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고선규. 창비.단숨에 읽었는데, 가볍게 읽을 수 없었다. 자살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전보다 바르게 위로하고 싶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할 말이 더 없어진것 같다. 고인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가족들조차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단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당혹해하고 있고,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별자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한다. 장례를 치르고, 위로해야 하는 목사로서 책의 내용에 공감했다.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할 수 있을까. 수많은 죽음을 접하면서 그 죽음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원숙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여태 보지 못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하물며 자살을 대하는 사별자나 사별자 곁에 있는 우리는 또 얼마나 그 죽음 앞에 어설플 수밖에 없는가? 생소한 분야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이고, 저자 역시 오랜 경험이 쌓인 것 같진 않다.(물론 이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전문가이다. 이 분야 자체가 생소하다고 한다) 사별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을 책으로 엮었다. 워낙 예민한 주제이고 정말 많은 이들이 이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고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에서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추천한다.자살 사별자에게 왜..어쩌다가...라고 되묻지 말아주세요. 함부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럴만도했다...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정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 그저 힘든 시간을 보내셨겠군요..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105p
자살 사별자에게 ‘왜‘ ‘어쩌다가‘ 라고 되묻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함부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럴 만도했다‘ 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정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그저 ‘힘든 시간을 보내셨겠군요‘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 P105
정원의 은유를 우리의 사회적 몸으로까지 확장하면, 우리는 자신을 정원 속의 정원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때 바깥쪽 정원은 에덴이 아니고, 안락한 장미 정원도 아니다.그 정원은 몸이라는 안쪽 정원, 그러니까 우리가 좋고)나쁜 균류와 바이러스와 세균을 모두 품고 있는 곳 못지않게 이상하고 다양한 곳이다. 그 정원은 경계가 없고, 잘손질되지도 않았으며, 열매와 가시를 모두 맺는다. 어쩌면우리는 그것을 야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공동체라는 말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신비주의라는 주제는 특정한 종교적 문화 속에 있는 개인의 영적 형성 과정에 관한 문제와 그리스도교의 중심에 있는 어떤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특정한 신학적 담론을 한데 묶는 것이었다
놀라울만큼 단호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과학책. 나보다 먼저 태어났을만큼 오래된 과학책이 지금도 베스트셀러로서 읽히고 있다니. 이 역시 놀랍다. 여기에 대한 여러 평들이 궁금하다. 철저한 유신론자로 살아왔기에 저자의 글이 눈에 거슬리는 곳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재미있었고 수긍이 가는 면도 있었다. 진화론, 다윈주의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도 나름 괜찮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용 요약이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