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지평 -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
앤터니 티슬턴 지음, 박규태 옮김 / IVP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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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평>, 이 책을 꽤나 오래 읽었다. 읽다가 머리가 아파서 다른 책들로 외유를 몇번이나 오갔는지..ㅎㅎ 철학적 해석학을 다루는데 나에게 철학개념, 용어들이 너무 낯선 탓이었던것 같다. (특히 하이데거...ㅠㅠ 너무 모르겠어서 서점에 가서 <존재의 시간>을 잠시 살폈고, 역자의 말을 읽으면서 존재의 시간은 아직 독일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난해하다는 말에 잠시나마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가다머, 비트겐슈타인, 불트만.. 누구하나 쉽진 않았다!)

그래도 저자가 책 중간중간 대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평가들을 지속적으로 해주기 때문에 ˝해석자의 전이해를 비판적으로 확장해야 본문과 독자의 두지평을 융합할 수 있고, 본문이 말하는 바를 좀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책의 논지를 따라잡을 순 있었다.

아래 사진은 옮긴이의 말인데 책의 논지를 잘 표현할 뿐 아니라 은혜롭기까지 했다. ˝...해석의 출발점이 바로 이런 겸손임을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아멘할뻔 했다.

이 분 책들이 좀 더 읽으라고 책장에 대기중인데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봐야겠다. 티슬턴하고 친해지려면 시간 좀 더 걸릴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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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양장) -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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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스탠리하우어워스. IVP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읽는다는 건 참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다. 수년 전 <유진피터슨>이란 책이 그러했다. 유진 피터슨의의 책들을 즐겨 봤는데, 그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목회자로서, 기독교 작가로서 ‘현실에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어떤 과정들을 거쳤는지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읽은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한나의 아이>는 이러한 측면에서는 반대였다.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책들을 전혀 접하지 못한 채 그의 회고록부터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지금까지 스탠리하우어워스를 몰랐지? 왜 그의 책을 읽지 않았을까?”였고, 다음에 한 행동은 국내에 소개된 몇 권 안 되는 그의 책들과 그에 관한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저자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책 전반에 걸쳐 크게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는데 하나는 그의 지적 여정이었고, 하나는 인생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젊어서부터 키르케고르를 그의 지적 스승으로 모시며 매일 그를 읽었다는 부분, 기독교 윤리학자로서 라인홀드 니버에서 존 요더의 사상으로 옮겨가며 비폭력 평화주의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하는 과정,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읽고 쓰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까지....내가 속한 보수 기독교회들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어서 조금은 낯설었다.(덕분에 장바구니엔 책들이 무수히 늘어났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기독교 윤리’는 보수적인 교회들이 현실 세계와 점점 동떨어지고 있고, 기독교인들의 언어가 점점 허공을 가른다는 나의 문제의식을 자극했다.
평생을 읽고 쓰는 것에 시간을 바친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과연 가족과 친구들과의 사생활이 있었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능력치가 부족한 나의 생각일 뿐, 저자에게는 누구보다 힘들었던 결혼 생활, 끈끈한 아들과의 관계, 끊임없이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고 발전시킬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결혼에 있어서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그의 말은 내게 익숙한 보수적인 표현이었는데, 그것을 실제로 감당했다는 건 단지 보수, 진보로 평가하기보다는 실로 위대해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엄청나게 읽고 왕성하게 쓸 수 있는 저자의 능력이 있었겠지만, 그러한 능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빛나게 했던 것은 친구들을 향한 그의 겸손한 태도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배울 것이 많은 새로운 동료들이 있었다. 나는 스펀지처럼 주위의 물을 다 빨아들인다.(343)

이 외에도 학살 앞에 침묵했던 기독교에 대한 비판, 신정론을 반대한다는 주장, 사회 속 개인의 가치,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경제 논리에 휘둘리는 교회를 향하여 말씀과 성례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저자의 강한 권면 등은 목회자로서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이렇게 글을 잘 재미있게 잘 쓰고, 지적으로 성실하면서도 충분한 결과를 냈던 신학자인데, 글들이 더 많이 소개되면 좋겠다. 명절 연휴 동안 <한나의 아이> 때문에 공부에 대해 자극 받고, 성도로서 겸손한 삶에 대해 도전받고, 목회자로서 교회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썼던 것처럼 그의 책들이 더 많이 소개 되어서 그의 사유를 좀 더 따라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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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양장) -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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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태껏 스탠리하우어워스를 몰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고 배울게 많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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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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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기시미 이치로. 인플루엔셜

 

인생은 당혹스러움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연로한 권사님 한 분이 감기로 2-3주일 넘게 고생하셨다. 겨우 몸을 회복하셨는지 일요일 아침 늘 오던 시간, 늘 앉던 자리에 와서 앉아 기도하고 계셨다. 옆에서 한 젊은 집사님께서 몇 주만에 나오신 권사님이 반가웠는지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권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셨다. “권사님~ 이제 몸이 좀 나아지셨어요? 얼굴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권사님 건강하세요~” 조금 떨어져 있던 내가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맑고, 밝은 인사였다. 인사를 받은 권사님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그 집사님의 손을 잡으시며 웃으며 이야길 시작하셨다. 그런데 금세 웃으며 시작했던 이야기는 엉엉 울음으로 바뀌었다. 앞에 있던 집사님도, 조금 옆에 서 있던 나도 당황스러웠다. 조금 기다려 들어보니 그저 감기가 걸렸을 뿐인데, 그 시간 동안 소화도 잘 안되고, 먹을 수가 없으니 살이 빠지고, 그러면서 체력이 급격하게 빠지는 자신을 보면서 너무 무서웠다는 얘기였다. “누가 그러는데 이게 다 죽을 연습을 하는 거래.” 라고 말씀하시며 엉엉 우셨고, 말을 더 잇지 못하셨다.

 

80이 넘은 인생을 살아오신 분, 늘 기도하시면서 교회의 기둥과 같이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 오셨던 분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삶의 모든 역경, 고난을 지나며 몸은 비록 쇠약해지더라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굳건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유지하실 것만 같았는데 그렇게 마음이 약해져 우시는 모습을 보니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그 권사님도 그런 자신을 보시면서 슬픔과 두려움을 넘어 당혹스러우시지 않았을까?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자녀들은 또 얼마나 마음이 놀랬을까?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의 저자 기미 이치로 역시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치매에 걸렸던 아버지 때문에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젊다고 할 수 있는 49세 때에 뇌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80이 넘어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저자는 대학원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한 달을 넘게 모든 것을 멈추고 병원에서 간병을 해야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간병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철학도로서 인생의 의미를 붙잡고 살았는데,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죽음은 그 생각에 깊이를 더했을 것이다. 시간이 30년이 흘러 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저자는 어머니를 일찍 보냈고, 미리 죽음,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기에 그런 상황을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방금 전에 식사를 하셨으면서 금세 왜 밥을 주지 않냐고 물으시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수시로 무너졌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점점 기억을 잃으시고, 잠이 늘어가는 아버지를 곁에서 지키며 자신이 느낀 당혹스러움과 그렇게 느낀 당혹스러움을 통해 인생이 서로를,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없는 상태인지를 성찰한다.

 

이러한 내용 중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인생을 효율성을 따지고, 생산성을 따지며 살았는지를 반성하는 내용들은 깊이 새겨들을 만 했다.

 

치매를 앓는 부모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자식이 먼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생산성으로 부모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그저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생산성으로만 가치를 측정하는 이 사회가 낳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연 효율적으로 살고 효율적으로 죽을 필요가 있는 걸까요? 때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시간을 잊고 놀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꽤나 먼 곳까지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나는 아직 40도 안 되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아직도 나와 가족들의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창창한때다. 모든 것에 돈으로 가치를 매기면서 효율성, 생산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한참 그러한 것에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시기를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것조차도 나의 일정과 상황에 따라 정해지고, 헤어지는 것도 그렇게 된다. 이번 명절에도 그럴 것이다. 며칠 뒤에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으니 명절에는 어느 정도 선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어느 정도 에너지를 쏟고, 적당한 때가 되면 인사를 하고 나오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번 명절에는 단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만 이라도 우리 부모님, 그리고 장인, 장모님과 늘 반복하던 명절의 스케줄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많이 보내고,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 말이다. 비록 잠간일지라도 사랑하는 부모님과 정해진 일상의 패턴을 조금이나마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을지도....

 

<미움 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부모님을 간병하며 어쩔 수 없이 직면하고 관조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연약한 모습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썼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누구도 저자가 맞이한 순간들에 마주했던 당혹스러움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마주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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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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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부키. 카트리네 마르살

 

이 책은 눈에 뛰는 표지와 통통 튀는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강력한 보라색에, 살짝 비꼬는 듯한 질문의 제목, 거기에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라는 부제까지. 페미니즘과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정도의 매력만으로도 한 번쯤을 손이 갈 법한 책이다. 물론 페미니즘과 경제학이라는 주제가 사람들에게 책을 사서 읽을 정도로 어필할만한 것인지는 갸우뚱하지만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페미니즘, 경제학에 약간의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경제학 비판서라고 해서 책을 읽기가 머뭇거려졌다. 페미니즘도 잘 모르고, 경제학도 잘 모르는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책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저자는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의 편집주간으로서 페미니즘과 경제학에 관한 기사를 쓰고 몇 권의 책을 냈는데, 이 책도 역시 10여 편의 대중적인 칼럼 정도를 모아 놓은 듯 했다. 전문적인 이론들을 나열하거나,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 특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성과 경제와 관련하여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만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돋우는 수준에서 재미있게 글을 썼다.

 

책 전체의 주제는 단순하다.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고전이나 현대의)경제학을 바라봤을 때, 전제가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것. 특히 경제학이라면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어야 하는데, 인간의 절반인 여성 정확히 말하면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거의 모든 활동을 배제한 체 이론을 다룬다는 것을 꼬집는다. 16편의 장들로 구성이 되어 있고 이를 통해 아담 스미스, 케인스와 같은 천재 경제학자들,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현대 금융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까지 폭넓게 언급하며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학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점이 많고, 차별적이고, 심지어 도박에 가까운지를 쉽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경제학을 얼마나 우상처럼 떠받들고 있는지, 반대로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는지를 마치 복싱에서 잽을 날리듯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비판한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의 강점이기도 한 쉽고, 유쾌한 점으로부터 비롯한다. 페미니즘이나 경제학 이론을 잘 모르더라도 이 주제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엇이 잘못되어있는지를 쉽고, 재미있게 쓰려다 보니 설득력이 충분하지는 않다. 비판하는 인물이나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부족하고, 비판 받는 지점을 살짝 언급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조금 비뚤게 보면 저자가 페미니즘 이론으로 경제학 전체를 무시하는 것처럼 책이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이 전혀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생각해 볼만한 유의미한 꺼리들을 던져준다. 돌봄이라는 노동에 대해서 경제적 가치를 여전히 합당하게 부여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 경제학이 역사 내내 주로 가진 자들을 위해서 작동해왔고 지금도 그렇다는 점, 경제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추상화 되면서 일반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학문이어야 하는 경제학이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점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비판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제시하면서 대중들로 하여금 종교가 되어버린 주류 경제학에 페미니즘적 시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어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우리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문제가 어떤 것인지 정도의 방향 정도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페미니즘, 경제학 둘 다 몰라도 이 책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재미있게 말이다. 그러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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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9-22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도서관에서 제목 떄문에 집어들었다가
저널리스트가 쓴 페미니즘 에세이인가 하고 내려놓았는데 님의 리뷰 읽으니 다시 빌리러 가야겠네요

좋음 2017-09-22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리어렵지 않고 쉬워요.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경제학 다시보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