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오이
남대희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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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오이』는 큰 사건보다 우리 주변의 작은 장면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집이다. 화려한 표현을 많이 쓰지 않고, 꼭 필요한 말만 남긴다. 그래서 읽다 보면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보다 잠깐 멈추어 생각하게 된다. 시의 주인공은 낙엽, 가로등, 붕어빵, 흰 꽃, 비 온 뒤 신호등 같은 일상의 것들이다.

이런 평범한 풍경을 통해 시간, 기억, 이별, 사랑 같은 주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은행잎〉에서는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낙엽이 먼저 지나간다고 말한다. 시인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햇빛과 바람이 만든 문장이라고 본다. 거창한 사건이 없어도, 가을은 낙엽이 떨어지는 일로 매일 새롭게 써진다는 뜻이다. 즉, 계절은 거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이팝꽃이 피었다〉는 피었다는 말은 곧 진다는 말이라고 말한다. 꽃은 피는 순간부터 이미 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흰색을 “고요하고, 환하고, 말없이 어둡다”고 설명하는데,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흰색은 밝지만, 너무 밝아서 오히려 조용하고 깊다. 그래서 꽃이 피면 바람이 불어오듯, 시작 속에 끝이 함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시인은 결국 “꽃은 피면서도 이미 떠나고 있다”고 정리한다. 우리는 보통 피면 기쁘고 지면 슬프지만, 이 시는 두 감정이 동시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거리 붕어빵〉은 겨울 거리의 따뜻함을 잘 잡아낸다. 오래된 이층집 아래 작은 화덕이 불을 품고, 금빛 붕어빵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세상이 잠깐 따뜻해진다. 가로등 아래 쪼그려 앉은 아이의 눈에는 겨울이 구워지는 냄새가 밴다. 이 시는 설명을 길게 하지 않는다. 대신 냄새, 온기, 빛 같은 감각으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가로등 불의 시간〉과 〈가로등 풍경〉은 저녁의 분위기를 차분히 담는다. 가로등이 켜지면 도시가 천천히 저문다. 잊힌 말들이 눈처럼 쌓이고, 멀어진 얼굴들이 불빛 아래 스친다. 가로등은 단순히 길을 비추는 기계가 아니라, 하루 동안 지나간 발자국과 마음을 조용히 기억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불빛 아래 멈춘 그림자들이 말 대신 서로의 체온을 비춘다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말이 없어도 서로의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다.

〈가을날 은행나무 아래서〉는 아주 개인적인 감정으로 들어간다. “죽으면 나비가 될까?”라는 짧은 질문 뒤, 바람이 휙 불고 은행잎이 와르르 날아간다. 그중 한 잎이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엄마 냄새가 난다.” 냄새는 기억을 바로 불러낸다. 이 시는 긴 설명 없이도 독자가 자기만의 ‘엄마 냄새’를 떠올리게 만든다.

〈도시의 네거리〉는 현실의 무게를 보여준다. 비 오는 신호등 아래 우산들이 모여 멈춰 있고, 길모퉁이 붕어빵은 속을 익히는 중이다. 하지만 벤치 위에는 검은 장갑 한 짝이 놓여 있고, 주머니 속 구겨진 영수증을 만지다 보면 내일이 청구서처럼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따뜻함과 걱정이 한 장면 안에 담겨 있다.

도시의 하루가 가진 다양한 느낌을 보여준다.

〈죽은 것들이 만든 풍경 4〉는 상실을 다루지만 지나치게 슬프게만 보지 않는다. 갈대는 알 수 없는 일을 잊지 못해 고개를 흔들고, 보이지 않는 노루의 흔적처럼 땅속 뼈마디에서 김이 오른다. 시는 “가을은 멈추지 않고 / 죽음 곁에도 / 풍경은 그대로 물들 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떠나도 계절은 계속 흐른다. 이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이 계속된다는 위로이기도 하다.

〈해바라기〉는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헬로 하면 옐로로 대답하지” 같은 장난스러운 말로, 해바라기와 태양의 색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친 하루를 끝내 일으키는 건 복잡한 설명이 아니라, 눈앞을 환하게 밝히는 색과 빛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정리하자면, 『고이오이』는 사라지기 쉬운 작은 순간들을 조용히 붙잡는 시집이다. 낙엽 한 줄, 가로등 불빛, 붕어빵의 김, 흰 꽃의 떨림 같은 장면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기억, 만남과 이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문장은 짧고 여백이 많다. 그래서 독자는 스스로 생각을 채우게 된다. 한 번에 많이 읽기보다, 하루에 한두 편씩 천천히 읽으면 더 좋다. 그러면 평범한 길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신호등 아래의 숨결, 저녁 불빛의 온기,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의 소리 같은 것이 더 또렷해진다. 『고이오이』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시집이다. 소음 많은 날, 마음을 잠깐 쉬게 하고 싶을 때 특히 빛난다.

'메이킹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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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불의 시간

가로등 켜지면
도시는 천천히 저문다

잊힌 말들 눈처럼 쌓이고
멀어진 얼굴들 불빛 아래 스친다

오늘도 한 자락 어둠을
조용히 데우는 중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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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 -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기획책
남충식 지음 / 휴먼큐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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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를 읽고 나면, 기획을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가치’에서 출발하는 생각 습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은 시작부터 기획의 기본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획의 목적·주체·객체·내용·원리를 전부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점검하라는 요구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아날로그적 습작”이라는 정의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곧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이어서 “기획은 가치다”라고 말한다. 기획은 반짝이는 재주가 아니라 없으면 바로 곤란해지는 물과 공기 같은 것이다. 기업은 본래 ‘기획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오늘의 일터는 모두가 기획을 해야 굴러가는 3.0의 환경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그래서 좋은 기획은 좋은 세상을 만들고, 동시에 일하는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이 개정증보판이 다시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판 이후 오랫동안 회자된 문제-해결, 심플함, ‘플래닝코드’ 같은 핵심을 지금의 언어로 갈아 끼워,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실전적으로 닿게 하려는 의도다. 이 책은 누구나 읽어도 이해가 쉬운 기획 책으로, 기획 스테디셀러의 최신 개정증보판 버전으로 나왔다.


이 책이 내 손을 가장 세게 이끄는 대목은 ‘단순함’에 대한 집요함이다. 저자는 고수의 기획을 “심플하고 명쾌하며 군더더기가 없고, 재미와 울림이 있다”고 요약한다. 잡스는 “단순할수록 더 좋다”, 셰익스피어는 “짧을수록 더 지혜롭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 두 말을 현실에서 바로 쓰라고 권한다. 핵심은 생각을 “A는 B다”처럼 한 문장으로 먼저 붙잡는 습관이다. 그렇게 핵심을 못 박아 두면 다음 결정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반대로 어려운 말, 숫자, 유행 정보를 끝없이 끌어와 문서를 두껍게 만들면 목적이 흐려지고 도구가 일을 끌고 간다. 그 순간부터는 내가 정보를 다루는 게 아니라, 정보가 나를 끌고 다니는 셈이 된다. 결국 좋은 기획은 말을 더 붙이는 일이 아니라, 한 줄로 본질을 드러내고 나머지를 과감히 덜어내는 데서 시작한다.


단순해지려면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그에 대한 처방은 놀랄 만큼 간단했다. “처음으로 돌아가라.” 원점에서 대상을 다시 보고, 본질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라는 것이다. 무지의 하라 켄야가 말한 ‘엑스포메이션(아는 것을 비워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과 정확히 맞물린다. 그때 필요한 역량이 ‘통찰’이다. 통찰은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이다.


책의 설계는 결국 ‘문제-해결’이라는 두 단어로 수렴한다. 저자는 ‘기획(企劃)’과 ‘계획(計劃)’의 한자에서 차이를 끌어낸다. ‘기(企)’에는 사람이 있고, ‘계(計)’에는 없다. 그래서 기획의 질문은 “왜/무엇”이고, 계획은 “어떻게”다. 이 구분을 일에 적용해 보니 많은 회의가 사실 ‘어떻게’만 오가고 있었다. 버튼 색·배너 위치·리포트 항목 같은 이야기들. 하지만 ‘왜 이걸 하나’와 ‘무엇을 바꾸려 하나’가 합의되지 않으니 목록은 길고 성과는 흐렸다. 기획은 ‘복잡한 프로세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심플한 2형식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문서를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___이다. 우리는 ___을 해결한다. ” 생각이 이렇게 단순해지면 말과 글도 단순해지고, 회의도 그 문장을 중심으로 정렬된다. 플래닝코드를 사고·회의·문서·PT 전 과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그리고 코드가 모여 화음을 만드는 ‘코드/Chord’)로 쓰라는 조언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 책은 고수와 중수를 가르는 마지막 분기점을 ‘시간 배분’에서 찾는다. 고수는 해결(S)보다 문제 규정(P)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쓴다. 모든 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문제 안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여덟 시간이면 여섯 시간은 도끼날을 간다”는 링컨의 비유를 가져와, 비율까지 제시한다—P 75% / S 25%.


개정판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책에 나오는 표현과 사례들이 실제 일하는 상황과 바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말만 멋진 이론이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써볼 수 있는 언어와 사고 방식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광고·브랜딩의 최전선에서 오랫동안 플래닝을 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기획 바이블’, ‘문제 해결의 원조 문법’, ‘초심자도 토끼와 거북 이야기만 알면 따라갈 수 있는 책’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판형과 제본 같은 물리적 완성도 역시 눈에 띈다.


정리하면, 『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가 말하는 기획의 본질은 아주 단순하다. 기획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일’, 그리고 그 과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기획은 화려한 기법이나 방대한 정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인간 고유의 사고 과정이다. 그래서 좋은 기획은 결국 가치를 만들고 삶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진다. 문제를 정확히 보고, 해결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전체를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그가 바로 기획자다. 이 책은 우리가 기획을 다시 사람과 본질로 되돌려 바라보도록, 그리고 모든 생각과 말과 문장을 ‘문제 → 해결’이라는 단 하나의 중심축 위에 놓도록 안내한다. 기획은 복잡함 속에서 헤매는 일이 아니라, 본질을 발견하고 더 나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매일의 해안'님을 통해,

'휴먼큐브 출판사'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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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그림 찾기 - 차별과 편견의 경계에 갇힌 사람들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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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누군가를 더 좋아하고(편애), 다른 누군가를 덜 좋아할까? 책은 “편애와 차별은 아주 오래된 역사”라고 말한다. 성서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신이 아벨의 제물은 받아 주고 카인의 제물은 거절했던 순간부터,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집안까지 편애가 가족 갈등과 질투, 소외를 낳는 장면이 반복된다. 조지 오웰이 적은 스페인 아라곤 농부의 예처럼, 때로는 이유조차 불분명한 ‘호불호’가 차별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즉, 차별은 꼭 거창한 이념이나 명령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싫어서”, “왠지 별로라서”와 같은 막연한 감정에서도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건 눈에 잘 보이는 차별 장면만이 아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소개한 우화가 힌트를 준다. 경비원들은 손수레에 실린 물건만 검사하느라, 정작 사람들이 ‘손수레 자체’를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친다.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의 심한 말, 노골적인 괴롭힘 같은 “보이는 폭력(주관적 폭력)”만 문제 삼다 보면, 그런 일이 반복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규칙과 구조(객관적 폭력)— 예를 들어, 특정 집단을 낮춰 부르는 문화, 승진·선발 과정의 숨은 기준, 우리 모두가 당연히 여긴 말투와 관행을 놓치기 쉽다. 이 책은 겉의 사건만 보지 말고, 선택이 만들고 있는 배제와 그로 인해 생겨난 ‘배제된 사람들’까지 함께 보자고 제안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차별 감정을 당장 0으로 만들자는 식의 구호가 해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제도를 고쳐 차별을 줄일 수는 있어도, 사람 마음속의 불쾌·혐오·경멸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중요한 포인트는 감정과 행동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차별 ‘행동’과 제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동시에, 차별 감정이 어떻게 생기고 굳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고치기 어렵다. 이 감정은 보통 비대칭적으로 굳어 ‘편견’이 되고, 밖으로 흘러나오면 ‘차별’이 된다. 게다가 이 감정은 타고난 것만이 아니다. 사회에서 배워진 감정이 많다. 특정 지역이나 성별을 낮춰 부르는 말처럼, 누군가를 한 덩어리로 묶어 별명 붙이고 깎아내리는 말들은 그 자체로 편견을 학습시키고, 한 번 굳어지면 새로운 사실을 보여 줘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제일 무섭다”는 말은 의미가 크다. 문제의 원인을 늘 남에게서 찾는 태도가 미성숙을 넘어 잔인함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철학은 이 메커니즘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말을 “bar-bar(어버버)”로 조롱하며 ‘미개’라고 불렀던 일, 움베르토 에코가 “적은 실제로 위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묘사’되기 때문에 적이 된다”고 한 말은, 다름을 곧 틀림으로 바꾸는 습관이 얼마나 오래되고 강력한지 알려 준다. 이 습관은 가해자만을 망치지 않는다. 차별과 편견의 경계에 갇힌 사람—낙인찍는 쪽도, 낙인찍히는 쪽도—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필요한 건 ‘경계를 부수는 분노’가 아니라, ‘경계를 알아차리고 건너는 지혜’다. 다리를 놓아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만드는 변화, 즉 말의 순서·질문의 방식·선발 기준처럼 일상의 설계를 조금씩 바꾸는 일이다.

이 책은 성·언어·관습에서의 이중 잣대도 구체적으로 짚는다. 순결을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요구해 온 문화, 남성에게는 같은 기준이 거의 적용되지 않았던 언어의 역사, 한쪽 성별의 권력자에게는 너그럽고 다른 쪽에는 더 가혹한 시선 같은 것들이다. 이런 사례는 차별이 나쁜 마음 몇 개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언어와 풍습 속에 스며든 절차와 관행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디지털 시대의 문제는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함께 있지만 혼자(셰리 터클)”라는 역설 속을 산다. 팔로우·좋아요·조회수 같은 숫자는 관계와 존재감을 ‘수치’로 만들고, “선팔·맞팔” 같은 관행은 어느새 인정욕구와 비교 강박을 키운다. ‘FOMO(놓칠까 봐 두려움)’는 불안을 키우고, 온라인 따돌림은 초성·암시·집단 동조 같은 은밀한 방식으로 벌어진다. 피해자는 고통을 또렷하게 느끼지만, 가해자는 장난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고, 어른이나 교사가 개입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철학자 루소는 마을 축제에서 시작된 ‘발효(사람들 사이에 끓어오르는 감정)’와 ‘모방’이 질투·허영을 낳고, 결국 끝없는 비교 경쟁으로 흐른다고 설명했다. 소셜미디어는 고프먼이 말한 ‘자아 연출’을 초단위 비교로 가속하며, “끝없이 자신을 팔아야 하지만, 아무도 사지 않을지 모른다는 공포”(주보프)를 키운다. 연결은 늘었는데, 외로움과 우울은 더 쉽게 찾아온다. 그래서 걷기·쓰기·생각하기 같은 침묵의 활력을 회복하는 작은 실천과, 휴대폰을 내려놓는 ‘디지털 디톡스’ 같은 시도가 의미를 갖는다.

정신질환을 둘러싼 역사도 “보이지 않는 손수레”를 생각하게 한다. 중세의 마녀사냥, 근대 이후의 수용·격리 정책을 돌아보면, 광인·정신질환자를 사회에 해가 되는 존재로 낙인찍고 통제를 정당화해 온 흐름이 보인다(푸코). ‘정상’이라는 기준이 발명되며, 그에 맞지 않는 사람은 실패의 증거처럼 취급되기도 했다(그린커). 더 안타까운 건, 격리가 만든 문제(고립이 낳는 증상)가 다시 격리의 이유가 되는 악순환이다(고프먼). 언론이 사건을 크게 다룰수록 두려움은 커지지만, 실제로 정신질환자 범죄율이 일반보다 낮다는 데이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책은 위험 요소로만 보는 시선을 넘어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 주체로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낙인과 격리 대신, 지원과 보호라는 다른 해법이 보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주제는 지도에서도 드러난다. 메르카토 도법 지도가 항해에는 편리했지만, 유럽과 북미를 실제보다 커 보이게 만든 것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 온 ‘표준’은 특정 관점의 산물일 수 있다. 이건 지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중심·방향 개념 자체가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경고다. 시야를 우주로 넓히면, 인간은 티끌처럼 작아 보인다. 그렇다고 인간의 존엄까지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버릴 ‘오만’과 지킬 ‘존엄’을 가르는 분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같은 맥락에서, 인공지능도 사람보다 덜 편향적일 수 있지만, 전제는 인간의 편견으로 오염되지 않은 데이터와 절차다. 다양성과 공정함을 설계에 박지 않으면, 알고리즘은 사람의 차별을 더 빠르고 넓게 복제한다.

마지막으로, 불교 철학의 도움을 받아 분별(차이를 느끼는 감각)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분별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분별이 우열과 배제로 곧장 이어질 때 문제가 된다. 불교는 문자·언어를 전부 버리자고 하지 않고, 그것들을 방편으로 쓰되 한계를 넘어서는 연습을 하라고 권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무상)은 곧 매 순간의 ‘차이’다. 하늘의 구름이 계속 모양을 바꾸지만, 그 변화에 차별의 근거는 없다는 깨달음—차이를 자각하되, 차별로 굳히지 않는 태도가 핵심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힘은 벽을 망치로 부수는 힘이 아니라, 잔해를 남기지 않도록 건너는 지혜다. 말과 질문의 순서를 바꾸고, 기준의 출처를 투명하게 만들고, 데이터의 깨끗함을 확인하고, 먼저 듣고 나중에 말하는 작은 습관을 늘리는 일. 이런 미세 조정이 차이를 차별로 굳히지 않게 만든다.

“다름을 틀림으로 바꾸지 말라.”

눈에 띄는 사건만이 아니라, 차별을 반복시키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습관을 함께 보라. 차별은 ‘나쁜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배워 온 말·관행·제도 전체의 문제다. 그러니 분노로 벽을 치는 대신, 질문과 설계 변경으로 다리를 놓자. 감정은 성급히 부정하지 말고, 행동과 제도를 공정하게 바꾸자. 그렇게 매 순간의 차이를 자각하고, 차별로 굳지 않게 돌보는 태도가 우리와 공동체를 덜 아프고 더 단단하게 만든다.


'우주서평단 모집',

'다반/디페랑스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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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채팅방에서의 따돌림에는 일정 패턴이 존재한다. 그 첫 시작은 ‘저격 대상‘, 즉 희생양을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격 대상을 향한 저격 글이 올라 오는데,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는 경우보다는 초성을 쓰거나 그만의 특징을 적시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는 나름 교묘한 방식을 채택한다고 한다. 이런 비난의 글들에 이른바’ 바람잡이‘로 초대된 아이들이 동조하는 댓글을 남기며 온라인 괴롭힘에 집단으로 가담하게 된다.
그야말로 그 방식의 치졸함과 치밀함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 베르퀸시 당국이 남들의 부러움을 유발하는 인스타 과시용 사진 촬영을 공식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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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을 만드는 일의 언어 - 일과 삶에서 나를 증명하고 성장하는 보고의 기술
김은애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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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애의 『탁월함을 만드는 일의 언어』는 보고를 ‘상사에게 올리는 형식’이 아니라 일을 움직이고 성과를 만드는 언어로 다시 정의한다. 짧은 한 문장이 누군가의 판단을 움직이고, 또 다른 한 문장이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AI가 문서를 대신 써 주는 시대에도 마지막 판단과 실행을 이끄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고 말한다. 기계가 데이터를 모으고 그려 준다면, 사람은 그 데이터에 맥락을 붙이고 의미를 만들어 가야할 방향을 제안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보고는 그저 말로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조직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 함께 정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언어다. 보고 양식, 회의 포맷, 의사결정 기준표 같은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사람 사이의 소통을 구조화해 오류를 줄이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

이 책은 보고의 변천을 따라 오늘의 과제를 보여 준다. 산업화 이전의 비공식 보고에서 출발해, 테일러·포드식 위계 조직의 일방향 보고, 워드프로세서와 표준 양식이 주도한 문서 중심 보고, 인터넷 이후 실시간 협업 기반의 보고로 흐름이 바뀌어 왔다. 그리고 2020년대, AI가 표와 그래프를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지금 보고의 무게중심은 ‘팩트를 나열하는 사람’에서 ‘팩트를 해석하고 길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옮겨 갔다. IT는 데이터의 효율적 관리와 규칙 기반 자동화를 목표로 하고, AI는 데이터에서 학습해 패턴을 발견하며 예측과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고 언제, 어떻게 실행할지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고, 그 결정을 조직 안에서 통과시키는 언어가 바로 보고다. 그래서 좋은 보고자는 AI가 만든 결과를 그대로 옮겨 적지 않고, 맥락과 한계를 점검하고, 조직의 상황에 맞는 옵션과 추천안을 책임 있게 제시해야 한다.

보고의 힘은 텍스트에서 나온다. 말은 빠르고 상호작용에 강하지만, 글은 생각을 구조로 고정해 실행력을 만들어 준다. 결론과 근거, 그리고 다음 행동이 한눈에 정리된 보고서일수록 조직은 더 빠르게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다. 이때 저자는 “셰프의 비유”로 생각을 다듬는 방법을 설명한다. 쉽게 말해 사고방식은 문제를 보는 ‘눈’이다. 같은 현상을 앞에 두고도 어떤 조직은 ‘규정을 어길 위험’을 먼저 떠올리고, 어떤 조직은 ‘시도해 볼 기회’를 먼저 본다. 이 눈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경험과 훈련으로 형성되고 바뀌는 습관이다. 다른 부서와 함께 일하며 관점을 섞고, MECE와 피라미드처럼 겹치지 않게 쪼개어 정리하는 연습을 하고, 동료의 피드백과 멘토링을 받으며, 일이 끝난 뒤 “왜 그 판단을 했는가,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가”를 짧게 기록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사고의 과정은 문제를 단계별로 풀어 가는 방법이다. 보고는 보통 문제 정의 → 현황 진단 → 원인 분석 → 대안 설계 → 의사결정·실행 → 피드백의 6단계로 진행한다.

이 순서를 따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는 것’에서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지 정하고 움직이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학생의 예로 바꿔 보면 더 쉽다. 점수가 떨어졌다면, 그냥 “성적이 낮다”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떤 과목·어떤 단원에서 왜 떨어졌는지를 먼저 확인하고(진단), 공부법이나 보충 방법의 선택지를 비교해 본다(대안). 그리고 이번 주에 무엇을, 누구와, 언제 할지를 정해 실천한다(의사결정·실행). 끝으로 결과를 점검해 잘된 점·고칠 점을 정리하고 다음 계획에 반영한다(피드백).

요약하면, 무엇이 문제냐 → 지금 상태는 어떠냐 → 왜 그랬냐 → 어떻게 고칠까 → 바로 실행하자 → 결과를 보고 다시 개선하자의 흐름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보고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생각보다 자료 정리 습관이다. 일관된 파일 이름, 정돈된 폴더 트리, 회의 후 산출물 정리 같은 기본기가 쌓일수록 보고는 요행이 아니라 리듬이 된다. 의료 현장의 SOAP 노트(S·O·A·P)를 차용한 구조화도 유용하다. 상황/주관적 진술→객관적 데이터→종합 판단→다음 계획의 네 칸을 보고에 이식하면 “무엇이 일어났는가—왜 그런가—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빠짐없이 이어진다.

사고를 더 깊게 열어 주는 장치로 책은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권한다. 좋은 보고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을 향한 질문을 던져 상대가 스스로 본질에 닿도록 한다. 핵심을 못 본 보고는 상대에게도 핵심을 건네지 못한다. 구두 보고에서는 내용 못지않게 태도가 중요하다. “보고는 말보다 얼굴이 먼저 도착한다”는 말처럼 준비·자신감·진정성은 표정과 자세, 목소리의 리듬으로 먼저 전달된다. 결론을 말할 때 한 박자 천천히, 낮은 톤으로 시작하면 신뢰가 붙는다.

또한, 보고는 위아래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다.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에는 먼저 아는 사람이 먼저 보고해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조직의 심리적 안전감이다. 말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을 때 보고는 빨라지고 정확해지며 협업과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후반부의 ‘스티브 잡스 보고법’은 본질만 남기는 단순화를 강조한다. “단순성은 최고의 세련됨”이라는 다빈치의 문장처럼 쉽게 쓴다는 것은 수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핵심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의 보고는 과거처럼 원인(WHY)만 길게 파지 않고, 실행(HOW)까지 한 장 안에 담아야 한다. 배경·원인을 짚되, 가능한 대안, 기대효과, 우선순위, 일정, 책임자, 리스크와 완화책을 나란히 제시하면 회의는 토론이 아니라 선택과 합의로 바뀐다.

보고는 감정노동이기도 하다. 긴장과 불편함이 있는 상황에서 말을 건네야 하기에, 표현 하나에도 배려와 조율이 필요하다. 따라서 특정 부서만 아는 약어와 전문 용어를 남발하지 말고, 상대의 이해 수준을 가늠해 공통 언어로 설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설득이 불필요한 마찰 없이 더 빠르고 부드럽게 통과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보고는 일을 마무리짓는 절차가 아니라, 판단을 모으고 실행을 움직이는 ‘일의 결정체’다. AI가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할수록, 보고자는 숫자에서 의미를 뽑아 맥락을 설명하고 실행으로 연결해야 한다. 즉, 명료한 구조(결론–근거–다음 행동), 본질을 겨냥한 질문, 공통 언어로의 설계가 오늘의 보고 역량이며, 이것이 개인의 신뢰와 조직의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탁월함이다.


'블랙피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보고의 목적이 ‘의사 결정‘이라면 보고의 본질은 ’효과적인 전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고를 받는 대상이 쉽게 이해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작성되어야 효과적으로 전달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는 간결함Conciseness과 명료함Clarity이 제일 중요합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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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 지금 여기, 한국을 관통하는 50개의 시선
김정인 외 지음, 백승헌 외 기획 / 사이드웨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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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밤, 서울에서 당시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한국 전체가 떠들썩 해지고 비상사태로 돌입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바로 거리로 나와 반대 의사를 밝혔고, 국회가 움직였고, 헌법기관도 즉시 움직였다. 며칠 뒤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탄핵 절차가 진행되었고, 선거를 거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시간이 지났고, 겉으로 보면 위기를 넘긴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과연 여기서 끝난 것이 맞을까?란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차근차근 따져 봐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사건을 한 사람의 실수로만 보지 않는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2025년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는 여러 주체가 얽혀 있다. 군 일부는 계엄 해제와 탄핵 절차에 협조하지 않았고, 몇몇 국무위원은 헌정 회복에 소극적이었다. 거리에서는 탄핵 반대를 외치는 모임이 이어졌고, 법원을 겨냥한 강한 선동도 퍼졌다. 이런 장면을 함께 보면, 문제를 한 개인의 성격이나 한 번의 실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 곳곳에 이미 문제로 쌓여 있던 약한 부분들이 있었고, 그게 이번 일을 통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이 책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보여 준 연대의 힘을 보여 준다. 2016년 겨울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2024년 겨울에는 응원봉을 들고 다시 광장에 섰다. 많은 시민이 비폭력과 질서를 지키려고 애썼다. 이 힘이 위기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광장에서 모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집, 학교, 직장, 종교 공동체, 온라인 공간에서의 말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다음 위기 때도 안전하게 막아 낼 수 있다.

지역 이야기는 특히 쉽게 와닿는다. 서울만 움직인 게 아니었다. 강원, 대구, 부산, 광주, 대전도 각자 처한 상황이 달랐고 그에 맞게 움직였다. 흔히 전국 평균이라는 숫자로 모든 걸 판단하지만, 지역마다 사는 사람들의 형편과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위기 때는 그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지역의 목소리를 따로 듣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국 평균만 보면 편하긴 하지만, 그 사이에 숨은 지역의 차이를 놓치면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이 책은 극우의 성장도 차분하게 설명한다. 반공주의, 뉴라이트, 일부 개신교 영향이 합쳐지고,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를 빠르게 퍼뜨린다. 능력주의가 만든 박탈감과 분노가 여기에 붙을 때 동원이 쉬워진다.

또한, 이 책은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주변과 끊기고 혼자서 화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혐오 표현은 거칠어지고 폭력은 가까워진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라고 말한다. 폭력과 혐오에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동시에 혼자 남지 않게 동네 모임, 학교의 토론 수업, 직장의 대화 규칙, 예배나 강연의 주제 같은 생활 속 장치를 늘리는 것이다.

엘리트 카르텔 문제도 피해 갈 수 없다. 사법, 관료, 군, 재벌 사이의 끈끈한 인맥과 관행이 민주주의의 통제 장치를 무디게 만들 수 있다. 전관예우, 회전문 인사 같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1952년 5월 25일 한국전쟁 중 부산 등지에 계엄을 선포했던 이승만,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사실상 해산했던 박정희의 사례를 떠올리면, 권력이 제도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는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시도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 문제를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돌아보자고 말한다.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도 이 끈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인사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고, 이해충돌을 막는 규칙을 강화하고, 임명직 권한을 견제하는 제도를 촘촘하게 만들자는 제안을 낸다.

군의 문민통제도 다시 손봐야 한다. 일부 수뇌부의 동조와 다수 하급의 거부가 엇갈렸던 며칠을 보면, 평소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장치가 실제 위기에서는 흔들릴 수 있다.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법에 분명히 쓰고, 계엄 절차의 단계와 책임을 세세하게 정하고, 지휘 라인을 견제하는 방법을 보강해야 한다. 외교와 안보 이슈가 국내 정치 동원에 쓰이는 관행, 이른바 북한 문제를 이용해 여론을 흔드는 정치 방식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군이 정치에 휘말리지 않고, 정치도 안보 문제를 자기 이익에 이용하지 못한다.

법원을 향한 폭력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아야 이해된다. 1958년에 법원 내부에서 판결을 두고 소란이 있었던 일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2025년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훨씬 더 심한 폭력이 벌어졌다. 책은 이런 반복을 막으려면 사법 독립을 현실에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건 배당을 투명하게 하고, 법원 보안을 강화하고, 판결을 시민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작은 제도가 모여 신뢰를 만든다.

미디어와 교육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는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어떤 내용을 자주 보여 주는지 공개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 허위정보에 대응하는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역 언론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사실 확인 습관을 기르고, 토론 규칙을 배우고, 서로 다른 의견을 안전하게 다루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런 기술은 교양 과목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본기다.

선거 제도와 정당 구조도 손볼 부분이 많다.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의 조합을 점검해 대표성을 높이고,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해 공천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표가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당장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시도는 우연이 아니라 여러 고리가 맞물린 결과라는 점이다. 시민의 저항이 위기를 막아낸 것은 사실이다. 이제 그 힘을 제도와 일상으로 옮겨야 한다. 전관예우를 줄이고(퇴직한 판사·검사나 고위 공무원이 예전 동료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회전문 인사를 막고(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번갈아 오가며 이해충돌을 만드는 인사를 끊고), 군의 문민통제를 법과 관행으로 강화하고(군이 민간의 통제를 확실히 받도록 규정과 실제 운영을 더 단단히 하고), 플랫폼과 언론의 책임을 세운다(유튜브·SNS·언론이 허위정보와 선동을 퍼뜨리지 못하게 규칙과 책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학교와 직장에서 토론의 규칙을 생활화하고, 지역마다 다른 조건을 인정해 맞춤형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분노로 끝내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체념 대신 방법을 찾는 태도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사이드웨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미국 콜게이트 대학 존스턴(M. Johnston) 교수는 국가별 부패 유형을 4가지로 나눴다.
1단계는 ’독재형(Official Moguls) 부패‘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 정치 후진국에서 주로 나타난다.
2단계는 ‘족벌형(Oligarchs and Clans) 부패’이다. ‘독재형 부패’와 같은 후진국형 부패로, 러시아, 필리핀 등에서 나타난다.
3단계인 ’엘리트 카르텔형(Elite Cartel) 부패‘는 인맥을 중시하는 문화가 또렷한 한국, 이탈리아 등에서 나타난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 대기업 임원과 언론인 등 이른바 엘리트들이 학연,지연으로 뭉쳐 권력 유지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서 부패 행위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4단계는 ’시장 로비형(Influence Markets)‘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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