이상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침묵 속에서 자신을 억누르지 말고, 진실한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삶의 진로에서 갈피를 잃은 이들, 자기 존재의 무게를 외면하고 싶을 때마다 펼쳐보기에 딱 알맞은 철학책이다. 니체의 문장은 짧지만, 그 울림은 깊다.

어떤 문장은 날카롭게 마음을 찌르고, 어떤 문장은 쓰라린 연고처럼 아픈 상처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이 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너의 생각을 선택하라. 그것이 곧 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북스토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스스로 소멸한다. 새로운 생각을 방해받은 정신은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이다.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막혀버린 정신은 더 이상 정신으로서 활동하지 못한다.
- ‘서광‘

’다름‘에는 각오가 필요한 법이다. 달라진다는 것은 그림자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포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변화가 눈에 보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과 실망이 필요한지는 오직 변화를 체감하는 개인만이 말할 수 있는 증거들이다. 이 증거들이 인생이 누구의 것인지를 말해주는 목격자가 된다. 그리고 내 삶의 목격자는 원하고 있다. 왜 나는 변화해야만 하는가. 왜 나는 지금과 달라져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혜를 구하자 문제를 주셨습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이지현 옮김 / 윌마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라토리 하루히코 편역의 『지혜를 구하자 문제를 주셨습니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특히 불안과 혼란 속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다시 해석하고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신약성서를 문자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자 스스로 말하듯, 예수의 말과 정신을 오늘의 삶에 맞춰 ‘초역(超譯)’한, 주관적이되 실존적인 해석이다. 초역 예수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예수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느낌도 든다.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한 어느 사상가의 말을 전해 듣는 느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예수의 삶과 말의 ‘실존적 무게’를 강조한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했다. 이 말의 숨겨진 함의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천국’은 내면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인간의 마음을 가리켰고, 자기 삶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줬다. 그는 “사람이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 말대로 안식일에도 병자를 돌보고 굶주린 자를 먹였다. 당시 유대교 사회의 율법과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그는, 결국 위험한 이단자로 몰려 처형되었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더 강한 진실을 남겼다.

이 책은 예수의 말과 행동을 통해 ‘구원’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다. 구원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구하는 것이다. 가난, 죄책감, 후회, 중독—그 무엇이든 삶을 파괴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을 끊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는 용기와 변화야말로 구원의 본질이다. 예수는 그런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은유’와 ‘우화’로 전했고, 이 책은 바로 그 은유의 심층적 의미를 풀어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오른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마태복음 5장)는 격한 구절도 단순한 율법적 경고가 아니다. 게헨나(지옥)를 두려워하며 육체를 벌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면의 욕망과 집착을 과감히 끊으라는 비유적 표현이다. 번역자는 예수의 말은 “비유로 받아들여야 철학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성경의 직역에 매달리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인간학적 통찰에 집중한다.

이 책은 단지 예수를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사상가로 읽기를 권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니체가 『안티크리스트』에서 말했던 예수의 모습을 닮아 있다. 니체는 예수를 교리를 퍼뜨린 종교 창시자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실천한 ‘삶의 철학자’로 보았다. 그의 말은 항상 “생명”, “진리”, “빛”과 같은 내적인 것을 가리켰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은 그 철학의 정수였다. 책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며, 외적인 종교적 권위보다 ‘마음의 상태’가 진정한 구원의 출발점임을 재차 되새긴다.

실제로 이 책에 인용된 예수의 문장들은 실천적이고도 구체적인 삶의 가르침이다.

“오늘 해야 할 일에 전념하라.”

“사랑이 충만하면 편히 잠들 수 있다.”

“고통에는 가치가 있다.”

“선행은 곧바로 잊어라.”

“싫다면 벗어나라.”

“모두가 기뻐하는 일을 하라.”

“말은 그 사람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 모든 문장들은 예수의 말에서 따온 것이지만, 고전적이고 난해한 종교 언어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의 훈련’처럼 다가온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옮기라”고 했다. 단지 알기만 해서는 세상도, 자기 자신도 바뀌지 않는다. ‘알면서도 침묵하는 자는 공범’이라는 번역자의 날카로운 문장처럼 오늘의 우리가 진실로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가 아닐까.

또한, 이 책에서 ‘돈’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다뤄진다. 예수는 “돈 때문에 선을 버리지 말라”고 경고하며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참된 기쁨도 평안도 주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돈이 있으면 한 번에 두 짝 이상의 신발을 신을 수 있는가?”라는 반문은 소비 중심의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직설적이고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결국 『지혜를 구하자 문제를 주셨습니다』는 종교적 권위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예수라는 인물이 전한 깊은 정신을 되살려낸 책이다. 그것은 어느 종교에 소속되어 있든 아니면 무신론자든 상관없이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는 “종교는 가치 있는 것이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 책의 관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하다. 진리는 제도나 교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삶 안에 있다는 믿음. 그것이 이 책을 지탱하는 철학이다.

‘내가 예수라면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책은, 예수가 남긴 말이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임을 일깨운다. 이 책이 전하는 예수의 언어는 경건하거나 신비롭기보다는 너무도 인간적이고 진실하다. 그가 던진 검 같은 말들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 균열을 찌르고 꿰뚫는다. 그 말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랑과 정의, 그리고 자기 삶을 향한 새로운 질문들이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

- 종교적 교리보다 ‘삶의 지혜’로서 예수를 만나고 싶은 사람

- 철학과 종교 사이의 경계에서 인간다움의 본질을 고민하는 사람

- 신앙은 없지만 ‘좋은 삶’을 위한 메시지를 찾고 있는 사람

- 종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채, 예수의 말을 다시 되새겨보고 싶은 사람


'월마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걱정하지 말라. 안절부절하지 말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마음 쓰지 말라.
안심하고 침착하라.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떠한가?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어쩌지?’ 하고 쓸데없는 상상을 반복하며 지금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손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전념하라.
마태복음 6:31~ - P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혜정의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현대미술 서적의 구성에서 벗어나 있다. 이 책은 작가의 작품을 단순히 해설하거나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가 직접 방문한 공간과 그곳에서 만난 작가, 컬렉터, 미술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이 전개된다.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면서도,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작가나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며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방식 덕분에 독자는 각 장에서 새로운 화두를 만나면서도, 예술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선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벨기에 출신의, 세상을 ‘묘사’ 혹은 ‘재현’하지 않고 ‘창조’하는 예술가인 리너스 반 데 벨데,

가상현실과 3D 기술을 활용해 감시와 정체성, 권력 구조를 탐구하는 권하윤,

슬로우 모션 영상 설치로 인간의 감정과 죽음, 탄생의 순간을 명상적으로 그려낸 빌 비올라,

단색화 속에 자연과 존재의 철학을 담아낸 이우환(부산시립미술관 별관에 ‘이우환 공간’이 있다—글쓴이),

공공 장소에 발화되는 문장을 통해 언어의 힘과 정치성을 직시하게 만드는 제니 홀저,

세탁망, 인조 머리카락 등 일상의 재료를 반복 구조로 엮어 낯선 감각을 만드는 양혜규,

꿀벌 군집, 바이오로봇, 실시간 데이터 등을 활용해 생명과 인공지능,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피에르 위그,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의 흐름을 연결하며 예술과 제도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큐레이터 김승덕,

흑인 정체성과 식민주의 시각 체계를 전복하는 점묘적 회화로 저항의 풍경을 펼쳐 보이는 다니엘 보이드,

엮고 짜는 노동과 색채의 물성을 통해 촉각적 감각을 시각화하는 조각가 김윤신,

빛과 안료, 깊이를 삼켜버리는 블랙으로 물성과 무형성의 경계를 탐색하는 아니쉬 카푸어 등—매 장마다 등장하는 작가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장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란 무엇인가’를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 저자의 경험담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에디터로서 활동했던 저자는 당시의 취재 경험과 현장 에피소드 그리고 예술가들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책을 구성했다. 특히 베니스비엔날레 행사에 참여했을 때 느꼈던 불안한 감정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그밖에도 전시장에서 새로운 개념의 움직임을 발견한 순간의 쾌감과 해외 미술관에서 마주한 세상의 단편들, 도서관에서 포착한 일상 예술에 대한 사유, 그리고 현대미술의 추상성을 해설하고 알리는 역할에 대한 소회까지— 이 책에는 저자가 실제로 예술을 접하며 느낀 사적인 감정과 사유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6장 “인생 전시”였다.

여기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개인전과 그의 대표작 <비르케나우> 연작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리히터는 자신의 대표작 100점을 모국에 기증하여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 상설 전시되도록 했는데, 이는 예술이 단순히 소유의 대상이 아닌 공공의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는 신념의 표현이었다. 특히 <비르케나우> 연작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몰래 촬영된 사진을 바탕으로 한 추상회화로, 그는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덧칠과 긁어내기를 반복하며 고통과 비극을 시각화했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 놓인 거울 속에서 자신이 ‘역사의 목격자이자 방관자’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감상자의 위치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자 예술이 가진 윤리적 힘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테칭 시에(Tehching Hsieh)의 이야기는 리히터와는 전혀 다른 결을 보이면서도, ‘예술과 삶이 하나 되는 순간’이라는 공통된 메시지를 던진다. <점프 피스>에서 시작해 <타임 클록 피스>, <아웃도어 피스>, <로프 피스>, <노 아트 피스>에 이르기까지, 시에는 극한의 육체적·정신적 도전을 통해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다고 해도, 적어도 나는 시간을 열심히 허비한 겁니다”라고 말하며 예술의 본질을 ‘시간의 체험’으로 정의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온 카와라의 <날짜 회화> 시리즈처럼 ‘시간을 기록하는 예술’과도 맞닿아 있으며, 예술을 하나의 존재 증명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작가들을 나란히 소개하며, 때로는 서로를 비교하고, 때로는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양혜규의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설치 작품은, 이우환의 절제된 조형 언어와 여백을 강조한 작업과 비교되며 공간과 물질, 반복과 침묵이라는 주제를 서로 다른 감각으로 풀어내는 두 작가의 차이를 통해 예술이 얼마나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그 밖에도, 빌 비올라의 명상적인 영상 작업은 권하윤의 기술 기반 영상 설치 작업과 매체적 공통점 속에서 연결되며, 제니 홀저의 텍스트 작업은 리너스 반 데 벨데의 픽션이 담긴 드로잉 작업과 나란히 떠올리게 되는데, 이 둘을 통해 언어나 이야기 같은 텍스트가 시각 예술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처럼 각 장은 서로 다른 작가와 작품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에는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이어지며 책 전체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저자가 말하는 예술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기억에 남은 한 장의 그림, 잊히지 않는 전시장의 공기, 혹은 어떤 퍼포먼스가 남긴 감정처럼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면 그 예술은 이미 사라지지 않는 것이 된다.

저자는 에디터로서, 전시를 찾는 관람자로서, 그리고 예술과 함께 삶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그때그때 마주한 예술의 장면과 감정들을 이 책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예술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기록이다.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보다 ‘그 감정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다. 미술관에서 스쳐 간 그림 한 장도, 작가의 강렬한 퍼포먼스도, 그 순간 당신 안에 무언가를 남겼다면, 그 예술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감정을 어떻게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예술은 결국 그것을 진심으로 마음에 담는 사람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일깨워준다.


'을유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Art creates empathy, empathy changes everything." 이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 두 문장이, 각각의 단어가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깨뜨리며 확 헤집고 들어와 한 자 한 자 꼭꼬개 새겨지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예술은 공감을 만들고, 공감은 모든 걸 바꾼다는 말. 이는 예술 언저리에서 일과 삶을 ‘꾸리는’ 내가 희망하거나 열망하던 바로 그것입니다. - P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 앤드 엔솔러지
이서수 외 지음 / &(앤드)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엔 제목을 보고 ‘페미니즘에 관한 책일까?

아니면 여성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는 이서수, 한정현, 박서련, 이주혜, 아밀—다섯 명의 여성 작가가 함께 써 내려간 산문집이다. ‘언니’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겪게 되는 복잡한 감정과 관계의 결을 들춰낸다. 누군가의 언니가 되어야 했던 순간, 언니로 불리는 것이 낯설거나 부담스러웠던 기억, 혹은 언니에게 품었던 기대와 실망, 챙김과 어색함 같은 미묘한 감정들까지—작가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언니’라는 호칭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무게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 호칭 안에서 작동하는 위계와 역할, 불균형한 책임과 감정노동까지 세심하게 비춘다.

첫 장을 연 이서수 작가의 글 중에 조화를 밟고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화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생화는 향기롭고 아름답지만 쉽게 시들고 상처받는다. 반면 조화는 짓밟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기질이 있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단단한 척 살아가는 사람들(혹은 여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겉으론 멀쩡하고 단단해 보여도, 사실은 망가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버티는 조화 같은 삶 말이다. 현대 사회는 생화로 살아가는 것이 힘든 시기다. 살아남기 위해서 ‘조화’가 되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은 여성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작가는 어느 날, 언니를 두고 동생들과 나눈 뒷이야기를 회상한다. “왜 언니는 밥 한 번 안 사 줘?”라는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난 언니처럼 살진 않을 거야”라는 진심 어린 말로 이어진다. 처음엔 농담처럼 시작됐지만, 그 말엔 웃음이 없었다. 언니가 싫어서가 아니라, 언니에게 기대했던 모습과 현실의 모습 사이의 괴리 때문이었다. 어른이면서도 불안해 보이고, 책임지려 하면서도 늘 조심스러워 보였던 언니의 모습에 실망했던 마음. 말은 쉽게 오갔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언니는 그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계단 아래 담배를 피우며 동생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던 그 모습이, 어쩌면 그날의 대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이 책은 이렇게 관계의 겉보다 속에서 더 큰 감정의 파동이 일어난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을 받은 언니가 대답을 망설이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같은 여성들끼리의 모임이지만, 그 안에서도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페미니스트는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고,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할까 봐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는 ‘자매애’라는 단어를 제안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마저도 불편하다고 말한다. 결국 선택된 단어는 ‘느슨한 돌봄’이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완전히 흩어지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를 뜻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깨지지 않을 만큼의 거리. 요즘 시대가 말하는 연대는 어쩌면 그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느슨한 관계조차도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이주혜 작가의 글 「순영, 일월 육일 어때」는 조용히 보여준다. 산문집 출간 후, 편집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한 후배가 말했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작가는 그 말에 “싫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한다. 언니라는 말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라, 그 호칭 뒤에 따라오는 기대와 역할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사회가 언니에게 기대하는 건 늘 다정하고, 어른스럽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여전히 불안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날 밤, 작가는 숨이 가빠지고, 오래전에 경험했던 공황장애를 떠올리며 응급 호흡법을 되새긴다. “싫습니다”라는 말이 자꾸 되뇌어지고, 그 목소리는 오래전 자신을 떠난 누군가의 목소리와 겹쳐진다. 언니라는 말 하나에 이렇게 많은 감정과 기억이 얽혀 있었구나,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한정현의 「그 언니, 사랑과 야망」은 어린 시절 동경했던 ‘동네 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스타킹, 볼펜, 반지 하나로 서열이 정해지던 시절, 언니는 늘 멋있고 강한 존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그 자리에 선 지금, 그 언니가 감당했던 현실의 무게를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과거의 선망이 시간이 지나 현실의 짐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뭉클하게 그려진다.

박서련의 「둘 중에 하나」는 자매 사이의 역할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릴 때는 늘 언니가 양보했고, 나는 받기만 했다. 그 땐 몰랐던 감정이, 어른이 된 지금 부채감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언니라고 해서 늘 강하고, 늘 다정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아밀의 「나를 다문화라 불렀다」는 ‘다름’이라는 말이 어떻게 누군가를 구분 짓고 고립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문화’는 포용처럼 들리지만, 실은 타자로 만드는 낙인이기도 하다. 자신은 누구의 언니도, 누구의 동생도 아닌 그저 ‘나’로 존재하고 싶은데, 사회는 계속 이름을 붙인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또 다른 경계가 생긴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이 글은 가장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마음에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이 있다.

“우리가 깨져도 우리 뒤에 올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자세로요.”

이 책은 완벽한 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이 간 자리에서 출발하는 관계, 깨어져도 다시 시도해보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도 시도해본 경험은 남는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는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말해준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준다.

관계는 늘 어렵지만 함께 걷는 법을 계속 연습하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넥서스 X 페이퍼 라운지 “언니, 커피 한잔하고 싶어요"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언니라도 불러도 될까요> 도서를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더치페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인기가 많겠구나. 나는 뜬금없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기에 높은 빈도수로 사용되더라도 언제나 환영받을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페미, 언니, 더치페이, 뜻이 오염되거나 더 넓은 뜻을 품고 확장되거나 시대의 흐름을 타고 빛을 내며 부상하는 단어들. - 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