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 - 외로움과 우정, 사이의 철학
엄성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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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를 읽는 동안 가장 자주 떠올랐던 생각은 “이 책은 외로움을 쉽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면 대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늘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면 이 감정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기대가 왜 자주 실패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고립과 연결, 혼자와 함께 사이의 균형”이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처럼 느껴졌다.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과,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능력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러야 할 감각이라는 주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마다 관계 쪽으로만 해답을 찾으려 했던 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혼자 있는 상태를 무조건 결핍으로만 인식해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1부 「나는 내가 왜 외로운지 몰랐다」에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특히 ‘외로움이라는 착각’이라는 장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였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해서 외로움이 저절로 해소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관계의 질에 따라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워질 수도 있다는 설명은 경험적으로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외로움을 물리적인 고립 상태가 아니라 ‘함께함의 부재를 자각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하는 이 책의 글에서 내가 느껴왔던 막연한 허전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저자는 실존적 외로움과 관계적 외로움을 구분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근원적인 고독과 달리, 관계적 외로움은 바람직한 관계가 부재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설명은 외로움을 지나치게 개인의 성격 문제로 생각하지 않게 해준다. 특히 외로움이 분노나 공포처럼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감각이기 때문에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다는 부분은,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외로움인지조차 몰랐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은 단순히 외로움의 느낌을 줄이려 애쓰기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태어난다’ 부분에서는 인간이 사회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관계는 본질적으로 시간과 불편함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는 점점 즉각적인 만족과 효율성을 중시하며 관계마저 인스턴트처럼 소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인상 깊었다. 관계가 깊어지기까지 필요한 과정은 줄이고, 친밀감의 결과만 빠르게 얻으려는 태도가 오히려 외로움을 키운다는 설명은 지금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2부 「외로움을 해소하는 친밀한 관계에 대하여」에서는 관계가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외로움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나와 남의 경계가 옅어질 때 얻는 것들’에서 제시되는 관점은 이 책을 읽으며 오래 남았다. 저자는 삶의 의미가 완전한 자급자족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과정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의미가 되어줄 때, 홀로 있을 때는 느끼기 어려웠던 삶의 방향성이 생긴다는 설명은 관계를 부담이 아닌 가능성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책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특히 “괜찮아, 그대로도 충분해”라는 한 마디가 주는 힘에 대한 설명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가까운 사람과 우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크게 덜어질 수 있으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를 저자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결국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고 인정해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다시 세상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3부 「나와 너, 사이의 철학」에서는 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 이어진다. 특히 우정의 가치를 ‘노리는 것’과 ‘누리는 것’을 구분하는 대목은 관계를 맺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필요할 때 도움을 받기 위해 관계를 맺는 순간 이미 다른 목적이 앞서게 된다는 지적은 불편하지만 중요하다. 이 책은 관계가 어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될 때, 그 관계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좋은 사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장에서는 우정의 덕목으로 특수성, 특별성, 의존성이 제시된다. 같은 사람이 누구에게는 좋은 친구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은 관계를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든다. 또한 나쁜 친구의 다양한 유형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타인을 가려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을까’라는 물음은 이 책이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자기성찰 중심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4부에서는 우정을 삶에 채우기 위해 필요한 태도와 실천이 보다 구체적으로 다뤄진다. 특히 자기공개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었다. 깊은 우정을 위해 필요한 자기공개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든 정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내밀한 부분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행위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는 상대에 대한 신뢰이자, 관계를 향한 용기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정은 완벽한 모습으로 존경받는 관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속에서 자란다는 문장은 이 책이 지향하는 관계의 방향을 잘 드러낸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는 인간관계를 쉽게 만들어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외로움과 관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정직하게 점검하게 만든다. 혼자 있음과 함께함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끝까지 일관된 시선으로 보여준다. 관계로 인해 지쳐 있거나,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가까운 사람과 우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크게 덜어진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든든함을 주는 존재, 그것이 친구이며 우정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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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 다시 시인들 10
박찬호 지음 / 다시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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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를 읽으면서,

그리움과 체념,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희망 같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는 동안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게 했다.

이 시집에서 인상적이었던 시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입버릇처럼〉

눈길이 미끄러웠나 봅니다

다리의 힘이 점점 빠진다더니

돌아오는 길에 넘어져

흉골 한 대와 늑골 두 대

금이 갔다는군요

맨날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숨을 쉬기가 힘들대요

별 약도 없다네요

그냥 무리하지 말고 누워서

뼈가 자연적으로 붙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대요

뭐 별수 있나요?

그이 삶이 그렇듯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요

입버릇처럼 주저리더니

죽을 날이 빨라지는 것과

뼈가 붙을 날이 빨라지는 것이

결국 같은 얘기란 걸

이제야 알았다네요

나 원 참

예 들어가세요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이게 단순히 다친 사람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다친 것보다 그 사람의 삶이 방식이 더 오래 남는다.

'그이 삶이 그렇듯이 /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요'라는 구절이 특히 그랬다.

뭔가를 적극적으로 고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상황이 지나가기를 견디듯 버티는 태도처럼 보인다.

살다 보면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몸이 아픈 것도, 삶이 고단한 것도 다 그냥 그런 거지 뭐하며 넘겨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죽을 날이 빨라지는 것과 / 뼈가 붙을 날이 빨라지는 것이 / 결국 같은 얘기란 걸'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회복과 쇠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이 흘러간다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시는 웃기게 끝나지만 전혀 웃기지가 않았다. 담담해서 더 아픈 시 같은 느낌이다.

〈떨어진 열매에 대해〉

물어본다고 아는 것도 아니었고

안다고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한마디 물어본다

마지막 가을볕은 따가웠고

제법 바람이 차가운 오후에도

당신의 손은 따뜻했다

힐끗 보면 소나무 같고

자세히 보면 잣나무 같은

저 나무에 대해

저 나무의 떨어진 열매에 대해

물으면서도

대답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답을 알고 있지만

단답형의 답이 두려워

다시 물음으로 대답했다

뭐지?

글쎄?

마음속 가문비나무는

그렇게 익명의 나무로

그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이 시는 읽자마자 어떤 관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다른 말을 꺼내는 순간들.

진짜 묻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괜히 엉뚱한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시간들 말이다.

특히 '단답형의 답이 두려워 / 다시 물음으로 대답했다'는 구절이 묘하게 와닿았다.

우리가 관계 안에서 얼마나 자주 이렇게 도망치듯 말하는지, 이 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음속 가문비나무는 / 그렇게 익명의 나무로 / 그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는 문장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 정리하지 못한 관계, 끝내 꺼내지 못한 마음 같은 것들이

모두 그 ‘익명의 나무’ 안에 조용히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시끄러운 밤을 보낸 날일수록 잠은 오지 않았고

울다가 지친 날일수록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았지요

그러면서 매년 그랬지요

이 겨울이 지나면 돌아가겠다고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기분은 오히려 더 좋지 않았어요

부드러운 바람은 불지 않았고

단지 해만 높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제 다시 떠날 준비를 해야 해요

올겨울이 지나면 꼭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사실 매년 그랬습니다

내일은 눈이 올지도 몰라요

그러면 기분은 좋아지고

바람은 부드러워질 테니

그러면 정말 떠날 수 있을 듯해요

당신이 계신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해요

이 시는 이 시집의 제목이 왜 이렇게 붙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라고 느꼈다.

날씨는 맑은데 기분은 더 가라앉는 날.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우울해지는 날.

'울다가 지친 날일수록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았지요'라는 문장은 정말 많은 밤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이 꼭 좋은 순간은 아니라는 걸 이 시는 자연스럽게 말해준다.

그리고 '매년 그랬습니다'라는 반복이 너무 슬펐다.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결국은 매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돌아간다는 말이 꼭 물리적인 장소만을 말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아간다는 건, 마음이 향하던 곳과 관계의 자리,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통째로 부르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는

상실, 기억, 관계, 그리고 이유 없는 감정들을 다루는 시집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아주 조용하다. 울부짖지도 않고, 위로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런 마음도 있다는 걸 인정해 주는 쪽에 가깝다.

<시집을 관통하는 정서>

-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

-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

- 회복되지 않아도 계속 흘러가는 삶

- 떠난 사람을 마음속에 남겨두는 방식 같은 것들

나는 이 시집이, 삶을 먼저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써 내려간 시들처럼 느껴졌다.

직접적으로 죽음을 말하지 않는데도, 이미 떠난 누군가의 그림자가 시집 곳곳에 조용히 깔려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 삶의 어떤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이 시집은, 왜 우리는 날이 맑아도 괜히 슬퍼질까.

왜 이미 아는 답을 두고도 또 물어보게 될까.

왜 회복을 말하면서도, 마음은 자꾸 쇠락 쪽을 더 자주 떠올릴까.

하지만 이 책은 그 질문들에 굳이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얼굴로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쪽에 가깝다.

나는 이 시집이 마음이 괜히 무거운 날, 이유 없이 누군가가 그리운 날,

아무 일도 없는데 자꾸 과거가 떠오르는 날 펼쳐보기 좋은 책이라고 느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박찬호 네번째 시집/다시문학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메멘토 모리

사랑해
잘 가
걱정하지 마
그동안 고마웠어
감사했어요
아파도 괜찮으니까
그냥 오래오래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거예요
희망을 품고
두려워 말고
편히 가세요

그 병동에서
매일
울려 퍼지는 공명共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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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잘 쓰는 디자이너 - 나노 바나나부터 미드저니, 피그마, 캡컷, 수노, 런웨이까지!
전하린 지음 / 이지스에듀(이지스퍼블리싱)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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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디자인 영역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보지 않았을까?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까?”

“AI를 어떻게 써야 디자이너의 일이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단순히 AI 툴을 소개하는 설명서가 아니라, 디자인 사고방식과 작업 흐름 자체를 AI 시대 기준으로 재정비해 주는 실전 가이드에 가깝다.

그래서 입문자부터 현업 디자이너, UI/UX·브랜딩·콘텐츠 디자이너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요즘 AI 관련 책은 많지만, 막상 실무에 가져다 쓰려 하면 툴 기능 소개로 끝나거나 트렌드 정리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결이 다르다. 단순히 “이 툴은 이런 기능이 있다”로 마무리하지 않고, 디자이너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원하는 결과에 가까워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준다. 무엇보다 실제 적용 화면을 함께 보여 주며 설명해 주기 때문에 이해가 훨씬 빠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AI를 잘 쓰는 능력은 툴을 많이 아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요구를 정확히 해석하고, 목적을 언어로 정리하며, 여러 결과 중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힘.

바로 그 역량이 AI 시대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AI 시대, 디자이너의 역할은 ‘손’에서 ‘판단’으로 이동한다

책 초반부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AI를 경쟁자가 아니라 협업 파트너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AI는 반복 작업, 아이디어 확장, 다양한 시안 생성에 강하다. 반면 문제 정의, 맥락 이해, 브랜드 해석, 최종 판단은 디자이너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AI를 쓰는 디자이너일수록 더 ‘기획형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디자인은 손의 일이 아니라 판단의 일이 될 것이고,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도구를 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디자이너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사람이 AI 시대에 강해진다는 결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리룸(Relume)으로 ‘원클릭 웹사이트 제작’ 흐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UX/UI 파트에서 특히 반가웠던 도구가 리룸(Relume)이다.

리룸은 프로젝트 설명만 입력해도 사이트맵과 와이어프레임, 스타일 가이드를 아주 빠르게 생성해 주고, 결과물을 피그마나 웹플로우 등으로 바로 내보낼 수 있어 연동성이 좋은 앱이다.

실무에서 가장 시간이 걸리는 구간이 “기획 → 구조 설계 → 화면 뼈대”인데, 리룸은 이 구간을 압축해 준다.

정리하면 흐름이 이렇다.

1. 프로젝트 목적과 서비스 성격을 한 문장으로 입력한다.

2. 리룸이 사이트 구조를 사이트맵으로 정리한다.

3. 각 페이지의 콘텐츠 흐름을 와이어프레임으로 자동 생성한다.

4. 스타일 가이드까지 잡아주고, 피그마/웹플로우로 내보낸다.

빠른 MVP 초기 제안 단계에서, 일단 보여줄 수 있는 뼈대를 만드는 데 굉장히 강력한 방식이다.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요” 같은 상반된 요청을 해석하는 법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 해주세요.”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요.”

상반된 말이라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이 책은 강조한다.

이런 요청 뒤에는 분명한 니즈가 숨어 있다.

중요한 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해석의 방향을 여러 갈래로 열어두는 것이다.

책에서는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라는 요청을 예로 들며,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색상은 비비드하지만 형태는 미니멀하게

- 요소는 적지만 임팩트는 강하게

- 텍스처는 화려하지만 레이아웃은 깔끔하게

AI는 여기서 큰 힘이 된다. 이 해석들을 각각의 프롬프트로 만들어 빠르게 시안을 펼쳐보고,

그중 클라이언트 반응이 좋은 방향을 골라 디자이너가 최종 판단으로 밀도를 높이면 된다.

AI는 가능성을 확장하고, 디자이너는 방향을 결정한다.


로고 디자인 파트가 의외로 실무형이다

: 타깃별 시안 → 벡터화 → 일러스트 파일까지

추가로 좋았던 건 로고 디자인을 실제 작업 흐름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로고를 “이미지 생성”에서 끝내지 않고, 타깃별 시안을 만드는 방식을 짚어준다. 예를 들어 같은 브랜드라도

- 10대/20대에게 더 캐주얼하게 보이는 시안

- 프리미엄 타깃에게 더 정제된 시안

- B2B 고객에게 더 신뢰감을 주는 시안

처럼 타깃에 따라 시안을 분화하고, 그 차이를 언어로 설정해 AI 결과를 컨트롤하는 흐름이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무자에게 중요한 마지막 단계, 벡터화하여 일러스트(Adobe Illustrator) 파일로 만드는 방법까지 이어진다. AI로 만든 로고는 그대로 쓰면 해상도나 응용성에서 한계가 있으니, 최종적으로 벡터 기반으로 정리해 확장 가능한 로고 자산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로고 작업을 해보려는 분들에게 이 파트는 꽤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AI로 로고 뽑아보기”가 아니라, “실제로 납품 가능한 형태로 마무리하기”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AI 이미지 어색한 부분은 포토샵으로 ‘디테일 보정’하는 법까지 알려준다

AI로 만든 결과물이 빠르긴 해도, 어색한 부분은 반드시 생긴다. 특히 자연물과 인공물의 차이를 짚어주는 설명이 실무적으로 유용했다. 자연물은 구조가 유기적이라 약간의 왜곡이 있어도 티가 덜 나지만, 건축물·가구·기계처럼 인공적인 형태는 조금만 일그러져도 바로 티가 난다. 이런 경우 포토샵의 제거 도구(Remove Tool)로 쉽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AI를 완성 도구로 과신하지 않고, 초안 생성 → 디자이너의 보정과 정리라는 현실적인 워크플로를 보여주는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촬영 없이 AI로 영상 만들기 + 수노(Suno)로 음악까지: 콘텐츠 제작 흐름이 한 번에 이어진다

콘텐츠 제작 파트도 꽤 알찼다. 촬영 없이도 AI를 활용해 영상을 만드는 방법을 제공하고, 그 영상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음악을 수노 AI로 직접 작곡하는 법까지 연결해 준다.

즉, “영상은 영상,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기획(컨셉) → 영상 생성 → 편집 → 분위기 맞춤 음악 제작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영상 제작 경험이 많지 않은 디자이너나 1인 브랜드 운영자에게는 이 파트가 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촬영과 제작이 부담인 사람들에게, AI가 실제 제작의 허들을 낮춰주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AI에게 맡기면 안 되는 작업은 분명히 있다

책이 신뢰를 주는 이유는 AI를 무조건 찬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문에서는 AI에게 맡기면 안 되는 작업을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 클라이언트에게 바로 보여 줄 최종 시안

- 브랜드 정체성과 연결된 로고·네이밍·핵심 메시지

- 예산·시간·물성 제약을 반영한 현실적 설계

- 사회·문화적으로 민감한 공공 프로젝트, 윤리적 메시지

핵심은 단순하다. 반복과 초안은 AI에게, 책임과 판단은 디자이너가.

생성형 AI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 잘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고, 어떤 도구든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때 비로소 디자이너에게 힘이 된다.


총평|AI를 배우는 책이 아니라, AI 시대의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방법을 정리한 책

『AI 잘 쓰는 디자이너』는 AI 활용서이면서 동시에 디자인 사고 훈련서처럼 읽힌다. 도구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이 AI를 잘 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문제 정의, 요구사항 정리, 맥락 이해, 최종 판단으로 이어진다. 디자인과 AI 사이에서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은 분명 좋은 기준점이 되어줄 것이다.


이은북에서 지원받아 주간심송과 별보리필사단에서 함께 읽고 필사합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AI에게 맡기면 안 되는 작업 5가지
마지막으로 AI에게 맡기면 안 되는 작업 5가지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클라이언트에게 바로 보여 줄 최종 시안
- 브랜드의 정체성과 연결된 로고, 네이밍, 메시지
- 예산·시간·물성 제약을 반영한 현실적 설계
- 사회·문화적 요소가 민감한 공공 프로젝트, 윤리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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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엔 어떤 옷을 입을까?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시 필사집
이두헌 지음 / 이은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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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엔 밝은 옷을 입겠다.”


이 짧고 단순한 문장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또렷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은,

책의 제목과도 같은 「우울한 날엔 어떤 옷을 입을까?」였다.

슬픔이 밀려드는 날, 어두운 옷을 입고 싶어지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는 밝은 옷을 입겠다고 말한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되, 그 감정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밝은 옷처럼 마음의 방향을 다시 잡아보겠다는 조용한 결심이 느껴지는 시였다.

노래이자 시이기도 한 이 노래시를 읽다 보면,

깨지고 부딪히며 상처 난 사람들도 단 한 문장으로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의 힘이, 그리고 노래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새는 날개가 젖어도 날 수 있더라」였다.

폭풍우와 긴 비 속에서도 날아가는 새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며,

상처를 안고도 일상을 견뎌내는 사람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시련이 폭풍처럼 몰아쳐도 꿋꿋이 날아가는 새를 떠올리며,

나 역시 그 너머를 바라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힘을 얻고 싶다.

1986년에 쓰인 노래들이 지금 읽어도 낡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 아닐까.

이 책은 괜찮아질 거야라고 직접 위로하기보다,

장면과 문장으로 독자 스스로 감정을 발견하고 의미를 길어 올리게 만든다.


노래시를 읽고 난 뒤, 가능하다면 노래도 함께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활자에서 시작된 감정이 다시 소리로 돌아오는 순간,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읽기와 듣기가 겹쳐지며 감상이 더 넓어지는 색다른 결의 책이다.


이은북에서 지원받아 주간심송과 별보리필사단에서 함께 읽고 필사합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12. 새는 날개가 젖어도 날 수 있더라

새는 새는 날개가 젖어도
날 수 날 수 있더라
장맛비에 온몸이 젖어도
저 멀리 나는 새를 보라

긴 비에 온몸이 젖어도
새는 하늘을 날고
폭풍우 치는 밤중에도
새는 하늘을 난다

새는 새는 날개가 젖어도
날 수 날 수 있더라
모질고 모진 저 폭풍우 너머로
나는 새를 보라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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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 잘 익어가는 인생을 위한 강원국의 관계 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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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가 유독 피곤해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말 한마디를 하기 전에 괜히 계산하게 되고,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먼저 떠올리느라 정작 내 마음은 뒤로 밀려나는 순간들이 있다.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는 바로 그런 상태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관계를 잘하는 요령을 알려주기보다, 왜 우리는 사람 앞에서 이렇게 지치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짚어 나간다.

저자 강원국은 오랜 시간 말과 글의 현장에서 사람을 관찰해 온 사람이다.

청와대와 조직의 중심에서 수많은 관계를 지켜보며 그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모든 말과 글의 뒤에는 관계가 있고, 우리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역시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완벽한 관계는 없지만, 더 나은 관계로 가는 방향은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다.

책의 초반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혼자 밥을 먹지 못했던 이유, 남들이 어떻게 볼지를 먼저 떠올리느라 늘 불안했던 마음, 자신이 아닌 ‘남들이 인정할 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려 애썼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존감이 낮을수록 인정에 목매게 되고, 그 인정 중독은 더 강한 칭찬을 요구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겸손처럼 보였던 태도, 양보와 사양이 사실은 자신 없음에서 비롯된 생존 전략이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관계의 문제는 성격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책은 관계를 여섯 가지 주제로 정리한다.

중심, 경계, 리더십, 여유, 결단력, 회복.

겉으로 보기엔 인간관계에 필요한 요소들을 정리해 둔 목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읽다 보면 이 여섯 가지는 결국 상대를 바꾸는 요령이 아니라 나를 세우는 기준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다.

관계 문제의 상당수는 상대의 성격보다 내 기준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그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지,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무엇만큼은 넘기지 않을지 스스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관계는 계속 흔들린다. 그래서 어른의 관계에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말은 차갑게 선을 긋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면서 동시에 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파트는 ‘경계’다.

우리는 친해질수록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고 착각한다.

가까운 사이라면 이해해줘야 하고, 참아줘야 하고, 편의를 봐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관계가 무너질 때는 대체로 과잉되는 감정에서 시작된다.

너무 많이 주고, 너무 깊이 관여하고, 너무 빨리 가까워지다 보면 어느 순간 버거워진다.

그래서 경계는 관계를 끊기 위한 벽이 아니라, 오래 가기 위한 선을 그어 두는 일이다.

어느 정도의 사이를 확보해야 감정이 뒤엉키지 않고 친밀함도 지속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인간관계의 피로가 어디서 왔는지 선명해졌다.

싫다는 말을 못해 생긴 친절, 말하지 못해 쌓인 불편함,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결국 관계를 소모시키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경계가 없으면 상대도 편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쉽게 선을 넘게 된다.

관계를 지키려면 내 마음을 지키는 선부터 세워야 한다.

“편한 사람이 아니라 편안한 사람이 되라”는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편한 사람은 타인에게 부담이 덜 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반면 편안한 사람은 솔직할 수 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상대의 기분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관계를 위해서라도 진짜 감정을 숨기지 말라는 조언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다른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착함이 반복되면 기준이 되고, 기준이 되면 의무가 된다.

그러면 관계는 부채처럼 무거워질 수 있다. 편안한 사람이 되려면 결국 용기가 필요하다.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진실의 용기 말이다.

‘리더십’ 파트는 직장이나 팀 안에서 특히 유용하다.

저자는 영향력을 말을 잘하는 힘이 아니라 말을 듣는 힘으로 다시 정의한다.

그 정의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사람은 결론으로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라 대우받은 감정으로 관계를 기억하는 법이다.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래서 결론은?”을 묻는 순간,

상대는 내용 이전에 존중받지 못했다는 감정을 먼저 기억한다.

반대로 한 박자 멈추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덜 다치게 된다.

이 책은 경청은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고 말하는데, 가장 어려운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사람을 대할 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지금 나는 이해하려고 듣고 있나, 판단하려고 듣고 있나?”

이 질문 하나가 대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이 분명히 올 수 있을 것 같다.

‘여유’는 관계를 오래 가게 만드는 기본 조건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사람을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해결해야 할 일처럼 대하게 된다.

그래서 대화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빨리 끝내야 하는 업무 절차처럼 느껴진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의 이야기를 흘려듣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친구의 신호를 놓치고, 급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맥락을 생략한다. 결국 관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라기보다 시간과 에너지의 배분 문제인 경우가 많다.

관계에 여유를 주려면 삶에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관계를 잘하려면 마음이 착해야 한다기 보다, 관계를 잘하려면 마음이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현실적으로 공감했던 파트는 ‘결단력’이다.

잘 맺는 것보다 잘 끊는 게 더 어렵다.

특히 미안함이 많은 사람일수록 관계를 정리하는 일을 죄처럼 느낀다.

하지만 끊지 못한 관계는 종종 나를 갉아먹고, 동시에 상대에게도 애매한 기대를 남긴다.

나를 지키려면 정리를 해야 하고, 정리를 하려면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

이 책이 말하는 결단력은 차갑게 관계를 정리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관계를 붙들고 버티느라 정작 지켜야 할 관계까지 망가뜨리지 말라는 말이다.

관계의 미니멀라이프는 사람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관계의 무게를 조절하는 일이다.

마지막 ‘회복’은 관계를 끝내지 않고도 살아남는 힘이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는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상처가 없게 사는 게 아니라, 상처 이후에도 사람을 전부 불신하지 않는 마음의 근력이다.

누군가에게 몇 번 데이면, 사람들은 "결국 사람은 다 똑같아!"라며 성급하고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 결론은 나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고립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이해한 회복은 다시 손을 내미는 용기라기보다, 사람을 다시 믿어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진정되는 상태다.

한 번 데인 뒤에도 “또 똑같을 거야”라고 단정짓지 않고, 조금은 기다려보고 지켜볼 수 있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회복이 가능해질 때 관계는 싸움이 아니라, 실수해도 다시 조절해 보는 연습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을 다시 배우게 된다.

이 책이 특히 좋았던 점은 각 글이 짧아서 더 깊이 남는다는 것이다.

한 꼭지 글을 읽고 나면 과거의 경험이 떠오르며 내 관계를 정리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정답을 얻는다는 느낌보다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된다.

지금 나는 누구에게 편한 사람으로 남아 있고, 누구에게 편안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경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해서 상처받고 있는지, 혹은 경계를 세우는 방식이 거칠어서 관계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책 속 문장 중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대화하자. 남의 말을 깎아내리는 뺄셈 대화보다는 그 말을 보완하고 보충해 주는 덧셈 대화를 하자”는 조언은 관계를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 준다.

우리는 대화가 논쟁이 되기 쉬운 시대를 산다.

이기려는 말, 눌러버리는 말, 상대의 빈틈을 찾는 말.

그러나 관계는 이기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는 기억으로 남는다.

결국 사람은 내 말의 논리보다 내 태도의 온도를 더 오래 기억한다.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는 관계를 잘해 보려 애쓰다 지친 사람에게,

그리고 관계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더 잘 말하는 법을 기대하고 펼쳤다면, 손에 남는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묵직한 기준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배운다.

이미 안다고 여겼던 것을 내려놓고, 오늘 만나는 사람을 처음 보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이 책은 그 연습을 시작하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안내서다.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만약 험담의 대상이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내가 왜 입방아에 올랐는지 따져보기 위함이다. 험담한 사람을 공격해서 입을 막아봤자 소용없다. 또 다른 입을 통해 구설은 계속된다. 그 원인을 제공한 나를 바꿔야 한다. 그도 아니면 험담한 사람을 내 편으로 통 크게 끌어안아야 한다. 그래야만 나에 대한 험담이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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