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AI 기업
어비(송태민) 지음 / 시공사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AI 관련 책은 정말 많다.

ChatGPT에게 질문하는 법,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 AI로 이미지를 만드는 법,

영상을 만드는 법까지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관련 책도 빠르게 쏟아진다.

그런데 『나 혼자 AI 기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이 책이 단순히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자 어비(송태민)가 던지는 질문은 조금 다르다.

AI를 배웠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도구를 어떻게 내 경험과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콘텐츠와 서비스, 나아가 수익이 반복되는 하나의 구조로 만들 것인가?

결국 이 책의 중심에는 이런 질문이 놓여 있다.

AI 시대의 진짜 격차는 누가 더 많은 AI를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과 능력에 AI를 어떻게 연결해 실제 가치로 만들어내느냐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저자 어비는 24년 동안 SK, LG, 현대, 이베이 등 대기업에서 일했다.

인공지능과 IoT를 포함한 신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했고, 동시에 회사 밖에서는 유튜브와 책, 음악, 강의 등 여러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는 280만 구독자 규모의 ‘어비월드’를 비롯해 다양한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구글 Product Expert 활동과 교육 분야 글로벌 수상 경력, AI 프로젝트와 영화제 등의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런 저자가 오랫동안 품었던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개인도 스스로 하나의 경제 단위가 될 수 있을까?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회사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퇴근 후와 주말을 활용해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책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강의를 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시험했다.

처음부터 완성된 사업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를 만들고,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보고, 실패하고, 다시 바꾸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쌓였던 결과들이 결국 개인의 브랜드와 콘텐츠 자산이 되었고 어느 순간 본업 수입까지 넘어섰다.

여기에 AI가 등장하면서 그 가능성은 훨씬 커졌다.

예전에는 글 하나, 영상 하나, 디자인 하나를 만들더라도 시간과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다.

기업이 강했던 것도 결국 사람을 모아 역할을 나누고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 구조의 일부를 개인에게 가져왔다.

기획하고,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고, 분석하고, 홍보하는 과정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제 한 사람이 AI와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나 혼자 AI 기업’은 혼자 모든 일을 죽도록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사람이 해야 할 일과 AI에게 맡길 일을 구분하고, 여러 도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적은 힘으로 더 큰 결과를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1인 기업을 떠올리면 모든 일을 혼자 떠안는 모습을 생각하기 쉽다.

기획도 내가 하고, 디자인도 내가 하고, 홍보도 내가 하고, 고객 응대도 내가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일하면 자유를 얻기 전에 먼저 지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AI 기반 1인 기업은 ‘내가 모든 것을 하는 구조’가 아니라 ‘모든 일이 돌아가는 구조를 내가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 책의 전체 구성 역시 이 생각을 그대로 따라간다.

1부에서는 AI 시대에 왜 1인 비즈니스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이어지는 2부에서는 콘텐츠를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돈이 되는 콘텐츠 자산’으로 만드는 방법을 다룬다.

여기에는 생산비용의 변화, 콘텐츠 자산화 구조, ‘AI-First 콘텐츠 모델’ 4가지, 반복 생산 가능한 콘텐츠 시스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콘텐츠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저자가 몇 년 전에 만든 유튜브 영상은 지금도 조회수를 만들고, 이미 집필한 책은 계속 판매되어 인세를 만들며, 발표한 음원 역시 스트리밍을 통해 수익을 발생시킨다. 한 번 만들어진 콘텐츠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일을 ‘시간과 돈을 교환하는 행위’로 생각한다.

한 시간을 일하면 한 시간만큼 돈을 받고, 일을 멈추면 수입도 멈춘다.

그러나 콘텐츠의 구조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오늘 쓴 글이 몇 년 뒤에도 검색되고, 오늘 만든 영상이 몇 년 뒤에도 조회되고, 한 번 만든 강의나 책, 음악이 계속 소비된다면 그때부터 노동의 결과는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오래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용한 시간이 나중에도 계속 일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뿐이지만, 축적된 콘텐츠는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와 함께 일하게 만든다.

어쩌면 콘텐츠 자산화란 ‘시간을 저장하는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AI가 가진 힘도 여기에서 더 분명해진다.

AI는 부자가 되는 마법이 아니다.

오히려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다.

저자는 100개가 넘는 유튜브 채널을 직접 실험했다. 어떤 콘텐츠가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반응이 없으면 제목과 섬네일, 편집 방식을 바꾸고, 때로는 채널 자체를 접었다.

과거에는 실패 하나가 큰 비용이었다면 AI 시대에는 비교적 작은 비용으로 더 많은 가설을 시험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 책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표현을 하나 꼽으라면 ‘빠른 실행’이다.

완벽한 것을 만들기 위해 몇 달을 준비하는 것보다 작은 결과물을 먼저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확인한다.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바꾼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으로 시도한다.

효과가 있다면 그 부분을 확대한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이 책의 핵심을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검증된 영역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생각해보면 완벽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배우는 시간을 늦춘다는 데 있다.

혼자 고민하는 한 달보다 실제 사람들에게 보여준 하루가 더 많은 답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많이 만들어내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그다음 단계를 중요하게 본다.

시도 → 반응 확인 → 분석 → 수정 → 재시도. 이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저자는 100개 이상의 채널을 운영하면서 어떤 섬네일이 클릭을 만드는지, 어떤 제목이 알고리즘에 잡히는지, 어떤 편집 방식이 시청자의 체류시간을 높이는지를 계속 관찰했다고 설명한다. 많이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결과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실패가 자산이 되는 것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하고 다음 행동을 바꿨을 때 비로소 실패는 데이터가 된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욱 실용적으로 변한다.

3부는 아예 유튜브·쇼츠·틱톡 제작 시스템을 다룬다. 노출되는 숏폼 콘텐츠의 패턴을 분석하고, AI를 이용한 숏폼 제작 루틴, 스토리보드·대본·프롬프트 생성, 전자동 업로드 시스템까지 이어진다.

4부에서는 인스타그램, 블로그, 틱톡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커뮤니티 기반 수익화, AI 디지털 굿즈 제작, 자동 세일즈 페이지와 판매 자동화까지 다룬다.

즉 콘텐츠를 만드는 데서 끝내지 않고, 콘텐츠 → 관심 → 관계 → 상품 → 판매 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조회수가 많다고 반드시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팔로워가 많다고 반드시 안정적인 수입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콘텐츠와 실제로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수익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만이 아니라,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회수는 관심의 숫자이고, 수익은 가치 교환의 결과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를 찾으라는 책의 조언도 단순한 자기계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오랫동안 해온 일,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것, 계속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것 안에는 누군가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정보가 있을 수 있다.

전문가라는 거창한 이름이 없어도 자신이 먼저 경험한 시행착오는 뒤에 오는 사람에게는 지도가 될 수 있다.

평범한 경험도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있을 때는 추억에 불과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는 순간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이 반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하나의 자산이 된다.

5부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은 AI를 이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직업과 서비스 모델까지 확장한다.

1인 미디어 편집 서비스, AI 브랜딩과 섬네일 디자인, AI 음성·뮤직 콘텐츠 스튜디오, 기업 대상 AI 영상 에이전시 등이 별도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목을 보면 AI 시대의 수익화를 꼭 ‘유튜버가 되는 것’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콘텐츠 제작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AI를 활용해 디자인이나 영상을 만들어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기업이 AI를 활용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주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대개 ‘내 일이 없어질까?’이지만, 역사를 조금 넓게 보면 기술은 기존 직업을 바꾸는 동시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계속 만들어왔다. 중요한 것은 직업 이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를 넓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6부에서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모인다.

‘나만의 AI 워크플로우 구축’, ‘시간·노력 최소화 운영 루틴’, ‘성장 사이클 설계’, ‘확장 가능한 수익 구조’다.

여기까지 읽으면 책 제목에서 말하는 ‘기업’의 의미도 조금 달리 보인다.

기업은 단순히 직원이 많은 조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일이 반복 가능하게 돌아가는 구조가 있고,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며, 그 결과로 수익이 발생하고, 다시 다음 성장을 위한 자원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직원이 한 명뿐이어도 이런 구조가 있다면 작은 기업처럼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혼자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모든 일이 자신에게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시스템이라기보다 계속해서 자신의 시간을 판매하는 일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나 혼자 AI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어쩌면 ‘AI’도 ‘혼자’도 아니라 ‘기업’이다.

내 노동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없어도 일부가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현실적인 균형도 필요하다.

이 책이 기업의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 역시 반도체, 자동차, 제약처럼 대규모 자본과 복잡한 공급망, 높은 수준의 전문 인력과 협업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기업이 여전히 훨씬 강하다고 인정한다. 개인의 장점은 콘텐츠, 교육, 출판, 컨설팅, 니치 시장 등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빠르게 실험하고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영역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이 점이 오히려 책에 현실감을 더한다.

모두 회사를 그만두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AI만 배우면 당장 1인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저자 자신 역시 24년간의 회사 경험을 기반으로 투잡과 쓰리잡을 오랫동안 병행했고, 부업의 수익이 본업을 넘어선 이후에야 독립했다.

안정과 도전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오늘 당장 버려야 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작은 실험을 시작하고,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조금씩 선택지를 늘려가는 것도 충분히 좋은 전략이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AI를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다.

AI에는 방향도 판단도 영혼도 없다고 말한다.

AI가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만들 수 있고, 영상을 편집할 수 있다고 해도 무엇을 만들 것인지까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을 도울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떤 기준을 지킬 것인지, 시장의 반응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AI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이 부분은 더 중요해질 것 같다.

모두가 비슷한 글을 만들고,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고, 비슷한 영상을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면 ‘만드는 기술’ 자체의 희소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경험, 관점, 안목, 취향, 신뢰, 판단이다.

AI가 평균적인 결과를 만드는 비용을 계속 낮출수록 인간에게 남는 경쟁력은 오히려 ‘무엇을 만들지 선택하는 안목’과

‘왜 이것을 만드는지 설명할 수 있는 자기만의 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 “도구를 아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엮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말도 단순한 기술 이야기가 아니다.

ChatGPT, Claude, Midjourney, Runway, ElevenLabs 같은 AI 서비스를 몇 개 사용해봤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출판사 역시 이 책을 개별 AI 사용법보다 여러 AI를 연결해 콘텐츠의 기획·제작·배포·분석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비즈니스 시스템을 만드는 책으로 설명한다.

결국 도구에는 유행이 있다.

오늘 가장 좋은 AI가 내년에는 다른 서비스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필요한 도구를 선택하고, 결과물을 검토하고, 여러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도구를 외우는 사람은 도구가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지만,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은 새로운 도구가 등장해도 자신의 시스템 안에 갈아 끼울 수 있다. 이것이 단순한 AI 사용 능력과 AI 활용 능력의 차이다.

그래서 책 마지막의 실천 조언도 생각보다 소박하다.

처음부터 AI 도구 수십 개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ChatGPT나 Claude, Midjourney 가운데 한두 개라도 직접 사용해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작게 적용해본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나 관심사 가운데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하나 골라본다.

완벽하게 준비하기보다 먼저 한 번 만들어본다.

그다음 반응을 확인한다.

조금씩 AI 도구를 연결하고, 만들어진 콘텐츠가 한 번 소비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계속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구조화한다.

쉬워 보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는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출발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작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있다. 움직여야만 보이는 문제가 있고, 실패해야만 알 수 있는 자신의 약점도 있다.

그래서 실행은 준비가 끝난 뒤 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배우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일 수도 있다.

『나 혼자 AI 기업』을 읽고 나면 AI를 바라보는 질문도 조금 달라진다.

“요즘 어떤 AI가 제일 좋은가?”

라는 질문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내 경험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인가?”

“반복해서 하고 있는 일 가운데 AI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만든 것이 1년 뒤에도 가치를 만들게 하려면 어떤 구조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으로 넘어간다.

나는 이 변화가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AI가 인간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보다 더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는 한 개인이 이전보다 훨씬 큰 실행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자본과 조직과 많은 사람이 있어야 가능했던 일 가운데 일부를 이제 개인도 시도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공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AI를 사용하는 사실 자체가 경쟁력이 아니라, AI를 이용해 무엇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도 가장 강력한 자산은 AI가 아니라 ‘축적’일 수 있다.

오늘 쌓은 한 편의 글, 하나의 영상, 하나의 고객 경험, 한 번의 실패와 수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이 만들어진다.

혼자 일하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닌 시대다.

AI가 반복 업무를 돕고, 플랫폼이 시장과 연결해주며, 자동화가 시간을 확보해주고, 과거에 만들어둔 콘텐츠가 미래에도 계속 움직인다.

그래서 『나 혼자 AI 기업』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혼자 회사를 차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 AI와 콘텐츠, 플랫폼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은 경제 단위가 될 수 있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리고 그 출발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완벽한 사업계획도, 수십 개의 AI 도구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 하나, 해본 경험 하나, 해결해본 문제 하나에서 시작해도 된다.

작게 만들어보고, 세상에 내놓고, 반응을 보고, 다시 수정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단발적인 노동을 쌓이는 자산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AI 시대의 기회는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먼저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작은 가능성을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사람에게 먼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나 혼자 AI 기업』은 단순한 AI 활용서나 부업 안내서라기보다,

AI 시대에 개인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자신의 경험을 자산으로 바꾸며 어떻게 작은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시공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기회는 열렸지만,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드는 사람은 여전히 실행하는 사람이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분명하다. 이제 개인도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고, 실패를 빠르게 학습으로 바꿀 수 있으며, 한 번 만든 결과물을 오래 작동하는 자산으로 쌓아갈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위해 쓸 권리 - 아티스트 웨이 글쓰기 철학
줄리아 캐머런 지음, 박성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티스트 웨이』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창작의 용기를 건넨 줄리아 캐머런은 『나를 위해 쓸 권리』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그리고 누가 우리에게 글을 쓸 자격을 허락해줘야 하는가.


이 책은 문장을 잘 다듬는 법이나 출판 방법을 알려주는 기술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언제부터 글쓰기를 어렵게 여기게 되었는지, 왜 쓰기도 전에 자신의 문장을 검열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자기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줄리아 캐머런은 40여 년 동안 소설, 영화, 희곡,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왔다. 그에게 글쓰기는 직업이기 이전에 삶을 견디고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데뷔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작가다.”


우리는 흔히 책을 출간했거나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만 작가라고 생각한다. 일기를 오래 써도,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려도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줄리아 캐머런에게 작가란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성장하면서 글쓰기가 점점 ‘평가받는 행위’가 된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 글에는 점수가 붙고 문법과 논리, 주제가 평가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표현하는 것보다 틀리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 문장이 이상하지 않을까?’, ‘유치해 보이지 않을까?’, ‘좀 더 똑똑하게 써야 하지 않을까?’


줄리아 캐머런은 우리가 글을 쓸 때 너무 제대로 쓰려고 하고,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쓴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글은 오히려 힘을 조금 뺐을 때 살아난다. 좋은 글이란 완벽한 사람이 쓴 글이라기보다 자기 목소리를 숨기지 않은 사람이 쓴 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책에서는 글쓰기를 ‘좋은 잠옷’에 비유한다. 글은 편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형식과 표현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문장은 정확해질 수 있지만 그 사람만의 온도는 사라질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글을 쓰기 위한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해서, 화가 나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어떤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써도 된다.


글쓰기는 지나가는 삶을 붙잡는 일이면서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줄리아 캐머런은 말한다.


“지금 당신이 어디 있는 그곳이 출발점이다.”


완벽한 환경이나 대단한 영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글쓰기는 호흡과 같다. 우리는 모든 상황이 완벽해질 때까지 숨 쉬는 것을 미루지 않는다. 글 역시 쓰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생각이 완전히 정리된 다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머릿속에서는 막연했던 감정도 문장이 되는 순간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하늘의 색, 사람의 표정, 지나간 말 한마디와 자신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기록할 것이 많은 특별한 삶을 살아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록하기 시작하면 평범한 삶에서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쓸 자격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출판사의 선택이나 조회수, 좋아요가 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라도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쓸 수 있다. 글쓰기의 가장 근본적인 독자는 어쩌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꾸 ‘잘 쓴 글인가’, ‘책이 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좋아할까’를 먼저 묻는다. 하지만 줄리아 캐머런은 그보다 앞선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는 쓰는 동안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서툰 글을 쓸 자유가 필요하다. 평범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까지 써보면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해야 한다.


『나를 위해 쓸 권리』가 되찾아주려는 것은 뛰어난 문장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쓰기 전에 움츠러들지 않을 용기, 남의 평가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태도, 그리고 스스로에게 “나는 써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다.


잘 쓰기 때문에 쓸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쓰기 시작하기 때문에 나만의 문장이 생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떠오르는 것부터 적으면 된다. 당신은 이미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세상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자인 뮤지엄 - 디자인으로 읽는 인간 욕망의 역사
김신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수많은 디자인 속에서 살아간다.

불을 켜는 스위치, 세면대와 식탁, 스마트폰처럼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할 뿐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과 공간에는 누군가가 사용자의 행동을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온 흔적이 숨어 있다.

김신의 『디자인 뮤지엄』은 바로 이런 익숙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디자인을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 했던 욕망,

그리고 그 너머의 아름다움과 개성, 즐거움을 추구해 온 과정으로 보여 준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은 “모든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의 질은

사회 전체의 미적 감각과 시각적 상상력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라는 말이다.

좋은 디자인을 꾸준히 경험한 사람은 단순히 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편리하고 세심하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이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는지를 자연스럽게 구분하게 된다.

반대로 불편하고 조악한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그 불편함조차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결국 디자인은 물건 하나의 품질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만드는 일과도 연결된다.

좋은 디자인이란 결국 ‘사람을 얼마나 세심하게 생각했는가’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난 결과인지도 모른다.


디자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 욕망의 역사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도구를 만들었지만 생존이 해결된 뒤에는 편리함을 원했고,

편리함 다음에는 아름다움을, 그 이후에는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을 원하게 됐다.

인간은 필요를 해결한 뒤에도 계속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욕망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조금 더 편하게 만들 수 없을까’,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없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는 불만과 질문이 수많은 발명과 디자인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느끼는 마음은 인간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책이 선사시대의 돌도끼에서 디자인의 시작을 찾는 것도 흥미롭다.

자연에 놓여 있는 돌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필요한 기능을 상상하고 목적에 맞게 형태를 바꾼 순간부터 이미 디자인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디자인의 시작은 결국 ‘지금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반복되는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거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편한 곳으로 옮기거나,

복잡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정리하는 것 역시 모두 디자인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부엌의 변화는 좋은 디자인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 준다.

과거 부엌은 위험하고 불편한 공간이었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간을 결정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았다.

직접 부엌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야 동선과 구조가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불편함을 겪는 사람과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다르면 변화는 늦어진다.

오늘날의 서비스나 공공시설도 마찬가지다.

만드는 사람에게는 계단 몇 개, 작은 글씨 하나가 별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접근 자체를 막는 장벽이 된다.

결국 좋은 디자인에 필요한 핵심 능력은 ‘내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힘’이며 좋은 디자인에는 기술뿐 아니라 공감이 들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주방은 작업 동선을 약 90m에서 8m까지 줄였다고 한다.

이 사례는 디자인이 반드시 화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손잡이 위치를 조금 옮기고, 자주 쓰는 기능을 한 단계 앞에 두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는 작은 변화가 오히려 사람의 삶을 크게 바꾼다.

가장 뛰어난 디자인은 사용자가 디자인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삶 속에 녹아든 디자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효율만으로 좋은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효율을 추구한 프랑크푸르트 주방은 한 사람이 혼자 일하는 폐쇄적인 공간이 됐다.

이후 주방이 거실과 연결되고 가족이 함께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디자인의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을 줄이고 동작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있다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관계와 감정, 휴식까지 제거한다면 삶은 편리해질 수는 있어도 풍요로워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좋은 디자인은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지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미디어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문자와 종이, 책, 인쇄술, 스마트폰은 모두 인간의 한계를 확장해 온 도구다.

기억의 한계 때문에 기록했고, 목소리가 멀리 닿지 않기 때문에 문자를 만들었으며,

더 많은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인쇄술을 발전시켰다.

인간의 뛰어난 능력은 처음부터 완벽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보완할 방법을 만들어 온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구가 인간의 능력을 확장했다고 해서 인간까지 자동으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많이 아는 것이 힘이었다면, 지금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에는 말할 자유만큼 무엇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도 커진다.

기술이 인간에게 더 큰 힘을 줄수록 그 힘을 다루는 판단력과 책임 역시 함께 성장해야 한다.


결국 『디자인 뮤지엄』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디자인이 단순히 물건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건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의 행동과 시간을 디자인하는 일이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바꾸는 일이며,

미디어를 디자인하는 것은 누가 말하고 누가 들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을 볼 때는 “예쁜가?”보다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가”, “어떤 불편을 없앴는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을 고립시키는가, 연결시키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가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겨 온 일상을 다시 보게 한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고, 버튼을 누르면 불이 켜지며,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삶은 수많은 사람의 발견과 시행착오, 노동이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다. 문명은 몇몇 천재가 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름도 남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조금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며 다음 세대에 넘겨준 긴 협업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디자인 뮤지엄』은 그래서 단순한 디자인사 책이 아니다. 익숙한 물건 하나에서도 인간의 욕망과 불편, 기술과 노동, 관계와 시대의 가치관을 보게 만든다. 책을 읽고 난 뒤 “왜 이렇게 생겼을까?”, “왜 이렇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당연했던 것에서 질문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남기는 가장 좋은 메시지였다.


'북트리거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성형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궁금한 것을 검색하는 대신 질문하면 정리해 주고, 몇 줄의 지시만으로 글과 이미지, 음악까지 만들어 준다. 분명 놀라운 기술이다.

그런데 에릭 사댕의 『멸종 위기의 사고』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바로 그 ‘편리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이 책의 시작을 여는 나이팅게일 이야기가 이를 아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나이팅게일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소리를 관찰하고 수없이 연습하면서 자신의 발성을 찾아가고, 성장하면서 저마다 다른 화음과 개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던 어느 날 원하는 리듬과 후렴만 입력하면 대신 노래를 만들어 주는 기계가 등장한다.

더 이상 힘들게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새들은 기꺼이 자신의 능력을 기계에 넘겨준다.

이 우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무겁다. 능력은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계속 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용하고 연마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편리한 도구가 등장할 때 우리는 보통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간과 함께 어떤 능력을 잃고 있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약해지듯 사고력과 창의력 역시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편안한 둥지를 얻는 대신 스스로 노래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나이팅게일이 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래서 저자가 챗GPT의 등장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단순히 ‘AI가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생각했던 사유하고 표현하고 창작하는 능력이 인간의 외부로 이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이미지, 음악뿐 아니라 판단과 조언까지 기계가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점점 결과를 받아들이는 위치로 이동한다.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부분은 언어에 관한 이야기였다.

폴 발레리는 “창조하는 것은 바로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수많은 단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화가는 색과 선을 선택하며, 작곡가는 리듬과 음을 선택한다. 심지어 짧은 문자 한 줄을 보낼 때도 우리는 상황과 감정, 상대방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단어를 선택한다.

바로 그 선택 속에 한 사람의 경험과 취향, 기억과 판단이 스며든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글을 직접 쓰는 과정은 단순히 문장을 생산하는 작업이 아니다.

생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무엇을 먼저 말할 것인지 고민하고,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한동안 멈춰 있는 시간까지도 사고의 일부다.

그래서 글쓰기에서 모든 시행착오를 제거하고 완성된 문장만 빠르게 얻으려 한다면 결과물은 더 매끄러워질 수 있어도 정작 내 안에서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줄어들 수 있다.

샤를 페기의 말도 오래 남았다. 그는 나쁜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나는 이 문장을 AI 시대의 핵심 경고처럼 읽었다.

틀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생각한 것이다. 틀렸다면 반박당하고 고치면서 더 나은 판단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이 만들어 놓은 생각을 자신의 생각처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면 사고 과정 자체가 사라진다.

생각의 가장 큰 적은 틀린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이미 노동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책에는 AI로 먼저 번역한 원고를 번역가에게 넘기고 수정만 맡기는 사례가 등장한다.

문제는 AI 번역의 오류가 많아 번역가가 사실상 전체를 다시 손봐야 하는데도 ‘보조 작업’으로 평가되면서 보수는 낮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창작자에서 기계의 결과물을 정리하는 사람으로 밀려난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직업 감소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과 역할 자체가 평가절하되는 문제로 본다.

교육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학생이 자료를 찾고, 이해하지 못해 다시 읽고,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고, 틀린 문장을 고치는 과정은 모두 사고 훈련이다. 그런데 과제와 글쓰기를 AI에게 넘기기 시작하면 ‘시간은 절약’할 수 있지만 배우는 과정까지 함께 생략될 수 있다.

이 책은 효율성과 학위 취득에만 매달리는 교육이 결국 글쓰기를 익히고 사고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시간을 ‘낭비’처럼 여기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AI가 인간관계까지 대신하려는 현상도 경고한다.

언제든 대답해 주고, 나를 비판하지 않으며,내가 듣고 싶은 방식으로 공감해 주는 AI는 현실의 인간보다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에는 불편함과 오해, 반대와 갈등이 존재한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견디는 능력 역시 인간이 사회 속에서 배우는 중요한 사고 능력이다.

저자는 기계와의 완벽하고 편안한 관계가 자기 능력을 낮게 평가하게 하고 현실과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위험을 지적한다.

물론 이 책은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도 있다. 사댕은 생성형 AI가 가져올 위험을 매우 강한 언어로 경고한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능력을 무조건 퇴화시키는 방향으로만 작동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 AI는 사고를 대신하는 도구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자료를 더 넓게 탐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며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보다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문장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반론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믿을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어떤 문장을 내 생각으로 남길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어야 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사유의 공허’를 경고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AI의 장단점을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기술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의 삶과 교육, 노동, 문화,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멸종 위기의 사고』라는 제목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검색을 대신 맡기고, 글쓰기를 맡기고, 판단을 맡기고, 선택까지 맡기는 동안 조금씩 사라진다.

AI 시대에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AI보다 더 빨리 답을 내놓는 능력이 아니다.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가장 귀해질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고, 선택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은 AI를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책이라기보다, 너무나 편리한 기술 앞에서 우리가 무엇만큼은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지켜야 하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생각하는 수고를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헤세드의서재 서평단 @hyejin_bookangel’님을 통해,

'헤이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골 -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권민창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골’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거칠고 반항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권민창의 『반골』에서 말하는 반골은 무조건 세상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과 책임을 스스로 쥐는 사람에 가까웠다.

책의 서문은 꽤나 강렬하다. 저자는 몇 년의 시간과 1억 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은 유튜브 채널을 직접 삭제한다. “조금만 더 해보자”는 미련으로 계속 붙잡고 있었지만, 결국 사람들이 좋아한 것은 ‘권민창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콘텐츠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장면에서 먼저 떠오른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만큼 잘못된 방향을 버릴 줄 아는 판단도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이미 많이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붙잡는 것은 끈기가 아니라 집착이 될 수도 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더 이상 잘못된 곳에 시간과 돈을 쓰지 않겠다는 새로운 결정일 수 있다.

저자는 이후 대중 앞에서 사라져 사업에 집중했고, 2025년 25억 원의 매출, 성수동 사옥 매입, 일본 출판사 설립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결국 결과로, 내 인생으로 증명하면 된다.”

이 문장은 지나치게 결과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읽었다.

타인의 현재 평가를 내 가능성의 최종 판결처럼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미다.

저자 역시 운동도, 글도, 새로운 일도 처음부터 잘한 것이 아니었고 비웃음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비웃음은 질투가 되고, 다시 “어떻게 그렇게 잘하느냐”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결과가 없을 때는 쉽게 무모하다고 평가하고, 결과가 나온 뒤에는 같은 행동을 결단력과 통찰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남의 평가에 반박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는 것이 더 강한 답일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100% 완전한 내 의지로 결정한 무언가가 있었나?”

저자는 직업군인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안정적인 직업과 연금이 정답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았고,

이후에도 선배와 동료가 선택한 길을 따라갔다고 한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생각보다 많은 결정을 타인의 기준에 맡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직장, 좋은 집, 적절한 결혼 시기, 성공한 삶의 모습까지 사회가 만들어놓은 표준을 참고한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화려한 삶을 원하고, 누군가는 적게 벌더라도 자기 시간이 많은 삶을 원한다. 그래서 조언은 참고할 수 있어도 인생의 결정권까지 타인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반골』은 이를 ‘야생 DNA’, ‘야생 지능’, ‘시작 중독’, ‘불완전 전략’, ‘선점자’, ‘금강불괴’ 등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표현은 거칠지만 핵심은 명확하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시작하고, 틀리면 빠르게 수정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특히 “조준은 달리면서 한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작을 미루지만, 현실에는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다.

사업은 시장에 내놔야 반응을 알고, 글은 공개해야 독자의 반응을 알 수 있다.

생각은 가능성을 예측하지만 행동은 현실의 데이터를 만든다.

그래서 실행력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빨리 발견하고 수정하는 사람일 수 있다.

출판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흥미롭다.

저자는 “책은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다”라고 말한다. 좋은 내용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그 책이 독자의 눈앞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까지 출판의 책임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은 것을 만드는 능력과 좋은 것이 발견되게 만드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존재를 모르면 선택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마케팅을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가치를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이 주장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AI에 대한 태도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는 위안에 머물기보다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인간은 기획과 판단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중요한 경쟁은 인간과 AI의 대결이라기보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수도 있다. 결국 인간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물을지, 무엇을 선택할지, 결과물의 수준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능력일 것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남의 돈 10억을 쓰는 엘리트와 내 돈 1천만 원을 쓰는 반골’의 비교였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핵심은 책임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에게 직접 돌아올수록 사람은 더 세밀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조언을 들을 때도 그 사람이 무엇을 아는지만큼, 자신의 말과 결정에 실제로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주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큰 빚이나 극단적인 압박을 일부러 만드는 방식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성공법이 아니며, 번아웃이나 우울증 같은 문제 역시 의지만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다시 움직이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후반 추천사들에서도 저자의 성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강연주 저자는 그를 세상을 거스르기 위해 반골이 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 세상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김민성 저자는 “이대로는 안 팔릴 것 같다”는 직설적인 피드백이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말한다.

윤만 저자는 빠른 실행력과 출간 이후까지 작가와 함께 움직이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이 추천사들을 읽으며 한 가지 생각이 남았다.

좋은 사람은 항상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때로는 듣기 좋은 위로보다 정확한 지적이 더 큰 성장을 만든다.

『반골』을 다 읽고 나면 결국 이 책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반골은 모든 규칙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규칙이 왜 존재하는지 묻는 사람이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자유만 얻는 일이 아니다. 선택과 함께 책임까지 가져오는 일이다.

잘못된 길이라면 돌아가도 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도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정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선택하고, 부딪히고, 수정하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반골』이 말하는 ‘세상을 등진다’는 것은 세상과 싸우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정해놓은 방향에서 잠시 등을 돌리고 내가 정말 가고 싶은 방향을 처음으로 바라보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책읽는쥬리 서평단 @happiness_jury'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전문가들이 타인의 무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지적 편향을 ‘지식의 저주’라고 부른다. 이론과 명분에 갇힌 사람들은 이 저주에 빠져 대중이 날것 그대로의 욕망을 읽지 못한다. 그들은 고상한 단어와 복잡한 논리에 집착하지만, 대중은 직관적이고 자극적이며 당장 내 삶을 바꿔줄 무언가에 지갑을 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