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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 지금 여기, 한국을 관통하는 50개의 시선
김정인 외 지음, 백승헌 외 기획 / 사이드웨이 / 2025년 8월
평점 :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에서 당시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한국 전체가 떠들썩 해지고 비상사태로 돌입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바로 거리로 나와 반대 의사를 밝혔고, 국회가 움직였고, 헌법기관도 즉시 움직였다. 며칠 뒤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탄핵 절차가 진행되었고, 선거를 거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시간이 지났고, 겉으로 보면 위기를 넘긴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과연 여기서 끝난 것이 맞을까?란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차근차근 따져 봐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사건을 한 사람의 실수로만 보지 않는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2025년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는 여러 주체가 얽혀 있다. 군 일부는 계엄 해제와 탄핵 절차에 협조하지 않았고, 몇몇 국무위원은 헌정 회복에 소극적이었다. 거리에서는 탄핵 반대를 외치는 모임이 이어졌고, 법원을 겨냥한 강한 선동도 퍼졌다. 이런 장면을 함께 보면, 문제를 한 개인의 성격이나 한 번의 실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 곳곳에 이미 문제로 쌓여 있던 약한 부분들이 있었고, 그게 이번 일을 통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이 책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보여 준 연대의 힘을 보여 준다. 2016년 겨울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2024년 겨울에는 응원봉을 들고 다시 광장에 섰다. 많은 시민이 비폭력과 질서를 지키려고 애썼다. 이 힘이 위기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광장에서 모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집, 학교, 직장, 종교 공동체, 온라인 공간에서의 말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다음 위기 때도 안전하게 막아 낼 수 있다.
지역 이야기는 특히 쉽게 와닿는다. 서울만 움직인 게 아니었다. 강원, 대구, 부산, 광주, 대전도 각자 처한 상황이 달랐고 그에 맞게 움직였다. 흔히 전국 평균이라는 숫자로 모든 걸 판단하지만, 지역마다 사는 사람들의 형편과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위기 때는 그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지역의 목소리를 따로 듣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국 평균만 보면 편하긴 하지만, 그 사이에 숨은 지역의 차이를 놓치면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이 책은 극우의 성장도 차분하게 설명한다. 반공주의, 뉴라이트, 일부 개신교 영향이 합쳐지고,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를 빠르게 퍼뜨린다. 능력주의가 만든 박탈감과 분노가 여기에 붙을 때 동원이 쉬워진다.
또한, 이 책은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주변과 끊기고 혼자서 화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혐오 표현은 거칠어지고 폭력은 가까워진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라고 말한다. 폭력과 혐오에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동시에 혼자 남지 않게 동네 모임, 학교의 토론 수업, 직장의 대화 규칙, 예배나 강연의 주제 같은 생활 속 장치를 늘리는 것이다.
엘리트 카르텔 문제도 피해 갈 수 없다. 사법, 관료, 군, 재벌 사이의 끈끈한 인맥과 관행이 민주주의의 통제 장치를 무디게 만들 수 있다. 전관예우, 회전문 인사 같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1952년 5월 25일 한국전쟁 중 부산 등지에 계엄을 선포했던 이승만,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사실상 해산했던 박정희의 사례를 떠올리면, 권력이 제도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는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시도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 문제를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돌아보자고 말한다.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도 이 끈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인사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고, 이해충돌을 막는 규칙을 강화하고, 임명직 권한을 견제하는 제도를 촘촘하게 만들자는 제안을 낸다.
군의 문민통제도 다시 손봐야 한다. 일부 수뇌부의 동조와 다수 하급의 거부가 엇갈렸던 며칠을 보면, 평소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장치가 실제 위기에서는 흔들릴 수 있다.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법에 분명히 쓰고, 계엄 절차의 단계와 책임을 세세하게 정하고, 지휘 라인을 견제하는 방법을 보강해야 한다. 외교와 안보 이슈가 국내 정치 동원에 쓰이는 관행, 이른바 북한 문제를 이용해 여론을 흔드는 정치 방식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군이 정치에 휘말리지 않고, 정치도 안보 문제를 자기 이익에 이용하지 못한다.
법원을 향한 폭력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아야 이해된다. 1958년에 법원 내부에서 판결을 두고 소란이 있었던 일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2025년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훨씬 더 심한 폭력이 벌어졌다. 책은 이런 반복을 막으려면 사법 독립을 현실에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건 배당을 투명하게 하고, 법원 보안을 강화하고, 판결을 시민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작은 제도가 모여 신뢰를 만든다.
미디어와 교육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는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어떤 내용을 자주 보여 주는지 공개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 허위정보에 대응하는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역 언론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사실 확인 습관을 기르고, 토론 규칙을 배우고, 서로 다른 의견을 안전하게 다루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런 기술은 교양 과목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본기다.
선거 제도와 정당 구조도 손볼 부분이 많다.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의 조합을 점검해 대표성을 높이고,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해 공천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표가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당장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시도는 우연이 아니라 여러 고리가 맞물린 결과라는 점이다. 시민의 저항이 위기를 막아낸 것은 사실이다. 이제 그 힘을 제도와 일상으로 옮겨야 한다. 전관예우를 줄이고(퇴직한 판사·검사나 고위 공무원이 예전 동료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회전문 인사를 막고(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번갈아 오가며 이해충돌을 만드는 인사를 끊고), 군의 문민통제를 법과 관행으로 강화하고(군이 민간의 통제를 확실히 받도록 규정과 실제 운영을 더 단단히 하고), 플랫폼과 언론의 책임을 세운다(유튜브·SNS·언론이 허위정보와 선동을 퍼뜨리지 못하게 규칙과 책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학교와 직장에서 토론의 규칙을 생활화하고, 지역마다 다른 조건을 인정해 맞춤형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분노로 끝내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체념 대신 방법을 찾는 태도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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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웨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미국 콜게이트 대학 존스턴(M. Johnston) 교수는 국가별 부패 유형을 4가지로 나눴다. 1단계는 ’독재형(Official Moguls) 부패‘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 정치 후진국에서 주로 나타난다. 2단계는 ‘족벌형(Oligarchs and Clans) 부패’이다. ‘독재형 부패’와 같은 후진국형 부패로, 러시아, 필리핀 등에서 나타난다. 3단계인 ’엘리트 카르텔형(Elite Cartel) 부패‘는 인맥을 중시하는 문화가 또렷한 한국, 이탈리아 등에서 나타난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 대기업 임원과 언론인 등 이른바 엘리트들이 학연,지연으로 뭉쳐 권력 유지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서 부패 행위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4단계는 ’시장 로비형(Influence Markets)‘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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