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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이 책은 참 묘하다.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눈물을 쏟게 만들진 않지만, 읽고 나면 가슴 한쪽에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장현희 작가의 『축제의 날들』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게 마음을 두드리는 책이다.
이 책은 모두 9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반려견과의 마지막 밤, 불길 속에서 고양이를 끌어안고 탈출을 시도한 한 남자,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한 여성, 어린 시절 고양이와의 이별, 지금이라는 시간에 온전히 존재하려는 연습까지.
각각의 이야기에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어둡거나 우울한 쪽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끝에서 되묻는다.
우리는 ‘지금’을 얼마나 진심으로 살고 있냐고.
가장 인상 깊었던 첫 번째 이야기는 반려견 셰바와 함께한 마지막 밤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멈추지 못하고 빙빙 돌기 시작한 셰바(강아지).
병원에서는 뇌 이상일 가능성을 말하지만, 저자는 그 어지러운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며 함께했던 수많은 일상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새벽녘 침대맡에 앉아 있던 셰바의 숨결, 살짝만 움직여도 눈을 비비며 다가오던 그 작은 존재. 그렇게 반복되던 평범한 하루가 이제는 눈물 나도록 소중한 기억이 된다
셰바는 마지막 순간까지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고, 저자는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이 살아 있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나눈 눈빛, 숨결, 발소리 같은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결국 끝까지 붙잡게 되는 전부임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귀한 선물이며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욱 빛나는 시간이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뉴욕의 낡은 아파트에 살던 남자 워너다.
어느 날 밤 자기가 살고 있는 건물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비명과 연기 속에서 잠에서 깬 그는 막상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코 앞까지 무섭게 번지는 퍼지는 연기와 산소가 부족해지는 상황에 처하자 본능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창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방 안은 짙은 연기로 가득 찬 상황에서, 그는 기억을 더듬어 과거에 고정해둔 창 장치를 떠올리고, 간신히 창문을 열어 찬 공기를 들이 마시게 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모든 공포를 잊고 삶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듯한 평온함을 느낀다.
그러나 현실은 곧 그를 다시 집어삼킨다. 워너는 자신의 고양이 ‘투’를 품에 안고, 벌거벗은 몸에 가운만 두른채로 불길을 피해 반대편 건물로 뛰어 내린다. 피가 범벅이 된 상태로 병원에 실려간 상태로 또 다른 수치의 공간과 마주한다. 간호사의 무표정한 손길, 설명 없는 의료 절차 속에서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무너지는 순간을 겪는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화재 현장을 생각하다 이렇게 말을 한다.
“텔레비전 따위를 구하려 하다니, 정신 나간 놈들. 그는 자기 고양이조차 구하지 못했는데.”
이 짧은 혼잣말에는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존재를 잃은 죄책감, 그리고 생명의 위기 앞에서도 사물에 집착하는 이들에 대한 허탈함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무너지는 순간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외에도 유방암 투병 끝에 존엄사를 선택한 ‘셰리’의 마지막 여정, 어린 시절 고양이 필그림과의 이별을 담은 ‘레슬링의 무덤’, 현실과 상상이 겹치는 이야기 ‘아마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작은 축제로 그려낸 ‘축제의 날들’까지.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해 흐른다.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죽음을 마주한다.”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우울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거나 감정을 지하 바닥까지 내려갈 정도로 소모시키지도 않는다. 작가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 조용히 서서 그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듯 하다.
다들 ‘지금‘을 잘 살아가고 있느냐고!
작가의 그 질문이 오랜 사유를 하게 만든다.
그 질문들이 오늘을 조금 더 보람있고 따뜻하게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
『축제의 날들』은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끝자락에서 삶의 본질을 조용히 비춘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평범한 하루,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 그 안에 모든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삶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늘 곁에 있어주던 존재들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 소중한 진실을 조용히 건네고 있다.
소설책이자 에세이 책인 ‘축제의 날들‘은 우리 인생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일깨워 주는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추~~~천 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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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일꾼들은 마치 기어다니는 거대한 곤충의 집게발을 움직이는 존재들 같았고, 두껍고 울퉁불퉁한 케이블은 근육질 팔 같았고, 도르래는 기다란 말 얼굴 같았고, 한데 묶여 있는 철 기둥은 불쏘시개 더미 같았고, 콘크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철근은 거대한 곱슬머리처럼 굽이쳤다. 외로움과 황홀경에 젖은 워너는 그 모든 것을 그림에 담았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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