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는 정해진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흩어지는 생각과 언어의 조각들을 모아둔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영혼’이라는 단단한 실체를 전제로 하지 않고, 언어와 생각이 부딪히며 생겨나는 낯설고 공허한 순간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읽는 대신, 흩어진 단상과 이미지, 반짝이는 생각의 조각들을 만나게 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유럽이 시작하는 곳」에서는 작가가 낯선 대륙과 조우하면서 경험한 문화적 차이를 다룬다. 시베리아의 어원에서부터 도시와 사람들의 풍경, 기차 여행 같은 단상이 교차한다. 작은 언어의 차이와 억양, 발음 속에서도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나며, 독자는 언어와 장소가 주는 생경한 충격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된다.

2부 「부적」에서는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중심 주제로 다뤄진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부적처럼 작동한다는 통찰이 담겨 있으며, 언어와 사유가 개인의 삶과 어떻게 얽히는지를 탐색한다. 글쓰기란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는 의식과도 같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대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어머니는 “소설 속 어떤 여성이 나오면 금방 이야기가 끝나버린다”고 말하고, 화자는 “왜 여자가 죽어야 하느냐, 그 여자가 시베리아”라고 반문한다. 이어 어머니가 “내가 여기 머물러 있기 때문에 너희가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다”고 답하는 장면은 단순한 가족 간의 말씨름 같지만, 사실은 삶의 방향과 존재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담아낸다. 글쓰기가 단순히 기록이 아닌,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설명하는 주술적 행위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3부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에서는 이중언어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번역은 단순한 언어 전환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다와다 요코는 번역 속에서 발생하는 ‘원본 없는 번역’의 아이러니를 탐구하며, 언어가 결코 완전하지 않고 항상 불완전하게 미끄러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녀의 사유는 언어학적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본문 발췌 속 몇몇 장면들은 작가의 문체와 사고를 잘 보여준다.

예컨대 시베리아(Sibirien)는 타타르어에서 유래한 말로 ‘sib’는 ‘자다(잠)’을, ‘ir’는 ‘땅’을 뜻한다. 직역하면 ‘잠자는 땅’이지만, 다와다 요코는 이를 역설적으로 풀어 “잠자는 땅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 책 읽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책 속으로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는 말은 독서라는 행위를 일상의 습관이 아닌 존재와 연결된 특별한 경험으로 바꿔 놓는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을 두고 나누는 가족의 대화는 삶의 방향과 선택에 대한 은유로 읽히며, 이렇게 짧지만 인상적인 문장들은 이 책이 지닌 분위기와 성격을 잘 보여준다.

『영혼 없는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은 연결되지 않는 듯 흩어진 글들이 결국 언어, 정체성, 번역이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전통적 서사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지만, 언어가 가진 낯섦과 그 틈에서 발생하는 사유의 가능성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매혹적이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

- 이 책은 언어의 경계와 번역의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

- 전통적 서사보다는 자유로운 형식과 실험적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

- 창의적 사유와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

- 완결된 이야기가 아닌 파편적이고 실험적인 문학을 통해 언어와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싶은 독자

<엘리 출판사>에서 진행한 '제인 오스틴의 편지함 구독 인증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고등학생 두 명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는다. 한 명이 책장을 넘겨도 되는지를 눈으로 물어보면 다른 사람은 고개를 가로로 혹은 세로로 흔든다. 그들은 마치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사람 같다.
책은 침대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꿈을 꾸기 때문이다. - P1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의 자존감 공부 - 천 번을 미안해도 나는 엄마다, 2025 최신 개정증보판 김미경의 인생 수업 2
김미경 지음 / 어웨이크(AWAKE)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미경의 『엄마의 자존감 공부』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여성들에게 “당신의 삶을 먼저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때로는 불안으로 바뀌어 아이를 다그치고 조급하게 만드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넌 왜 생각이 없니, 꿈이 없니, 왜 엄마 말을 안 듣니”라고 몰아붙였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그 모든 것이 아이의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아이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이 있었고, 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직’ 없었던 것이었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엄마의 말이 틀렸기 때문이라는 고백은 부모의 불안이 어떻게 관계를 왜곡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엄마의 인생을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아이를 키우며 힘 있는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1기 엄마, 자녀가 성인이 된 뒤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걸어가는 2기 엄마, 그리고 존엄하게 나이 들어 끝까지 지혜와 품을 보여주는 3기 엄마.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노년이 되어서도 엄마의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이 긴 여정을 버티게 하는 힘은 결국 엄마 자신의 자존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겨우 3킬로그램 남짓한 아기이지만 죽음을 통과해 세상으로 나온 그 자체가 위대한 성취이자 자부심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첫 번째 마음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자존감이고, 부모는 그 마음을 인정하고 키워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잘 먹이고 입히는 것만이 육아의 전부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첫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육아라는 말은 모든 부모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저자는 자존감을 인생의 필터라고 표현한다. 자존감이 크면 불행을 행복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자존감이 작으면 작은 불행조차도 크게 확대된다.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아이는 좋은 선택을 하지만,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는 아이는 매번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을 한다.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무기력해지고 도전조차 하지 못하며, 결국 평생 부모의 숙제로 남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을 믿는 힘을 가진 아이는 어떤 길을 가더라도 주체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을까. 저자는 먼저 엄마 자신이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부족한 엄마는 아이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아이가 보내는 분노와 우울의 표현조차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결국 부모가 먼저 자기 안의 상처를 돌보고 자존감을 회복해야만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스몰윈(Small-win)’ 전략을 제시한다. 사소한 성취를 반복하며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느끼는 과정이 엄마를 단단하게 만들고, 그 힘으로 아이에게 공감과 여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130프로 해석법’은 특히 인상적이다. 저자가 존경하는 한 스승에게 배운 원칙인데,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잘한 100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30까지 합쳐 130을 믿어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누구나 잘못과 부족함을 갖고 있는데, 상대에게 완벽함만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부족함까지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 덕분에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원칙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의 부족한 모습, 실수와 실패까지 포함해 믿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자존감을 건강하게 키워주는 길이다. 부모가 완벽함만 요구하면 아이는 늘 불안 속에서 위축되지만,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면 자신을 긍정하고 당당히 나아갈 힘을 얻는다.

또한 저자는 아이의 영혼은 부모의 복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육체는 부모를 통해 태어나지만 영혼은 하늘에서 온 고유한 것이기에, 부모를 닮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각자 고유한 성품과 색깔을 지니고 태어나며, 양육이란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설명은 부모의 시각을 새롭게 바꾸어준다.

나아가 저자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행복=공부=좋은 대학=좋은 직장”이라는 도식을 비판한다. 공부 재능이 없다는 것은 반드시 다른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세상에는 수많은 재능이 존재한다. 부모가 공부라는 단칸방에만 아이를 가두면 아이는 스스로의 천재성을 발견할 기회를 잃는다. 실제로 저자의 딸이 재봉틀을 통해 ‘자기 주도 사이클’을 완성하고 자신감을 얻은 경험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성취와 자존감을 키워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아이를 20년 프로젝트가 아니라 60년 프로젝트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성과를 조급하게 요구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주는 태도, “엄마 금방 안 죽으니까 천천히 해”라는 말처럼 기다려주는 태도는 아이를 자유롭고 깊이 있게 성장하게 만든다. 엄마의 여유로운 기다림이야말로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다.

그리고 이 모든 메시지는 이번 개정증보판에서 한 걸음 더 확장된다. 초판 이후 8년이 흐르는 동안 교육 환경은 급변했고, 책은 AI 시대와 ‘7세 고시’ 같은 최근 이슈까지 짚어낸다. 조기 스펙과 점수 논리에 부모가 휘둘릴수록 아이의 주도권과 자기해석 능력은 약해진다. 저자는 변하는 도구와 제도에 시선을 빼앗기기보다, 변하지 않는 본질—자존감, 해석력, 회복탄력성, 그리고 관계에서의 신뢰—을 최우선에 두라고 권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는 힘은 이 본질에서 나온다는 점을, 이번 판은 더욱 명확히 일깨운다.

결국 『엄마의 자존감 공부』가 전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먼저 엄마 자신을 존중하라. 엄마가 행복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아이도 자신을 괜찮은 존재라 믿으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은 아이와 갈등에 지친 부모,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여성, 공부와 성취보다 아이의 진짜 행복을 고민하는 부모, 그리고 노년에도 엄마라는 역할을 이어가야 할 이들에게 따뜻한 길잡이가 된다.

김미경은 이 책을 통해 엄마라는 무거운 이름을 새롭게 정의한다. 완벽할 수 없는 엄마일지라도 매일 자존감을 채워가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진짜 엄마의 길이라는 메시지는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

아이와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지쳐 있는 부모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가는 엄마들

공부와 성취보다 아이의 진짜 행복을 고민하는 부모

노년에도 엄마라는 역할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는 여성들



'도서출판 어웨이크북스'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자존감은 불행을 행복으로 해석하는 필터다. 자존감이 크면 클수록 불행을 행복으로도 해석하고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기도 한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만큼 나를 위한 가장 행복한 결론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작으면 작은 불행을 오히려 크게 확대하기도 한다. 모든 사건이 ‘큰일 났다, 나 어떡하지?’로 결론이 나는 것이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을 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매번 쓸모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선택까지도 조절하고 결정하는 힘이 바로 자존감이다. - P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왕자 : 컬러링 필사 노트 - 손으로 따라 쓰고, 색으로 물들이는 컬러링 필사 노트 필사 예찬 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혜원 옮김 / 서사원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원작 삽화 기반 컬러링 도안을 수록했다는 점이다. 생텍쥐페리의 원본 그림을 그대로 담아낸 채색본과 함께 밑그림 도안을 나란히 제공해, 독자는 원본을 보며 따라 그릴 수도 있고, 자신만의 색감을 입혀 새로운 느낌의 어린왕자를 창조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색칠하기 활동을 넘어, 창의성과 표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장점은 고급 모조지 사용이다. 필사 노트에서 흔히 불편함으로 지적되는 잉크 번짐이나 비침 현상을 최소화해, 글씨를 쓰거나 색을 입힐 때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특히 펜이나 색연필, 마카 등을 사용할 때도 번짐이 적어 만족도가 크다.

책의 제본 방식 또한 세심하게 고려되었다. 180도 펼쳐지는 제본을 사용해 필사할 때 책이 자꾸 접히는 불편함을 방지했다. 덕분에 글씨를 쓸 때나 컬러링을 할 때 손에 힘을 주지 않아도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으며, 장시간 필사에도 안정적인 사용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한 컬러링북이나 필사노트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린왕자』 원작 스토리를 그대로 수록해, 이야기를 읽으며 따라 쓰는 과정에서 글의 깊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어린왕자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필사하다 보면, 단순한 필사가 아니라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된다.

여기에 소장가치도 높다. 필사와 컬러링을 마친 뒤에는 자신만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책으로 남아, 오랫동안 간직하며 다시 꺼내볼 수 있다. 단순히 활동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특별한 기록물로 완성되는 점에서 만족감이 크다.

종합하자면, 이 책은 읽기·쓰기·그리기·창작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복합적 가치가 담겨 있다. 원작 스토리를 따라 읽으며 필사할 수 있고, 동시에 원본 그림을 참고해 컬러링을 하거나 자신만의 감각으로 새롭게 색칠해볼 수도 있다. 한 권으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만큼, 독서와 창작을 함께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특히 유익하다.

'서사원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별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 한송이 덕분이에요…."
"물론이지."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달빛이 어슴푸레 비취는,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요."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늘 사막을 사랑했다. 모래 언덕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가 빛을 발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문득 사막에 비치는 이 신비로운 빛을 이해하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렇게 키워도 사람 되나요?
박티팔 지음 / 고래인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티팔의 『이렇게 키워도 사람 되나요?』는 육아라는 주제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낸 에세이툰이다. 저자는 본업이 정신과 임상 심리사이지만, 그림 그리기를 오래도록 사랑해 왔고, 결국 육아의 순간들을 만화라는 매체에 담아내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책 속에는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된 해프닝들이 가득하지만, 그 웃음 너머에는 부모로서의 고민, 심리학자로서의 성찰,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고백이 녹아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다. 예를 들어 <기도할 때 눈 뜨지 마라> 편에서는 밥 먹기 전 감사 기도를 하며 아이들이 눈을 꼭 감아야 하냐는 의문을 던진다. 엄마는 집중을 위해 눈을 감는 거라고 설명하지만, 아이들은 눈을 감으면 거미줄이나 개구리가 보인다며 자기들만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결국 이 가족은 ‘눈뜨고 기도하는 집’이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유쾌해 독자 역시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런 장면은 단순한 우스갯소리를 넘어, 아이들의 시선과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엄마가 틀렸어> 편 역시 흥미롭다. 첫째가 동생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자, 엄마는 동생 돈을 뺏지 말라며 나무란다. 하지만 아이는 곧장 “그게 왜 불법이냐”며 법전까지 들먹이며 따져든다. 엄마는 당황하지만, 곧 눈높이에 맞는 방식으로 교육하기 위해 반찬 값에 가격표를 붙여놓는 기지를 발휘한다.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대신 놀이 같은 상황극을 통해 ‘돈과 도리’의 문제를 가르치는 모습이 돋보인다. 큰소리를 치지 않고도 생활 속에서 교육을 풀어내는 유머와 지혜가 담겨 있다.

책 전반에는 웃음기가 흐르지만, 저자의 내면 고백이 들어간 산문도 깊은 울림을 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글에서 저자는 늘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지만, 정답이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방식조차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고, 아이들도 그 영향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도록 두고 싶다고 고백한다. 여기에는 임상 심리사로서의 전문적인 시선과 동시에 한 엄마로서의 솔직한 체험이 어우러져 있다. 아이를 키우며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각자 다른 성향과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인정하는 태도는 많은 부모들에게 위로가 된다.

또 다른 글인 “가족신화”에서는 저자가 어린 시절 들었던 ‘탄생 신화’ 같은 가족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울음 덕분에 연탄가스 중독에서 가족을 구했다는 이야기나, 아버지가 콩나물만 먹으며 돈을 모았다는 전설 같은 일화들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준다. 저자는 심리학 공부를 통해 이런 이야기들이 ‘가족신화’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도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신화를 만들어주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에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중요한 서사임을 일깨운다.

마지막 부분에 실린 “아 참, 너 아직 사람 아니었지”라는 글도 인상적이다. 아이를 향한 짜증을 반성하며, 전두엽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아이를 ‘완전한 인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 순간 고양이를 보며 아이를 ‘반금수’라 부른 에피소드는 진지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부모가 아이에게 거는 과도한 기대와 부담을 내려놓고, 성장의 과정을 존중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책 곳곳에는 저자의 ‘생존 유머’가 빛난다. 저자는 주변 엄마들이 어떻게 이런 유머가 나오냐고 묻자, 그것이 우울에서 비롯된 생존 전략이라고 답한다. 힘든 순간에도 웃음을 발견하고, 만화로 다시 써 내려가면서 고통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재편집했다는 것이다. 이 고백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유머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힘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부록으로 수록된 ‘도봉이 이야기’와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 모음은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둘째 도봉이의 그림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수준 있고, 그 속에서 미래의 가능성까지 엿보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본다면, 아이는 아이대로 공감하고 어른은 어른대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독자의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 역시 이 책의 매력이다.

『이렇게 키워도 사람 되나요?』는 웃음과 성찰이 어우러진 책이다. 저자의 직업적 배경과 개인적인 체험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가볍게 웃으며 읽다가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건져 올릴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물론, 삶 속에서 유머의 힘을 새삼 확인하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제격인 가족 에세이툰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고래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인간의 뇌, 그중에서도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만 25세가 되어야 완전히 발달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가 왜 그렇게 딸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화가 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딸 아이를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마침 옆에 키우던 고양이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순간 내 머리에 엄청난 통찰 하나가 꽂혔다. ‘그래! 딸아이는 사람이 아니다! 반금수(禽獸, 날짐승과 길짐승을 합친 말=짐승 전체)다! 저 고양이랑 친구인 것이다. - P1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방과 개 - 훈자와 세상 끝 책방의 친구들
루스 쇼 지음, 신정은 옮김 / 그림나무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2023년~2024년 뉴질랜드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저자가 운영하는 마나포우리에 있는 책방은 이제 꽤 유명해졌다. 첫 책 ‘세상 끝 책방 이야기’가 출간 된 후로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나포우리는 뉴질랜드 서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로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으며 인구는 222명에 불과한 곳이다. 이 책은 저자가 운영하는 세 책방(1-자그마한 책방, 2-어린이 전용 책방, 3-스너그라고 불리는 책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이야기는 장편의 굵은 줄거리보다 짧고 선명한 에피소드들이 리듬처럼 이어지는 책이다.

각 에피소드는 2~3장 내외의 길지 않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고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전작이었던 『세상 끝 책방 이야기』는 마나포우리라는 작은 마을의 책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순간들을 담아낸 책으로, 책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 책이 사람을 어떻게 이어주고 삶을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낯선 이들이 책을 통해 마음을 열고, 마을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책방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모습이 중심이었다. 반면, 이번 작품 『책방과 개』는 시선을 조금 달리한다.

책방을 드나드는 손님과 그들이 데리고 오는 반려견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며, 책방 주인인 저자의 반려견 ‘훈자’의 이야기가 곳곳에 이어진다. 책방이라는 공간이 사람과 책만이 아니라, 개와 사람의 관계까지 품어내며 확장되는 것이다. 손님과 개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훈자가 낯선 이의 긴장을 풀어주고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순간까지, 책방과 개가 함께 만들어내는 일상의 따뜻한 풍경들이 책 전반에 펼쳐져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존재는 당연 저자의 반려견 ‘훈자’다. 훈자는 저자가 청소년 복지사로 일하던 시절부터 함께해 온 동반자다. 말 대신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낯선 이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긴장을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팬데믹의 고립과 개인적 상실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곁에 있어 주며, ‘옆에 있어 주는 것’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훈자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 가장 심장이 쫄깃한 상태로 지켜봐야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훈자의 실종 사건이다. 저자가 일을 위해 자주 방문하던 경찰서가 있었는데, 어느 날 늘 입구에 묶어 두었던 훈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삽시간에 마을에 훈자의 실종 소식이 퍼지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훈자 찾기에 돌입한다. 결국 방송국 제보를 통해 어느 빈집에서 훈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그곳에 다행히도 훈자가 있었다. 비록 지친 상태긴 했지만 다행히 건강한 상태였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범인은 훈자를 잘 훈련된 경찰견으로 착각해 데려갔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자랑할 요량으로 데려 갔던 것이었다. 훈자는 명령에 복종하거나 공격하는 법을 모르는 평화롭게 사람 곁을 지키는 개다. 경찰견으로 데려간 범인은 뜻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개에 실증을 났을 수도 있을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에 발견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훈자가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보여주는 일화가 되었다.

훈자라는 독특한 이름에도 사연이 있다. 처음 입양했을 때 이름은 샘이었지만, 저자는 ‘훈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히말라야 산골짜기 훈자 마을에서 따온 이름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훈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주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저자가 운영하는 책방은 훈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은퇴한 양치기견, 조류 탐지견, 동네를 지키는 경비견, 여행자와 함께 온 반려견들까지 다양한 개들이 드나든다. 개와 사람이 스치며 만들어내는 작은 사건들은 곧 마을의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고, 병을 이겨낸 이가 돌아오며, 여행자와 주민이 짧은 인사를 나눈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가 이어지고 마음을 나누는 장소로 변해간다.

그리고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독서견 프로그램’이다. 헬렌은 반려견 투이를 학교에 데려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해, 아이들이 개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처음에는 치료견이 아닌 개가 학교에 들어올 수 없었지만, 개가 학습에 주는 긍정적 효과가 인정되면서 지역 단체의 지원으로 프로그램이 가능해졌다. 투이는 테스트를 통과해 매주 학교에 나갔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투이는 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옆에서 차분히 앉아 들어줄 뿐이었다. 덕분에 큰 소리로 읽기를 두려워하던 아이들도 편안히 책을 읽고, 점차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맞히는 독서 훈련이나 속도를 강요하는 평가가 아니라,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투이가 해낸 역할은 바로 그런 ‘안전한 청중’이었다. 책 읽기가 다시 즐거워지는 순간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는 훈자 외에도 여러 마을 개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병든 가족 곁을 묵묵히 지켜준 레지, 아이들의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 독서견 투이, 삶의 외로움을 달래 준 탈라….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사연들은 독자에게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저자는 거창한 공동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바닥에 드리운 개의 그림자, 봉쇄 기간에 오간 손 편지, 벤치에 앉은 이들의 대화 같은 작은 장면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 작은 장면들이 모여 한 장의 지도가 되고, 독자에게는 ‘위로는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알려준다.

『책방과 개』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감의 언어를, 동네 서점이나 도서관을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공간을 어떻게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개와 사람, 책방과 마을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읽는 내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훈자와 코브, 그리고 마을의 개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되고 따뜻한 위로를 얻게 된다.


'그림나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제 ‘갈매기의 꿈’ 마지막 부분을 친구들에게 읽어줄 때가 되었어요.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환경을 벗어나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지요.
"새에게 자유롭다고 믿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지." 책에서 조나단이 플레처에게 하는 말이에요. 나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친구들에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가장 어려웠지요. 갱에서, 학대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길 바랐어요.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