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건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열망에 동참하는 것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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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이야기를 하는데....이분의 글에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기분때문인건가?...

분명히 말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은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넘치는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 역시 부자와 똑같이 주께 나갈 수 있다. 그분의 너그러우심, 그리고 값없이 베푸시는 구원이야말로 정의사회를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들의 규정과 규칙이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통해, 하나님이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시고 그분의 거룩한 법으로소외된 이들을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의를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 구석구석까지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의 삶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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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하는 신앙, 마주하는 용기
최형묵 지음 / 동연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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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른 색깔의 신앙을 가진 목사님의 설교집. 목사라면 성경에 천착해야하고 사람을 사랑해야하고 그것을 설교를 통해 교회에서 구현해낼수 있어야 함을 잘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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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모든 사회는 엄밀하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항상 낭비하고탕진하고 소모하고 소비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즉, 개인이나 사회가 생존하고(exister)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살고 있다(vivre)는 것을 느끼는 것은 초과분과 여분을 소비할 때라는 것이다.  - P48

소비사회가 존재하려면 사물이 필요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물을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물의 ‘사용‘은 그 완만한 소모를 초래할 뿐이며, 급격한 소모 속에서 창조되는 가치가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파괴는 생산에 대한 근본직인 대극(對極)이며, 소비는 그 양자의 중간항에 불과하다. 소비는 자신을 넘어서 파괴로 변모하려는 강한 경향을 갖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소비는 의미있는 것이 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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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체 시설의 유효성에 관해서 이용할 수 있는 조사는 국가기관의 의도가 빈번히 옆으로 미끄러지고(dérapage)‘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 시설이 가장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입안된 경우에도조금씩 ‘손님‘이 다양화되어, 재정적인 이유보다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감정적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시설이 모든 계층에게 개방되어 있다면, 가장 약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제외되어버린다.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은 보통 사회적 위계제도를반영하는 선별로 표현된다. 이것을 보면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형식적 기회균등을 확보하려는 정책이 대부분 불평등을 배가할 뿐이었다." (계획위원회편, 《소비와 생활양식)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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