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가 자신의 신학을 의심하고 떠나게 된 계기가 눈에 띈다. 이런 경우는 종종 보는것 같은데, 바르트가 신학 자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것은 신학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실망으로부터였다.


성명서에는 그의 신학적 스승들 대부분의 이름이 있었고, 특히 거기에 포함된하르낙은 프랑스, 러시아, 영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하는 황제의 연설문을 작성했다. 젊은 목사이자 신학자인 바르트는 너무나 낙담해서, 자신이교육받은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종자들이그렇게 악하고 무의미한 전쟁을 지지하도록 허락한 신학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을 비롯한 여러 이유에서, 바르트는 다른 많은유럽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울한 덴마크인 키르케고르의 변증법 철학과 신학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키르케고르를 지배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하나님과 너무 가깝게 동일시해 왔다. 미국 신학자 한 사람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다(하나님)와 만(灣, 인간)과 같은것으로 기술했다. 바르트는 신학에서 헤겔의 망령을 영원히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헤겔과 그 사상의 영감을 받은 신학에 과감히 맞섰던키르케고르가 바로 그 퇴마사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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