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투자자 해제 - 개정판
신진오 지음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적극적 투자자의 채권·대체 축도 제안한다. 채권형 ETF, 물가연동채(TIPS), 우량 회사채, 미국 국채처럼 투명한 채권성 자산을 활용해 금리·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주식 쪽에서는 중소형주 가운데 재무구조(예: 부채비율 150% 이하)가 견실하고, 10년 평균을 반영한 ‘정상 PER’ 기준에서 상대적 저평가가 분명한 종목, 그리고 내재가치를 목표로 했을 때 기대수익률이 충분히 높은 우량주를 찾도록 이끈다. 반대로 신규 상장주식(IPO)이나 최근 실적 급등으로 단기간 과열된 종목은 원칙적으로 거리를 두라고 못 박는다. ‘모두가 산다’는 이유는 언제나 빈약한 논거다.

해제는 실전 팁을 몇 가지 더 붙인다. 첫째, 포트폴리오의 성패는 ‘선택’보다 ‘비중’에서 갈린다. 싸다고 과도하게 늘리고 비싸다고 너무 빨리 비우는 감정적 거래를 경계하고, 미리 정한 밴드에서 자동적으로 리밸런싱하는 체계를 갖추라는 조언이 반복된다. 둘째, 연 1회 또는 반기 1회 정도의 점검 주기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을 이길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와 논리로 설득한다. 셋째, 주식/채권 상대가치를 볼 때 금리와 이익수익률의 균형(이른바 ‘FED 모델’ 류의 프레임)을 참고하되, 어디까지나 참고지표일 뿐 매크로 예언을 자의적으로 확신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붙잡은 문장은 “투자란 예측의 게임이 아니라 대응의 게임”이라는 대목이었다. 가격이 요동칠수록 사람은 미래를 맞히려 든다. 하지만 그레이엄—그리고 해제—는 다른 길을 가리킨다. 합리적으로 산정한 가치와 안전마진, 미리 정한 자산배분, 리밸런싱 규칙. 이 네 가지를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 그 자체가 시장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신기한 비법서가 아니라,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안내서에 가깝다.

정리하면, 『현명한 투자자: 해제(개정판)』는 고전의 정신—안전마진, 미스터 마켓, 자산배분과 리밸런싱, 그리고 “하지 않을 것의 목록”—을 한국 시장에 맞춘 언어와 사례로 다시 세운 책이다. 방어적 투자자에게는 견고한 기준과 간결한 체크리스트를, 적극적 투자자에게는 분석의 포인트와 금기 리스트를 건넨다.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다비드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먼저 깎아내려 보자. 그러고 나면 남는 것—견고한 기업, 합리적 가격, 규율 있는 비중, 느리지만 단단한 수익—이 진짜 우리의 작품이 된다. 이 해제는 그 첫 번째 끌과 줄자가 되어 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국일증권경제연구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한국의 방어적 투자자에게 추천할 만한 채권
1. 현금, 고객예탁금, 수시입출금예금
2. 수시입출금RP, CMA, MMF, 단기채권ETF
3. CD, 금융채, 국채3년물
포트폴리오에 채권이 왜 필요한지, 그래서 포트폴리오라는 관점에서 어떤 채권이 바람직한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은 슬며시 - 살짝 망하고 조금 귀엽게
시미씨 지음 / 느린서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하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시미씨의 만화책 『행복은 슬며시』는 이 말과 꼭 닮아 있다. 특별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행복으로 그려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까만 털복숭이 반려견 ‘단’이 있다. 시댁에 화재가 나면서 갈 곳을 잃게 된 강아지, 연탄처럼 까맣다고 해서 ‘탄’이라 불리던 녀석이 어느 날 저자의 집에 들어왔다. 이름을 바꾸자니 혼란스러울까 걱정도 되었지만, 결국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를 담아 ‘단’이라 부르게 된다. 그 순간부터 단은 단순히 함께 사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족이자 삶의 중심이 된다.

저자는 처음에는 누군가를 돌볼 여력이 있을지 두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자신이 돌봄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산책길에서 신나게 폴짝거리며 웃는 모습,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깜빡 잠이 드는 순간, 밤에 나란히 누워 고르게 이어지는 숨소리까지, 단과 함께하는 매 순간은 사랑스럽다.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으로 생활 패턴이 흐트러지고,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겹쳐 하루가 망했다고 느껴질 때조차 단의 발바닥에서 은근히 풍기는 꼬순내는 세상을 다시 다정하게 물들이곤 한다.

이 책은 2019년 단이와 함께한 시간들을 그림일기처럼 기록한 것이다. 반려인 ‘진’, 귀여운 ‘단’, 그리고 분량은 적지만 잠깐씩 얼굴을 비추는 도마뱀 ‘도마’까지. 이 작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담겨 있다. 산책길에서 낯선 강아지를 만나면 크게 짖어버려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뜻밖에 얌전히 어울리며 “앞으로는 괜찮아질지도 몰라” 하는 희망을 품게 한다. 예전처럼 폴짝폴짝 뛰어오르던 단이 어느 날은 힘겹게 침대에 오르거나 다리를 절뚝거릴 때면 걱정으로 마음이 무겁고, 분리불안 때문에 상담실을 찾았던 날의 긴장감마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미씨의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화려한 기교 대신 여백과 선, 표정에 집중해 등장 인물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담아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단의 눈빛과 표정에서 마음이 읽혀지고, 독자 역시 함께 “귀여워! 귀여워!”를 연발하게 된다. 말티즈와 푸들의 교배종을 ‘말티푸’라 부른다는 소소한 정보조차 단의 그림과 어우러져 귀여움의 한 장면이 된다. 페이지 사이사이에는 단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어 단의 까만 털과 반짝이는 눈, 산책하는 뒷모습, 신나해하는 순간들을 볼 수 있다.

『행복은 슬며시』는 그림책이라 단숨에 읽어버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장면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한번씩 찾아오는 공허함과 불안감을 붙잡아 주는 건 진과 단의 존재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곁에 있던 장면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과 함께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저자의 삶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낯선 개를 마주칠까 괜히 돌아가던 길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하루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저절로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깊은 공감을, 키우지 않는 사람이라도 ‘단’ 같은 귀여운 강아지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품게 되기도 한다.

『행복은 슬며시』는 단순한 반려견 만화를 넘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시댁에서 갑작스레 일어난 화재가 계기가 되어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함께 살아가며 집안의 공기와 일상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 변화가 삶을 얼마나 부드럽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책 속 장면들을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일상조차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이 책은 거창한 이론이나 정의를 내놓지 않는다. 대신 작은 하루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연탄처럼 까맣던 털복숭이 강아지 ‘단(단 하나뿐인 존재)’과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쳐 쓰러진 하루에도 단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웃음 속에서 깨닫게 되는 마음과 행복은 요란하게 다가오지 않고, 언제나 우리 곁에서 ‘슬며시’ 스며든다는 사실을 따뜻하게 일깨워주는 책이다.




그리워하는 시간
잠들기 전이면 그런 시간이 많았다.
특히나 아무 걱정없이 평온하다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현재를 그리워하는 시간
빛이 밝을수록 짙어지는 어둠처럼
막연한 불안이 커질수록 더없이 애틋해지던 평범한 날들이 있었다.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의 관계를 가꾸는 100일 필사 노트
김종원 지음 / 청림Life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종원의 『어른의 관계를 가꾸는 100일 필사노트』는 살아가면서

가장 큰 숙제이자 동시에 기쁨의 원천이 되는 ‘관계’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감정이 뒤섞이며,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해와 갈등 속에서 지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으로 ‘필사’를 제안한다.

매일 한 구절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천천히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단단히 세울 수 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짧지만 울림이 크다. “존중하는 마음을 아무에게나 주지 마라”라는 구절은 관계 속에서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를 지적한다. 우리는 무례한 사람을 애써 받아들이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존중을 헛되이 쓰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존중이란 가장 귀한 가치이기에 아무에게나 줄 필요가 없으며,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존중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이 단호한 문장은 존중이 타인을 향한 예의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또한, 저자는 뻔뻔한 사람들의 교묘한 태도에 흔들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상대가 분명 잘못했음에도 당당하게 행동할 때 우리는 종종 ‘혹시 내가 잘못한 걸까?’라는 자기 의심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전략일 뿐이다. 이럴 때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라고 말한다. 뻔뻔함이 유일한 무기인 사람을 대할 때, 불필요한 자기비난 대신 무관심으로 응수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라는 점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다.

예민함에 대한 시선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보통 예민한 사람은 주변의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다고 여겨지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것이 장점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같은 경험도 더 깊게 느낀다. 덕분에 남들이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민함을 단점으로만 여겨온 독자들에게 위로와 동시에 자긍심을 심어준다. 예민함은 약점이 아니라, 관계를 더 섬세하게 이해하고 느끼게 하는 특별한 자산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울린다.

저자는 또한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나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끝없이 설명하고 맞추려 애쓰는 것은 결국 삶을 낭비하는 일에 불과하다. 오히려 내 삶의 방향과 맞닿아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삶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는 다수의 얕은 관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닌다.

『어른의 관계를 가꾸는 100일 필사노트』는 매일 한 구절을 적으며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고,

관계 속에서 무심코 흘려보낸 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존중을 지켜내는 힘, 뻔뻔한 사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

예민함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용기,

그리고 단 한 사람의 이해가 지닌 가치를 되새기다 보면,

관계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관계는 타인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단단히 세우는 일에서 시작된다.

100일 동안의 필사 여정은 단순한 글쓰기 훈련이 아니라,

성찰을 습관으로 만들고 태도를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이 책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안내서가 된다.

하루하루 작은 문장을 통해 자신을 다잡다 보면,

언젠가 관계의 무게를 훨씬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레이스웬디 @eijin1130’님을 통해

‘청림출판'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DAY 013
존중하는 마음을 아무에게나 주지 마라
우리 주변에는 상대를 가려가며
말과 행동의 수위를 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하고 있으며,
나를 만만하게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무시를 일삼는다.
그런 비열한 사람은 전혀 존중할 필요가 없다.
존중은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가치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존중할 이유는 없다.
잠시라도 마음 약해지지 말자.
비열한 사람은 그 틈을 노려 다시 상처를 줄 것이다. - P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머니 쏙! 미술 - 질문하는 10대에게 질문하는 10대에게 2
박재연 지음 / 노란상상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분명 미술사 관련 책인데, 책장 어디를 넘겨도 그림 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목차를 시작으로 어느 한 페이지마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질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무엇일까?”, “가장 비싼 그림은 얼마나 할까?”, “왜 어떤 그림은 욕을 많이 먹었을까?” 같은 질문들이다. 책은 이 질문들을 따라가며 20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손에 가볍게 들어오는 작은 판형과 간결한 문장 덕분에 금세 읽힐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펼쳐 보니 얇은 두께와는 달리 알찬 밀도로 가득 차 있어 책의 진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무엇일까?”다.

저자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예로 들며 선사시대 인류의 흔적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10대 소년들이 우연히 발견한 그 동굴 벽 안에는 1만 7천 년 전 사람들이 그린 800여 점의 그림이 남아 있다. 말, 사슴, 들소 같은 동물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원근법과 음영까지 사용해 사실감을 높였다는 점은 놀라움을 안겨 준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기법인데, 이미 수만 년 전 사람들이 그것을 감각적으로 알고 활용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더 깊이 들어가면 횃불을 켜고 어두운 동굴 안에 그림을 남겼을 이들의 열정이 떠오른다. 또한 알타미라, 쇼베,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벽화까지 이어지는 사례들은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는 기록이 끊임없이 새로 쓰인다는 점을 알려 준다.

이 책은 그림만이 아니라 조각에도 눈을 돌린다. 독일에서 발견된 ‘사자 인간’ 조각은 메머드 엄니로 만든 31cm 높이의 작품인데, 당대 사람들이 사냥과 생존의 일상 속에서도 창작에 수백 시간을 쏟았음을 보여 준다. 왜 그들은 굳이 이런 예술적 작업을 했을까? 저자는 단정하지 않으며,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이후로는 미술 시장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2017년 뉴욕에서 경매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4억 5천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다. 1958년 런던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에 거래되었던 그림이, 반세기 만에 750만 배 이상 가치가 오른 것이다. 덧칠과 훼손 때문에 공방 작품으로 여겨졌다가, 복원과 연구 끝에 다빈치의 진작으로 인정받으면서 벌어진 기적 같은 상승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가격만이 작품의 가치를 말해 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처럼 비싼 가격에 팔린 그림들이 있더라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적 의미가 더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가격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결합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는 경매 직후 액자 속 장치가 작동해 작품 절반이 잘려 나갔고, <사랑은 쓰레기통에>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모두가 경악했지만, 이 사건 덕분에 작품은 오히려 가격이 폭등했다. 또 제프 쿤스의 <풍선 개> 조각은 관람객의 실수로 깨졌음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더 비싼 값에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사고파는 것이 작품 그 자체인지 아니면 작품에 얽힌 서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그림’으로 시선을 옮겨 마르셀 뒤샹의 <샘>을 소개한다. 일상적 기성품을 예술로 제시하며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건은 근현대 미술사의 분수령이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가 당시 관객에게 저속하다며 외면당했지만 결국 모더니즘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게 된 과정도 함께 다룬다. 욕과 비난 속에서도 예술은 다른 길을 찾아 나갔고, 모네와 동료들이 살롱의 제도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었던 일화로까지 이어진다. 평론가 르루아가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두고 ‘미완성 스케치’라 비꼬며 던진 말에서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예술의 낯섦이 어떻게 시대의 이름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후반부에는 현대 미술의 실험이 다뤄진다. 헬렌 프랑켄탈러가 개발한 ‘소크-스테인’ 기법은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 물감을 흘려 얼룩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와 색면 회화의 길을 열었다. 저자는 추상화를 감상할 때 작품의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과 실험의 흔적을 함께 상상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바라보면 알쏭달쏭하던 추상화가 오히려 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미술사 입문서임에도 사진을 싣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림 설명을 읽으며 머릿속에 먼저 상상을 세운 뒤, 책 내부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실제 이미지를 확인하는 순간, 작품은 더 선명하고 오래 남는다. 독자는 “읽기–상상–확인–재감상”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미술을 자기만의 언어로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10대를 위한 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성인 독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입문서다. 짧지만 밀도 있는 질문과 답변, 그리고 상상과 확인을 오가는 독특한 독서 경험은 두꺼운 미술사 책 못지않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질문하는 10대에게 주머니쏙! 미술』은 미술을 낯설게 만드는 전문 용어와 연대기의 벽을 허물고, 친근한 질문으로 문을 연다. 덕분에 독자는 라스코 동굴과 다빈치, 뱅크시와 프랑켄탈러를 한 권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결국 묻는다. “왜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왜 그림을 보며 감탄할까?” 그 답은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미술은 더 이상 어려운 세계가 아니라 내 삶 가까이에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노란상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헬렌 프랑켄탈러 역시 회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한 작가입니다.
프랑켄탈러는 소스 스테인(soak-stain), 즉 적시고 얼룩 내기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했어요. 이 기법은 캔버스를 바닥에 펼치고, 붓 대신 묽게 푼 물감을 직접 붓거나 붓질 없이 부어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색이 천에 스며들게 했습니다만. 프랑켄탈러가 처음 이 기법을 시도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952년에 제작된 산과 바다입니다. - P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를 보다 2 - 역사의 변곡점을 수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역사를 보다 2
박현도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보다 2』는 단순히 사건을 시간순으로 늘어놓는 역사책은 아니다.

유튜브 채널 ‘보다(BODA)’ 시리즈를 토대로, 정요근·박현도·곽민수·강인욱, 그리고 진행자 허준이 함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패널로 나온 교수들의 전공도 고고학, 이집트학, 이슬람학, 종교학, 고려사로 다양하다. 진행자인 허준이 질문을 던지고, 4명의 교수가 풍성한 대답을 주고받으니 독자는 마치 현장에서 함께 듣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권에는 고려사 연구자인 정요근 교수가 합류해 한국사 비중이 더 커졌고 설명도 한결 친근해졌다.

이 책을 펼쳤을 때 목차만 훑어봐도 평소에 궁금했던 부분이었는데! 싶은 주제들이 많았다.

나일강 문명, 칭기즈칸 제국, 문화대혁명, 스핑크스의 비밀, 금서 이야기, 종이는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등과 같은 이야기들은 우리 일상 속 호기심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책장을 펼치면 학술서라기보다는 흥미로운 탐사 다큐를 읽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의 시작점에 이집트 문명을 소개한다. 나일강을 사람과 땅이 정서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토포필리아로 설명한다. 한국사 부분에서는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이유를 단순히 남하 전략으로만 보지 않고 당시 국제 정세와 환경을 종합해 보여준다. 만주에만 머무른 나라는 오래 살아남기 힘들었다는 분석은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다.

현대사에서는 ‘문화대혁명’을 다룬다. 10년 동안 학자들이 연구를 이어갈 수 없었고, 발굴된 유물마저 파괴되었다. 명십삼릉의 정릉 유골이 홍위병에게 불태워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학이 문을 닫았다가 1978년 다시 열리며 나온 ‘78학번’이 이후 중국 발전을 이끌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문화대혁명은 분명 국가폭력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개혁·개방으로 가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까지 함께 다룬다.

또한, 이란 혁명과 고대 이집트 아케나톤의 종교 개혁을 비교하며, 혁명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기억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도 보여준다. 특히 아케나톤을 기록에서 지우려 했지만 결국 흔적이 남아 후대 연구로 밝혀졌다는 이야기는 역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버뮤다 삼각지대의 수수께끼도 다룬다. 그 지역은 한 변이 1,600km, 면적이 130만 ㎢에 이르는 거대한 항로 요충지다. 통행량이 워낙 많으니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은 단순하지만 설득력 있다. 괴담으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를 사실로 정리해 주니 속이 후련했다.

스핑크스 이야기도 흥미롭다. 스핑크스는 신이 아니라 파라오를 사자로 표현한 상징이었다. 얼굴에 왕의 특징이 드러나기도 했고, 머리에는 파라오의 장식이 있었다. 이름도 고대 이집트인이 아니라 후대 그리스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또한, ‘사자의 서’에 나온 거대한 바퀴벌레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해당 그림은 벽화가 아닌 파피루스에 그린 삽화라고 한다. ‘사자의 서’라고 하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장례문으로 사용된 문헌이 있는데, 바로 그 문헌의 여러 챕터 중 한 챕터(36장)에 바퀴벌레를 그려 놓은 것이다. 이곳에 바퀴벌레를 사람 몸통만 하게 그린 것은, 위협적이고 부정적인 존재로 비추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제사 음식을 망치는 존재를 크게 표현한 주술적 이미지로, 기록과 그림을 볼 때 의미를 함께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바퀴벌레를 쫓는 주문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책에서 금서 이야기를 통해 사상 통제의 역사를 짚는다. 우리 역사에서는 『도선비기』와 『정감록』이 대표적 금서였다. 주자 성리학만을 강조한 조선 후기에 ‘사문난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유럽의 교황청은 금서목록을 만들어 400년 넘게 적용했고, 이슬람의 이븐 루시드는 탄압을 받았으나 유럽 르네상스에서는 높이 평가받았다. 소련의 불가코프 『개의 심장』과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도 금서였으나 결국 해금되어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검열은 책을 막았지만 결국 책은 독자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기록은 왜 남는가”라는 질문에서는 파피루스와 양피지, 제지술 전파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돌,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가 시대마다 기록을 지켜 왔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종이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초상화 주제에서는 조선 왕들의 표준영정이 실제 모습과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그린 화가들의 친일 논란까지 짚는다. 반대로 고대 이집트는 미라 덕분에 얼굴을 비교적 정확히 재현할 수 있었다.

노동과 신분 문제도 알기 쉽게 풀어낸다. 고대 이집트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예가 아니라 일정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평민 계층이 있었다. 우리 역사 속 노비도 서구의 노예와는 달라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때로는 다른 노비를 부리기도 했다. 조선 전기의 높은 노비 비율, 제도 변화, 후기의 감소까지 차근차근 짚으며 제도와 삶이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후반부에는 가볍지만 흥미로운 질문들이 이어진다. “현대인이 고려나 삼국 시대로 가면 말이 통할까?”라는 물음에는 학자들이 의견을 나누며, 언어 역시 발굴과 복원이 필요한 자료임을 알려준다. 또 이슬람권에서 고양이가 유독 좋은 대우를 받은 이유, 한민족과 활의 긴 인연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결국 『역사를 보다 2』는 질문으로 시작해 비교와 해석으로 이어지는 책이다. 나일강과 문화대혁명, 금서와 스핑크스, 노비 제도와 언어까지 다루며 역사는 멀리 있는 특별한 기록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호기심 속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깊은 생각을 남겨주는 책으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집중해서 금방 읽어나갈 책이다.

<캐치북 @catchbook.kr> 님을 통해

믹스커피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정요근 :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금서로는 『도선비기道詵秘記』와 『정감록鄭鑑錄』이 있습니다.
『도선비기』라 하면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도선道詵이 지었다고 전하는 풍수서로, 현재는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요. 『고려사高麗史』에 인용된 일부 구절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죠. 조선 시대가 되면 『도선비기』의 원본은 이미 사라졌지만, 동일한 이름의 예언서가 현실 상황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정감록』의 경우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진 예언서로 이심(李沁)과 정감(鄭鑑)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한양에 도읍을 둔 이씨 왕조가 멸망한 후 정씨가 새로운 나라를 세워 계룡산에 도읍을 정할 거라는 예언이 핵심 내용이죠. - P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