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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3월
평점 :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기시미 이치로. 인플루엔셜
인생은 당혹스러움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연로한 권사님 한 분이 감기로 2-3주일 넘게 고생하셨다. 겨우 몸을 회복하셨는지 일요일 아침 늘 오던 시간, 늘 앉던 자리에 와서 앉아 기도하고 계셨다. 옆에서 한 젊은 집사님께서 몇 주만에 나오신 권사님이 반가웠는지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권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셨다. “권사님~ 이제 몸이 좀 나아지셨어요? 얼굴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권사님 건강하세요~” 조금 떨어져 있던 내가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맑고, 밝은 인사였다. 인사를 받은 권사님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그 집사님의 손을 잡으시며 웃으며 이야길 시작하셨다. 그런데 금세 웃으며 시작했던 이야기는 엉엉 울음으로 바뀌었다. 앞에 있던 집사님도, 조금 옆에 서 있던 나도 당황스러웠다. 조금 기다려 들어보니 그저 감기가 걸렸을 뿐인데, 그 시간 동안 소화도 잘 안되고, 먹을 수가 없으니 살이 빠지고, 그러면서 체력이 급격하게 빠지는 자신을 보면서 너무 무서웠다는 얘기였다. “누가 그러는데 이게 다 죽을 연습을 하는 거래.” 라고 말씀하시며 엉엉 우셨고, 말을 더 잇지 못하셨다.
80이 넘은 인생을 살아오신 분, 늘 기도하시면서 교회의 기둥과 같이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 오셨던 분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삶의 모든 역경, 고난을 지나며 몸은 비록 쇠약해지더라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굳건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유지하실 것만 같았는데 그렇게 마음이 약해져 우시는 모습을 보니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그 권사님도 그런 자신을 보시면서 슬픔과 두려움을 넘어 당혹스러우시지 않았을까?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자녀들은 또 얼마나 마음이 놀랬을까?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의 저자 기미 이치로 역시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치매에 걸렸던 아버지 때문에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젊다고 할 수 있는 49세 때에 뇌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80이 넘어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저자는 대학원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한 달을 넘게 모든 것을 멈추고 병원에서 간병을 해야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간병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철학도로서 인생의 의미를 붙잡고 살았는데,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죽음은 그 생각에 깊이를 더했을 것이다. 시간이 30년이 흘러 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저자는 어머니를 일찍 보냈고, 미리 죽음,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기에 그런 상황을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방금 전에 식사를 하셨으면서 금세 “왜 밥을 주지 않냐”고 물으시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수시로 무너졌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점점 기억을 잃으시고, 잠이 늘어가는 아버지를 곁에서 지키며 자신이 느낀 당혹스러움과 그렇게 느낀 당혹스러움을 통해 인생이 서로를,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없는 상태인지를 성찰한다.
이러한 내용 중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인생을 효율성을 따지고, 생산성을 따지며 살았는지를 반성하는 내용들은 깊이 새겨들을 만 했다.
“치매를 앓는 부모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자식이 먼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생산성으로 부모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그저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생산성으로만 가치를 측정하는 이 사회가 낳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연 효율적으로 살고 효율적으로 죽을 필요가 있는 걸까요? 때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시간을 잊고 놀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꽤나 먼 곳까지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나는 아직 40도 안 되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아직도 나와 가족들의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창창한’때다. 모든 것에 돈으로 가치를 매기면서 효율성, 생산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한참 그러한 것에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시기를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것조차도 나의 일정과 상황에 따라 정해지고, 헤어지는 것도 그렇게 된다. 이번 명절에도 그럴 것이다. 며칠 뒤에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으니 명절에는 어느 정도 선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어느 정도 에너지를 쏟고, 적당한 때가 되면 인사를 하고 나오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번 명절에는 단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만 이라도 우리 부모님, 그리고 장인, 장모님과 늘 반복하던 명절의 스케줄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많이 보내고,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 말이다. 비록 잠간일지라도 사랑하는 부모님과 정해진 일상의 패턴을 조금이나마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을지도....
<미움 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부모님을 간병하며 어쩔 수 없이 직면하고 관조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연약한 모습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썼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누구도 저자가 맞이한 순간들에 마주했던 당혹스러움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마주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