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집단은 세속주의와 신학적 자유주의의 압도하는 위협을 직면해서는 서로를 찾고 손을 잡았다. 그들은 그레이엄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복음주의를 하나의 운동으로 결합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서로 협력하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레이엄이 은퇴하면서 활동을 멈추자 두 유형의 복음주의 개신교 사이에 있는 분열은 더 넓어지고 깊어졌거나, 또는 적어도 더두드러졌다. 양측의 대표자들은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비방할 때가 아니면 서로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복음주의 신학은 하나의 신학이 아니다. 두 가지 매우 다른 사고방식이 오랜 분열로부터 생겨났다. 그렌츠가 경건주의 웨슬리 진영을 대표한다면, 카슨은 청교도 개혁파 진영을 대표한다.
- P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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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론은 현대성으로 이어졌고, 현대성은 세속성으로 이어졌고, 세속성은 의미의 공허함, 허무, 얻는 것 없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궁극적으로, 발타자르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현대의 사람은 자연 속의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죽었다는 끔찍한 불행을 겪었다. 현대성은 그 압도적 인간중심주의때문에 "인간이 어떤 자연의 거울을 들여다봐도 언제나 궁극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단지 합리주의적 · 기술적 관점에서 사물에 접근하는 현대 문화는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오해한다. 이것은 인간들이 의미를 위해 노력하고 탐색하고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영적이며단순히 자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발타자르가 다소 철학적 언어로말하는 것처럼, "인류의 의식의 통일은 위에 있는 것을 향한, 즉 하나님에대한 개방적 질문 이외의 것으로서는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 P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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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큉에게 신앙주의 또는 비합리성은 독단적 합리주의 만큼이나 부적절하다. 그러므로 그는 두 극단들 사이에 있는 중간 길의 윤곽을 그렸는데, 이 중간 길을 그는 "비판적 합리성의 길"이라 불렀다. 이 접근은 실재의 다중 다양성뿐만 아니라 실재와 그에 대한 우리 인간의 파악이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고, 기껏해야 실재의 본성에 관한 합리적으로 정당화된 신념들인 초합리적인 근본적 결정들로부터 구축된다. 그러한 기본적 태도 또는 헌신은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 없으며, 결론적으로 입증되거나 반증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인간 경험 전체에 일치하는 한 합리적으로 정당화된다.  - P766

라쿠나의 결론은, 이 그의 적용된 방법론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지나치게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진리와 진리 자체의 판단 기준이어야 하는 반면, "실제 그리스도"는 역사비평적 분석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실천에서는 비판적 이성을 예수 그리스도 자신보다 더 높이 또는 적어도나란히 두는 것이며, 또 분명히 성경과 전통보다 더 높이 두는 것이다.  - P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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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우리는 현대 신학의 과업이 오늘날의 해방의 실천에 비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식적으로 비판적으로 숙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것이 우리의 방법론의 순서가 아니라면, (구티에레스의 정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라는 문구는 궁극적으로 내용 없이 공허하게 된다.)커크의 요점은 "올바른 실천은 궁극적으로 올바른 이론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 P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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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적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 똑같은 문제가 그것을 괴롭힌다. 즉복음이 성경 안에 깊이 박혀 있고 성경 전체는 영감되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음으로부터 교리를 유추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이 점은 판넨베르크가 성령이 성경의 권위의 근거라는 것을 부정할 때 특히 문제가 된다. 그는 성경의 권위의 기초를 성경 안에 있는 복음과 사도들이 성경을 썼다는 사실에 둔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지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 P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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