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트만이 원한 것은 겉껍질(신화, 초자연적인 것)을 벗겨 내고 그 속의 알맹이 (영원한 본질)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기획을 가리키는 독일어 단어(Entmythologizierung)는 안타깝게도 영어로는 "비신화화"(demythologizing)라는 말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 독일어는 벗겨 내는 것또는 버리는 것을 함축하지 않으며, 신화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신화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의 해석을 암시한다.
만약 불트만이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였다면 아마도 그의 논문에 대한반응이 그렇게 신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르트와 브루너에의해 시작된 상대적으로 새로운 변증법 신학, 신정통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들은 성경 안의 모든 기적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초자연적인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불트만의 논문은 모든 문자주의에 대한 선전포고로 보였고,
그의 비판자들 다수는 그가 모든 초자연적인 것을 신화로 거부하면서 어떻게 성경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할 수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불트만이 거부한 것은 초자연적인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문자적 해석이었다. 불트만은 현대 세계의 어떤 사람이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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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가 자신의 신학을 의심하고 떠나게 된 계기가 눈에 띈다. 이런 경우는 종종 보는것 같은데, 바르트가 신학 자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것은 신학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실망으로부터였다.


성명서에는 그의 신학적 스승들 대부분의 이름이 있었고, 특히 거기에 포함된하르낙은 프랑스, 러시아, 영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하는 황제의 연설문을 작성했다. 젊은 목사이자 신학자인 바르트는 너무나 낙담해서, 자신이교육받은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종자들이그렇게 악하고 무의미한 전쟁을 지지하도록 허락한 신학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을 비롯한 여러 이유에서, 바르트는 다른 많은유럽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울한 덴마크인 키르케고르의 변증법 철학과 신학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키르케고르를 지배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하나님과 너무 가깝게 동일시해 왔다. 미국 신학자 한 사람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다(하나님)와 만(灣, 인간)과 같은것으로 기술했다. 바르트는 신학에서 헤겔의 망령을 영원히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헤겔과 그 사상의 영감을 받은 신학에 과감히 맞섰던키르케고르가 바로 그 퇴마사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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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본적으로 정통 기독교 교리들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쟁점은 믿음의 방식과 대상이다. 정통 신앙은 교리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기서는 특정한 교리들을 믿으면 그리스도인이 된다. 계몽주의적 자연 종교 및 칸트와 헤겔은 바른 믿음(이것이 정확히 무엇이든)에 이르는 길을 합리적 객관성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모험이나 열정적 내향성이 아니라 냉정하고 초연한 합리성이다. 키르케고르의요점은, 물질과학의 경우에 사람이 연구 대상에 무관심할 수 있지만, 영적삶의 경우에 무관심한 채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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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에릭 피터슨 외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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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에릭 피터슨, 유진 피터슨. 복있는 사람

유진 피터슨 목사님. 20대부터 그의 책을 좋아했다. 성경을 재미있게 풀어주는 그의 솜씨가 좋았고,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그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어떻게든 잘 가르쳐보려는 그의 목회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의 목회의 열매라 할 수 있는 메시지 성경과 자전적인 책 <유진 피터슨>,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그의 설교집을 통해 그의 목회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기대도 비슷했다. 사랑하는 아들, 그것도 목회를 감당하는 목사 아들에게 30년이 넘는 목회의 경험과 그에 못지않은 작가의 경험을 살려 자기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꾹꾹 눌러 쓰지 않았겠는가? 역시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10년을 넘게 그의 책들을 보며 감동하였던 내용이 서른일곱 편의 편지들에 잘 요약되어 있었다. 책장을 열자마자 밑줄을 쳤고, 포스트 잇을 붙였다.

이 편지들에서 유진 피터슨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단연 인격적인 목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를 목회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은데,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는 교회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목회는 그야말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일이라 적당한 모범을 찾기도 어렵다. (아마도...그렇다보니) 목회를 한 편의 감동적인 설교로 치환하거나,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감동시키는 방법으로 목회를 하고자 하는 유혹도 많다.

편지글이다 보니 원리적인 이야기만 있지 않다. 아들이 목회 현장에서 잘하고 있는 점들을 칭찬해주고, 유진 피터슨이 경험하는 목사들의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도 나온다. 특히나 성도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은 목사들, 말을 너무나 가볍게 쓰거나 사람을 그저 도구 다루듯 이용하는 목사들을 매섭게 비판한다.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냉소, 냉담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들을 칭찬하는 이야기가 반복되다 보니 칭찬이 과하다 싶기도 하고...ㅎㅎ (옆에 있었으면 아들 자랑했으니 만 원 내라고 할 뻔ㅋㅋ)

무엇보다 목회 현장을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짠하기도 했다. 나야 아직 부교역자 생활만 10년이라 그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어도 목회가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는 알기에 위로가 되기도 했고, 사명감이 좀 더 느껴지기도 하고 그랬다.

유진 피터슨의 글에 익순한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그의 다른 책에서 보았던 내용의 반복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목회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조언이 담겨 있기에 이 책이 갖는 독특한 매력과 유익이 있다. 역시나 유진피터슨, 추천한다.

덧. 이 책을 읽으려 하는데 두사람이나 뭐라했다. 당신 젊지 않아...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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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어떤 이름이 붙건 교회니까. 똥더미지. 장로교 똥과 가톨릭 똥은 서로 소똥과 말똥만큼이나 다르다. 그러나 너와 내가 다 알다시피, 그 똥더미에는 보물이 들어 있어. 하지만 보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구나. 그들이 너무 빨리 포기한 걸까, 엉뚱한 것을 찾고 있는 걸까?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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