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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다음 기억하기 - 독서모임과 독서노트 완성하는 법
은가람 지음 / 하나의책 / 2025년 12월
평점 :

『읽기 다음 기억하기』는 독서법을 알려주기 전에, 한 사람의 독서 경험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먼저 보여주는 책이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첫 독서모임의 기억을 꺼내 놓는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눈맞춤, 적당한 긴장감이 감돌던 공간이 진솔하고 친절한 대화로 채워졌다는 문장부터 그 공간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저자는 그 장면이 아름답기만 한 추억으로만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튀어나오고, 재기발랄하면서도 명쾌한 답이 오간다. 그 사이에서 저자는 머릿속을 더듬느라 바빴고, 즐겁기만 했던 독서의 기억이 빠르게 휘발되어 버렸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할 얘기가 없었다는 말이 나온다. 모임 첫날을 기념해 장만한 새 노트에는 다른 사람의 말만 잔뜩 적혔다는 대목은, 독서가 읽는 순간이 아니라 말해야 하는 순간에서 실력이 드러난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결정적인 충격은 다른 사람들의 책을 통해서다. 밑줄과 메모가 가득하고 화려한 3M 플래그가 빼곡한 책을 보고, “이 사람들은 책을 저렇게 읽는구나, 그동안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라는 감정이 밀려온다.
이 부끄러움은 그동안의 독서가 왜 내 안에 남지 않았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저자는 그 뒤로 열심히 밑줄을 긋고 플래그를 붙이고 미리 검색도 하며 정리해보지만, 이상하게도 자기 밑줄은 모임에서 이야기되는 흐름과 자주 어긋났다. 검색은 공부가 되었지만 결국 남의 생각을 빌려 온 것이었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과 실제 대화의 논점이 되는 것 사이에 어긋남이 생겼다.
“무엇을 놓친 걸까?”라는 질문이 여기서 등장한다.
그래서 독서모임의 목표가 세워진다. 잘 읽고 잘 기억하기!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고, 작가가 나누고자 하는 질문을 되도록 정확히 파악하고 대답하기. 그리고 그 책이 알려 준 삶의 비밀들을 내재화하기. 이 목표가 서자 읽기의 태도부터 달라진다. 작품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기 전에, 작가가 말하는 바를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우선한다. 예컨대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지질해 보이더라도 작가의 말대로 위대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그 다음에야 ‘이 메시지가 지금도 보편타당한가, 시대가 흘러 설득력이 약해졌는가, 지금의 한국에서도 적용 가능한가’를 따져 동의하거나 반대한다. 이 과정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이해라는 작은 강이 흐르게 하는 일로 묘사된다.
이 태도가 자리 잡으면 독서는 탐정 놀이처럼 깊어진다.
“내가 작가라면?”이라는 질문을 붙들고,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사건을 어떻게 만들고 인물들을 어떻게 대응시키며 배경을 어떻게 설정할지 역으로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겉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여도,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비슷한 구조로 이어져 보이고 인물도 서로 닮은 형태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이 패턴과 상징이다.
패턴은 길에서 계속 나오는 표지판처럼 여기가 중요하다고 알려 주고,
상징은 도착 지점의 랜드마크처럼 작품의 핵심 의미를 선명하게 잡아준다.
예를 들어 『데미안』의 “카인의 표식”은 성경 이야기를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배경을 알고 보면 그 표식이 단순한 낙인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을 구분하고 보호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또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처럼 많은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큰 틀을 소개하면서, 이를 더 쉽게 주인공(탐구자)–어디로 가는가(장소)–언제/어떤 분위기인가(시간)–겉이유–진짜이유로 정리해 보라고 한다. ‘헨젤과 그레텔’도 겉으로는 가난 때문에 집을 떠나지만, 결국은 성장하고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정리하면, 독서모임 발제 질문을 만들 때도 훨씬 수월해진다.
이제 ‘기억’으로 넘어간다. 저자는 필사나 독서기록장, 앱이 주는 만족감을 인정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것이 ‘기록을 위한 기록’이 되었다고 말한다. 필요한 것은 읽었다는 흔적을 쌓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내 의견을 정리하는 ‘기억을 위한 기록’이다. 그래서 노트는 양식이 간단하고, 한눈에 직관적으로 내용 파악이 가능해야 하며, 발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이전 노트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 공통만 남기고, 전체 흐름을 도식화하니 눈에 쏙 들어와 좋았다는 문장은 이 책이 단순 감상이 아니라 실전 노트법으로 가는 분기점이다. 핵심은 형식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마다 전개가 다르고 독자마다 중요 포인트가 다르니 응용해 각자의 독서노트를 만들라고 한다.
이 요청이 제3부에서 구체화된다.
‘독서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구조를 잡는 방식이 무려 11가지로 제시된다.
- 사건을 따라가는 선형(목록형)
- 두 흐름을 나란히 놓는 평행형
- 디테일에서 결론으로 올리는 피라미드형
- 인물·세대를 트리처럼 묶는 계층구조형(예: 『파친코』)
- 반복과 순환을 잡는 원형
- 핵심을 중심에 두고 주변을 연결하는 중심-주변부형
- 앞뒤 거울 구조를 보는 대칭형
-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방사형(마인드맵형)
- 공통/차이를 겹쳐보는 벤 다이어그램(예: 『달과 6펜스』)
- 단어가 이미지로 커지는 흐름을 추적하는 키워드 확장형(예: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작품에 맞춰 휘어지는 자유형
중요한 건 예쁘게가 아니라,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바로 복기되고 발제로 이어지는 구조다.
제4부 Q&A는 모임 리더의 현실적인 고민을 정리한다.
모임을 어떻게 기획할지, 어떤 책을 고를지, 발제는 어떻게 만들지, 진행할 때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까지 제4부 Q&A가 차근차근 짚어준다. 앞에서 말한 내용들과 함께 떠올리면 방향이 더 분명해진다.
이 책이 말하는 독서모임의 목표는 완독 인증이 아니라 잘 읽고, 잘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임 기획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대화가 이어지는 흐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책 선정은 한 권 안에서도 비교와 확장이 가능하거나 다른 책과 연결해 이야기하기 좋은 큐레이팅이 가능한 책을 고르는 쪽으로 간다. 발제는 작품에서 뽑은 핵심 문장과 5W1H 같은 단서를 바탕으로 “왜?”, “어떻게?” 같은 질문 형태로 바꿔 준비하고, 진행은 누가 맞았는지 정답을 가르는 시간이 아니라 각자가 붙잡은 핵심 문장을 공유하며 생각이 넓어지는 시간이 되도록 이끈다.
작품을 더 잘 이해하려면, 저자는 5W1H를 이렇게 써 보라고 한다.
먼저 WHO(누가)에서는 인물을 중심으로 본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누구인지 잡고, 그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조력자), 맞서는 사람(적대자), 주인공 대신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대리자)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핀다. 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처럼 역할을 나눠 보면, 이야기의 갈등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더 빨리 보인다.
다음으로 WHEN·WHERE(언제·어디서)는 단순히 분위기를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잡아주는 힌트다. 예를 들어 ‘밤’이나 ‘숲’, ‘잿빛 계곡’ 같은 시간과 공간은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어떤 경우엔 상징처럼 작동한다.
WHAT(무슨 문제/갈등이 있는가)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갈등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단계다.
HOW(그 갈등이 어떻게 흘러가고 끝나는가)는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다.
깔끔하게 해결되는지, 타협으로 끝나는지, 파국으로 가는지, 계속 반복되는지, 끝내 미해결로 남는지에 따라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WHY(왜 이 이야기를 썼는가)는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고 싶은 핵심 질문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특히, 내 기준으로 먼저 평가하기보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부터 정확히 붙잡고, 그 다음에 동의할지 반대할지를 결정하라고 말한다.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독서는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아 다음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제 몫을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은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남지 않는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따라가며 핵심을 붙잡고(키워드·구문·핵심 문장, 패턴·상징, 5W1H),
나중에 다시 꺼내 볼 수 있게 기록으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독서모임은 그 기억을 함께 꺼내 보며 점검하고, 서로의 관점을 더해 한층 넓혀 주는 자리로 기능한다.
그래서 『읽기 다음 기억하기』는 이렇게 권하는 것 같다.
한 권을 읽더라도 내 안에 오래 남는 방식으로 읽고, 다시 말하고 쓸 수 있도록 흔적을 남겨 두자고.
그러면 독서는 한 번 스쳐 가는 경험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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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독서모임의 목표 독서모임이 거듭될수록 저의 목표는 명확해졌습니다. 잘 읽고 잘 기억하기.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을 것. 작가가 나누고자 하는 질문을 되도록 정확히 파악하고 대답할 것. 그것이 내게 알려 준 삶의 비밀들을 내재화할 것. 그러려면 일단 책에 밑줄이나 동그라미를 치는 일쯤이야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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