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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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케이시윅스. 동녘

 

근로기준법 제50[근로시간]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 40시간.

 

이렇게만 맞춰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사람들이 넘쳐 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트타임 근무자들이나,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들 할 것 없이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데, 이것 역시 아주 큰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적건, 많건 너무 많은 시간을 임금 노동에 사용하는 것은 인간됨의 근본까지도 흔들 수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토록 많이 일하는 것에는 큰 저항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헌신과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아래 장시간 근무를 장려하거나, 추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일만 시간의 법칙이 유행처럼 번지며 미친 듯이 일하라는 것을 멋있게 포장하여 수많은 매체들이 앞 다투어 이야기를 하기 까지 했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담대하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11p) 책의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저자의 질문에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정도 답을 할 수 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리고 사람은 원래 일을 해야 하니까. 저자는 이 두 가지 모두를 거절한다. 그리고 함께 거절할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필연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 관습이자 규범 장치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고(20p),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착취를 당하기까지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생산의 현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참 전, 두 아주머니께서 식당 개업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식당은 인건비 따먹기야!” 지금 생각해보면 저자의 지적에 딱 들어맞는 얘기이다. 어디 식당만 그러할까?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사업주는 당당하게 많은 일을 요구하고, 고용된 사람들은 조금 불평이야 할 수 있어도 묵묵히 일한다. 당당하게 착취하고, 기꺼이 봉사수준에 가깝게 헌신(?)하는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저자는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를 바로 노동 윤리에서 찾는다. 일 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상황 중에 일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낯설었는데, 응당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동에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문제 제기하는 저자의 담대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문제제기가 전혀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저자는 막스 베버를 인용하며 지나치게 개인화된 노동 윤리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개인의 경제적 성취나 실패가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집단의 책임 혹은 구조적인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을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나 의무로 돌릴 수 있다는 말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가 고용주의 사업 활동을 소명으로 해석해주는 한, 바로 이런 노동 의지를 착취하는 것은 합법화 되었다고 말한다....빈곤에는 도덕적 의심이 가해진다.”(91p) 일하지 않을 수 없고, 일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온전히 노동윤리가 기업 친화적으로만 적용되는 사회를 정확하게 꼬집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커다란 저항 없이도 많이 일하는 상황이 지속 가능한 또 다른 이유를 신성시까지 여겨지는 가족 윤리, 가족 제도에 기반한 임금 노동 구조에서 찾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하루 8시간, 5일 근무가 풀타임 근무의 표준이 되었을 때, 남자 근로자는 집안의 풀타임 가사 노동자였던 여성의 보조를 받는다고 상정되어 있었다. 물론 이 조차도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부양을 위해 훨씬 더 많이 일할 것을 요구 받았고, 그것을 인생 최고의 의무로 받아들여졌다.(255p) 현재의 임금 노동의 구조가 노동 윤리와 가족 윤리와 젠더 분업화에 기반을 두고 설계 되었기에,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는 자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크게 반발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악한 시스템을 어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틈을 내기 위하여 두 가지 제안을 내어 놓는다. 노동시간 단축, 주당 40시간 근로에서 30시간으로 줄이자는 것 그리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 두 가지 모두 상당히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장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논의가 되어 왔던 내용들이다. 그중에서도 마르크스를 노동 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제안자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자본론>에서 노동 시간의 단축을 전제로 하여 개인 노동자들이 생산 과정 중에 협력자로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4p) 개인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사업에 관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 그동안 소외문제, 의미 없는 노동 문제로 고통 받았던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저자는 프롬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르크스가 개인의 자유에 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마도 마르크스라는 인물 자체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편견이 상당히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싶은 느낌이 들었다. 여튼, 마르크스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노동 시간의 단축을 제안했다.) 또한 저자는 기본소득 자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을 꼬집고,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족이나 가구 구성, 다른 소득 여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소득이 그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게끔 바닥 수준을 정립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임금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조건과 상태에 덜 의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228p)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한 반감은 지금도 강력하다. 노동윤리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서 먹을 수 없다는 바울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저자는 존재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더욱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기본소득이 사람들로 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기본소득을 받으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사실 아직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기 때문에 어떠한 일들이 펼쳐질지에 대해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이것을 유토피아적 미래라 말하며 우리가 함께 상상하고, 이것을 더욱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게도 구체적인 제안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막연한 상상, 무모한 요구라 할지라도 우리가 함께 하며 정치적 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한 상당한 의미가 있음을 저자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지금의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할 수 있게 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를 억압하는 힘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 큰 위험은 우리가 너무 많이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348p)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그토록 노동 윤리에 대해서 반감을 드러내며 적게 일해야 하고,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저자 역시 일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례 당연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문제제기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나 좋은 노동과 가족이라는 가치를 통째로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가 대표적으로 예를 드는 것이 근무시간 유연제인데, 정확한 수치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회사들에 다니는 근로자들의 경우, 대부분 여가 시간마저도 근무시간에 통합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근무를 위해서 혹은 더욱 많은 결과물을 내기 위하여 생겨난 제도들이라면 아무리 이름이 그럴싸해도 결국엔 노동자 개인과 그 노동자의 가족을 통째로 일과 기업에 종속되게끔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 구체적인 실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 점이 많이 의아했었다. 이렇게 그럴싸한 문제제기를 해놓고서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아서 말이다. 하지만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노동에 대해서, 많이 일하고, 적게 받는 것에 대해서 별로 질문조차 하지 않고 지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이러한 문제제기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 시간 단축, 기본소득의 지급,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이것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지만,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하고 있고, 너무 적게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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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난 하나님 - 한국교회에서 여성의 하나님을 말하다
강호숙 지음 / 넥서스CROSS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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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난 하나님-한국교회에서 여성의 하나님을 말하다> 강호숙.

 

합동측 신학교에서 여성()학을 다년간 가르쳐 온 강호숙 교수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토대로 책을 냈다. 그동안 자신이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로부터 그동안 남성 중심적 혹은 가부장적으로 읽혀왔던 성경과 교회의 뒤쳐진 성윤리와 기독 여성의 일상과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다. 워낙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고, 남성 위주의 시각에 젖어있는 많은 교인들을 독자로 삼는 책이다 보니 쉽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상당수의 교회들이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동성애 반대, 혼전순결 말고는 성에 대해서 잘 가르치지 않는 상황이기에 이 책의 내용들은 어느 정도 유익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여성 목회자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사역들이나, 성폭력이나, 추행과 같은 일을 당했을 때, 신고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나, 이와 관련하여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은 많이 공감할 수 있었고, 남성 목회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저자가 주장한 부분들에 대해서 동의가 되고, 나름 필요한 내용들이라 생각을 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그것은 저자가 여성학을 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했지만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책에서 구분한 남성과 여성의 특징들을 받아들인다든지, 사사 드보라를 두고 돌봄과 사랑이라는 모성적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다고 언급한 부분은 잘 납득이 되질 않았다. 여성학이 우리에게 준 큰 유익이 여성을 그동안 주어져 있던 특정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것이고, 사람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일 텐데, 오히려 그러한 시각을 둔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쓰인 배경이 되는 교회들이나, 학교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알기에, 또한 그러한 분위기에서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하고, 그것을 위하여 여성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믿기에, 이 책이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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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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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책을 읽는 데 무려 두 달이나 걸렸다. 정말 헉헉 했다. 책이 어렵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넘어가질 않았다. 몇 번은 오가며 반복해서 본 것 같은데, 여전히 잘 넘어가질 않았다. 대강이라도 정리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냥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몇 개 추려보는 정도로 해보았다.

 

1. “제주의 관점-페미니즘은 수많은 타자들의 다른 목소리중 하나이다.”

-> 이 책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제주도민이 육지에 있는 도시들에 가는 것이 쉽지 않고, 그중에서도 대전이 특히 더하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고, 저자의 질문에 생각해보려 해도 짐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페미니즘이 많은 사람에게 그렇다. 나한테도 그랬고. 여성주의를 조금씩 배우면 배울수록 나란 사람은 이웃사랑과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이란 걸 확인이 된다.

 

2.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편안할 수는 없다. 다른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뿐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 페미니즘은 배우면서 확 달라진 게 있는데, 생활이 불편해 졌다는 것. 하다못해 함께 하는 여자 청년들에게 인사도 버벅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걸핏하면 외모 칭찬을 했는데, 그걸 빼고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나도 모르게 불쑥 너 많이 예뻐졌다.’ 혹은 너 많이 살 빠졌다.’ 와 같은 말이 툭툭 튀어나와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3. “이처럼 질문은 묻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의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왜 그렇게 취업하려고 노력하니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 내가 이 부분을 읽고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신학대학원 다닐 때, 여자 전도사님들을 만날 때면 가끔 이렇게 물었는데....“전도사님은 왜 신학대학원에 왔어요?” 그럴 때면 항상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전도사님이 여기에 온 이유하고 같아요.” .

 

4.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 불편해도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려고 애쓰다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바로 옆에 있는 이웃조차 억압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아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돌이켜서 영생을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5.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사유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 며칠 사이 미쓰 박논쟁이 치열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는데, 페미니즘 관련하여 논쟁이 일 때면, 나름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 심지어 지식인들조차 자신의 경험, 지식을 기준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김없이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낼 때가 많은데, 문제는 누군가 그런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그들은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논쟁이 확대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페미니즘은 지배 이념이 아니고, 대중매체도 그것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6. “스위트 홈과 자녀 양육이 소중하고 성스러운 일이라면 그것은 책임이라기보다 권리일 것이고, 남성들도 앞 다투어 참가해야 한다. 그러나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은 노동 시장에서 남성들이 듣는 가장 모욕적이고 비참한 욕이다.”

-> 많은 일들이 성별화 되어 있는데, 가사와 돌봄의 일이 더욱 그리하다. 나 역시 페미니즘을 배워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아내의 영역에 침범? 하고 있는데, 하지 않던 일을 하나 시작하는 것만 해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본다. 난 가정 일이 정말 신성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보니 내 생각과 나의 일상 사이에 괴리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7. “...‘페미니즘이 옳긴 하지만, 시기상조다 라거나,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 교회에서 페미니즘 모임을 시작한 이후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참 신기하다. 저자가 들은 얘기들을 거의 비슷하게 들었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런 모임은 오히려 공동체의 분위기를 해치거나,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얘기....내가 교회에서 수많은 성경공부, 여타 모임을 인도해보았는데,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성경을 인용하지 않아서 그런건가....

 

8. “...여성에게는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기다린다. 남성이 더럽다고 간주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몸을 씻지 않아서거나 돈이나 권력 투쟁에서의 부정부패 때문이지, 섹스로 인한 규정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대개 성적인 측면이 연상된다.”

-> 처음에 이 부분을 읽고서는 헛웃음이 나왔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건 참 심각한 문제였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이 생각보다 깊게, 짙게 이 사회와 남자들에게 배어있다는 걸 적나라케 보여주는 고정관념이었다.

 

9. “‘남자는 참을 수 없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참는 남성은...폭발 직전일 것이다.”

-> 이런 얘기는 교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던가? 나도 이런 비슷한 얘기를 예전에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저자의 말처럼 여자들은 밤거리나 여행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등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억압해야 할 것이다.

 

10. “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와 나는 연속선상의 한 몸인데, 어느 지점에서 그 몸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내가 사는 거의 모든 삶의 현장에 페미니즘이 적용되지 않을 곳은 없었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보자고 했던가? 지금처럼 페미니즘이 유행했던 적도 없었고, 앞으로 다시 이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 한 해 나름 시간 쪼개서 배우고, 실천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도 이만큼 유익한 공부가 흔치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만큼 생각을 급진적으로 뒤흔드는 텍스트가 많지 않고, 생활 전반을 바꾸라고 도전하는 공부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찾자면 성경, 기독교가 내 인생에 그런 역할을 했는데, 페미니즘이 서른 중반을 넘어 마흔을 향해 가는 나를 향해 변화하라고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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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뒷조사 복음서 뒷조사
김영화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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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진 않더라도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마태복음 개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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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 삶과 죽음에 관한 김영봉의 설교 묵상
김영봉 지음 / IVP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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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피할 수 있는 사실인데, 장례식장에 가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 그곳에서는 유족들이건, 그들을 위로하러 가는 조문객들이건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더 이상 없는 고인에 대한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이 상황은 준비한다고 해서 준비가 되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를 읽어 보니 잘 준비된 장례 설교 한 편이 누구에게나 당혹스러운 이 상황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서로가 위로를 나눌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사귐의 기도>,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등의 저서로 알려진 김영봉 목사의 장례 설교 모음집이다. 총 열 여섯 편의 장례 설교로 이루어져 있는데, 설교 한 편 한 편에 고인에 대한 사랑과 예의가,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특히 이 설교들은 평생 신실하게 살다 죽은 성도의 죽음으로부터 자살한 성도, 불신자 가족, 갑작스런 사고사까지....저자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경험한 다양한 죽음 앞에서 저자가 한 교회의 목사로서 어떻게 최선을 다하고 섬겼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는 나이기에 이 설교들은 무척이나 유익하고, 감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수백 명의 성도들을 목회하면서 이토록 한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해석해 내는 저자의 헌신과 사랑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설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평소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어쩌면 평생에 한 번일 수도 있는 모든 성도와의 개별적인 만남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너무나 바빠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치다 보니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잠간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 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목회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잠간 멈추어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으려고 애를 썼고, 우리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나라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열여섯 편의 설교들 앞과 뒤로 죽음에 대한 저자의 묵상과 장례를 준비하는 방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들도 목회자들에게 도전도 되겠지만,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 읽어 보지 못한 분들, 특히 목회자가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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