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무튼, 서재 아무튼 시리즈 2
김윤관 지음 / 제철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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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는 KTX에서 대부분 읽고 집에 돌아와서 마저 읽었다. 짧지만 밀도 높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 <아무튼,>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자기만의 서재에 대한 로망을 생각해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문득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일단 책으로 가득찬 방에 스스로를 가두어야 한다던 오르한 파묵의 말이 떠오른다. 나자신의 로망도 한번 써보고 싶다. 꿈을 이루려면 일단 구체화시켜야 할 테니까!

글을 쓴 사람이 궁금하다. 예민한 자의식이 느껴지는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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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자비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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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낭비가 아닐까 찜찜해 하면서 결국 다 읽음.
3천년간 스스로를 클론으로 증폭시키고 우주를 지배하던 독재자가 그 클론들 사이의 분열로 서로 싸운다는 설정... 그런 클론이 죽은 사람 머리에 신경계를 공유하는 칩 같은 걸 심어서 만드는 인공지능 보조체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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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칼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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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루했다. 인공지능이 철학자왕이 되어 정치를 하려고 하다니.
주인공의 비밀이 모두 밝혀진 상태라 더 재미가 없다.
이 작가도 루키 징크스를 겪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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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정의 (특별판)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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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굉장히 치밀하고 복잡한 소설이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려는 작가는 종종 ‘이야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그 세계를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하면서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은하영웅전설>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결국 제 1권만 읽은 채로 진전이 없네 ㅠ) 이 소설은 그 함정을 아주 잘 피해간다. 설명문 없이 1인칭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과 보고 듣는 것과 추론을 이야기하는 것을 읽다보면 ‘라드츠 우주’의 전모가 가까와지면서 점점 자세하고 분명해진다. 대단한 능력이다.

제목인 ‘사소한 정의(Ancillary Justice)’는 그냥 (중요하지 않아서) ‘사소한’, (공정하고 옳다는 의미의) ‘정의’가 아니었다. ‘저스티스 Justice’급 함선의 ‘보조체 Ancillary’, 즉 주인공의 (만들어진) 정체성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그저 ‘사소한 정의’라는 말도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중의적인 제목인 거지. 이어지는 <사소한 칼 Ancillary Sword>나 <사소한 자비 Ancillary Mercy>도 마찬가지로 그런 중의적 제목일 거다.

윗대가리를 날려버린다고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한 발짝 씩 움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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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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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이어 읽은 맨부커 수상작 세 권이 모두 2차 대전을 주요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맨부커상 수상’ 외에 어떤 정보도 없이 잡았던 책들이니 어쩌면 공교로운 일이다. 그런데 앞의 두 소설(<잉글리시 페이션트>와 <문타이거>)을 나는, 유럽인들만 등장해서 강 건너 불 관찰하듯 읽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다.

2차 대전의 전범국은 독일과 일본이다.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 덕분에(!), 또한 독일의 공식적이고 거듭된 사과/사죄 덕분에(!), 그리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여전히 거대악으로 심심찮게 소환하는 것이 나치스인 덕분에(!) 독일군이 2차 대전 중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잘 아는 것도 같다. 그런데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은 그들을 가해자이기보다 피해자로 돌려세운 건 아닌지. 게다가 한국인으로서의 나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한 것 때문에 일본이 2차 대전에서 독일 못지 않게 인류에게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잘 생각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일본군의 만행과 전후 그들의 생존과 변화에 충격을 느꼈다. 천황폐하와 일본정신과 그에 이어지는 ‘정신일도 하사불성’류의 우격다짐. 스스로 천황폐하와 일본정신 그현의 ‘수단’이라고 자각하고 있는 인간이 다른 인간들을 ‘수단’으로, 그런 물건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대의를 의해 이 한 몸’ 류의 생각과 이어지는 행동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꼴을 못 봤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고 인간으로서 감내하고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건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 포로들의 면면, 특히 다키 가디너나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의 행동들. 또한 스스로 무언가의 도구가 되기로 작정한 인간은 과연 인간인 건지도 묻고 있다. 나카무라 덴지와 고타.

이 소설의 제목이 유래한 일본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번역본이 (종이책은 절판됐지만 다행이 e북은) 있어서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17세기 하이쿠 시를 읊으면서 일본도로 포로들의 목을 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심리는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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