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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 ㅣ 나의 두 번째 교과서
EBS 제작팀 기획, 정우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2월
평점 :
정우철 도슨트의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 책을 펼친지 얼마되지 않아 가슴을 울린 사연 하나를 만났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관객의 사연 때문이었다. 그는 최근에 자녀가 세상을 떠나 큰 슬픔에 빠졌다. 자녀가 죽은 후부터 늘 검정색 옷만 입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위태한 모습에 친구가 억지로 끌고 온 곳이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전시회였다. 그런데 그분은 그림을 보면서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화가의 작품이 너무 밝고, 예쁘고, 행복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화가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한평생 고통도 없이 편하고 즐겁게 그림을 그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누군가는 행복하게 화가 생활을 하며 밝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해당 전시회를 다시 찾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전시회에서 정우철 도슨트가 들려주었던 앙드레 브라질리에 화가의 인생에 관한 사연 때문이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작품에서는 슬픔, 고통은 찾아볼 수 없다. 주로 사랑하는 여인, 숲을 거니는 사람과 말, 아름다운 해변 등이 주로 나온다. 그의 작품 주제는 ‘행복’이다.
하지만 그는 행복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 참상에 충격을 받았다. 죽어가는 사람들, 현실에 대한 무력감,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노년에 사랑하는 자식도 잃었다. 세상에 느낄 수 있는 슬픔 중에 자식을 잃은 슬픔만 한 것이 있을까?
그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오히려 자신의 캔버스에는 행복한 모습만을 담으려고 했다. 처참한 현실과 고통으로 무너질 뻔 했기에 오히려 캔버스에는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을 그리며 위로하고 희망을 가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치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품 전시회에서 들려준 화가의 사연을 듣고 그 관객은 그제야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작품에 깊이 공감하며 큰 위로를 받았다.
화가들의 그림은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에 대한 해석은 훗날 평론가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겠지만 그저 자신의 인생,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림에 자신의 감정을 담았다. 저자인 정우철은 이것이 미술을 공부하고 화가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조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 인생을 되돌아 보고 슬픔을 위로 받고, 행복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림은 변하지 않으면서 나와 함께하는 친구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10개의 챕터에 예술가 21명의 인생과 그들의 작품 이야기를 담았다.
1번째 챕터는 이중섭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삶을 다룬다.
전쟁과 사랑, 그리고 예술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어떻게 작품에 녹아들었는지를 살펴보며, 특히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모딜리아니의 열정적인 예술혼이 인상 깊게 그려진다.
2번째 챕터는 박수근과 빈센트 반 고흐를 통해 서민의 삶과 자연을 담아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순수함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3번째 챕터는 클로드 모네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삶을 다룬다.
인상주의 작품을 통해 빛과 색채의 조화를 탐구한다. 특히 모네의 ‘수련’ 시리즈와 르누아르의 밝고 경쾌한 작품들은 독자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4챕터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에로티시즘을 탐구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감정과 독특한 표현 방식은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5번째 챕터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와 앙리 루소를 통해 늦은 나이에 꽃피운 예술적 재능을 조명한다. 그들의 삶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6번째 챕터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잔 발라동, 프리다 칼로 등 여성 화가들의 고난과 예술 세계를 다룬다. 그들의 작품과 삶을 통해 여성으로서 겪은 어려움과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과정을 엿볼 수 있다.
7번째 챕터는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추상 미술을 통해 색채와 형상의 조화를 탐구한다. 그들의 작품은 현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8번째 챕터는 에드바르트 뭉크와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표현주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그들의 작품은 감정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9번째 챕터는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조각 작품을 통해 사랑과 예술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다. 그들의 작품과 삶은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인간적인 감정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준다.
10번째 챕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두 천재의 작품을 통해 예술과 과학,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다룬다. 그들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각 챕터마다 두 명 혹은 세 명의 화가를 동시에 소개하면서 그들의 인생을 비교하여 볼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의 그림을 해석하면서 그림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서로 다른 민족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그들의 인생 이야기가 신기하고 몰입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많은 화가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보낸 사람들이 많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그들의 열정에 놀라기도 했다.
소개 된 화가들 중 이중섭과 프리다 칼로의 인생과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이전에도 해당 화가들의 그림을 보긴 했지만 그렇게 임팩트 있게 다가오진 않았는데, 정우철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그림을 접하다 보니 훨씬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중섭의 <피 묻은 소>라는 작품을 보면서 그 당시 이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심정이 어땠을지 고스란히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또한, 고통과 맞서 싸우며 그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 했던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척추, 1944>라는 작품은 몸에 철심을 박는 척추 수술을 받아야 했던 그녀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고통 속에서도 꿋꿋이 앞을 응시하는 시선은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드러나는 것 같아 응원의 마음으로 보게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느껴져 그림을 오래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 제대로 보자는 마음으로 감상을 했는데 참 마음이 먹먹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는 고통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과 싸워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 주기에 그녀의 그림이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정우철 도슨트가 화가의 인생을 옆에서 이야기 하듯 자연스럽게 들려 주고 있어서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화가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도 알려준다. 그림을 통해 공감, 위로, 슬픔, 사랑, 희망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그림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우리가 평소 잘 알고 있는 화가나 그림일지라도 그것을 누가 어떤 내용과 톤으로 설명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바도 천차만별인 것 같다. 정우철 도슨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의 삶 속에 함께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한번 느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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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북스 @forest.kr_'님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이 화가는 정말로 행복에 집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세상에 불안이나 우울 같은 것은 없다는 듯, 늘 순간적이지만 찬란한 밝음과 짧은 순간에 느껴지는 찰나의 행복을 표현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것이 오히려 행복의 본질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진정한 행복은 한 번에 다가오는 기쁨이 아니라, 작은 기쁨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팠음에도 작품의 주제가 거의 변하지 않은 화가이기도 하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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