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과 개 - 훈자와 세상 끝 책방의 친구들
루스 쇼 지음, 신정은 옮김 / 그림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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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3년~2024년 뉴질랜드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저자가 운영하는 마나포우리에 있는 책방은 이제 꽤 유명해졌다. 첫 책 ‘세상 끝 책방 이야기’가 출간 된 후로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나포우리는 뉴질랜드 서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로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으며 인구는 222명에 불과한 곳이다. 이 책은 저자가 운영하는 세 책방(1-자그마한 책방, 2-어린이 전용 책방, 3-스너그라고 불리는 책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이야기는 장편의 굵은 줄거리보다 짧고 선명한 에피소드들이 리듬처럼 이어지는 책이다.

각 에피소드는 2~3장 내외의 길지 않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고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전작이었던 『세상 끝 책방 이야기』는 마나포우리라는 작은 마을의 책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순간들을 담아낸 책으로, 책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 책이 사람을 어떻게 이어주고 삶을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낯선 이들이 책을 통해 마음을 열고, 마을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책방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모습이 중심이었다. 반면, 이번 작품 『책방과 개』는 시선을 조금 달리한다.

책방을 드나드는 손님과 그들이 데리고 오는 반려견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며, 책방 주인인 저자의 반려견 ‘훈자’의 이야기가 곳곳에 이어진다. 책방이라는 공간이 사람과 책만이 아니라, 개와 사람의 관계까지 품어내며 확장되는 것이다. 손님과 개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훈자가 낯선 이의 긴장을 풀어주고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순간까지, 책방과 개가 함께 만들어내는 일상의 따뜻한 풍경들이 책 전반에 펼쳐져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존재는 당연 저자의 반려견 ‘훈자’다. 훈자는 저자가 청소년 복지사로 일하던 시절부터 함께해 온 동반자다. 말 대신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낯선 이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긴장을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팬데믹의 고립과 개인적 상실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곁에 있어 주며, ‘옆에 있어 주는 것’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훈자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 가장 심장이 쫄깃한 상태로 지켜봐야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훈자의 실종 사건이다. 저자가 일을 위해 자주 방문하던 경찰서가 있었는데, 어느 날 늘 입구에 묶어 두었던 훈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삽시간에 마을에 훈자의 실종 소식이 퍼지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훈자 찾기에 돌입한다. 결국 방송국 제보를 통해 어느 빈집에서 훈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그곳에 다행히도 훈자가 있었다. 비록 지친 상태긴 했지만 다행히 건강한 상태였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범인은 훈자를 잘 훈련된 경찰견으로 착각해 데려갔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자랑할 요량으로 데려 갔던 것이었다. 훈자는 명령에 복종하거나 공격하는 법을 모르는 평화롭게 사람 곁을 지키는 개다. 경찰견으로 데려간 범인은 뜻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개에 실증을 났을 수도 있을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에 발견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훈자가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보여주는 일화가 되었다.

훈자라는 독특한 이름에도 사연이 있다. 처음 입양했을 때 이름은 샘이었지만, 저자는 ‘훈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히말라야 산골짜기 훈자 마을에서 따온 이름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훈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주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저자가 운영하는 책방은 훈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은퇴한 양치기견, 조류 탐지견, 동네를 지키는 경비견, 여행자와 함께 온 반려견들까지 다양한 개들이 드나든다. 개와 사람이 스치며 만들어내는 작은 사건들은 곧 마을의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고, 병을 이겨낸 이가 돌아오며, 여행자와 주민이 짧은 인사를 나눈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가 이어지고 마음을 나누는 장소로 변해간다.

그리고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독서견 프로그램’이다. 헬렌은 반려견 투이를 학교에 데려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해, 아이들이 개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처음에는 치료견이 아닌 개가 학교에 들어올 수 없었지만, 개가 학습에 주는 긍정적 효과가 인정되면서 지역 단체의 지원으로 프로그램이 가능해졌다. 투이는 테스트를 통과해 매주 학교에 나갔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투이는 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옆에서 차분히 앉아 들어줄 뿐이었다. 덕분에 큰 소리로 읽기를 두려워하던 아이들도 편안히 책을 읽고, 점차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맞히는 독서 훈련이나 속도를 강요하는 평가가 아니라,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투이가 해낸 역할은 바로 그런 ‘안전한 청중’이었다. 책 읽기가 다시 즐거워지는 순간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는 훈자 외에도 여러 마을 개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병든 가족 곁을 묵묵히 지켜준 레지, 아이들의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 독서견 투이, 삶의 외로움을 달래 준 탈라….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사연들은 독자에게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저자는 거창한 공동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바닥에 드리운 개의 그림자, 봉쇄 기간에 오간 손 편지, 벤치에 앉은 이들의 대화 같은 작은 장면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 작은 장면들이 모여 한 장의 지도가 되고, 독자에게는 ‘위로는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알려준다.

『책방과 개』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감의 언어를, 동네 서점이나 도서관을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공간을 어떻게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개와 사람, 책방과 마을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읽는 내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훈자와 코브, 그리고 마을의 개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되고 따뜻한 위로를 얻게 된다.


'그림나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제 ‘갈매기의 꿈’ 마지막 부분을 친구들에게 읽어줄 때가 되었어요.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환경을 벗어나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지요.
"새에게 자유롭다고 믿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지." 책에서 조나단이 플레처에게 하는 말이에요. 나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친구들에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가장 어려웠지요. 갱에서, 학대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길 바랐어요.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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