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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라이더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새로, 만난, 세계
강정훈 지음 / 밀리언북 / 2026년 5월
평점 :

나이를 먹으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시작하던 일도 이제는 먼저 겁부터 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일, 낯선 세계에 들어간다는 일은 설렘보다 두려움을 먼저 자라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겁이 자라난 뒤에도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이 답답하고, 사는 일이 조금 재미없게 느껴지는 시기에도 다시 바람이 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내게 모터사이클은 더더욱 먼 세계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일도 조심스러워지는 나이에, 바이크는 용기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세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바이크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도 있었다.
가죽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머리는 손수건으로 단단히 묶은 중노년의 남자.
손잡이가 팔 높이까지 올라가 있는, 비싸 보이는 고급 바이크를 타고 묵직한 엔진 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모습~!
내가 떠올리던 바이크의 이미지는 대체로 그런 쪽에 가까웠다.
멋있기는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처럼 느껴졌다.
여자가 모터사이클을 타는 모습은 주변에서 거의 보지 못했기에, 더더욱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터사이클은 자유롭고 멋진 취미이면서도, 어쩐지 남성적인 세계에 가까운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백발라이더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런 선입견을 조금씩 벗겨내는 책이었다.
이 책은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번쯤 삶이 멈춘 것처럼 느껴본 사람, 삶이 답답하거나 재미없게 느껴지는 사람,
뒤늦게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더 깊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라이딩 에세이일 거라 생각했다.
백발의 라이더가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을 기록한 책,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취미서에 가까울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넓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이 책은 모터사이클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결국은 인간과 자유, 몸과 기술, 역사와 문화,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마음에 관한 책이었다.
저자는 로버트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모터사이클을 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말한다.
어린 아들을 뒤에 태우고 여행하는 이야기 속에서 철학과 삶의 문제를 끌어낸 그 책이 저자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이다.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역시 중요한 책으로 등장한다.
두 젊은이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대륙을 종단하며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현실에 눈뜨는 과정은, 모터사이클이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세계를 직접 마주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길 위에 오른다는 것은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내가 몰랐던 사람들의 삶, 내가 외면했던 현실, 내가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모터사이클은 자동차의 축소판도 아니고, 자전거의 확장판도 아니다.
저자는 모터사이클이 근대 과학기술의 산물이면서도 그 너머에 바람과 낭만, 감각과 자유가 어우러진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라고 말한다.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자동차는 빠르고 편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만, 모터사이클은 몸을 도로와 날씨와 세계 앞에 직접 세운다.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없고, 몸의 균형이 곧 운행의 조건이 된다.
그래서 모터사이클을 탄다는 것은 단순히 속도를 즐기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예민하게 느끼는 일처럼 보였다.
자유를 누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책임을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진짜 자유는 아무렇게나 달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탄 것의 힘을 알고, 내가 선 자리의 위험을 알고, 함께 길을 쓰는 타인을 의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와 책임은 반대말이 아니라, 어쩌면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두 바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모터사이클을 타게 되었을 때 필요한 정보들도 함께 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타면 좋다”는 감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초보 라이더가 알아야 할 면허 취득 과정, 배기량에 따른 운전 자격, 바이크 종류와 선택, 중고 바이크를 살 때 확인해야 할 부분까지 차근차근 짚어준다.
125cc를 넘는 모터사이클을 타기 위해서는 2종 소형면허가 필요하고, 그 시험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설명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다고 해서 모터사이클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인상 깊었다.
모터사이클은 자동차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잡고, 도로 상황을 읽고, 몸으로 반응해야 하는 탈것이다.
그러니 초보 라이더에게는 낭만보다 먼저 배움과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터사이클의 마력과 성능을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작고 날렵한 기계 안에 얼마나 큰 힘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되면, 멋있다는 생각보다 먼저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리터급 이상의 모터사이클이 100마력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놀라웠다.
중고 바이크를 살 때 동호인들의 도움을 받아 차량 상태와 가격을 확인하는 ‘중검단’ 이야기도 꽤 실용적이었다.
초보자는 아무래도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경험 많은 라이더들이 중간에서 점검을 도와준다는 것은 사기 매물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라이더들 사이의 연대처럼 느껴져 따뜻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 다 알아서 해내겠다는 고집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먼저 지나간 사람들에게 배우고, 도움을 구할 줄 아는 태도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단단한 시작일 수 있다.
저자가 ‘오토바이’라는 명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오토바이’라고 부르지만, 저자는 이 단어가 영어권에서 본래 쓰이는 표현이 아니라 일본식 조어에 가깝다고 짚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오토바이’보다 ‘모터사이클’이라는 표현을 기준으로 삼는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일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 책은 그런 작은 언어의 문제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말이나 계속 사용하는 일은, 어쩌면 익숙한 편견을 계속 안고 가는 일과 닮아 있다.
책은 낭만만 말하지 않는다.
모터사이클 운행은 자동차보다 훨씬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고, 균형을 유지하고 통제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저자는 도로가 자동차만의 공간이 아니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안전한 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모터사이클을 향한 사회적 편견, 라이더를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까지 함께 짚는 점도 좋았다.
자유롭게 달리는 일에도 결국 타인을 향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동시에 이 책은 무척 즐겁다.
처음 모터사이클을 집으로 데려오던 날의 안도와 환희, 걱정이 뒤섞인 마음이 솔직하게 전해진다.
사물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나면 관계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고백도 좋았다.
무언가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것을 내 삶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그때부터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쓰게 되는 존재가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만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애정을 주는 사물과도 조용한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아내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게 되는 과정도 인상 깊었다.
처음 아내는 자신이 바이크를 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남편의 바이크 여행을 허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아내가 먼저 바이크에 태워 달라고 말하게 된다.
이 대목을 읽으며 그 시기의 답답함이 떠올랐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취미 활동을 하는 일도 쉽지 않았던 시간.
어쩌면 그때 혼자 또는 가까운 사람과 함께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는 모터사이클은, 일상 안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출구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답답해질 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닐 때도 있다.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틈, 막힌 일상에서 빠져나와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작은 출구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모터사이클은 그런 출구처럼 보였다. 도망이 아니라 회복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아내와 함께 제주를 달리는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도에 의존하지 않고 눈길이 가는 곳으로 향하고, 마음에 드는 공간이 나타나면 바로 쉬어가는 여행.
그런 여행은 보통의 여행에서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호사처럼 느껴졌다.
가장 독특했던 부분은 저자가 모터사이클을 헌정하고 싶은 위인들을 떠올리는 장면이었다.
공자에게 모터사이클을 선물하고 싶다는 상상은 처음에는 엉뚱하게 느껴졌지만, 읽다 보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공자가 육예 가운데 수레를 모는 기술인 ‘어’에 능했다는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장대한 체구의 공자가 커다란 모터사이클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 상상이 조금 웃기면서도 멋있었다.
크로포트킨에게 고성능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선물하고 싶다는 대목도 좋았다.
협동과 연대의 사상,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돕는 사회에 대한 꿈이 모터사이클의 이미지와 겹쳐졌다.
독립투사들이 만주와 연해주의 너른 벌판을 모터사이클로 질주하는 상상은 자유를 향한 투쟁의 장면처럼 웅장하게 다가왔다.
상상은 때때로 역사를 더 가까이 데려온다.
공자와 크로포트킨, 독립투사들이 모터사이클을 타는 장면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 상상 안에서 우리는 그들이 품었던 자유와 연대와 정의의 감각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좋은 책은 지식을 알려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래된 인물들을 지금 내 앞의 장면처럼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모터사이클이 문화와 패션의 역사로 이어지는 대목이었다.
1950년대 이후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사회현상으로 떠오르고, 1960년대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모즈와 라커스가 충돌했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로큰롤과 검정 가죽 재킷, 카페 레이서로 대표되는 라커스.
그리고 베스파와 람브레타를 타고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모즈.
이 두 무리의 대립은 단순한 청춘들의 싸움이 아니라 음악과 패션, 거리 문화에 큰 흔적을 남긴 사건이었다.
비틀스가 초창기 라커스 스타일에서 모즈 스타일로 전환한 일화 역시 흥미로웠다.
모터사이클 문화가 단지 기계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와 패션의 흐름 속에도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하나의 취미라고만 생각했던 세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대의 분위기, 계급의 감각, 청춘의 욕망, 문화의 방향이 함께 들어 있다.
모터사이클은 도로 위를 달리는 기계였지만, 동시에 한 시대의 청춘들이 자신을 표현하던 방식이기도 했다.
『백발라이더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모터사이클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장비나 여행 코스를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모터사이클이라는 하나의 사물을 통해 근대,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과학기술, 언어, 역사, 패션, 여행, 몸의 감각을 두루 건드린다.
그리고 동시에 초보 라이더가 실제로 알아두면 좋을 현실적인 정보까지 담고 있다.
그래서 읽는 재미와 배우는 재미가 함께 있었다.
라이딩 에세이인 줄 알고 펼쳤다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인생은 다시 달릴 수 있다’는 문장으로 남았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멈춘 것처럼 느껴져도 새로운 세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저자는 두 바퀴 위에서 바람을 만나고, 역사를 만나고, 사유를 만나고, 다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처럼, 모터사이클은 저자에게 ‘새로 만난 세계’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새로운 세계는 젊고 용감한 사람에게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겁이 많아진 사람에게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사람에게도, 삶이 조금 시들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새로운 바람은 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바람이 부는 방향을 한 번쯤 바라보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에게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그 세계를 향해 다시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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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강연‘을 통해,
'밀리언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다윈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종으로 전개된 ‘사회진화론’은 인간의 사회를 약육강식의 경쟁이 판치는 정글로 이해했다. 지나친 비약이 있었음에도 결국 그것은 제국의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런 시절에 경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협동과 연대라는 크로포트킨의 주장은 신선한 울림이었다. 그는 과학의 방법으로 ‘사회진화론’ 같은 사이비 과학을 극복했다. 그의 삶은 그 실현을 향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 돕는 형태의 사회상은 그런 식으로 마련된 아나키즘의 이상이다. 따라서 그의 노력은 현재를 돕는 과거에 속한다. 즉 크로포트킨은 오늘 산 자들을 살리는 죽은 자들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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