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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 - 존재에 대한 명상
루퍼트 스파이라 지음, 김주환 옮김 / 퍼블리온 / 2026년 4월
평점 :

어떤 책은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알려주기보다,
내가 늘 당연하게 여기며 지나쳤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들어 준다.
루퍼트 스파이라의 『I Am 아이엠』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우리는 하루 종일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며 살아간다.
기분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고, 관계도 바뀌고, 하루 안에서도 마음은 몇 번씩 흔들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나는 나다’라고 느낀다.
생각과 감정은 계속 바뀌는데, 그 모든 변화를 겪는 ‘나’는 왜 늘 같은 존재처럼 느껴질까?
이 질문이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특히 루퍼트 스파이라의 철학이 궁금했지만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에게 더 그렇다.
나 역시 『사물의 투명성』을 읽을 때는 솔직히 꽤 어렵다고 느꼈다.
의식과 세계가 하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리로는 따라가려 해도 쉽게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I Am 아이엠』을 읽으면서는 그 어려웠던 내용이 조금은 감이 잡히는 느낌이 있었다.
설명으로는 멀게 느껴졌던 말들이 시의 언어를 통해 더 가까이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이 책은 일반적인 명상책과는 조금 다르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나는 누구인가’를 아주 조용하게 다시 묻게 만드는 책이다.
역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루퍼트 스파이라가 30년 가까이 다듬어온 하나의 긴 시를 담고 있고,
여기에 철학적인 해설과 후기가 함께 실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시집 같기도 하고, 명상문 같기도 하고, 철학 에세이 같기도 하다.
처음엔 이런 형식이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읽다 보면 오히려 이 형식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려는 내용을 가장 잘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느껴졌다.
피곤함은 왔다가 사라지고, 기쁨도 왔다가 사라지고, 슬픔도 왔다가 사라진다.
‘나는 다섯 살이야’라고 말하던 시절도 지나가고,
‘나는 학생이야’, ‘나는 어른이야’, ‘나는 외로워’, ‘나는 사랑에 빠졌어’ 같은 상태도 계속 달라진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것이 바뀌는 동안에도 늘 남아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나는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느낌이다. 스파이라는 그 자리를 ‘아이엠 I am’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아주 쉽게 바꾸면 이렇다. 내 생각은 바뀌고, 내 감정도 바뀌고, 내 상황도 바뀐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를 겪고 있는 존재 자체는 늘 여기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변하는 것들에 더 눈길을 준다. 기분이 어떤지, 지금 어떤 관계 안에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더 집중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모든 변화보다 먼저, 그 변화를 겪고 있는 ‘나’에게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저자 서문에서 특히 이해가 쉬웠던 것은 스크린 비유였다. 영화에서는 장면이 계속 바뀐다.
한 장면이 지나가고 다른 장면이 나오고, 인물도 바뀌고 분위기도 바뀐다.
그런데 그 모든 장면이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는 이유는 스크린이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은 영화 속 장면들처럼 눈에 띄게 움직이지 않지만, 모든 장면이 나타나는 자리를 내어준다.
저자는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생각, 감정, 감각, 관계, 행동은 계속 바뀌지만, 그 모든 경험이 지나가는 자리로서의 ‘나’는 늘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좋았던 이유는 우리가 왜 계속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는지를 꽤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더 많이 다르다.
생각도 달라졌고, 감정도 달라졌고, 삶의 조건도 달라졌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나라고 느낀다.
이 책은 그 이유를, 변하는 경험들 뒤에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말이 추상적으로만 들리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우리 모두가 이미 그런 느낌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평소 자신을 감정과 너무 쉽게 연결해서 생각한다.
“나는 우울해”, “나는 외로워”, “나는 기뻐”, “나는 실패한 것 같아” 같은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문장에서 ‘우울해’, ‘외로워’, ‘기뻐’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나는”에 더 주목한다.
우울한 감정은 바뀔 수 있고, 외로움도 계속 이어지지 않으며, 기쁨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감정들이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 남아 있는 ‘나’는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내가 지금까지 ‘나’라고 믿어온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사실은 잠시 스쳐가는 상태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내 기분, 내 역할, 내 상황이 나의 전부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루퍼트 스파이라의 다른 저서인 『사물의 투명성』과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에서 다뤘던 내용을 시의 언어로 압축해 담아낸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설명을 길게 따라가는 느낌보다는 짧은 문장 하나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 느낌이 더 크다.
“나는 앎이며, 이 앎과 함께 모든 것이 알려진다”, “나는 현존이며, 이 현존 안에서 모든 것이 나타난다”, “나는 실체이며, 이 실체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 같은 문장들은 처음 보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쉽게 풀면 이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모든 경험이 나타날 수 있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이미 내 안에 있다.
설명으로만 들을 때는 멀게 느껴지던 말들이 이 책에서는 시의 형식 안에서 반복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천천히 스며든다.
이 책이 말하는 명상도 그래서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보통 명상이라고 하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거나, 특별한 평온을 얻어야 한다거나,
더 높은 단계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스파이라는 그런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명상은 무언가를 새로 얻는 일이 아니라, 이미 늘 여기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에 가깝다.
다시 말해 명상은 특별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있는 나의 존재를 놓치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다. 명상이 꼭 대단한 체험이나 특별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 특히 아름답게 느껴졌던 부분은 ‘존재의 통일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쉽게 말하면,
내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존재와 세상의 근본이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이 생각을 여러 종교와 철학의 표현으로 연결해 설명한다.
기독교에서는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하고,
불교에서는 “열반과 윤회는 하나다”라고 하며,
힌두교에서는 “아트만과 브라흐만은 동일하다”고 말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부분도 저자 서문을 읽으면서 조금은 감이 잡혔다.
스파이라는 우리 각자의 존재가 따로 떨어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그것을 ‘나’라고 부르고,
우주와의 관계에서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를 뿐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겉으로는 내가 세상과 떨어진 작은 존재처럼 보여도,
더 깊은 차원에서는 세상과 완전히 끊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파도와 바다의 비유가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파도는 각각 따로 보이지만 사실 모두 바다다.
사람도 겉으로는 서로 다른 존재처럼 보이지만, 깊은 곳에서는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물의 투명성』에서는 이 부분이 조금 더 추상적으로 느껴졌는데,
『I Am 아이엠』에서는 설명이 더 짧고 응축되어 있어서 오히려 핵심이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 생각은 사랑에 대한 문장으로 이어질 때 조금 더 쉽게 다가왔다.
이 책은 내 안의 존재와 타인의 존재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관계 속에서 드러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으로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이 말도 쉽게 풀면, 사랑은 완전히 남이었던 두 사람이 갑자기 이어지는 일이 아니라,
원래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던 존재가 그 사실을 알아보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사랑은 누군가를 가지는 일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거리가 잠시 가까워지는 순간에 더 가깝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좋은 음악을 들을 때면,
우리는 가끔 나 자신을 잊고 그 순간에 푹 들어가게 된다.
그때는 내가 대상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그 장면이나 음악 속에 함께 머물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순간을 통해 나와 세상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느끼게 한다.
그래서 사랑과 아름다움은 나와 세상 사이의 거리가 잠시 가까워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이라의 문장이 특별한 이유는 이런 이야기를 딱딱하게 설명하지 않고
시처럼, 때로는 역설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말하지만 침묵한다”,
“나는 알지만 알려지지 못한다”,
“나는 존재하지만 실존하지 않는다”
같은 문장들은 처음엔 난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꾸 읽다 보면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어떤 것을 계속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나’는 눈앞에 놓고 볼 수 있는 물건처럼 붙잡아서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눈이 자기 자신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가장 깊은 본질도 하나의 대상으로 붙잡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시적인 느낌과 철학적인 뜻을 함께 살리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이 함께 실린 구성은 꽤 반갑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빨리 읽기보다, 어떤 날은 한두 문장만 읽고 오래 생각해보는 방식이 더 잘 맞는다.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할 단어가 없지만 모든 단어가 오로지 나만을 표현한다”,
“행복을 바라는 당신의 욕망은 당신의 가슴 안에서 나의 은총이 당기는 것이다”
같은 문장들은 해석보다 먼저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행복을 바라는 마음조차 내 안의 더 깊은 존재가 나를 부르고 있는 움직임일 수 있다는 대목은 오래 곱씹게 된다.
『I Am 아이엠』은 단번에 이해하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어렵기만 한 책도 아니다.
오히려 본문은 생각보다 짧고 단순하며, 같은 방향을 여러 방식으로 반복해서 가리킨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이라도 감이 잡히는 순간이 온다.
나 역시 『사물의 투명성』을 읽을 때는 너무 멀게 느껴졌던 내용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은 가까워졌다.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가 왜 계속 ‘아이엠’을 말하는지는 예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느껴졌다.
생각과 감정은 계속 바뀌고, 삶의 조건도 관계도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런데 그 모든 변화를 조용히 지켜보는 존재는 늘 이미 여기에 있었다.
『I Am 아이엠』은 바로 그 사실을 시의 언어로 보여주는 책이다.
무언가를 더 얻어야만 완전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존재 자체로 충분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명상이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원래 늘 여기에 있었던 나를 더 이상 놓치지 않는 일임을 알게 해주었다. 이 책은 그 단순하지만 자주 잊고 사는 사실을 다시 깊게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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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온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의 시는 독자가 자신의 본질적 현존으로 되돌아가 쉴 수 있는 형태 없는 그릇이다. 잘 빚어진 그릇이 내용물을 드러내주듯이, 잘 빚어진 이 시는 우리의 본질적 현존을 드러내준다. 훌륭한 도예가는 그릇을 만들지 않는다. 빈 공간을 만든다. 스파이라의 시 역시 그러하다. 각 시구는 어떤 대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텅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그 공간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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