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인두투스 : 입는 인간 - 고대 가죽옷부터 조선의 갓까지, 트렌드로 읽는 인문학 이야기
이다소미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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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다.

“입을 옷은 많은데, 왜 입을 게 없지?”

옷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기분과 만날 사람,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게 어떤 느낌으로 보이고 싶은지를 생각하다보면 선택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옷은 단순히 몸을 덮는 천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 주는 표식이자 언어에 가깝다. 말하기 전에 이미 나를 소개하고, 때로는 내가 의식하지 못한 내 욕망과 관계의 거리까지 드러낸다. 그래서 누군가의 옷차림을 보면 취향이나 직업뿐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시대의 규범과 분위기, 즉 그 시대의 공기까지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은 우리가 평소 막연하게 느끼던 이 감각을 출발점으로 삼아,

옷을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의미를 담아 말하는 하나의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 이다소미는 옷의 1차 목적이 맨몸의 부끄러움을 가리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말하면서도, 인류는 곧 옷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고 신분과 욕망, 바람을 표현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옷을 언어적 기호로 보았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옷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한 시대를 기록하는 역사적 문서이며 이런 복합성을 담아 저자는 ‘입는 인간’—호모 인두투스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책은 인간이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는지라는 질문을 창세기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엮는 장면은 옷의 시작이 부끄러움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신이 두 사람에게 가죽옷을 입히는 대목에서 옷은 보호와 생존을 위한 도구로 확장된다. 인간은 강한 신체를 타고난 존재가 아니라, 취약함을 도구로 보완해 온 존재였고, 옷은 태초부터 그 곁을 지켜온 가장 오래된 기술이었다.

바지의 변천사는 옷이 어떻게 문명을 바꾸었는지를 보여준다.

말 위에서 살아야 했던 스키타이 유목민에게서 시작된 바지는 실용성과 기동성이라는 필요를 충족시키며 퍼져나갔고, 제국의 확장과 함께 동서로 전파되었다.

처음에는 ‘야만인의 옷’으로 배척되었지만, 결국 군사 개혁과 혁명을 거치며 평등과 저항의 상징이 된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귀족의 무릎 바지를 거부한 ‘상퀼로트’는, 옷 한 벌이 정치적 선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옷이 사회의 규범을 얼마나 강하게 조여오는지도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날씬한 체격임에도 코르셋을 조여 입는 장면은,

미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한 여성성의 표준을 따른 결과다.

코르셋은 몸을 꾸미는 장치이자, 자세와 행동을 규율하는 통제의 도구였다.

옷은 자유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억압의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산업혁명은 옷의 세계를 다시 흔들었다. 직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며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실크와 레이스가 시민들에게 확산되었고, 화학 산업의 발전은 염색의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넓혔다. 그러나 화려함에는 대가가 따랐다. 비소가 포함된 셸레 그린, 에메랄드 그린 염료로 만든 ‘죽음의 초록 드레스’는 실제로 건강과 생명을 위협했고, 결국 역사 속에서 퇴출되었다. 아름다움의 이면에 기술과 윤리의 문제가 늘 함께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렌치코트의 역사 역시 옷이 기능에서 상징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참호전의 진흙과 냉기 속에서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트렌치코트는 전쟁 이후 거리와 스크린으로 옮겨가며, 품위와 쓸쓸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클래식이 되었다.

실용이 시간이 지나 미학이 되는 순간이다.

이 흐름은 에르메스와 버킨백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1984년, 제인 버킨이 비행기에서 에르메스 CEO 장 루이 뒤마에게 가방 사용의 불편함을 털어놓자,

그는 즉석에서 냅킨 위에 새로운 가방을 스케치한다.

그렇게 탄생한 버킨백은 기능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갖춘 아이콘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명품 시장의 정점에 서 있다. 에르메스의 가치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수작업을 고수하는 장인 정신과 흔들리지 않는 경영 철학에서 비롯된다.

대량생산 대신 희소성을 택하고, 가족 지분을 통해 철학을 지켜온 선택은 브랜드를 가격 경쟁 밖으로 밀어 올렸다.

결국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은 옷을 통해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또 스스로를 드러내는지를 보게 만든다. 한 벌의 옷은 단순한 취향의 결과가 아니라, 그 시대가 정해 놓은 기준과 기술의 변화, 권력의 작동 방식, 그리고 우리가 품은 욕망이 겹쳐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옷은 ‘무엇을 입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입게 되었는가’를 묻게 된다.

결국 옷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건, 내가 어떤 규범 속에서 살아왔고 어떤 방식으로 나를 만들어 왔는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입는 행위’가 곧 자기표현이면서 사회와의 협상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단단한맘 @gbb_mom / 하하맘 @wlsdud2976' 서평단을 통해,

'해뜰서가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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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그릇 - 마인드셋에서 실행까지, 결국 부의 길에 이르는 법
제이투 지음 / 다른상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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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런 말이 너무 자연스럽다.

“월급만으로는 답이 없다.”

“이대로는 평생 집 못 산다.”

“투자 안 하면 뒤처진다.”

이 말들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조급해지고, 부의 기준은 어느새 ‘남들이 정해 놓은 모습’으로 이동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더 빨리 지치고, 더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부의 그릇』이 정곡을 찌르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부가 멀어진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부의 기준이 잘못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 책은 “어떻게 벌까”를 묻기 전에 “무엇을 부라고 부를 것인가”부터 다시 묻는다.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부의 그릇』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우리가 가진 생각의 틀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결과를 만든다. 돈을 부르는 힘은 외부의 비밀스러운 정보나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내 안에 굳어 버린 사고방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투자 기법이나 수익률보다 먼저, 돈을 바라보는 기준과 태도를 담았다.

생각을 바꾸는 순간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말은, 막연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이 책에서 이어지는 모든 이야기의 출발선이다.

책이 가장 먼저 꺼내 드는 키워드는 ‘시간’이다. 저자는 돈을 즉석식에 비유한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금세 완성되는 간편식처럼, 단기간에 완성되는 부는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요리에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듯, 부 역시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부의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

처음부터 닿을 수 없는 목표를 세워 두었기에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무리하다가 결국 부자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 『부의 그릇』은 사회가 정해 준 잣대에서 벗어나, 내 삶에 맞는 기준을 다시 세우라고 말한다. 기준을 낮추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형태로 부를 재정의하라는 제안이다.

이 메시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워런 버핏 이야기다.

그의 자산은 초반이 아니라, 시간이 충분히 쌓인 뒤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복리는 시간이 길수록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책의 결론은 분명해진다. 돈을 걷어 내면 삶에 남는 것은 결국 ‘시간’이며,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은 진짜 이유 역시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의 목표는 얼마를 모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유롭게 시간을 쓰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은 이 주장을 현실적인 사례로 알려준다. 배당금과 글쓰기로 월 500만 원의 수입을 만들고 제주에서 사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월 500만 원으로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저자 자신은 월 2,000만 원의 현금흐름을 만들고도 여전히 회사에 묶여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 지점에서 ‘부의 척도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의 자유’라는 점이 핵심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의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진짜 자유를 주는 부의 그릇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이후 ‘잉여시간의 법칙’으로 나아간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습관이 만든 결과이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시간을 고정시간과 잉여시간으로 나누고 계산해 보면, 우리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루 5시간의 잉여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1년 뒤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저자는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라고 말한다. 30분부터 시작해 루틴을 만들고, 자동화된 습관으로 삶에 스며들게 하라고. 잉여시간을 사랑해야 미래의 내가 바뀐다는 말은,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라는 주문처럼 들린다.

잉여시간의 사용은 곧 소비자와 생산자의 갈림길로 이어진다. 보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만드는 사람으로 이동할 것인가. 소액이라도 투자해 보고, 글을 쓰고, 기록하고, 구조를 만드는 행위들이 쌓여 파이프라인이 된다. 배당금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큰돈을 한 번에 넣기보다, 소액으로 실제 배당을 받아보는 경험을 먼저 쌓으라는 조언은 작지만 확실한 성취의 힘을 강조한다.

“진짜 되네”라는 경험이 다음 단계를 가능하게 만든다.

다만 이 책은 욕망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건다. 이카로스의 신화처럼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이면, 욕망이 통제 불능이 되어 부의 그릇은 깨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이먼 민스키 심리 곡선을 가져와, 탐욕과 환상의 구간에서 과속하면 인생에도 버블이 생긴다고 경고한다.

부의 그릇을 단단히 만든다는 것은 하루하루 작은 성취에 만족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결국 『부의 그릇』이 반복해서 말하는 결론은 하나다. 행동하지 않으면 부는 없다. 인지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루틴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니체의 낙타·사자·아이의 정신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100%가 아닌 70%의 힘으로라도 오래 가는 설계를 하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부는 많음이 아니라 자유다. 시간을 이해하고, 기준을 다시 세우고, 잉여시간을 생산으로 바꾸며, 욕망을 조절하고, 실패를 털어내며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부의 그릇』은 돈을 버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부에 대한 잘못된 기준을 바로잡아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고나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얼마면 충분한가? 그리고 그 충분함을 위해 오늘 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는 순간, 부의 그릇은 이미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상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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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걷어 내면 삶에는 오직 ‘시간‘만이 남는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시간을 온전히 쓰기 위해서다. 부자들이 말하듯, 돈이 많아서 좋은 이유는 단지 돈 때문만이 아니다. 원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진정으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답은 시간이다. 돈을 좇지 말고, 삶의 시간을 귀하게 여겨라. 진정한 부자의 목표는 단순히 많은 돈이 아니라 시간을 자유롭게 쓰며 원하는 삶을 누리는 데 있다. 돈만 쫓는다면 처음부터 무리한 방법으로 부에 도달하려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함정에 빠지거나 금세 지쳐 포기할 수 있다. 결국 부와 멀어진다. 부자가 되는 길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더해야 나만의 부의 기준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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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 - 김주하 앵커가 단단한 목소리로 전하는 위로
김주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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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붉은 불이 꺼지고 스튜디오의 조명이 모두 내려앉은 뒤, 김주하는 어디로 향했을까?

우리는 늘 그의 이름 앞에 ‘앵커’라는 수식을 붙여 왔고, 그 단단한 직함 뒤에 숨은 한 인간의 얼굴은 좀처럼 묻지 않았다. 완벽해 보이는 아이콘은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상처 따위는 없을 거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착각의 반대편이다.

이 책은 강철 같은 평정심이 벼려진 시간들을 되짚으며, 한 인간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혹독한 시절을 통과해 결국 타인을 위한 등불을 선택하기까지의 기록이다. 유명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한 줌의 빛을 길어 올려 삶의 이유로 바꾸는지에 대한 투쟁기다.

그 시작은 의외로 아주 아날로그적인 감각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 “신문 왔냐~?”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던 조간신문,

종이와 잉크가 뒤섞인 냄새, 펼칠 때마다 들리던 바스락거림.

저자는 그 냄새를 ‘세상으로 통하는 첫 번째 창’이라 부른다. 활자의 뜻을 다 알지 못해도, 그 글자들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몸에 먼저 각인된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꿈은 직업이기 전에 존재의 방향이었다. 189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을 오가며 선망했던 여성 앵커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전문성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낸 선구자들이었다.

동시에 어머니가 건네던 말도 오래 남는다.

“여자 선생님은 커피 안 타잖아. 김 양, 박 양 이렇게 불리지도 않고…”그 시대의 차별을 몸으로 겪었던 어머니의 현실 감각은, 저자로 하여금 단지 앵커가 아니라 바른 말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앵커를 꿈꾸게 했다. 그 꿈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소명 의식의 씨앗이 된다. 저자는 꿈을 내면에 엔진을 장착하는 것에 비유한다. 추진력이 되기도 하고,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되기도 하는 엔진 말이다.

여고 시절 신문반의 경험은 그 엔진에 연료를 붓는다. 신문반 기자의 눈에 세상은 질문투성이였다.

왜 불공평한 일이 이렇게 많은지, 진실은 왜 여러 겹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얇은 교지 한 권이, 저자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문이자 탐험 지도였다.

직접 기사 쓰고 제목 뽑고 사진 배치하며 지면을 완성하던 과정은, 놀이가 아니라 첫 번째 외침이었다.

그러나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라고 교지에 크게 썼어도 다음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공감과 실행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배운 순간이다.

따뜻하던 선생님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목격하며, 한 사람과 한 사건이 시선의 각도에 따라 얼마나 달리 보이는지도 알게 된다. 이때 생겨난 ‘줏대’는 훗날 그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남들이 모두 ‘예’라 말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말하는 용기는 거창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순간들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익혔다.

그 용기가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앵커가 되려면 어떤 과가 유리한지 알고 싶어 방송사 인사부에 전화를 걸던 일이다.

6층 교실에서 쉬는 시간 10분, 몇 번의 ‘뺑뺑이’ 끝에 겨우 연결된 전화.

“저… 저는 고등학생인데요… 정말 죄송한데, 앵커가 되려면 대학교에서 무슨 과를 가야 제일 유리한가요?” 그 대답은 어쩌면 대단한 정보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짙은 안개 속에 한 줄기 빛이었다. 질문을 적은 종이 위에 전화번호가 촘촘히 채워지고, 막연했던 꿈의 지형도에 몇 개의 지명이 찍힌 느낌. 그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되는 법을 그때 배운다.

대학에 들어서고, 꿈은 더 치열한 현실이 된다. 안락함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던지는 선택, 그리고 혹시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다음 길’을 함께 준비하는 전략. 무조건 도전을 미화하지 않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노력은 중요하지만, 먼저 그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알아보는 과정부터가 노력이라는 말은, 꿈을 낭만으로만 소비하지 않게 붙잡아 준다.

취업 준비는 생활의 압력과 함께 온다. 장학금, 생활비, 과외와 학원 강사, 때로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까지. 돈을 벌기 위해 필요했던 차, 기름값과 보험료까지 스스로 감당하며 수동 변속기를 택했던 현실은 꿈을 향한 고생담이 아니라, 꿈을 현실로 지탱하는 일상의 기반에 가깝다.

카메라 앞에서의 공포도 나온다. 마이크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는 고백과 저음의 목소리가 치명적으로 느껴졌던 시간, 앵커 멘트가 아니라 기자 멘트처럼 들린다는 지적. 그는 모방을 택한다. 좋아하는 앵커의 목소리를 카세트에 녹음해 따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제 목소리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강연장에서 철제 필통을 천장으로 던질 만큼 절박해진다.

“좋은 목소리, 나쁜 목소리는 없습니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겁니다.”

그 한마디가 다시 전진할 이유가 되어 준다.

합격 뒤에도 그는 기적을 말하면서, 동시에 재능과 노력에 대한 솔직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은 거짓일 수 있고, 간절함은 맞는 길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끝까지 밀어붙이게 하는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는 균형감은 책 전반을 단단하게 받친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꿈을 이룬 뒤에 찾아온 더 큰 시련이다.

앵커 데스크가 삶의 전부였던 시간, 붉은 불이 켜지는 순간이 존재 이유였던 시절을 지나,

개인의 가장 내밀한 아픔이 세상의 가십이 되어버린 순간들.

남편의 외도와 폭력, 그리고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앵커의 얼굴을 유지해야 했던 현실은 숨을 턱 막히게 한다. 특히 ‘좋은 엄마 콤플렉스’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을 택하고,

아이 앞에서 행복한 부모인 척 연기하던 나날.

감정의 파급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은 오히려 내면을 병들게 했고,

불행한 결혼이라는 현실과 행복한 엄마여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인지 부조화가 깊어졌다.

“이 정도 불행은 참고 사는 거야” 같은 자기 설득은 독처럼 쌓여 영혼을 잠식한다.

그 장면들은 가엾고 슬프다.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오래 속여야 했는지,

그 버팀이 얼마나 외로운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야기 중 마음이 가장 복잡해졌던 대목이 있었다. 남편과 이혼을 고민하던 와중에도, 첫째 아이가 “동생을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 둘째를 선택한 부분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애쓰다 보니, 그 선택은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기보다 아이에게만큼은 결핍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마음, 깨진 관계의 진실을 아이 앞에서만큼은 지우고 싶었던 절박함, 그리고 어쩌면 ‘이번만큼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 희미한 희망이 겹쳐진 결과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그 결정은 사랑이나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로서의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였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선택을 두고 쉽게 탓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뒤로 미뤄왔는지, 그리고 그 미룸이 결국 어떤 대가로 되돌아왔는지를 더 또렷하게 보게 되었다.

시련이 한 개인의 사생활을 넘어 ‘스펙터클’로 소비될 때, 저자는 진실과 공감의 윤리를 묻는다.

클릭 수와 속도 경쟁 속에서 무죄 추정은 쉽게 무너지고, 여론 재판은 먼저 돌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겪는다.

그가 말하는 공감은 단지 감정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고통을 덜어주려는 연민의 태도다.

그리고 그 연민은 마침내 ‘레거시’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앉았던 자리가 아니라 누구의 손을 잡아주었는가. 상처를 자기 안에 가두지 말라는 부탁은 경험에서 나온 현실적인 제안이다. 상처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고, 이해가 다시 세상의 그늘에 손을 내미는 약속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

그가 자립준비청년들과 연결되며 발견한 생산성의 의미는 삶의 목적을 다시 쓰게 만든다.

더 이상 트로피나 헤드라인이 아니라, 제도의 구멍이 메워지고 누군가가 덜 울게 되는 변화가 그의 유산이 된다.

결국 이 책이 도달하는 곳은 당신의 목소리를 찾아라!는 메시지다.

침묵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결혼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찾아내는 과정은, 한 앵커의 성공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존기다. 그리고 그 생존은 타인을 비추는 등불로 확장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간다’는 문장이 단순한 유명 멘트가 아니라, 얼어붙은 삶 위를 끝내 건너가겠다는 결심처럼 들린다.

붉은 불이 꺼진 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다시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불빛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김주하의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번져 온다. 얼음 위를 걷는 존재는 흔들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결국 세상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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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마 모르셨을 것이다. 그 신문 ‘쪼가리’가 딸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문이자, 딸이 답을 찾아 나서는 탐험의 지도였다는 것을. 한 달에 한 번씩 나온 36페이지짜리 얇은 교지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치열한 첫 번째 외침이기도 했기에 직접 기사를 쓰고, 제목을 뽑고, 사진을 찍고, 사진을 배치하며 하나의 지면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은 그 어떤 놀이보다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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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경주 - 느긋하고 깊고 다정한 경주의 사계절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3
김혜경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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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경주』는, 천년의 고도라는 낯익은 수식어 대신 지금의 경주를 사랑스럽게 소개하는 책이다.

서라벌, 금성, 계림 같은 옛 이름이 여전히 도시 곳곳에 남아 있지만,

김혜경 작가가 바라보는 경주는 교과서 속 역사 도시가 아니라,

나무와 풀과 꽃, 골목과 냄새, 사람들의 숨결이 스며 있는 살아 있는 일상의 공간이다.

화려한 유적과 유물이 아닌, 그것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경주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작가는 계절의 변화를 따라 아주 천천히 다정하게 보여준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가장 먼저 마음을 붙드는 건 경주의 사계절이다.

반월성의 벚꽃 숲에 반해 봄의 경주를 사랑하게 되고, 온통 신록으로 뒤덮인 오월의 경주에 푹 빠져 버린다. 한여름의 경주는 견디기 힘들 만큼 덥지만,

작가는 그 뜨거운 계절을 진하고 달콤한 복숭아와 오로라처럼 펼쳐지는 노을,

황남동 메타세쿼이아 아래에서 마시는 맥주 한 캔으로 기억한다.

불국사의 단풍과 샛노란 은행잎에 덮인 노서리 고분은 경주의 가을에만 허락되는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지고, 아무도 없는 겨울밤 대릉원의 정적은 쓸쓸한 찬란함이라는 모순된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남긴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이 계절들을 매번 다른 얼굴로 피어나는 살아 있는 시간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매년, 매 계절 경주를 찾아가도 며칠 사이로 꽃의 순서가 달라지고,

초여름·한여름·늦여름마다 하늘과 나뭇잎의 색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성했던 잎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떨어져 있기도 하고,

어제는 봄이었는데 오늘은 겨울 같기도 하다

작가는 이렇게 매순간 다른 청춘을 키워 내는 자연을 통해, “같은 장소, 같은 계절이라도 늘 다른 감정을 전해 주는 도시”로서의 경주를 보여준다. 그 변화하는 풍경들 가운데, 문득 발길 닿는 골목 하나에도 이곳의 삶이 궁금해지는 마음이 생긴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다.

황리단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동차가 들어오기 힘든 잔잔한 골목이 이어진다.

작가는 이곳을 보이지 않는 막에 싸인 듯 조용한 동네라고 표현한다.

겨울 볕에도 부풀어 오른 산수유 꽃봉오리, 목욕탕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사라지면

바로 옆 목재소에서 진동하는 나무 냄새, 집 앞 화분에서 자라는 갖가지 채소, 어스름 저녁 골목을 채우는 밥 짓는 냄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르신과 대문 앞에서 나와 반겨주는 강아지, 읍성 정자에 모여 앉아 있는 어르신들의 열린 마음, 집 앞에 색색으로 피어 여행자의 발을 붙잡는 국화들, 잠깐 열리고 사라지는 시장과 겨울에도 열심히 체조하는 할머니들.

작가가 포착한 경주의 골목은 관광 포스터에 담기지 않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혼자 밥을 먹고 나가는 손에 따뜻한 물병을 쥐여 주고, 자리가 없어 서 있으면 옆으로 와 앉으라 손짓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빠르게 흐르는 세상 속에서 경주는 조금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도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리고 느긋하지만, 깊고 다정한 속도 말이다.

작가와 경주의 인연은 고작 4년 남짓이다. 남산도, 양동마을도, 포석정이나 감은사지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며 스스로를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덜컥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경주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긴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마음이 작은 건 아니라는, 다소 쑥스러운 고백이 오히려 진심을 느끼게 한다.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서 경주는 여전히 ‘설레는 도시’로 남아 있고, 그래서일까. 작가는 경주를 빠르게 지나치지 않고 천천히 머물고 싶은 도시, 사진보다 마음으로 담고 싶은 도시로 그리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마음의 기록에 가깝다.

이 책이 매력적인 건, 단지 풍경을 잘 묘사해서가 아니라 경주라는 공간과 작가의 관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벚꽃을 기대하고 왔다가 아직 봉오리만 잔뜩 맺힌 나무들 앞에서 실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목련을 발견하며 오래 바라보기도 한다. 어느 순간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끝없이 바뀌는 자극적인 화면들에서 잠시 벗어나, 바람 소리와 새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선덕대왕신종의 종소리, 사람들 대화 소리를 들으며 봄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경험을 한다.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우연히 만난 목련 덕분에 오히려 더 진한 여행의 기억이 된다.

이 책에는 이런 기대와 다름이 오히려 여행을 깊어지게 만드는 순간들을 자주 등장시킨다.

식당과 카페를 묘사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양지식당의 콩나물밥과 파전을 먹는 장면은, 단순한 맛집 소개를 넘어 관계와 위로의 장면으로 그려진다.

메뉴는 단출하게 콩나물밥과 파전뿐인데, 특이한 양념장의 맛을 함께 궁금해하고 품평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로 이어진다.

남편 이야기, 자유와 책임,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과정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감정들이 콩나물밥 한 숟가락, 파전 한 조각과 함께 오간다.

“사랑받든, 자유롭든 뭐가 중요한가. 이런 사소한 감정을 사사로이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문장은, 이 여행이 단지 도시를 보는 여행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확인하고 다독이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런 ‘작은 공간들’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남는 장소가 무열왕릉 근처의 독립서점, ‘누군가의 책방’이다. 한옥과 작은 마당, 그리고 왕왕 짖는 강아지 ‘호두’가 있는 이 조용한 책방을 두고,

저자는 여긴 사실 드러누워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드는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책방지기가 직접 골라 정성스럽게 포장해 둔 블라인드 북이 있다.

책 속 문장 한 줄과 짧은 소개만 붙어 있을 뿐, 포장을 뜯기 전까지는 어떤 책인지 알 수 없다.

저자가 고른 문장은 “기록하지 않은 삶은 기억되기 어렵고 기억되지 못한 시간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지요.”였다. 사진을 찍고, 짧게라도 글을 남기려 애쓰는 자신과 닮은 문장을 발견하고,

그는 이 책을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집어 든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 역시 블라인드 북이라는 형식이 주는 설렘보다,

그 한 줄의 문장이 요즘 내가 자주 곱씹는 생각들과 묘하게 겹쳐져 이 책방이 더 궁금해졌다.

저자의 말처럼 이 공간이 언젠가는 정말 드러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새롭다. 나 역시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이 책을 읽고서야 2층 테라스 난간의 구멍이 도자기 모양으로 뚫려 있다는 것, 5월 오후가 되면 그 모양 그대로 바닥에 빛이 떨어져 작은 그림자를 만든다는 사실과 아카시아꽃과 버드나무 솜털, 바람이 실어 나르는 꽃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이디야 커피숍 테라스에서 흑임자 수막새 마들렌을 들고 신라천년보고를 바라보며,

박물관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풍경을 포착한다.

나뭇잎의 색, 테라스 바닥에 드리워지는 빛, 역사관 복도 끝 모서리 기둥에 새겨진 사자 조각과

그 뒤로 보이는 하늘까지, 박물관을 풍경을 감상하는 장소로 소개해 주는 저자의 시선이 참 고마웠다.

비 오는 날 친구들과 들른 퓨전 아시아 식당 ‘덕클’에서의 장면은, 중년의 우정과 건강, 두려움을 토닥이는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는다. 축축한 날씨, 축축한 마음, 그와 함께 앉은 친구들은 신장 투석을 하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으로 힘든 시간을 겪어 왔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건네는 말투는 무겁기보다 유쾌하고, 가지를 싫어하던 중학생들이 이제 가지튀김을 서로 앞에 놓아주며 더 먹으라고 권해주는 장면에서는, 고단한 인생의 시기를 버티는 사람들 특유의 다정함이 느껴진다. 바깥 날씨처럼 우리 삶도 때로는 우중충하고 축축하지만, 이러다 또 맑아질 거라는 믿음이 음식 사이사이에 묻어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큰 축을 이루는 장소는 단연 ‘반월성’이다.

작가는 이곳을 단지 벚꽃 명소나 야경 스폿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돌보기 위해 찾는 마음 요양소처럼 그린다. 시름시름 말라 가던 마오리소포라 화분이 깍지벌레 때문에 죽어 갔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기 마음 안에도 돌보지 않으면 번져 버리는 깍지벌레 같은 감정이 있다고 고백한다.

아무도 대신 잡아 줄 수 없는 그 마음의 벌레를 하나하나 닦아내기 위해 그는 혼자 경주로 떠난다.

반월성 숲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듣고, 새소리를 듣고, 축축했던 마음을 햇볕에 말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작은 치유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노서리 고분 앞에 앉아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고,

밤에는 혼자 나가 비빔밥을 먹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선다.

그렇게 ‘나를 위한 마음 한 칸’을 마련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나가는 과정 끝에,

그는 반월성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고백을 외친다. “사랑해.”

이 말의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서, 『언제라도 경주』는 여행 에세이이자 동시에 자기 돌봄의 기록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책이 단순히 경주의 명소들을 소개하는 가이드북이 아니라는 걸 여러 번 확인했다. 사람들이 잘 찾기 힘든, 자기 색이 또렷한 카페와 책방, 헌책방, 제과점, 고분군과 왕릉, 정원,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토함지, 향토사료관, 쪽샘지구, 골목 속 작은 식당까지 정말 많은 장소가 등장하지만,

그 모든 장소는 결국 어떤 눈으로 도시를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대구에서 가까운 경주라 자주 찾아간 도시였기에, 나는 경주를 꽤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자주 가 본 도시’와 ‘깊이 바라본 도시’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국립경주박물관의 테라스 난간이 5월의 햇빛을 받아 도자기 모양으로 비추는 아름다운 장면,

솔거미술관 옆 연못가 뽕나무에 매달린 그네, 8월 계림 바닥을 덮는 맥문동꽃의 보랏빛 카펫,

황성공원 울창한 숲과 오래된 나무들처럼, 나는 늘 스쳐 지나가며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장소를 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다.

조금 더 세심하게,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작은 사물 하나, 나무 한 그루, 난간의 구멍 하나를 보더라도,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볼 때 느껴지는 감정은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경주가 더 이상 수학여행지나 지루한 문화재 관광 도시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자주 가 보았지만, 까도 까도 새롭고, 늘 같은 듯하지만 계절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숨은 매력의 도시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주는 이제 언제라도 가고 싶은 곳이 된다.

시간이 비어 있을 때, 마음이 지칠 때, 나를 다시 잘 돌보고 싶을 때, 그냥 가만히 걷고 앉아 있고 싶을 때 떠오르는 도시가 될 것 같다.

『언제라도 경주』는 그런 도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여행의 감각을 일깨운다.

경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아직 경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주를 바라보는 이 세심하고 다정한 시선이, 언젠가 우리 각자의 일상과 도시를 바라보는 눈에도 스며들기를 조용히 바라보게 되는 책이다.


본 포스팅은 푸른향기 서포터즈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직접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목련을 바라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봄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바람 소리도 들리고, 새소리도 들리고, 때론 선덕대왕신종의 종소리도 들린다. 멀리서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마저 기분 좋게 들린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휙휙 바뀌는 자극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중독된 심신을 쉬게 해준다.
벚꽃 만개를 기대하고 왔다가 너무 일러 봉우리 진 벚꽃만 실컷 봤지만, 그 아쉬움을 우연히 만난 목련이 달래준 봄의 경주, 여행은 그런 뜻밖의 순간으로 진해진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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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를 위한 창업선생 이병철 정주영
박상하 지음 / 북오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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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성과 현대라는 거대한 제국을 일군 두 사람인, 이병철과 정주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이미 여러 석학들이 남긴 『삼성과 소니』, 『SAMSUNG WAY』, 『호암의 경영철학』 같은 연구서들이 시스템과 전략을 정교하게 분석해 왔음에도, 정작 왜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졌는지, 어떤 내적 동력에서 그런 선택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해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이 택한 길은 조금 다르다. 위에서 시스템을 내려다보는 분석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삶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창업가 이병철’과 ‘창업가 정주영’이라는 실존의 껍질을 벗겨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MZ세대가 실제로 사업을 시작할 때, 혹은 기업의 최전선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경영 창작의 살아 있는 텍스트로 두 사람을 다루려는 시도다.

저자는 이병철과 정주영의 성공을 단순한 ‘기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척박한 황무지에서 오늘의 삼성과 현대를 일구기까지의 여정 뒤에는, 말로 다 풀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고 본다. 저자는 이 힘을 두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꾸준히 작동해 온 ‘숨은 근육’, 다시 말해 에토스(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 몸에 밴 생각의 방향)로 이해한다. 이 책의 ‘2인 비교 스토리’는 바로 그 숨은 근육이 무엇이었는지를, 두 사람의 삶과 선택을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밝혀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 퍼즐을 맞추기 위해 저자는 먼저 리더십의 두 유형을 꺼내온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말한 ‘숲속의 여우’와 ‘숲속의 고슴도치’다.

여우는 여러 길을 알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바꾸는 존재다. 냄새와 흔적을 읽고, 발자국을 지우고, 여러 수법으로 사냥감을 몰고, 때로는 죽은 척하며 숲의 환경 전체를 활용한다.

반대로 고슴도치는 한 방향으로만 돌진하는 동물이다. 시야도 좁고, 자주 부딪치고, 성질도 급하지만, 한 번 사냥감에 꽂히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콜린스에 따르면 세상의 리더는 결국 이 두 축 어디쯤에 놓인다.

직선과 곡선, 저돌성과 신중함, 행동 우선과 사고 우선,

디오니소스적 인간형(감정적이고 본능적이며, 열정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중시하는 인간 유형)과

아폴론적 인간형(이성적이고 질서와 균형을 중시하며, 차분하게 계산하고 계획하는 인간 유형)…

이 대비를 통해 저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말한 ‘평가형’ 이병철과 ‘리더형’ 정주영을 더 입체적으로 읽어내려 한다.

이병철의 초상은 ‘숲속의 여우형 리더’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미소, 상회, 양조장을 거쳐 제일제당·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한 번 정상에 오른 뒤 거의 반세기 동안 정점에서 밀려난 적이 거의 없었다.

어떤 스승이나 멘토의 그늘을 언급하기보다, 자신의 운명과 감각을 더 믿었던 인물이다.

그의 운명론은 흥미롭다. 재물과 지위는 마음대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도리와 우주의 섭리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면서도, 그 ‘운’을 기다리는 태도는 수동적이지 않다.

운이 올 때까지 둔하게 버티는 인내와,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물고 늘어지는 용기, 이 두 가지가 그의 운명론을 이룬다. 운을 기다린다는 말이 얼핏 체념처럼 들리지만, 이병철에게 그것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평소에 자신을 갈고 닦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의 성장 배경 역시 중요한 단서로 등장한다. 가난에서 시작한 많은 1세대 창업가들과 달리, 이병철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여유 있는 집안에서 출발했다. 첫 창업 자본도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여유가 그를 ‘안전한 선택’에 머무르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부터 큰 판을 상상하고 그 판을 현실로 끌어오는 통 큰 기질로 이어진 점이 흥미롭다. 한국비료처럼, 당시 한국 경제 규모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프로젝트에 세계 최대 수준으로 뛰어든 것도 그런 기질의 연장선이다. 그는 단지 큰 것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면 1등, 아니면 안 한다”에 가까운 제일주의를 사업의 문법으로 삼았다.

성격 역시 이 문법과 맞닿아 있다. 차갑고, 냉정하고, 까다롭고, 예리한 사람. 완벽을 추구하며 식사에 나오는 빵조차 최고만을 고집한 사람.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일상에서 ‘최고의 것’을 직접 경험하고 비교해 봄으로써, 자기가 만들 제품의 기준을 몸으로 익히려는 태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완벽주의는 결국 삼성의 사업성 검토 지침 같은 시스템으로 구체화된다.

사업의 목적, 환경, 추진 방법, 조직, 성과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검토하는 매뉴얼은,

여우처럼 이리저리 꾀를 쓰되, 동시에 치밀함을 끝까지 놓지 않는 리더의 그림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병철의 내면을 지배한 건 ‘견고한 고독’이다. 그는 누구와도 쉽게 섞이지 않았고, 자신의 성을 스스로 쌓아 올린 뒤 철저히 성문을 닫아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이 고독이 그를 난해하고 신비로운 인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냉철한 이성, 인간에 대한 통찰, 미래를 꿰뚫어 보는 시야를 가능하게 한 기반이기도 했다.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여우답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 번의 쓰라린 경험 끝에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엮여선 안 된다는 강한 금기를 세운다. 그때부터 삼성은 권력 대신 기술과 경쟁력이라는 마이 시크릿에 사활을 걸게 되고, 남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첨단 영역, 작고 가볍지만 압도적으로 효율적인 경소단박형 제품들로 승부를 보려 한다.

반면 정주영은 전형적인 ‘숲속의 고슴도치형 리더’로 등장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현대왕국을 일으킨 그의 인생은,

“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야행성 동물”이라는 고슴도치의 이미지와 잘 겹친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에 먼저 몸을 던지고,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지면서도, 끝내 뚫고 나가는 사람. 조선업 진출, 현대자동차의 포니 개발, 중동 건설시장 정복, 서산 간척 사업 같은 사례들은 그의 도전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조선소 설립 에피소드는 그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정몽구가 승용차 생산에 성공한 뒤, 다음 목표로 대규모 조선소를 점 찍는다.

그때 한국엔 조선 기술도, 경험도, 필요한 자본도, 안정적인 수주 시장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안 되는 이유 리스트만 가득한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근거로 시도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거나,

조건이 이렇게 안 맞는데 어떻게 배를 만드느냐는 회의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정주영은 조건을 보고 물러서는 대신, 조건을 만들어 가는 쪽을 선택한다.

프랑스와 스위스 은행에 이어 영국 은행의 문을 두드리며 대출을 요청하고,

“수주 계약서부터 가져오라”는 답을 듣자 바로 그리스로 날아가 세계적인 선박왕 리바노스를 찾아간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고, “우리는 16세기에도 철갑선을 만들던 나라다. 엔진과 철판으로 만드는 배라면 반드시 잘 만들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배짱인 설득을 이어간다.

그리고 결국 초대형 유조선 2척의 수주 계약서를 받아낸다.

그 계약서를 들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 자금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 조선소를 짓고, 다시 그 조선소로 수주를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건이 안 돼서 못 한다는 말이 얼마나 허약한 변명인지 깨닫게 한다.

나는 이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 할 때, 갖춰지지 않은 조건을 따져 보며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 발을 빼는 경우가 많다. 자본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고, 시장도 불확실하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리기 쉽다. 그런데 정주영의 방식은 정반대였다.

먼저 몸을 던져 실행의 무대 위에 올라가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기술, 신뢰라는 조건을 차례로 만들어 간다. 이것이 무모한 만용과 다른 점은, 그 실행이 철저히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감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 자동차, 조선, 간척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일선 현장을 발로 밟으며 ‘어디에 황금이 되는 산업이 있는지, 그 산업을 자기 기업에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라는 CEO의 본질적인 역할에 집중했다.

중후반부의 ‘재와 평의 사이’라는 논의는 이런 두 사람의 차원을 정리해주는 개념적 틀이 된다.

저자는 사람의 역량을 일곱 단계로 나누면서,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지점은 평(平)–지(智)–재(才)의 구간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평’의 세계가 있고,

배움과 깨달음, 자기 단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의 세계가 있으며,

그 위에 설명하기 어려운 입체의 차원인 ‘재’의 세계가 있다.

이병철과 정주영은 명백히 이 ‘재’의 차원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출발선에서 그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기업과 기업가는 지금 대부분 사라졌지만,

삼성과 현대만은 여전히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차이를 만든 힘이 바로, 설명하기 쉬운 평면적 역량을 넘어서는,

비상한 재주와 이를 토대 삼은 선택과 실행의 누적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저자가 ‘재’를 타고난 운명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깨달음과 학습, 자기 단련을 통해 지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고,

거기에 보통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과 태도가 더해진다면 재의 세계를 향해 문을 두드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병철의 일등정신과 정주영의 도전정신은 바로 그 ‘몇 배의 노력’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결국 이 책이 MZ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좋은 시스템과 탁월한 전략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태도, 반복되는 선택, 실패 앞에서 멈추지 않는 실행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

이병철처럼 냉정하게 현실을 읽고, 일등을 목표로 판을 설계하며 기술과 기준을 끝없이 끌어올리는 길도 있고, 정주영처럼 조건이 없어도 먼저 몸을 던져 새로운 산업의 길을 뚫어가는 길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건이 되면 언젠가 해보겠다는 말이 사실상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창업을 꿈꾸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보다 주도적으로 이끌고 싶든, 결국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재의 세계를 향해 조금 더 깊이 파고들 용의가 있는가를 묻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앞으로의 MZ세대가 만들어낼 새로운 ‘경영 창작의 스토리’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북오션출판사의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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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비교 스토리’는 이병철과 정주영이라는 실존하는 경영사(business history)가 지금의 삼성과 현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보는 데서 출발한다. 오늘날 삼성과 현대라는 실체를 경영의 주체인 두 사람의 남다른 기업가 활동(entrepreneurial activity)을 통해 전체적 시각으로 낱낱이 들여다볼 참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이병철의 경영 창작은 왜 강력한 개성과 냉혹한 성격을 내세웠는지,
반면에 정주영의 경영 창작은 왜 두둑한 배짱과 불같은 열정인지 들여다보려 한다.
더불어 이병철의 ‘이유는 없다, 명령은 내가 한다’는 황제 경영(push strategy) 전략과
정주영의 ‘이유는 없다, 나를 따르라’는 정벌 경영(lead strategy) 전략의 밑그림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2인 비교 스토리’는 두 사람이 창작해낸 삼성과 현대라는, 지금의 경영 창작에서 우리에게 어떤 문법을 제시하고 있는지까지 속살을 빠짐없이 톺아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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