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둑맞은 시간을 되찾기로 했다 - 타인의 시간에서 자신의 시간으로 삶의 축을 옮기는 법
사소 쿠니타케 지음, 유민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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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내 시간을 가지며 살고 있는 걸까?"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이 나에게 준 변화!

쫓기듯 숨막히게 살아온 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사소 쿠니타케의 책 ‘나는 도둑맞은 시간을 되찾기로 했다’가 던지는 핵심적인 화두다.

시간 관리와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진 책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들은 사회적 기대, 타인을 위한 삶, 과도한 정보 홍수 속에서 사라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예로 들며 끊임없이 울리는 이메일 알림,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 등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갉아먹었는지 깨닫는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기간동안 사회적환경적 변화로 인해 삶의 패턴 자체가 바뀌면서 ’타인의 시간’에서 ‘자신의 시간‘으로 삶의 축을 옮기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더이상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순간이다.


‘나는 도둑맞은 시간을 되찾기로 했다‘는 바쁜 현대인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뿐만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는 법을 가르쳐 준다. 책을 읽고 나면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설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시간을 도둑 맞았다고 느낀다면 이 책은 그 시간을 되찾는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

이 책의 프롤로그에 저자가 쓴 글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어서 내용을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을 공유해본다.


영어에는 ‘변화‘를 뜻하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외부요인에 의한 변화를 ’체인지(Change)라고 한다. 

회사에서 전근을 가게 됐다거나,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다거나, 이혼을 하거나 또는 소중한 사람을 사별로 잃는 것 같은 일들이다.

두 번째는 내부 요인에 의한 변화를 ’트랜지션(Transition)이라고 한다. 

돈 벌기를 가장 우선시하던 사람이 주위 사람을 돕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거나, 기존의 사회질서나 관습에 도전하고 투쟁적이던 사람이 이제는 사회문제의 피해자를 옆에서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처럼 정체성이 변화하는 경우들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회적,환경적 변화, 그로 인해 촉발된 재택근무라는 생활 패턴의 변화, 이주나 ‘두 지역살이’와 같은 장소의 변화 등은 모두 외부 변화인 체인지이며 표면적인 계기다.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세상에 넘쳐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진정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내부적 변화, 즉 트랜지션을 가져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환경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내 안에서 일어난 첫 번째 트랜지션은 ‘시간 감각의 변화‘였다고 했다. 시간 감각의 변화는 ’타인의 시간‘에서 ’자신의 시간’으로 삶의 축을 옮긴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타인을 기준으로 삼는 ‘남의 시간을 사는 삶’에서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당연해지면서 내 안의 감각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지만 환경이 바뀌면서 ’자기 시간‘에 대한 감각이 변하게 된 것이다.


2010년대 이후 SNS가 일상화 되면서 새로운 만남과 끝없는 새로운 일들, 점점 빨라지는 삶 속에서 ‘이런 생활이 과연 지속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들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늘 스마트폰에 접속되어 도파민에 의해 들뜬 상태로 생활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머리는 문제없이 돌아가더라도 몸에는 피로가 쌓인다. 그런데 새로운 정보의 입력을 멈추면 자극에 익숙한 우리의 뇌는 지루함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효율화해도 일이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중독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시간은 효율적으로 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내 시간의 ‘주어‘로 느끼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는 타인의 시간에 지배되는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다.


‘지금, 여기’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싶은지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시작 아닐까?

저자는 ‘생산성의 덫’에 걸려 있던 나를 탈출할 방법으로 ’자신의 시간을 사는 법‘을 떠올렸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끝나고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변화를 남겼을까?

그 시간을 거치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게 되었나?


이 책은 일과 라이프스타일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답답하는 느끼는 사람들과전처럼 성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끊임없는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지금 느끼는 답답함은 미래의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자신으로 변화하기 위한 내면의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힌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북플라자'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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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21세기에 가져야 할 사고방식 3가지
1. ‘긍정성(Positive)’
2. ‘다양성(Diverse)’
3. ‘컨서머토리(Consummatory)’=‘현재를 즐긴다‘ ↔️‘도구주의‘ 이념과 대비되는 개념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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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컬러의 법칙 100 - 색채학의 거장과 함께하는 진짜 컬러 디자인 클래스
스티븐 웨스트랜드.매기 마지오 지음, 원세화 옮김 / 유엑스리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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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100개 색채의 비밀을 들여다보다.


컬러는 인간의 감정, 인지, 행동을 조율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스티븐 웨스트랜드와 매기 마지오는 이러한 색채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하루 한 장 컬러의 법칙 100’은 색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실질적 활용법을 100개의 간결한 원칙으로 정리한 책이다. 단순히 색을 예쁘게 보는 방법이 아니라, 색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과 그 활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책은 한 장 한 장이 독립적인 주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때문에 독자는 부담 없이 원하는 주제를 골라 읽을 수 있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아이디어를 얻고 싶을 때 부담없이 한장씩 읽어보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저자들은 심리학, 물리학, 디자인,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색의 영향력을 탐구한다.

예를 들어, 파란색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차분한 색’이라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 아니다. 이는 진화 심리학적으로 인류가 푸른 하늘과 물을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환경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반면, 빨간색은 경고와 열정을 동시에 전달한다. 이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위험 신호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특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설명은 독자에게 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색이 단순히 시각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감각적, 심리적 경험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색이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고 소비자 행동을 유도하며 공간을 재구성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 브랜드 코카콜라의 빨간색이 단순히 눈에 띄는 색이 아니라, 열정과 에너지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색채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디자인 전공자라면 색 조합과 구성 원리에 대해 통찰을 얻을 수 있고, 일반 독자라면 일상생활에서 색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특히 인테리어를 계획하거나 옷을 고를 때 색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영감을 준다.


저자들은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지 않고 시각 자료와 함께 내용을 쉽게 전달한다. 각 법칙은 사례와 함께 명확히 설명되어 있어 초보자도 부담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색의 대비를 설명하는 챕터에서는 어두운 배경에 밝은 글씨를 사용하면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전달된다는 원칙을 사진 예시와 함께 제공한다. 이런 실질적인 팁은 책을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책의 형식이다. 각 장이 독립적이면서도 연결성을 가지고 있어 독자가 책을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고, 한장씩 부담없이 읽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간이 없을 때는 한두 장만 읽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구조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컬러가 우리의 의식적·무의식적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색은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고 해석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점을 독자에게 명확히 전달하며 색채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하루 한 장 컬러의 법칙 100’은 색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색의 과학적, 예술적, 실용적 가치를 한눈에 보여주는 책이다. 색의 힘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일상을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단순한 색채 가이드가 아니라 세상을 색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안내서다.


'유엑스리뷰 마케터 @uxkorea'님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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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저서 <컬러에 따른 세계The World According to Color>의 파랑 챕터에서 제임스 폭스James Fox는 이렇게 썼다. "수평선이 종종 파란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레일리 산란Raleigh scattering과 관련된 대기 원근법이라는 현상 때문이다. 물체가 우리로부터 멀어질수록 산란된 빛에 가려지면서 푸르게 보인다. 결국 희미한 청색 수평선으로 끝나게 된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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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워킷 (Just walkit) - 2025 문학나눔 선정도서
박송이 지음 / 세종마루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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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이의 ‘저스트 워킷‘은 시와 에세이를 경계 없이 넘나드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삶의 무게를 담담히 풀어낸 시집이랄까?

이 책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상실, 죽음, 성장,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낸다.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독자들에게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시인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단순히 슬픔에 잠식되기보다 죽음을 통해 무엇인가를 깨닫고 배울 수 있는 시각으로 느껴졌다.

삶이 퍽퍽하고 고달픈 순간이 많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우는 법을 알지 못해 삼키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저자는 이때 한마디를 건넨다.
매미처럼 잘 우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말.
아이에게 전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이 말이 현재의 성인들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울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울음을 배우지 못했다면 7월, 매미들로부터 우는 법을 수강하기를 바란다.
창문을 열면 매미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무료다.
힘들거나 아프다면 매미처럼 화통하게 울어도 좋다.
매미의 울음을 통해 제대로 우는 법을 배워보자.

이 시집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상실을 대하는 방법, 그리고 현재의 나를 만드는 과거의 흔적을 존중하는 자세 등이 새롭게 다가온다.
박송이의 저스트 워킷은 삶의 모든 장면을 정성스럽게 그려낸 작품이다.
치유와 깨달음을 선사한다.
삶이라는 여정을 멈추지 않고 “저스트 워킷(Just Walk It)” 하라는 메시지가 강렬히 다가온다.


'글씨앗X세종마루 @glseedbook_sjmarubooks'님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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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떠나보냈듯이 9년 전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7월이 오면 유독, 이 두 분이 그리운 이유는 바로 매미 울음 때문이다. 나는 ‘우는 법‘을 잘 아는 매미가 참 좋다.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울음으로 그들이 거기 있다는 걸 안다. 이면우 시인의 말대로 어쩌면 ‘"사람들이 울지 않으니까 / 분하고 억울해도 문 닫고 에어컨 켜 놓고 TV 보며 / 울어도 소리 없이 우니까" (매미들) 우리를 대신하여 매미들이 울어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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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 - 플라톤의 대화편 마리 교양 1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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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렇게 처연할 수 있을까?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다.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두려움, 공포, 불안감, 절망감으로 뒤덮일 것이 당연한데, 소크라테스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다. 오히려 태연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같아 보인다. 사형 집행일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인 크리톤이 방문 했다는 사실 조차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평온한 낮잠을 즐기고 있는 친구를 방해하기 싫어서 그가 깰 때까지 기다려주는 크리톤의 마음도 참 예쁘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일이 코 앞으로 다가온 순간에 탈옥을 권유하러 급한 마음으로 방문 했을 그였을텐데 친구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가 깰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 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소크라테스가 잠에서 깨고 난 뒤 크리톤은 그에게 탈옥을 권유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탈옥 대신 죽음을 택하게 된 경위를 들려준다. 그의 논리와 반박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소크라테스의 변론’ 과 ’크리톤‘ 내용을 모두 담았다.
해당 책이 담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다.


<역사적 배경>
기원전 5세기경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끝나고 승리한 스파르타는 과두파를 지원해서 아네나이의 민주정을 무너뜨리고 30인 과두정을 세운다. 과두파는 8개월 동안 통치하면서 대략 1500명의 시민을 처형하고 수천 명을 추방한다. 숙청을 모면한 민주파는 페이라이에우스로 피신해서 아테나이의 장군 트라쉬불로스를 중심으로 과두정에 저항한다. 기원전 403년 과두파가 민주파의 본거지를 공격했으나 민주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이때 크리티아스(플라톤의 당숙)를 비롯한 몇몇 과두파 지도자들이 살해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소크라테스가 70세의 나이로 사형당한 기원전 399년 봄에 일어난 사건,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법정 변론을 극화한 대화편이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대체로 두 대화편이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이라고 간주한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중간에 고소인 멜레토스와 나눈 짤막한 문답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소크라테스의 독백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정에 피고로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언행뿐 아니라 철학 자체에 대해서도 변론하고 있다.

크리톤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화편의 주요 등장인물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두 번 언급된다. 크리토불로스의 아버지로 언급되는데, 소크라테스와 동년배이고 죽마고우인 사람으로 기술된다. 또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대신해서 30므나를 지불하고자 하는 네 사람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상> 2.9에서 크리톤은 부유한 인물로 묘사된다. <에우튀데모스>에서는 자신이 소유한 농장에서 소득을 거두고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한편 <파이돈>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이 도착할 때 소크라테스의 아내와 아이들을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온 인물이 크리스톤이다. 그리고 사형 집행 직전 소크라테스가 목욕할 때 홀로 소크라테스가 사망하기 직전에 마지막 유언을 남긴 사람도 크리톤이다. 이처럼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의 충실한 친구이자 동료였는데도 오늘날 많은 주석가들은 그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논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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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죽여 여러분이 바르게 살고 있지 않음을 누군가가 비난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신다면, 이는 잘한 생각이 아니니까요. 이런 임시 방편적 모면은 강력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훌륭하고 쉬운길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대신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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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 플라톤의 대화편 마리 교양 3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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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정말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점이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동성애에 대한 언급이었던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시절(기원전 8세기경)에 동성애에 대한 옹호적인 입장을 펼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던 것 같다.

플라톤의 대화편 3권의 세트 중에서도 향연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나누고, 생각지도 못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제대로 정독하기 전에 ‘향연’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임에 참여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책 첫 부분에 등장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있고, 뒤편에는 <작품해제>라고 하여 저자가 책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풀어 쓴 부분이 있는데 해당 내용들을 명확하게 읽고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읽게 되면 책 내용이 좀 더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의 본문 발췌 내용을 보기 전에 ‘향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 보면 좋을 것 같아 ‘향연’과 관련된 내용들을 검색하여 관련 내용을 재정리했다.


향연(饗宴)의 뜻

- 특별히 융숭하게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

-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그리스의 일류 문화인들이 한곳에 모여 사랑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한 대화편이다.

《향연(饗宴)》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파이돈》에 이어 써졌다고 추측된다.

이 글은 말하자면 플라톤의 '연애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기원전 416년 아테네의 비극 작가인 아가톤이 비극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는데, 축하연이 그의 저택에서 개최된다. 축하연의 참석자는 아래와 같다.

1. 아리스토데모스(소크라테스를 열렬히 추종하는 인물, 아가톤의 축하연에 초대받지 않고 참석했다)

2. 파이드로스(부유한 가문 출신, 수사술에 관심이 많은 20대 중후반의 청년)

3. 파우사니아스(아가톤과 연인 관계/소크라테스는 파우사니아스의 지나친 동성애 옹호를 비판했다)

4. 에뤽시마코스(의사/의사 아쿠메노스의 아들)

5. 아리스토파네스(당대 아테나이 최고의 희극작가/등장인물의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정치적 풍자로 유명)

6. 아가톤(비극 작가, 파우사니아스의 연인)

7. 디오티마(유일한 여성 화자/실존 인물이 아니라 플라톤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

8. 알키비아데스(부유하고 미남형, 사치스럽고 무도하며 무절제한 인물)

9. 소크라테스


연회에서 각자가 에로스(사랑) 찬미의 연설을 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옛날 현녀(賢女) 디오티마에게서 배웠던 일을 그녀와의 대화 형식으로 연설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임신을 하고 있어 낳기를 바란다. 그 뜻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도 죽기 싫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산의 대상은 추(醜) 속이 아니라 미(美) 속인 것이다. 이 미에의 생산욕, 이것이 에로스(사랑)이다. 사랑의 첫 단계는 육체의 미 속에 낳는 것이고 그것은 육체에서의 불사(不死)를 구하는 일이며, 아기라고 하는 형태로 실현된다. 그 다음에 정신의 미 속에 낳는 것을 추구하게 되며 또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육체의 미 따위는 근소한 가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정신의 미라고 하는 대양(大洋)을 향하며, 아름답고 장대한 언론이나 사상을 낳고 결국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영역, 영원히 존재하여 생성 소멸하지도 않고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지만 다른 면에서는 추악스러운 일도 없이,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추하다는 것도 아닌, 항상 불변하여 단일한 에이도스(姿)를 갖는 미 자체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 자체를 보면서 그와 더불어 있으며 거기에서 사람은 참다운 덕을 낳고 불멸하면서도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에로스는 처음에는 육체의 미, 다음에는 정신의 미, 그리고 최후에는 미 자체의 세계로 사람들을 높여 불사(不死)하는 보물을 얻게 하는 조력자였다. 그러한 에로스를 찬미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에이도스라든가 미 자체라는 언어로 표현된다. 최후로 알키비아데스가 애지(愛知)에 살고 있는 소크라테스야말로 정신의 미 속에서 생산하고 미 자체를 직감하는 진정한 사랑의 구현자라고 소크라테스를 찬미한다. 여기서 찬미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결국 플라톤의 에로스는 이데아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된다. 이것이 참된 플라토닉 러브일 것이다.

- 출처. 위키백과


<향연>

향연 풍습(함께 모여 술을 마시며 유흥을 즐김)은 기원전 8세기 무렵 시작되어 로마 시대까지 이어졌다. 향연은 철저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이념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귀족들의 사적 모임이었다. 아테나이 남성들은 향연에 자기 아내나 여성 친척을 데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 여성이나 하층 여인들이 참석하는 경우는 있었다. 가령 피리 부는 소녀나 무용수들이 향연 참석자의 여흥을 돋우려고 함께하기도 했으며, 헤타이라이(조선시대 기생과 유사하다. 대부분은 외국 여성이었고 아테나이 여성과는 달리 교육을 받았다.)가 참석하기도 했다.

 향연에 참석한 사람(대체로 7~11명이 모였으며, 최소 3명에서 최대 15명까지 모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침상에는 대개 2명이 함께 앉았다.)은 안드론(andron, 남성들의 방, 한옥의 사랑방과 유사)이라는 방에 모여 침상(한방에는 대체로 7개의 침상이 놓여 있었는데, 최소 5개에서 최대 11개까지 놓이기도 했다.)에 기대고 누워서 상반신을 왼쪽으로 돌리고 왼쪽 팔꿈치를 쿠션에 기댄체 오른손으로 침상 왼쪽 테이블의 음식과 음료를 먹었다.

보통 한 침상에 두 명이 함께 앉았는데, 아가톤의 침상은 세 명이 앉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다. 관습적으로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 문 오른쪽에 자리했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앉았다. 또 여흥을 주도하기 위해 향연 주관자(symposiarchos)를 선발하기도 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전반부에 에뤽시마코스와 파이드로스가 모임을 이끌어가다가, 후반부에 술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해서 향연 주관자 역할을 자처한다.

고대 그리스의 향연은 일종의 교육적 기능, 입문식의 역할(소년을 성년 시민으로 받아들임)을 담당했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식사를 마친 후 먼저 디오뉘소스 혹은 제우스에게 헌주를 했다. 또 집주인이나 선출된 향연 주관자가 술을 얼마나 어떻게 마실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결정했다. 술을 마실 때는 물이 담긴 항아리에 포도주를 넣고 희석해서 주전자에 담아 술잔에 따라 마셨다.

 그리스 사람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하지 않도록 주의했지만 때로는 만취하기도 했다. 만취해서 길거리에서 흥청거리는 취객 무리를 코모스Komos라고 불렀는데, 대화편 후반부에 등장하는 알키비아데스도 그중 하나였던 듯하다.

 아가톤의 축하연의 경우, 소크라테스가 도착할 때까지 파이드로스가 처음 자리에 앉고 아가톤이 마지막으로 앉는다. 그리고 도착한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착석한다.

 향연에 참석한 이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설하기로 한다. 즉, 파이드로스에서 시작해서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에 연설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 옆 침상에 앉은 에뤽시마코스는 아리스토파네스 다음에 연설하기로 되어 있었다.


<에로스>

<향연>은 아폴로도로스가 무명의 친구에게서 아가톤의 향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아폴로도로스는 자신은 그날 아가톤의 축하연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아리스토데모스(실제로 향연에 참석했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겠다고 말한다.

 아가톤은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 제전의 비극 경연에서 우승했는데(당시 소크라테스는 50대 초반이었고, <향연>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30대였다. 알키비아데스는 그다음 해에 쉬라쿠사이 원정의 사령관 중 하나로 선출되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이틀간 축하연이 벌어진다.(향연의 저술 시기는 기원전 385~379년경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대화편은 30~40년 전의 에피소드를 회상하고 있다.) 아가톤을 비슷해서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축하연 첫날 술을 엄청나게 마셨고 대부분 다음 날까지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데모스는 축하연 둘째 날에 참석했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단순히 여흥을 위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즐기는 대신, 에로스(그동안 도외시되었던 신)를 찬미하는 연설을 하기로 한다. 연사들은 차례로 에로스와 사랑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이들의 이야기는 당대 그리스인들의 사랑과 성에 관한 견해를 생생히 보여준다.

 고유명사 에로스는 주로 날개 달린 젊은 신으로 묘사되었지만, 일반명사 에로스는 ‘사랑’을 뜻한다. 호메로스도 에로스를 먹고 마실 것에 대한 욕망을 가리키는 단어로 썼고, 일반적으로 ‘사랑(특정한 개인을 성적 파트너로 강렬히 원함)’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하지만 에로스는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주인과 종, 통치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가리키는 단어는 ‘필리아philia’다. 이 용어는 ’국가 간에 교전이 없는 상태’ ‘동료에게 느끼는 애정’을 가리키기도 했고, ‘부모나 자식에게 느끼는 사랑’을 가리키기도 했으며, ’친구나 애인에게 느끼는 사랑‘을 뜻하기도 했다.

 필리아는 대체로 상호적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Philoi(친구들)는 사랑하는 자이자 사랑받는 자다. 반면 erao라는 동사는 주로 성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였으나 성과 무관한 대상에게 느끼는 강렬한 욕망(이를테면 호메로스는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한 에로스를 언급한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욕망은 종종 우리에게서 올바른 판단 능력을 앗아가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행하지 않았을 법한 일을 저지르게 한다. 이를테면 투키디데스는 시칠리아 원정을 준비할 때 모험에 거는 강렬한 에로스가 아테나이 시민들을 사로 잡았다고 말한다.

 비극에도 에로스의 파괴적 성격이 드러나는데, 가령 헤라클레스는 아름다운 소녀에게 이끌리는 욕망 때문에 그녀의 나라를 함락시켰고, 헤라클레스의 아내는 신들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에로스의 능력 앞에서 무능함을 인정한다. 물론 에로스는 인류의 존속에 기여하며 큰 쾌락을 가져다주지만, 그 파괴적 능력은 조심해야 한다.


<동성애>

<향연>에는 이성애보다 동성애에 관한 논의가 더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문화와도 같은 맥락이다.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인들은 예쁜 소녀보다 아름다운 소년이 성인 남성에게 성적 욕망을 더 많이 불러일으킨다고 여겼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가 이성애나 결혼과 양립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당시 아테나이 사회는 성이 분리되어 있어 동성애를 부추겼다. 노예가 충분히 있는 가정에서는 여성을 집 밖에서 활동하거나 일하도록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젊은 남성이 이웃집 딸과 사귀기 어려웠다. 물론 돈이 넉넉하면 이방 여인이나 노예와 매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신분의 젊은 남성을 구애하고 유혹하는 일은 간음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서도 성적 만족과 동료들의 인정(정복자로 부러움과 존경을 받게 됨)을 얻을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은 동성애를 같은 또래의 두 남성 사이에 일어나는 욕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 많은 남성(사랑하는자)이 아름다운 소년(사랑받는 자)에게 구애해서 소년이 나이 많은 남성의 구애에 굴복하면 호의와 감사, 애정을 표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아테나이 법률은 성인 남성이 18세 이하의 미성년자와 귐나시온이나 성적 접촉을 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18세 이하 소년은 향연장에 참석해서 침상에 기대어 누울 수 없었고, 보호자(특히 아버지)의 동반하에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동성애는 고대 그리스와 아테나이 문화에서 폭넓게 확산되었고, 나이 많은 남성이 어린 소년을 유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그림에는 사랑하는 자가 소년에게 수탉이나 토끼, 뤼라 같은 작은 선물을 주면서 호의를 사는 장면이 등장한다. 소크라테슨즌 <카르미데스> 155c에서 카르미데스의 외투 안쪽을 들여다보고 마치 여인의 가슴을 훔쳐본 것처럼 흥분했노라고 고백한다. <뤼시스> 206a에서도 뤼시스와 사랑에 빠진 히포탈레스에게 잘생긴 소년은 칭찬할수록 자만해진다고 조언한다.

 이처럼 동성애에는 역기능이 존재했지만, 그리스 사회에서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년의 관계는 남녀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교육적 의미도 있었다. 왜냐하면 소년은 연인을 롤 모델로 여기고 흉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당대 사람들처럼 동성애에 강렬한 욕구를 느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 후반 아리스토크세노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이성애적 욕구를 매우 컸다고 전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영혼 안에 있는 아름다움이 몸 안에 있는 아름다움 보다 더 값지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신체적 매력은 부족해도 그 영혼이 훌륭하다면 충분하다고 여기고 그를 사랑하고 아끼며 젊은이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관습과 법률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관조해서 모든 아름다움이 그것과 동류라는 것을 알게 될 수 밖에 없게끔 말입니다. 그래서 신체와 관련된 아름다움은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여기도록 말입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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