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유럽의 포스트모더니티는 적어도 왜곡된 종교에 대해 통찰력 넘치는 비판을제공했다. 반면에 실용주의적인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적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행하는가에 관계없이 그것이 지역 공동체를 위해 "성공"을 제공하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불편한 것으로 판명될수도 있는 진리의 자리에 성공과 수사학적 "승자들을 세운다. 바로 이것이바울이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며 고린도교회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불편하게 여겼던 이유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비판을 위한 자리를 결여하고 있다.
- P519

특히 로티, 피쉬, 리오타르(『디페랑』 때문에)는 해석학에 대해 유용하기에는 너무 멀리 나아가버렸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테리다. 바르트, 보드리야르, 푸코는 해석학적 반성을 위한 통찰을 제시할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그들의 사유의 양상들을바라본다. 결코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일반화할 수 없다.
- P523

하지만 신앙이 해석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첫째, 선이해에 대한 작업을 무시하고 둘째, 단일한 방법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방법론을 선호하는 성서비평의 다형적 본성을 무시한다. 
- P527

 나의 소망은 독자들이 "경청의 방식에서뿐만 아니라, 야우스가 강조한 바처럼 기대를 전유함에 있어서도 성경으로 나아오는 것이다. 경청과 기대는 성경이 공적인 읽기와 사적 독서에서 마땅히 차지해야 할 위치를 되돌려줄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성경의 권위는 교리에서처럼 경험의 실제적 문제가 될것이다.
-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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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을 통해 성경을 읽는 작업은 성경해석학에 가치 있는 차원을 더한다. 하지만 페미니즘 경향으로부터 아주 다양하고 분별해야 할 결과들이 생겨났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재닛 래드클리프 리처즈, 주자네 하이네, 엘리자베스 악트마이어 같은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은,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페미니즘의 가장 나쁜적과 똑같은 과오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이런 비판을 결코 잊어서는안 될 것이다. 어쨌든 여러 온건하고 각성된 페미니스트들은 기독교 신앙에대한 헌신으로부터 동료 페미니스트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투쟁하고있다. 페미니즘에는 배울 점이 많은 동시에 제기될 질문도 상당히 많다.
- P461

독자반응이론은 텍스트의 해석에서 독자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한다. 가장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이 이론은 텍스트의 의미를 완성" 하는 것이 독자 또는 독자들의 공동체라는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이 입장은 저자의 의도를 합당하게 다루고는 있지만 저자의 의도는 독자가 텍스트를 전유할 때비로소 실현되는 것으로 가정한다. 메시지의 "전달자 또는 다른 내용으로서의 텍스트는 독자가 그것을 현동화할 때까지 잠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텍스트는 독자에 의해 해석되고 이해될 때까지 추상으로 남는다. 독자반응이론은 독자가 수동적 구경꾼이 아닌, 능동적으로 의미에 기여하는존재임을 강조한다. 독자는 수동적 관찰자 이상의 존재다.
- P464

수용이론은 왜, 어디서, 어떻게 다양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속적 전통과 개성 강한 학파에 불과한 것 사이를 구별함으로써 해석학의 영역에서 긍정적 결과를 보여주는 사상운동이 되었다. 이주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적어도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즉우리는 텍스트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 시간과 역사는 어떻게 이기대들을 변화시키거나 형성하는가?
- P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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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공산주의자"를 공동체 내에서 평등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카르데날은 마리아의 찬양(눅 1:68-79)에 대한 사유에서 이렇게 옮기고 있다. "헤롯이라면 마리아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을까요?" "이 질문에로시타가 대답했다. 마리아는 공산주의자라고 했을 거예요.‘ 또 다른 이가대답한다. 요점은... 마리아는 공산주의자라는 거죠. 미리이의 찬양은 혁명입니다. 부유하거나 힘 있는 자는 구부러지고 낙담하고 가난한 자는 일어날 것이다. 젊은이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 마리아는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가 선포했던 해방을 우리는아직도 좀처럼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 P402

해방신학의 해석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작업을 포함해서 시대에 대한 선지자적 응답으로 간주된다. 가난한 국가의 가난한 자들이 겪는불균형과 분리에 대한 선지자적 교정으로서 해방신학은 필요에 부응했다고 인정된다. 하지만 현재 해방신학적 해석학은 더 굉범위한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는 동시에 부분적으로 생명력을 잃고도 있다. 몇몇 학자는 이를소실 현상으로 묘사한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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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견해로는 해석학은 이중의 동기 유발을통해 생명력을 얻는 것 같다. 즉 의심하고자 하는 의지와 경청하고자 하는의지가 그것이다. 같은 것을 엄밀함에 대한 요구와 복종에 대한 요구로 표현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는 아직도 우상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마치지 못했으며 간신히 상징을 경청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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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머에 따르면 "역사가 우리에게 속한 것이아니라 우리가 역사에 속해 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대결말에 이르게 된다. "개인의 선입견은 그의 판단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그 존재의 역사적 실재를 구성한다."
- P335

가다머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지평개념, 즉 "어떤 특수한 시점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지평, 개념을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지평은 우리가 그 안으로 움직여가는 어떤 것, 그러면서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어떤 것이다. 움직이고있는 사람에게는 지평들이 바뀌어간다. 따라서 과거의 지평은 언제나 움직임 중에 있다. 이런 식으로 텍스트를 읽는 작업은 역사적 의식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자신을 타자의 자리에 놓아봄으로써…타자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 - P337

 대화로부터 무엇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대화 상대방이 타자 일수록 발생하는 내용들은 보다 더 창조적일 것이다. 대화란 텍스트와 해석자 사이의 심연을 연결하여 신선한 내용들이 발생하도록 허용한다.
- P340

가다머는 이렇게 썼다. "해석학은 무엇보다도 실천이다. 실천에서 우리가무엇보다 실행해야 하는 것은 경청과 민감성이다. 즉 선행하는 결단들, 예상들, 개념 안에 이미 가정된 흔적들에 대한 민감성 말이다. 바로 이것이성경을 경청하는 접근법에 있어 전체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열쇠라할 수 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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