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으로의 부르심 - 총체적 구원을 위한 선교적 교회론
대럴 L. 구더 지음, 허성식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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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 되어야 한다.” 참 멋진 말이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단에 속한 목사로서 동의하고, 공감하는 명제다. 그런데 실상 이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나 이 구호가 외쳐지는 교회들을 보면 금세 마음이 식어진다. 개인의 명예나 조직의 결속을 위해서만 외쳐질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부르심>의 저자 데럴 구더는 이러한 교회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집어낸다. “근본적으로 사도성은 선교적인 것이지 계보적인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내가 속한 교단과 교회들에게 적용해보자면 이렇게 바꿀 수 있겠다. 루터와 칼빈의 개혁 노선을 따른다는 것은 각 교회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개혁하며 선교적 교회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개인의 구원과 교회의 교리적 순수함을 지키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선교적 교회의 논의가 교회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진 작금의 교회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한다. ‘도대체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어진 상황들이 생겨났고, 그러한 상황 중에 성경과 신학들을 다시 검토해보니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은 분명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본질에서 벗어난 현재 교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교회론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것, 개인적인 구원의 메시지와 하나님 나라를 분리시키는 것, 먼저 구원을 베풀고 교인들의 구원 상태를 유지하는 기관으로 교회를 바꿔버린 것, 현대적인 맥락에서 대부분의 주요 교단들을 괴롭히는 전도와 사회정의의 양극화 같은 것이다

 

교회가 이런 모습들을 보이기까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소위 기독교 세계기간 동안 쌓여온 인식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후기 기독교시대로 접어든 이후 개인의 욕구 충족을 절대적 선으로 여기는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이러한 교회의 인식과 태도는 구원을 개인의 유익으로, 교회를 교회 멤버십들의 유익을 보존하고 증진하는 기구 정도로, 종말의 모습을 구원 받은 사람들이 영원히 거할 장소적인 차원으로 환원시켜버렸다.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등....신학의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게토화된 교회를 지탱 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저자는 칼 바르트, 데이비드 보쉬, 레슬리 뉴비긴과 같은 저명한 학자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환원주의를 극복하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교회를 부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선교적인 속성을 가지고 계시기에 본질적으로 선교적일 수밖에 없다. 구원 역시 칭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화와 소명으로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만약 개인의 구원과 교회의 본질을 선교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성도와 교회는 선교적 교회로서의 삶의 방식, 즉 복음에 합당한 삶을 자신들의 존재 방식으로 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급진적 타자성에 헌신하는 것이다.

 

<증인으로 부르심>은 위의 내용을 기본으로 교회는 선교를 (간간히) 하는 모임이 아닌, 선교적인 삶을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을 선교 신학, 기독론, 교회론, 성경, 리더십에 걸쳐 폭넓게, 깊이 있게 논한다. 이를 통하여 교회가 왜 지금의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지, 개혁 교회는 왜 계속해서 개혁하며 선교적 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튼튼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해준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은 지금 교회의 모습을 선교적 교회로 이동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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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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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이 책의 표지 문구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 문구를 다시 보니 함축적이기 보다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가벼워보였다. 왜냐하면 그 문구가 죽음의 의미를 알고자 분투했던 저자의 삶을 드러내기에 너무나 부족해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음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문학을 전공했고, 그것을 가까이서 경험하고자 의사가 되었고, 의사가 되어서는 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물론 그 무게를 견딜 수 없는 무력함 앞에 겸손히 자신의 연약함과 악함을 끊임없이 반성한다. 뿐만 아니라 결국엔 자신의 죽음을 목도 하며 아내와 딸, 그리고 자신에게 끝가지 충실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 깊은 숨을 내쉬며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요에 의해서 이 책을 샀고, 읽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목사이다 보니 주변의 성도들, 특히 죽음을 앞에 달고 살아가는 환우들을 조금이라도 공감해보려고 책을 집어 읽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필요에 의해서 읽다가 저자가 자신의 업에 최선을 다하며 점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는 모습에 깊이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암으로 곧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저자와 아내(역시 의사)가 아이를 낳은 이야기, 저자가 다시 수술을 할 수 있기 위하여 부부가 함께 치열하게 투병 생활을 하고 어느 정도는 이기기도 했던 이야기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바로 그러한 삶에 의미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이 책은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면서 급하게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어설프게 마무리 된 이야기를 아내 루시가 마무리를 한다. 누구보다, 어쩌면 죽은 남편 보다 더욱 괴로웠을 수도 있었던 루시 칼라니티는 놀랍게도 이런 고백을 한다.

 

나는 폴이 세상을 떠나면 내 인생에는 오로지 공허와 슬픔만 남을 줄 알았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또 끔찍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를 못 이겨 때로 몸을 떨며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큰 사랑과 감사를 계속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 나가는 것이다.....이렇게 내 사랑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고백을 읽는데 다시 책의 표지 문구가 그리고 제목과 함께 생각이 났다.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죽음의 의미를 알고 싶어 자신에게 충실하며 환자들과 딸과 아내를 사랑했던 폴, 그의 숨은 끝이 난 것 같지 않았다. 죽음을 피하지 않고 자신이 죽기까지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려 했던 저자의 삶은 오히려 가족들과 독자들에게 큰 흔적을 남긴 것 같았다.

 

필요에 의해 샀던 이 책은 결국 어떤 책보다 내 필요를 채워 줬다. 말 같지도 않은 목사의 설교를 참아주며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는 성도들은 얼마나 귀하고, 그저 보기만 해도 날 웃게 만드는 아이들은 얼마나 귀하고, 언제나 못미더운 나를 편들어 주며 응원해주는 아내는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고, 감동하게 했으니 말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고 비슷한 감동을 함께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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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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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2년 사이, 페미니즘에 대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대선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겠지만, 선거철에 페미니즘 관련하여 저마다 앞 다퉈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차별에 대한 문제인식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분명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성차별에 대한 문제인식을 표현하는 것은 괜찮지만 너 페미니스트야?” 라는 질문에는 움찔하는 상황이 여전히 많은데, 이러한 장면이 질문하는 사람이나, 질문을 받고 움찔하는 사람 모두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페미니즘 책모임을 시작하기 전 몇몇 친구들로부터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욕인 줄 알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책모임을 시작한 뒤에 몇몇 사람들은 그저 책만 읽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런 모임을 갖는 것이 너무 공격적이지 않냐는 푸념을 늘어놓거나, “역차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냥 몇몇이 모여 책을 읽기 시작한 것뿐인데 우리는 공격적인사람들이 된 것이고, ‘역차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도 이러한 상황을 지적한다.

 

대개 사람들은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16)

 

페미니스트하면 남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거나, ‘페미니즘하면 무슨 주체사상인 것처럼 낙인을 찍는 경우들이 있는데, 정말 막연한 오해이고 지나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저자의 말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보니 페미니즘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고, 오해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켜켜이 쌓여 있던 무관심과 오해들을 들춰내면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18)이었고 페미니스트는 남자든, 여자든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이었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은 온통 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였고, 우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이 남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성차별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성차별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은 남자만이 아닌 것이다. 일례로 저자는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지적하며,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힘으로 지배하려는 생각과 행동들, 즉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와 행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적 사고와 행동을 익히기 위하여 의지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45) 내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놀랐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막연하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남성들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여성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가부장적인 문화와 그에 따른 악한 습관들은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우리 생활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하늘에 덮인 것처럼 심한 경우에는 그것이 눈에 보여 마스크를 써야 할 때도 있고, 조금 덜 하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가 먹고, 잠자고, 일하는 모든 곳에서 얼마나 많은 성차별적인 사고들과 행동들이 있고, 그것이 왜 나쁘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저자는 그리 많지 않은 지면을 통해서 몸, 외모, 계급, , 폭력, 육아, 결혼 등의 주제를 페미니즘과 연관하여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얼마나 적실하고, 긴급하게 필요한 것인지를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이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진정한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인지와 포용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에, 사랑이 인정과 애정, 책임감, 헌신, 그리고 지식을 모두 품어야 한다는 사실에 수긍한다면 정의 없이 사랑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236)

 

정말 맞는 얘기 아닌가?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때면 꼭 이런 이야기들을 듣곤 했다. “난 여자 좋아하는데?”, “난 여자들한테 잘해주는데?” 사실 나도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성차별적인 사고와 행동들에 둘러싸여 있는지 모른다. 내 주변에는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목사로서 부탁드린다. 우리 같이 공부 좀 하자. 그리고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어렵지도 않고 재미도 있으니 그렇게 공부할 때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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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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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우석훈. 다산 4.0

 

생태 경제학자,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우석훈이 이번에는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라는 책을 냈다. 책 표지에는 우석훈의 희망 육아 경제학이라고 그럴듯하게 썼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석훈의 육아 일기란 말이 훨씬 어울리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별 볼일 없다는 건 아니고 기대했던 우리나라 육아 현실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라든지, 현실 지표들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겠지만, 다 읽고 나니 저자의 글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고, 가끔씩 날리는 한 방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숫자와 노골적인 비판이 적을 뿐, 그것을 저자가 경험한 다른 나라들의 육아 현실과 본인이 두 아들의 아빠 노릇을 하면서 겪은 많은 일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특히 육아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상식을 벗어나 있는 일들이 많은지를 말한다.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서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괴로운 현실이 열리는 한국의 육아를 말한다. 한국에서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은 천국문과 지옥문을 동시에 여는 것과 같다면서 아빠가 좀 더 아기를 돌보면 천국문에 가까워질 수 있고, 정부가 좀 더 친절해지면 천국문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둘 다 쉽지 않은 지금의 우리 상황뿐 아니라 앞으로도 (정권이 바뀌더라도) 크게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한다.

 

part 2. 만만히 볼 수 없는 초보아빠에서는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순간, 임신 기간에 받는 각종 검사들, 산후조리원과 백일 정도가 지나면 복직을 해야 하는 엄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돈을 남들만큼 충분히 쓰지 않고서는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육아 현실이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에 필요한 무수한 단계들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지우는 현재의 구조는 정말 엄마와 아빠들의 마음을 너무나 비참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아이의 백일을 마음 놓고 축하할 수 없는 현실을 두고 했던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육아휴직을) 1년도 보장해 주는 직장도 얼마 없다. 그나마도 비정규직인 경우에는 진짜로 그림의 떡이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경우인지 모르겠다....백일을 마음 놓고 축하할 수 있는 세상, 우리는 거기 도달하기엔 아직 멀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아이를 집에 두고 울면서 떠나는 날, 그게 백일이다.”

 

‘part 3. 유모차를 고르는 경제학자에서는 구조적인 부분보다는 잘못된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 즉 엄마와 아빠들에게 마케팅이 시키는 대로 지나치게 소비하지 말 것을 권하고 육아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에 각 때마다 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한다. 그중에서도 유모차를 실용적이지도 않은 고가의 브랜드를 사는 몇몇 사례를 들면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과시하고자 하는 문화에 젖어 있는데, 육아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저자는 여기에서도 육아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라의 책임이라는 것을 빼놓진 않는다.

 

part 4. 아이가 자란다, 아빠도 자란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자녀들을 3~5세까지 될 때 까지 어떻게 놀아주고, 어떤 것들을 가르쳤는지 이야기해준다. 요즘 들어 무료로 갈 수 있는 박물관이나 과학관들이 늘었다는 tip들을 알려준다. 그러나 여전히 집 주변에는 온통 돈을 쓰지 않고서는 사용할 수 없는 상권이 장악하고 있다. 아이들과 있다 보면 지갑에 현금이 남아날 틈이 없고, 카드 사용 문자가 수시로 올 수밖에 없다.

 

part 5 평생 가는 생존체력 기르기에서 저자는 우리나라 어린이집과 유치원, 특히 영어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웬만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현실은 참 괴롭기만 하다. 게다가 부모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이들을 더 좋은 교육시설로 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자본주도형 학습에 시달리며 학대를 당한다.

 

저자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결국엔 자신과 아내가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야 했다는 이야길 한다.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기까지 그야말로 한 가정에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할 일이 많고, 아이들에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나라가 책임질 순 없겠지만 정부에서 이러한 현실을 방조하거나, 더욱 악화 시키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세 아이의 아빠로서 공감이 가는 내용이 정말 많았다. 큰 아이는 올 해 벌써 학교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7년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내가 참 많이 고생했다. 앞으로 둘째, 셋째도 큰 아이가 지나간 길을 가야 하는데 첫째 때는 몰라서 잘 못해준 것들을 두 아이들에게는 더 잘해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인지 책을 보면서 현실은 괴롭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웃는다는 저자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육아경제학이라는 타이틀이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육아 경험과 자신의 오랜 관찰과 연구를 토대로 가끔 우리의 현실을 꼬집어 준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들을 잘 키워보자고 격려한다. <88만원 세대>, <솔로 계급의 경제학>등의 책에서 우석훈은 사람들을 그저 관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감하려고 애쓴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번 책에서도 그러한 저자의 강점은 여전했다. 육아로 지친 엄마, 아빠라면 남의 육아일기 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결코 가벼울 수는 없기에 우리 자녀들 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과 다음 세대가 계속해서 태어나고 자라나야 할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기도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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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복음이다
톰 라이트 지음, 백지윤 옮김 / IVP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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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하여 쓰되 복음에 대한 적잖은 편견을 집어내고, 핵심을 놓치지 않고 기술하되 창조세계의 회복이라는 큰 그림안에서 그렇게 한다. 교회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복음을 강조하면서도 그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한 개인이 천국에서 하프를 튕길수 있게 해준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데, 이 책이 그러한 수준을 업시키는데 도움이 될것 같다. 이전에 톰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보다 간결하면서도 핵심만 잘 다뤄서 부담없이 읽을수 있는 것도 장점이랄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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