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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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이어 읽은 맨부커 수상작 세 권이 모두 2차 대전을 주요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맨부커상 수상’ 외에 어떤 정보도 없이 잡았던 책들이니 어쩌면 공교로운 일이다. 그런데 앞의 두 소설(<잉글리시 페이션트>와 <문타이거>)을 나는, 유럽인들만 등장해서 강 건너 불 관찰하듯 읽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다.

2차 대전의 전범국은 독일과 일본이다.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 덕분에(!), 또한 독일의 공식적이고 거듭된 사과/사죄 덕분에(!), 그리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여전히 거대악으로 심심찮게 소환하는 것이 나치스인 덕분에(!) 독일군이 2차 대전 중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잘 아는 것도 같다. 그런데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은 그들을 가해자이기보다 피해자로 돌려세운 건 아닌지. 게다가 한국인으로서의 나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한 것 때문에 일본이 2차 대전에서 독일 못지 않게 인류에게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잘 생각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일본군의 만행과 전후 그들의 생존과 변화에 충격을 느꼈다. 천황폐하와 일본정신과 그에 이어지는 ‘정신일도 하사불성’류의 우격다짐. 스스로 천황폐하와 일본정신 그현의 ‘수단’이라고 자각하고 있는 인간이 다른 인간들을 ‘수단’으로, 그런 물건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대의를 의해 이 한 몸’ 류의 생각과 이어지는 행동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꼴을 못 봤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고 인간으로서 감내하고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건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 포로들의 면면, 특히 다키 가디너나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의 행동들. 또한 스스로 무언가의 도구가 되기로 작정한 인간은 과연 인간인 건지도 묻고 있다. 나카무라 덴지와 고타.

이 소설의 제목이 유래한 일본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번역본이 (종이책은 절판됐지만 다행이 e북은) 있어서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17세기 하이쿠 시를 읊으면서 일본도로 포로들의 목을 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심리는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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