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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 ㅣ 사회비판총서 4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 엮음 / 사월의책 / 2016년 3월
평점 :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 사월의 책.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분명 성차별이 존재하고, 특히나 가부장제와 군대문화가 만연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그것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공부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문제라기보다는 페미니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가까웠다. 그것이 기존 질서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떤 주장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제 막 시작한 공부이다 보니 내가 뭘 잘 몰라서 그러겠거니 했다. 그래서 현대 페미니즘의 주장들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궁금했고, 그러한 주장의 뿌리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 책 <현대페미니즘의 테제들>은 나의 필요에 적합한 책이었다. 이 책은 ‘20세기 페미니즘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포함한 총 여덟 명의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의 삶과 연구 성과들, 주요 주장들, 그리고 그에 대한 의의와 비판적 평가까지 길지 않은 지면에 알차게 소개한다.
여기에 소개되는 사상가들 대부분 사르트르, 데리다, 푸코 등의 현대 철학자에 기반을 두고 각자의 페미니즘을 전개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 라캉, 콜버그 등의 쟁쟁한 학자들을 비판하며 그녀들의 이론을 정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철학이나 심리학 등에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나에게는 그녀들의 주장이 결코 만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들이 워낙 요약, 정리를 잘 해놓아서 그녀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녀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들에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질문들이나,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각 챕터의 제목들을 참 잘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각 제목들은 아래와 같다.
“시몬 드 보부아르 – 절대적 타자에서 실존적 인간으로!”
“뤼스 이리가레 – 성차의 존재론과 수평적 초월”
“샌드라 하딩 – 포스트모던 입장론의 변화와 한계”
“캐롤 길리건 – 정의 윤리를 넘어 돌봄 윤리로”
“엘렌 식수 – 여성적 글쓰기”
“아이리스 매리언 영 – 차이의 정치”
“주디스 버틀러 – 자연은 과연 얼마나 자연적인가?”
“깁슨-그레이엄 – 페미니즘과 차이의 정치 경제학”
제목만 보아도 위의 사상가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 말할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부분은 ‘당연한 것은 과연 당연한가?’라는 문제의식이다.
이 책에 소개 된 모든 사상가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질문한다. 나도 그렇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삶에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느끼고,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자꾸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니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주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자연스럽다고 느꼈던 것들이 인위적인 것들이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고, 게다가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억압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언어에 이르기까지, 남성 중심적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의도적으로 여성들을 배제하거나,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샌드라 하딩이 ‘과학 기술의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사회적 조건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과 캐롤 길리건이 기존의 ‘정의론’이라는 것도 결국엔 남성 중심적 사고,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길리건은 돌봄 윤리라는 것을 주장하는데, 적잖은 사람들이 돌봄과 같은 관계적 특성을 여성의 전유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길리건은 돌봄 윤리란 관계를 필요로 하고, 누구에게나 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 모두에게 존재하고, 필요한 보편 윤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 외에도 여러 주장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당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것이 ‘당연’이 아니라 ‘편견’ 혹은 ‘기획’이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그녀들은 하나 같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득권 남성과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타자’로 살아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여성들이 타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앞에서 지적하는 ‘당연’과 연결이 된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이 있었다면, 과학자들이 그러한 ‘당연’을 실험으로 확정했고, 정치, 경제체제가 그것을 모든 사람의 일상에 적용시키는 일을 감당했던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재미, 깨닫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는 앞으로도 익숙해지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기존의 질서-정치, 경제, 문화, 언어 등에 이르는 모든 질서에 어느 정도 기대며 살고,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데, 페미니즘을 말하려면 그러한 안락함과 유익들을 스스로 부정해야 할 때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덟 명의 사상가들을 통해 당연한 것에 질문하며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 책은 꽤나 유익했다. 생각에 틈이 생기고, 흔들리다보면 굳어져 있던 생활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보며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