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유럽의 포스트모더니티는 적어도 왜곡된 종교에 대해 통찰력 넘치는 비판을제공했다. 반면에 실용주의적인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적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행하는가에 관계없이 그것이 지역 공동체를 위해 "성공"을 제공하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불편한 것으로 판명될수도 있는 진리의 자리에 성공과 수사학적 "승자들을 세운다. 바로 이것이바울이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며 고린도교회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불편하게 여겼던 이유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비판을 위한 자리를 결여하고 있다. - P519
특히 로티, 피쉬, 리오타르(『디페랑』 때문에)는 해석학에 대해 유용하기에는 너무 멀리 나아가버렸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테리다. 바르트, 보드리야르, 푸코는 해석학적 반성을 위한 통찰을 제시할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그들의 사유의 양상들을바라본다. 결코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일반화할 수 없다. - P523
하지만 신앙이 해석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첫째, 선이해에 대한 작업을 무시하고 둘째, 단일한 방법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방법론을 선호하는 성서비평의 다형적 본성을 무시한다. - P527
나의 소망은 독자들이 "경청의 방식에서뿐만 아니라, 야우스가 강조한 바처럼 기대를 전유함에 있어서도 성경으로 나아오는 것이다. 경청과 기대는 성경이 공적인 읽기와 사적 독서에서 마땅히 차지해야 할 위치를 되돌려줄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성경의 권위는 교리에서처럼 경험의 실제적 문제가 될것이다. -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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