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책이란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라는 겁니다. 싫은 느낌이 있어서, 방어 반응이 있어서, 잊어버리니까, 자신의 무의식에 문득 닿는 그 청명한 징조만을 인연으로 삼아 선택한 책을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왕왕 대량으로 책을 읽고 그 독서량을 자랑하는 사람은, 똑같은 것이 쓰여 있는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즉 자신은 지知를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착취당하는 측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읽은 책의 수를 헤아리는 시점에서 이미 끝입니다. 정보로서 읽는다면 괜찮겠지만, 그것이 과연 `읽는다`는 이름을 붙일 만한 행위일까요.˝ (p44)

맥락이 좀 다르지만 나 역시 새로운 책에 욕심내는 것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읽어온 책을 다시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책은 이미 너무나 많고 계속 많아질 것이고 그 많은 중에 읽을 만한 책을 골라내는 건 점점 더 어렵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한참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쓴 글들을 지금 읽어보면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느낌에 대한 기억 뿐, 많은 사소한 것들이 잊혀진 것이 아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읽은 책을 다시 집어드는 일은 많지 않다. 두번째에, 첫번째 선입견 없이 얻은 느낌이 망가지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나에게 책읽기는 시간을 견뎌내는 수단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빨리 많이 읽을수록 많은 시간을 보내버렸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책은 소비재이(었)다. 사사키의 시각으로 보면 책에게 내가 소비되고 있었던 건가. `책`이란 단어의 정의는 모두에게 제각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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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의 취향에는 약간 지나치게 미문美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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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 영화 소셜 네트워크 원작
벤 메즈리치 지음, 엄현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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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순식간에 읽었다. 사다놓고 5년 만에. 일종의 가쉽이니까. 영화와 거의 같네. 영화보단 주커버그가 좀더 `그럴 수도 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언젠간 절판될 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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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식 희곡집
배삼식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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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화 다음으로 읽는 우리나라 극작가의 희곡집. (거의) 대화만으로 구성된 희곡을 읽는 것은 소설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읽는' 재미가 있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의 눈도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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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0
에밀 졸라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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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여자에 대한 토 나오게 하는 이야기다.

아무리 세기말에 혁명과 혼란과 전쟁의 시기였다고 하지만, 위로 4대 조상까지 죄다 알콜중독에 정신병에 가까운 방종한 인물들이 조상이었다고 하지만, 나나는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여자다. 나나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파멸하는, 작가로부터 나름대로 이름과 성격과 배경을 부여받은 거의 열 명이나 되는 남자들은 그런대로 있을 법해 보인다. 나나만큼 비현실적인 뮈라 백작 빼고. 하여튼 이 많은 남자들이 나나라는 오직 한 여자에게 꽂혀서, 그냥 패가망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거나 죽은 송장이 되어서야 나나에게서 놓여난다니. 모든 남자들이 한 여자에게 반해버리는 순정만화의 그로테스크 버전도 아니고.

거기다 마지막 장은 너무나 급히 마무리 된다. 마치 작가도 쓰다가 나나에게 질려버린 것처럼. 아무리 모든 육체는 죽고 썩는다지만 나나의 비참한 죽음은 무슨 권선징악인가.

그러니 이 토 나올 것 같은 데카당스를 정말 토 나올 것 같은 활력으로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한 졸라에게 질리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졸라는 어떤 여자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궁금하다. 연표를 보면 서른에 결혼하고 쉰 여덟에 아내의 하녀인 스물 막은 아가씨와 눈이 맞아 딴살림을 차렸다는데.

목로주점에 나나까지 연달아 읽은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니 제르미날은 좀 쉬었다 읽겠다. 최고의 프랑스소설로 꼽힌다는 보바리 부인으로 가봐야지. 이것도 자연주의 소설이라는데 가차없이 냉정한 작가에게 기분이 나빠질까?

정작 많은 생각과 하나씩 갈라낼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의 실타래를 넘겨받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선 한 줄도 못 썼는데.

ps) 위키를 찾아봤더니 나나는 18살에 죽었다! 열 다섯에 처음 거리로 나가서 그 난리를 피운 세월이 겨우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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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78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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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sommoir
Emile Zola (1877) / 유기환 역 / 열린책들 (2011)

2015-3-3

목로주점 상을 다 읽은 게 작년 5월. 1년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이틀 만에 하권을 다 읽었다. 하권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미적거린 이유는 남아있는 분량이 오로지 제르베즈의 급속하고 끔찍한 타락과 추락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고 때인지 대학 때인지 아니면 그 이후인지 아무튼 오래 전에 이 소설을 한 번 읽었었는데 그 때도 자기 인물들에게 손톱만큼의 연민도 보이지 않고 가차없기만 한 작가에게 질려버렸네 했던 기억이 난다.

왜 다시 읽었을꼬?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하는 멋진 노래 목로주점을 들을 때마다 흥얼흥얼 따라하면서도 제르베즈를 떠올렸으니 이 소설도 결코 좋아할 수 없으면서 잊을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여하튼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팽이 랑티에에게 버림받고 혼자 힘으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상권을 읽을 때도 정신없이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1년의 숨고르기 후 맞닥뜨린 제르베즈의 추락은 기억에서 희미해졌던 것 이상으로 경악스럽다.

아 왜 그러고 살아. 차라리 목을 매. 그렇다면 동정이라도 줄 수 있겠어. 그렇지만 이런 종말은 저금도 동정할 수 없다. 그냥 나에게는 오물이 튀지 않기를 바라며 펄쩍 물러서고 싶을 뿐. 제르베즈가 동시대 인물이었다면 나는 아마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을 것 같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타락해가는 인간이 있다는 걸 차마 볼 수 없었을 것이야. 그러나 그 때보다 과연 우리 문명이 진보한 걸까... 이런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제르베즈보다 더 어린 나이에 자진해서 타락으로 돌진한 딸 나나를 읽어야지.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져 갔다.˝
- 졸라의 무덤 위에서 읽은 아나톨 프랑스의 조사(弔辭) 중. (역자 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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