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서정환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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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문장, 첫 질문이 마음속에 훅 다가왔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고 싶은 건가?”

짧지만 강렬한 물음이었다. 그동안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살면서 정작 내 마음에 구체적으로 묻는 일은 거의 없었다. 늘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삶을 돌아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서 이 질문은 마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단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말을 누군가 대신 입 밖으로 내어준 듯한 울림을 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몰입해보고자 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단 한 번은 올인해 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 오래 해온 것,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도전하고 싶은 것. 그것이 무엇이든 찾아내어 단 1년이라도 온전히 내 꿈을 위해 달려보라는 제안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라는 권유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안정’을 선택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곤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은 삶의 진짜 의미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용기 있는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삶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구절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했듯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격언 이상의 울림이 있었다. 자신과의 화해 없이는 세상과도 화해할 수 없다. 허무를 위해 살 수도 없고 단순히 고통을 버티는 데에만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다. 스스로 만든 적에게 시달리기보다 내 인생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자꾸 잊고 있던 진실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이 책에는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담겨 있다. 삶의 선택은 언제나 과거에 묶이거나 미래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된다. 저자는 더 이상 과거를 붙잡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겠다고 말한다. 흐름을 억지로 거스를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노를 저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닿을 곳에 닿게 된다는 믿음. 이 단순하면서도 단단한 확신은 무겁게 누르던 짐을 덜어내듯 마음을 가볍게 했다.

또한 “뭐가 되긴, 그냥 크는 거지”라는 말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압축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삶은 반드시 대단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인생은 도화지 위에 색을 덧입히는 것과 같다. 예상치 못한 색과 무늬가 덧입혀지더라도 그것이 모여 결국 나만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 그림이 곧 내 삶이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저자가 고백한 독서의 힘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공감을 주었다. 소설이 그에게 삶의 지침서였다는 고백은 곧 나의 경험이기도 했다.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변명 대신 책임을 지는 태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이런 것들은 책을 통해 배운 삶의 태도였다. “만약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고백에서 큰 울림을 느꼈다. 나 역시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해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확장해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책을 읽지 않을 때보다 읽을 때 비로소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까지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시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었다. 그는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시인은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 그래서 시의 언어는 낯설고 때로는 어렵다. 하지만 그 낯섦이야말로 우리 안에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나는 늘 시를 어렵게만 여겼지만,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서야 시의 매력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것이 시인만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느껴지는 감동은 배가 된다. 시는 결국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가 가진 힘이다.

이 책은 또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고독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인생에는 어떤 위로도 닿지 않는 시간,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저자는 그 시간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opus’ 한 곡으로 견뎠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을 읽으며, 나 역시 힘겨운 시기를 음악이나 책 한 권으로 버텨낸 경험들이 떠올랐다. 결국 중요한 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시간을 스스로 견뎌내는 힘이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또한, 저자는 친절의 힘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이게 도움이 될까?”를 먼저 고민하지만, 사실 중요한 건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작은 친절이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바꿀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내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어떤 날은 내가 그 친절을 받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버티게 해주는 방식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상실과 절망의 어둠을 통과하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처칠이 말했듯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면, 계속 걸어가라.” 삶의 여정은 때때로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불확실성과 상실, 절망이 가득한 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걸어야 한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결국 빛을 찾기 위해 걷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깊이 있는 존재로 자라난다. 어둠을 지나며 끝내 빛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책의 후반부에는 잃어버린 온기와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도 등장한다. 저자는 오래전 밥집에서 느꼈던 따뜻한 순간들을 회상하며,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때의 숨결과 온기였음을 깨닫는다. 편의점 음식은 편리하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손길, 서로를 배려하는 순간이 없다. 우리가 삶에서 갈망하는 건 결국 그런 따뜻한 온기다. 또한 아름다움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이미 아름다움은 존재하지만,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다. 작은 발견이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는 말에 깊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은 완벽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기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문장이 책 전체를 꿰뚫는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결국 우리가 지켜내고 싶은 것은 화려한 타이틀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쌓아온 시간이며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울타리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제야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미뤄둔 채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특히 어울린다. 늘 남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살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했던 이들, 그리고 삶의 전환점 앞에 서 있거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시와 소설을 비롯한 문학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하고 싶지만 아직 그 매력을 깊이 느끼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저자의 경험담과 문학에 대한 고찰은 독서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태도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고 싶은 모든 이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초대장이다.


'마음연결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뭐가 되긴, 그냥 크는 거지."
시간이 흐르고 성장하면서 우리는 깨닫는다. 이 질문이 단순히 직업을 선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삶이 반드시 가치 있고 대단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은 도화지 위에 매일 새로운 색을 덧입히는 일에 가깝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색이 더해지기도 하고, 원치 않는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도화지를 처음 꺼냈을 때 생각했던 그림과는 달라졌을지라도 그것이 우리 삶을 더욱 독특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뭐가 되긴, 그냥 그는거지." 이 말은 인생이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다. 무엇이 되는가보다,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성장하면서 점점 알게 된다.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타이틀이 아니라, 내면에서 발견되는 가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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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줄 알았는데 재밌어! 야구 만화 도감 2 : 심화편 반전 도감 5
익뚜 지음, 김양희 감수 / 후즈갓마이테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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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줄 알았는데 재밌어! 야구 만화 도감 2: 심화편』은 야구의 세계를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1편이 기본 규칙과 경기의 흐름을 설명하는 입문서였다면, 2편은 전략과 데이터, 포지션별 특징, 그리고 최신 제도와 문화까지 아우르며 야구의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내기에 ‘심화편’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성 중 하나는 “선수 vs 선수” 코너다. 여기서는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선수를 한 장에서 비교해 보여준다. 삼성 라이온즈의 원태인과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폴 스킨스를 나란히 소개하는 방식으로, 독자는 두 선수의 스타일과 차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국내와 해외를 연결해 보여줌으로써 한국 야구가 세계 무대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야구 용어와 전략을 소개한다. 커터와 싱커 같은 구종 설명은 물론, 허슬 플레이처럼 경기를 보는 이들이 자주 접하는 표현을 풀어내 초보 팬도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돕는다. 최신 룰 변화 역시 빠짐없이 다루는데, 대표적인 것이 MLB의 수비 시프트 규제다. 2023년부터 내야수 4명이 모두 내야 흙 안쪽에 위치해야 하고, 2루 기준 좌우로 두 명씩 배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이는 타자의 성향을 분석해 수비를 치우치게 배치하는 전략이 경기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변화였다.

이 책은 단순히 규칙만 다루지 않고 야구 문화의 깊은 층위까지 보여준다. 일본과 미국에서 퍼펙트 게임 도중 번트를 시도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문화, 큰 점수 차에서 도루를 자제하는 관습,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 경기를 존중하는 분위기 등이 그것이다. 2017년 이승엽의 은퇴 경기에서 상대팀이 승부보다 존중을 선택한 장면은 야구가 단순히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투수가 사구를 던진 뒤 모자를 벗고 사과하는 제스처 역시 암묵적 예의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야구에는 규칙서에 적히지 않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선수들이 지니고 있는 징크스와 습관도 책의 재미를 더한다. 김성근 감독이 2010년 16연승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았던 일화는 다소 미신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팀의 긴장감과 결속을 상징하는 에피소드로 읽힌다. 이처럼 책은 기록과 통계, 규칙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까지 놓치지 않는다.

특히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설명은 인상적이다. 타율이나 평균 자책점처럼 전통적인 기록 대신 OPS, wOBA, WAR 같은 정밀한 지표를 활용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야구가 데이터와 통계의 스포츠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타율이 높은 선수나 ERA가 낮은 투수를 좋은 선수로 보는 것의 한계를 짚어주며, 실제 경기력과 팀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세이버메트릭스가 도입되었다는 설명은 독자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오늘날 FA 계약이나 트레이드, 드래프트에 반드시 참고되는 지표가 된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책은 기술의 발전과 규칙의 변화를 빠짐없이 담아낸다. KBO가 세계적으로 앞서 로봇 심판을 도입해 2024년 1군 경기에서 완전히 정착시킨 과정은 한국 야구의 실험적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피치 클록, 베이스 확대, 견제 제한, 연장전 승부치기, 타자 준비 시간 제한과 같은 스피드 업 규정은 경기 시간을 줄이고 템포를 높여 팬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빠르고 박진감 있는 경기를 선호하는 젊은 팬층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불펜 투수의 역할과 시대별 변화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중간 계투, 셋업맨, 마무리, 원 포인트 릴리프 등 다양한 불펜 투수의 역할을 통해 야구 경기가 단순히 선발과 타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여러 계층적 전략이 얽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는 야구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이 책은 야구는 고정된 스포츠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팬들의 관심을 유지하고 경기를 더욱 공정하고 박진감 있게 만들기 위해 규칙과 문화는 계속 바뀌어 왔다.

『야구 만화 도감 2: 심화편』은 야구를 잘 모르지만 알고 싶어 하는 사람, 기본적인 경기 규칙은 알지만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 나아가 데이터와 전략을 즐기는 팬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만화라는 친근한 형식 덕분에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내기에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야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단순히 중계 화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기장을 찾아가 선수들의 플레이와 관중들의 열기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만큼 야구의 매력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책이며, 읽는 이를 자연스럽게 야구장으로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후즈갓마이테일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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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불문율과 그 이유
1. 큰 점수 차에서 무리한 플레이 금지
2. 홈런 후 과한 세리머니 금지
3. 노히트 노런, 퍼펙트게임 방해 금지
투수가 대기록에 도전 중일 때 번트 안 하기.
선수 입장에선 당연히 기록을 깨고 싶지만 번트로 깨는 건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겨져.
4. 빈 볼 맞으면 보복구로 대응
5. 투수가 마운드를 내려갈 땐 박수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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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8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4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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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8권』은 “이제 어디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갈까”를 묻는다.

흉년이 들고, 왜놈들은 “문서가 없다”는 말로 사람들의 땅을 빼앗는다. 병이 나도 약 한 첩 못 짓는 집이 태반이다.

이런 바닥의 현실에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이 생존의 자리 위로 종교와 정치 이야기가 포개진다. 스님과의 긴 대화 속에서 불교·유교·동학·태평천국·백련교가 오가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멋진 말이나 내세의 약속보다, 지금 당장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먼저라는 것. 억압이 깊어질수록 돈과 힘이 손을 잡고, 그 틈에 낀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이 부분은 8권 전체의 기초가 되는 부분 같다. ‘왜 싸우느냐’보다 ‘무엇으로 버티느냐’를 묻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물들이 제자리를 다시 잡는다. 길상은 더 멀리 나가 독립운동을 돕기로 마음먹는다. 서희는 집 안에서 남은 삶을 지키며 “돌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김개주의 아들 김환과 환이(구천)가 등장하면서, 피와 역사, 사랑과 죄책이 한꺼번에 꿈틀거린다. 작가는 ‘반역의 피’를 눌려 살던 사람들이 "이대로는 못산다"라고 말하며 일어서는 마음으로 보여 준다. 김환은 그 기세를 타고났지만 방향을 잘 못 잡아 흔들리고, 환이는 길상과 서희, 이동진의 오래된 상처를 다시 건드린다. 나는 여기서 ‘반역’이 단순한 불온함이 아니라 살아 보려는 발버둥이자 더 나은 삶을 향한 힘으로 읽혀졌다.


이 책의 정점은 월선의 병세와 마지막 밤이다. 옹이는 다 식어 가는 월선을 무릎에 안고 “우리 많이 살았다, 여한 없제?”라고 묻는다. 월선이 고개로 답하자, 그는 고요히 이불을 펴고 작은 얼굴을 쓸어주며 눕힌다. 장식 없는 이별이 품격이 되는 순간이다. 그 옆에서 죽은 이의 돈을 노리는 임이네의 모습은 더 추하게 보인다. 옹이는 남 탓만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오며 저지른 잘못을 떠올리고, 남은 날을 바르게 살려 한다.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이 사랑은 끝났지만 예의와 품격은 남는다.


서희의 마음은 그보다 더 큰 파도를 지난다. 조준구와 홍씨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돌아가서 다 갚겠다”는 분노가 치밀지만, 그는 끝내 마음을 다잡는다. 분노를 좇다 보면 아이들과 자신의 삶이 무너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서희는 계산으로 조준구를 무너뜨리고, 아이 둘의 손을 잡고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길상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서희의 길은 ‘지금 여기서 가족을 지키는 일’, 길상의 길은 ‘밖에서 더 크게 싸우는 일’로 갈라진다.

나는 이 선택을 파탄이 아니라 각자 중요한 것을 선택한 것으로 읽고 싶었다.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김두수는 반대로 더 어두운 쪽으로 깊어진다. 금녀를 쫓아 하얼빈까지 가고, 총을 맞고도 이익부터 계산한다. 그는 독립세력의 재산까지 노린다. 거창한 말은 필요 없다. 김두수에게 탐욕이 있었고, 돈과 힘이 한패가 된 세상은 그런 사람을 더 빨리, 더 높이 올려 주었다. 그러니까 김두수의 악행은 그 사람만의 문제이면서, 그런 사람을 키워 주는 세상의 분위기이기도 했다. 이 조합은 앞으로의 더 큰 비극을 예고한다.

한편, 이 모든 소용돌이 뒤에서 시간은 묵묵히 흐른다. 누가 이겨도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붙고,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늘을 다시 추스른다. 서희는 돌아갈 준비를, 길상은 떠날 준비를, 옹이는 남은 날을 단정히 살아갈 준비를 한다. 책의 마지막에 남는 마음은 울분만이 아니다. 주먹을 꽉 쥔 분노가 아니라, 조용하지만 단단한 결심이다. 지금 당장 완벽히 이기지 못해도 내 자리를 만들며 버티겠다는 결심이다.


『토지 8권』은 선악을 가르는 판결문이 아니라 살 길을 찾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월선의 마지막은 “사랑은 끝까지 돌보는 일”임을,

서희의 결심은 “생존도 전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길상의 선택은 “해방에는 값이 따른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

김두수의 행로는 “나쁜 마음을 더 키우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깨운다.

큰 구호 대신, 오늘을 살아내는 힘과 자세를 묻는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쓸쓸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앞으로 걸어갈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다음 9권이 기대되게 만드는 8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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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아니꼬운 놈들만 잘사는 이눔의 세상 아니오? 도둑질 많이 하는 놈일수록 잘살고, 신령님이 있긴 어디 있어? 신령님? 복장 터지는 얘기지."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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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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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류노스케의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셰익스피어를 책상 위의 고전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무대 위로 다시 불러오는 책이다. 연출가로서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서 언어에 숨을 불어넣어 온 저자의 시선은 학술적 해설처럼 딱딱하지 않고, 무대 현장에서 얻은 생생한 감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묻는다. 우리는 정말 셰익스피어를 알고 있는가. “죽느냐, 사느냐”나 “오 로미오” 같은 대사는 이미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400년 전 사람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말하고 있는 존재다.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인간을 흔들고(Shake), 꿰뚫는(Spear) 천재”라고 정의한다. 그는 웃음과 눈물, 분노와 두려움, 삶을 지탱하는 힘까지 언어로 길어 올려 인간의 본질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언어의 힘은 단순히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사고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생몰 연대(1564–1616)를 장난스러운 기억술로 소개한다. “히토고로시 이로이로”라는 말장난은 전쟁과 죽음, 격동이 넘치던 시대의 공기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연극이 가장 활활 타오르던 런던으로 건너와 37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희극·비극·역사극을 넘나들며 오늘날의 ‘히트메이커’처럼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시대와 대중을 동시에 흔든 배경을 알게 되면, 그의 언어가 왜 지금까지도 생생한지 더 분명해진다.

책 속에서 다루는 대사들은 하나같이 강렬하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보고 외치는 말, “아아, (저 사람은) 횃불에게 찬란하게 타오르는 비법을 가르치고 있구나!”(『로미오와 줄리엣』 1막 5장)는 평범한 ‘아름답다’는 감탄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어지는 “저 손을 감싸는 장갑이 되고 싶다. 그러면 저 뺨을 만질 수 있을 테니!”(2막 2장)라는 고백은 다소 무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솔하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감정이 넘쳐흐르는 순간을 언어로 과감히 붙잡아냈다. 같은 장면에서 “드넓은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별이…”라는 대사는 사랑의 고백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시킨다. 결국 메시지는 하나지만, 언어가 감정을 증폭시키며 청중에게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전달한다.

사랑의 언어가 인간의 감정을 끌어올린다면, 설득의 언어는 사람들의 행동을 뒤바꾼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안토니의 연설은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는 겸손하게 시작한다. “저에게는 지혜도 언변도 권위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전략이었다. 이어서 그는 가정법과 반복을 통해 군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정말 그런가?’라는 의심을 자연스럽게 심어준다. 이렇게 언어가 현실을 움직이고 민중을 행동하게 만드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단순한 문학을 넘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 작용했음을 잘 보여준다.

짧은 문장 속에서도 본질을 찌르는 그의 언어는 더욱 빛난다. “사람은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악당일 수 있다. 적어도 덴마크에는 틀림없이 그런 자가 있다.”(『햄릿』 1막 5장)는 한 나라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오히려 모든 사회에 적용 가능한 통찰을 전한다. 또 “조심하시길, 장군이여, 질투라는 사실을. 이 녀석은 초록 눈을 한 괴물이오.”(『오셀로』 3막 3장)는 질투라는 감정을 초록빛 괴물로 형상화해, 인간의 내면을 서서히 좀먹는 무서운 감정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왜 지금도 끊임없이 새롭게 읽히는 걸까. 저자는 그 이유를 ‘여백’에서 찾는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몬테규와 캐퓰릿이 왜 원수인지,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 재판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리처드 3세』에서 마가렛은 어떻게 쇠락했는지 등 수많은 빈칸이 남는다. 이 여백은 독자와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지며, 작품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된다. 기무라는 희곡을 “놀면서(희) 구부린다(곡)”라고 설명하며, 희곡이란 본래 관객과 배우, 독자가 함께 가지고 노는 장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초월해 늘 새롭게 해석될 수 있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감정을 다루는 방식 또한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배우들에게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라고 주문한다. 좋은 배우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과 ‘놀 줄’ 안다. 로미오가 하루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인을 사랑한다고 외치다가 줄리엣을 본 순간 “내 마음이 지금껏 사랑을 한 적 있던가?”라며 갈아타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감정이 원래 그렇게 모순투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 전쟁조차 셰익스피어에게는 단순히 비극의 무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 감정을 자유롭게 굴리는 장치였다. 결국 그의 작품은 인간 정신의 자유를 예찬하는 무대였다.

책은 또한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네 이 사탄놈아!”(『실수 연발』) 같은 짧은 대사라도 입 밖에 내면 기분이 정리되는 경험을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나 “깨끗한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깨끗하다” 같은 대사를 읽는 순간, 마음은 전혀 다른 리듬을 얻는다. 저자는 이것을 ‘말의 임파워먼트’라고 부른다. 말이 사람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단순히 고전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라, 언어가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주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이 실려 있다. 셰익스피어 연표를 통해 그의 생애와 더불어 태어나기 전의 시대적 사건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고, 주요 캐릭터 도감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개성과 특징을 다시 짚을 수 있다. 또 독자가 Yes/No를 선택하며 자신에게 맞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찾는 게임 같은 코너는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마지막에는 저자가 직접 추천하는 작품 목록까지 담겨 있어, 책을 읽고 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결국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고전이 결코 낡은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말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책이다. 셰익스피어를 멀게 느끼던 독자에게는 친절한 입문서가 되고, 이미 익숙한 독자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술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기 때문에,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탐험해보고 싶어진다.


'더퀘스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아아, (저 사람은) 횃불에게
찬란하게 타오르는 비법을 가르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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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싸우는가 - 싸울 수밖에 없다는 착각 그리고 해법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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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블랫먼의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싸우는가?”

저자는 우간다 북부와 시카고 갱단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폭력을 통해, 사회의 성공이란 단순히 부의 증가가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집 앞에 앉아 평온히 쉴 수 있고, 경찰이나 법원을 찾아 정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고향에서 쫓겨나지 않는 일상적인 안전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쟁을 국가 간 대규모 전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마을과 씨족, 갱단과 종파, 정당과 국가 등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폭력적 갈등을 모두 전쟁으로 본다. 사실 대부분의 적대적 집단조차도 실제로는 나란히 살아간다. 그런데 왜 어떤 사회는 타협에 실패하고 폭력으로 치닫는가?

블랫먼이 제시하는 답은 다섯 가지다.

첫째, 견제되지 않은 이익이다.

권력자가 전쟁의 대가를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때, 자신의 이득만 보고 무모한 선택을 한다.

둘째, 무형의 동기다.

복수, 명예, 종교적 열망 같은 가치가 현실의 피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셋째, 불확실성이다.

상대의 힘과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선제공격이 합리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넷째, 이행 문제다.

상대가 미래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은 오늘의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섯째,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는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착각하면서 협상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잘못된 인식’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본문에서는 심리학적 편향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지식의 저주’(내가 아는 만큼 상대도 알 거라 가정), ‘사후 확신 편향’(결과를 알고 나서 그 결과가 당연했다고 믿음), ‘허위 합의’(상대도 내 판단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오류는 우리가 적의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해의 손길조차 속임수로 해석하게 만든다. 결국 갈등은 힘의 충돌 이전에 인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은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평화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흔히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를 전쟁의 직접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것들이 단지 갈등을 악화시키는 연료일 뿐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 전쟁 동기를 약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다. 그가 말하는 보호 장치는 네 가지다. 첫째, 서로 얽혀 있을수록 전쟁 비용이 커지는 상호의존. 둘째, 권력자의 오판을 막는 견제와 균형. 셋째, 협상이 폭력보다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규칙과 집행. 넷째,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막는 개입. 이 네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전쟁은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 된다. 평화는 우연이 아니라 세심한 관리와 설계의 결과라는 점이 강조된다.

책의 후반부는 평화를 향한 구체적 길을 보여준다. 지난 300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참정권 확대와 정치권력의 분산은 폭력을 거치지 않고도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인쇄기와 같은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 신세계라는 대안적 공간, 군사기술의 변화, 새로운 생산 방식 등이 대중의 협상력을 높였다. 그 결과 엘리트들은 양보를 선택했다. 재무부나 관료제 같은 제도를 마련하고, 의회와 지방정부로 권력을 쪼개고, 도로·보건·학교 같은 공공재를 제공했다. 내부의 투쟁은 때로 격렬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협상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평등과 안전, 강력한 국가는 바로 이 과정 속에서 태어났다.

물론 취약한 사회에 사는 이들에게 수 세기를 기다리라는 말은 공허하다. 그들은 지금 당장 평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조금씩 평화를 만들어가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완벽한 해법은 없지만, 과학이 발전해온 길처럼 평화 역시 실험과 수정, 보완을 거듭하며 조금씩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전쟁을 인간 본성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제도와 인식의 실패로 설명한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고 현실적이다. 전쟁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편향과 오해 속에 살아갈 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전쟁 연구서이자 평화를 위한 실용적 안내서다.

영웅적 덕목이 아니라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인식의 장치를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평화의 길임을 강하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은?'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갈등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적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않는 재주, 그래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는 커녕 혐오스러운 외집단에 대한 편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견해를 확증하는 고집스러운 성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 확증 편향, 동기화된 추론 등 우리에게 내재한 편향성이 복합되면서, 신중하게 반응하며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책을 찾으려는 우리의 의욕을 위축시킨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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