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윤리적 비전
리처드 B. 헤이스 지음, 유승원 옮김 / IVP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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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교회 공동체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책으로부터 윤리적 지침을 얻어서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를 위하여 일관적인 해석과 적용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는데, 저자는 특히 신약성경을 읽고, 거기에서 윤리적 판단을 얻기까지를 일관성 있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학문적 틀을 가능한 분명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을 위해 서술과제(각각의 본문을 성급하게 조화시키는 것이 아닌, 본문 자체와 성경 각권 안에서의 본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상세하게 밝히는 일)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후에 본문이 정경이라는 전체 성경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다른 지침을 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구절들과 어떻게 통일성을 찾아내는 종합의 과제를 거쳐서 현실과 다리를 놓는 해석의 과제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본문에서 끌어낸 윤리적 지침을 은유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실천과제는 책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신약 윤리학의 열매이기도 하다.

리처드 헤이스는 자신이 제시한 네 가지 과제를 따라서 바울 서신, 네 개의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 성경을 각 권별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가능한 본문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종합하고, 해석하는데, 여기에서 신약이 제시하는 초점 이미지라고 하면서 중요한 세 가지 은유를 제안한다. 그것은 ‘공동체‘와 ‘십자가‘, ‘새 창조‘이다. 순서가 중요한데, 언약 백성을 형성하는 하나님의 오랜 계획이 신약 성경에서 구체화 되며, 교회 공동체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 가며 새 창조를 경험하고, 완전한 구속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하여 20세기를 대표할만한 기독교 윤리학자인 니버, 바르트, 요더, 하우어워스, 피오렌자 등을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윤리적인 이슈들(정당방위를 위한 폭력, 이혼과 재혼, 동성애, 인종 갈등, 낙태)에 대해 신약이 말하는 윤리적 비전에 근거하여 저자의 주장을 내어 놓는다.

책이 워낙 두껍지만, 그만큼 유익하다.(그렇지 않은 책들도 많지 않은가? ^^) 신약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주제를 세 가지 초점 이미지로 요약하여 제시하는 부분이 탁월하고, 20세기를 대표할만한 서구의 기독교 윤리학자들을 판단하는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물론 신약의 관점에서. 굳이 신약의 관점에서 보자면 요더나 피오렌자의 작업이 탄탄하고, 니버 같은 경우엔 주해가 거의 없다고 비판하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헤이스의 평가들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이 부분만 따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이외에도 현대인이 자주 부딪히는 윤리적 과제에 대해 신약이 무엇이라 말하는지, 앞에서 주장한 바를 근거로 판단한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기에 최신의 윤리 이슈들을 다루지는 않지만, 최신의 과제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좋은 샘플이 될 수 있다. 신약이 무얼 말하는지, 그것을 현대의 윤리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을 세밀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몇 번이나 봐야 하는 신약 윤리학의 교과서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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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바울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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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세윤 교수의 논문집이다. 30년 넘은 오래된 책이기에 정치참여와 같은 논쟁적인 적용 부분은 러프하거나, 나이브하다 볼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자기인식과 성전시위를 구약의 시편, 다니엘, 스가랴서로부터 이끌어내는 과정은 탄탄해보이고 여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으로 다가온다. 특히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 예수님의 말씀을 직, 간접적으로 인용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인용했는지를 잘 살피면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건전하면서도 중요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김세윤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거나, 복음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정도만 읽었다면 그 다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예수님의 세례와 시험,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실존, 예수와 성전, 바울의 복음의 기원 등 총 12편, 부록까지 13편의 소논문을 모아 놓았는데, 비슷한 내용이 다소 겹치기도 한다. 저자가 펼치는 주장의 중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메시아 인식과 성전 시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하도록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는 인식, 즉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이것은 사무엘하 7장의 나단의 신탁을 넘어 선지서와 시편에서 메시아를 전망하는 모든 말씀들을 자신의 것이라 인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고 계셨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성전에서 시위하신 것이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유대 당국자들은 예수님의 성전시위가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주장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새로 짓겠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예수님께서 새 성전을 짓겠다고 하신 것은 건물이 아닌 자신이 다스릴 새로운 백성, 새로운 공동체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미래적인 관점만 있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하여 실재가 되고 있다고 선언하셨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를) ‘온다‘, ‘주신다‘, ‘들어간다‘, ‘받다‘ 등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초월적인 성격을 띄고, 오직 은혜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은 사랑과 적극적인 제자도를 요구하지만, 사회개혁을 외치시거나, 특정 정당, 특정 프로그램을 지지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현실정치는 기본적으로 자기주장을 관절하기 위하여 대결하는 투쟁의 장이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현실 세상에서 타인을 섬기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희생하되, 자신의 욕심이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하여 폭력적이 되거나, 분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바울의 예수 전승 인용. 바울의 글에는 이상할정도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직접 인용이 없다. 그렇기에 일부 비평적인 학자들은 바울과 예수의 관계를 저만치 멀다고 주장하지만, 바울의 삶과 글의 맥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했고, 바울의 글에는 그 누구의 글보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상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바울의 칭의 교리 사이에 진정한 연속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학자들에게서 널리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교회의 필요와 상황을 인식하여 그에 맞춰 자신의 말과 삶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전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바울의 해석을 거쳐 바울의 편지로 각 교회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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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톰 라이트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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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많은 철학자들조차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가 현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는데, 기독교인조차 자신의 전통에 너무 모른다고 지적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믿었던 부활이 고대의 이교, 전통 유대교가 견지하는 부활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활이란 죽음이 정복당한 사건이고,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일어날 종말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선취하신 사건이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지만,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신음하는 이 세상 가운데 천국이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핵심 사건이고, 최종적으로 만물이 갱신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보증과도 같은 사건이다.

이에대한 믿음은 성도들의 삶을 희망으로 가득하게 만들고,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부활의 영을 따라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부활의 의미를 놀라운 희망이라는 주제 아래 제시하되, 현재 그릇 인식되고 있는 종말론을 지적하고, 교회가 부활의 의미를 어떻게 구체적인 사역을 통해 적용하고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과감하게 제시한다.

1세기 유대교, 초기 기독교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하여 엄청난 책들을 쏟아낸 저자의 여러 강연을 모아 놓아 편집한 대중 저술이다. 부활이 복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전달했다. 현대 교회가 기독교가 제시하는 종말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교회조차 무지하다는 저자의 지적은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귀담아들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다. 그리고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의 세상과 어느 정도 연속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르침에서 워낙 간과하던 부분이어서 이러한 내용에 대해 처음 듣는 이들을 다소 놀라게 할 정도.

그동안 톰 라이트가 무얼 말하는지 알고 싶은데, 도대체 그의 책들이 너무 두꺼워 엄두가 나질 않던 사람들이 있다면 시작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그는 성경을 거대한 이야기로 풀어내는데 확실히 강점이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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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바뀌는 움직임은 자기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쟁점이 되는 문제에 더 깊이 참여하는 움직임입니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의 움직임이 진전되면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대응하던 것들은 서서히 사랑에서 우러난반응으로 바뀌어갈 수 있습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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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천페이지가 넘도록, 바울서신으로부터 시작해서 2세기의 기독교 변증가들에 이르기까지 ‘예수섬김‘(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고 예배함)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길고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결론에서 아래의 밑줄과 같은 주장을 한다. 묵직하다.

앞 장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예수에 관한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들은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기 그 견해에 상응하는 결과를 갖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요 기독교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예수를 어떤 분으로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붙든 채 계속하여 씨름하고 있다. 초창기기독교의 예수 섬김 이야기는 이 문제를 놓고 분투하는 현상이 놀라울 정도로 이른 시기에, 화산 폭발하듯 폭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기독교가 앞으로도 계속하여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 여부는 그리스도인들이이 예수에 관한 문제에 얼마나 충실히 천착하느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에게 예수 섬김이 의미하는 바를 얼마나 철저히 파고들려고 하느냐에 따라결정되지 않을까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기독교가 갖고 있는 크기와 잠재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들을 놓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문제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집단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들을 가져올 수도있다. 사실 예수는,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 보면 기독교 자체보다 훨씬 더 큰분이다. 그분이 갖는 호소력은 전 세계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보다 훨씬 더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저 유명한 갈릴리의 장면처럼 우리 시대에도, 또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의 물음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토론 제목이다. 초창기 기독교의 예수 섬김 역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가가 심오한 결과들을 낳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 P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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