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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쏙! 미술 - 질문하는 10대에게 ㅣ 질문하는 10대에게 2
박재연 지음 / 노란상상 / 2025년 8월
평점 :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분명 미술사 관련 책인데, 책장 어디를 넘겨도 그림 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목차를 시작으로 어느 한 페이지마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질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무엇일까?”, “가장 비싼 그림은 얼마나 할까?”, “왜 어떤 그림은 욕을 많이 먹었을까?” 같은 질문들이다. 책은 이 질문들을 따라가며 20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손에 가볍게 들어오는 작은 판형과 간결한 문장 덕분에 금세 읽힐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펼쳐 보니 얇은 두께와는 달리 알찬 밀도로 가득 차 있어 책의 진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무엇일까?”다.
저자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예로 들며 선사시대 인류의 흔적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10대 소년들이 우연히 발견한 그 동굴 벽 안에는 1만 7천 년 전 사람들이 그린 800여 점의 그림이 남아 있다. 말, 사슴, 들소 같은 동물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원근법과 음영까지 사용해 사실감을 높였다는 점은 놀라움을 안겨 준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기법인데, 이미 수만 년 전 사람들이 그것을 감각적으로 알고 활용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더 깊이 들어가면 횃불을 켜고 어두운 동굴 안에 그림을 남겼을 이들의 열정이 떠오른다. 또한 알타미라, 쇼베,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벽화까지 이어지는 사례들은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는 기록이 끊임없이 새로 쓰인다는 점을 알려 준다.
이 책은 그림만이 아니라 조각에도 눈을 돌린다. 독일에서 발견된 ‘사자 인간’ 조각은 메머드 엄니로 만든 31cm 높이의 작품인데, 당대 사람들이 사냥과 생존의 일상 속에서도 창작에 수백 시간을 쏟았음을 보여 준다. 왜 그들은 굳이 이런 예술적 작업을 했을까? 저자는 단정하지 않으며,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이후로는 미술 시장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2017년 뉴욕에서 경매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4억 5천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다. 1958년 런던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에 거래되었던 그림이, 반세기 만에 750만 배 이상 가치가 오른 것이다. 덧칠과 훼손 때문에 공방 작품으로 여겨졌다가, 복원과 연구 끝에 다빈치의 진작으로 인정받으면서 벌어진 기적 같은 상승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가격만이 작품의 가치를 말해 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처럼 비싼 가격에 팔린 그림들이 있더라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적 의미가 더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가격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결합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는 경매 직후 액자 속 장치가 작동해 작품 절반이 잘려 나갔고, <사랑은 쓰레기통에>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모두가 경악했지만, 이 사건 덕분에 작품은 오히려 가격이 폭등했다. 또 제프 쿤스의 <풍선 개> 조각은 관람객의 실수로 깨졌음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더 비싼 값에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사고파는 것이 작품 그 자체인지 아니면 작품에 얽힌 서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그림’으로 시선을 옮겨 마르셀 뒤샹의 <샘>을 소개한다. 일상적 기성품을 예술로 제시하며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건은 근현대 미술사의 분수령이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가 당시 관객에게 저속하다며 외면당했지만 결국 모더니즘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게 된 과정도 함께 다룬다. 욕과 비난 속에서도 예술은 다른 길을 찾아 나갔고, 모네와 동료들이 살롱의 제도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었던 일화로까지 이어진다. 평론가 르루아가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두고 ‘미완성 스케치’라 비꼬며 던진 말에서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예술의 낯섦이 어떻게 시대의 이름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후반부에는 현대 미술의 실험이 다뤄진다. 헬렌 프랑켄탈러가 개발한 ‘소크-스테인’ 기법은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 물감을 흘려 얼룩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와 색면 회화의 길을 열었다. 저자는 추상화를 감상할 때 작품의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과 실험의 흔적을 함께 상상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바라보면 알쏭달쏭하던 추상화가 오히려 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미술사 입문서임에도 사진을 싣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림 설명을 읽으며 머릿속에 먼저 상상을 세운 뒤, 책 내부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실제 이미지를 확인하는 순간, 작품은 더 선명하고 오래 남는다. 독자는 “읽기–상상–확인–재감상”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미술을 자기만의 언어로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10대를 위한 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성인 독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입문서다. 짧지만 밀도 있는 질문과 답변, 그리고 상상과 확인을 오가는 독특한 독서 경험은 두꺼운 미술사 책 못지않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질문하는 10대에게 주머니쏙! 미술』은 미술을 낯설게 만드는 전문 용어와 연대기의 벽을 허물고, 친근한 질문으로 문을 연다. 덕분에 독자는 라스코 동굴과 다빈치, 뱅크시와 프랑켄탈러를 한 권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결국 묻는다. “왜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왜 그림을 보며 감탄할까?” 그 답은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미술은 더 이상 어려운 세계가 아니라 내 삶 가까이에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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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상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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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프랑켄탈러 역시 회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한 작가입니다. 프랑켄탈러는 소스 스테인(soak-stain), 즉 적시고 얼룩 내기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했어요. 이 기법은 캔버스를 바닥에 펼치고, 붓 대신 묽게 푼 물감을 직접 붓거나 붓질 없이 부어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색이 천에 스며들게 했습니다만. 프랑켄탈러가 처음 이 기법을 시도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952년에 제작된 산과 바다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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