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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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는 정해진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흩어지는 생각과 언어의 조각들을 모아둔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영혼’이라는 단단한 실체를 전제로 하지 않고, 언어와 생각이 부딪히며 생겨나는 낯설고 공허한 순간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읽는 대신, 흩어진 단상과 이미지, 반짝이는 생각의 조각들을 만나게 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유럽이 시작하는 곳」에서는 작가가 낯선 대륙과 조우하면서 경험한 문화적 차이를 다룬다. 시베리아의 어원에서부터 도시와 사람들의 풍경, 기차 여행 같은 단상이 교차한다. 작은 언어의 차이와 억양, 발음 속에서도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나며, 독자는 언어와 장소가 주는 생경한 충격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된다.

2부 「부적」에서는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중심 주제로 다뤄진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부적처럼 작동한다는 통찰이 담겨 있으며, 언어와 사유가 개인의 삶과 어떻게 얽히는지를 탐색한다. 글쓰기란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는 의식과도 같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대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어머니는 “소설 속 어떤 여성이 나오면 금방 이야기가 끝나버린다”고 말하고, 화자는 “왜 여자가 죽어야 하느냐, 그 여자가 시베리아”라고 반문한다. 이어 어머니가 “내가 여기 머물러 있기 때문에 너희가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다”고 답하는 장면은 단순한 가족 간의 말씨름 같지만, 사실은 삶의 방향과 존재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담아낸다. 글쓰기가 단순히 기록이 아닌,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설명하는 주술적 행위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3부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에서는 이중언어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번역은 단순한 언어 전환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다와다 요코는 번역 속에서 발생하는 ‘원본 없는 번역’의 아이러니를 탐구하며, 언어가 결코 완전하지 않고 항상 불완전하게 미끄러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녀의 사유는 언어학적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본문 발췌 속 몇몇 장면들은 작가의 문체와 사고를 잘 보여준다.

예컨대 시베리아(Sibirien)는 타타르어에서 유래한 말로 ‘sib’는 ‘자다(잠)’을, ‘ir’는 ‘땅’을 뜻한다. 직역하면 ‘잠자는 땅’이지만, 다와다 요코는 이를 역설적으로 풀어 “잠자는 땅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 책 읽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책 속으로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는 말은 독서라는 행위를 일상의 습관이 아닌 존재와 연결된 특별한 경험으로 바꿔 놓는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을 두고 나누는 가족의 대화는 삶의 방향과 선택에 대한 은유로 읽히며, 이렇게 짧지만 인상적인 문장들은 이 책이 지닌 분위기와 성격을 잘 보여준다.

『영혼 없는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은 연결되지 않는 듯 흩어진 글들이 결국 언어, 정체성, 번역이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전통적 서사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지만, 언어가 가진 낯섦과 그 틈에서 발생하는 사유의 가능성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매혹적이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

- 이 책은 언어의 경계와 번역의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

- 전통적 서사보다는 자유로운 형식과 실험적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

- 창의적 사유와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

- 완결된 이야기가 아닌 파편적이고 실험적인 문학을 통해 언어와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싶은 독자

<엘리 출판사>에서 진행한 '제인 오스틴의 편지함 구독 인증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고등학생 두 명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는다. 한 명이 책장을 넘겨도 되는지를 눈으로 물어보면 다른 사람은 고개를 가로로 혹은 세로로 흔든다. 그들은 마치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사람 같다.
책은 침대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꿈을 꾸기 때문이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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