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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 변호사 고진 시리즈 ㅣ 변호사 고진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6월
평점 :
오늘의 작가상 최종 후보 리스트 기사에 달린 단 하나의 댓글이 `도진기 소설을 보고 울었다`여서 급 호기심 발동. 찾아보니 현직 판사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쓴 추리시리즈물의 하나였다. `현직 판사`가 작가라는 것도 흥미를 당겼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쓴 장르 소설이 `문학상` 최종 후보라는 것이, 신기했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이북을 다운받아서 읽는데. 결국 단숨에 읽기로 한 건 아주 초반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심각했다. 가벼움은 구석에 내몰려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감정에 관해 이야기할 때, 처절하기까지 하지 않으면 그건 감정이 아니었다. 인간의 눈은 분명 총천연색을 보도록 되어 있건만 80년대를 떠올리면 늘 세피아톤으로 바래져 있는 건 무슨 까닭인지.˝
80년대 끄트머리에 대학에 들어가서 2학년 마치고 군에 다녀와서 3학년으로 복학한 네 명의 친구들과 그들이 함께 아낀 3년 후배이자 졸업동기가 된 한 여자의 이야기. 즉 80년대 말 90년대 초를 `과도기`로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시대(!)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것.
소설은 모든 남자에게 사랑받는 미녀가 살인범으로 지목되고, 미녀를 변호하는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필립 말로 류의 하드보일드 츤데레 탐정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장르소설이다. 문체도 그렇다. ˝그녀는 남자의 마음에 편서풍을 일으킨다. 항상 `그녀`라는 한 방향으로만 부는 바람.˝과 같은 문장(솔직히, 우웨~ㄱ ㅋ). 그러면서 진범이 누굴까 계속 궁금증을 유발하는 괜찮은 탐정소설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에게는 눈물까지 나는 소설은 아니었다. 반 정도 넘어가면서 궁금증을 참지 못해 결국 결말을 먼저 읽고(나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런 짓을 하는데 성질머리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 한결 진정된(!) 마음으로 나머지 반을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순정` 같은 것을 항상 의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장르소설 시리즈물을 읽게 되는 것이 이야기 자체보다는 주인공의 매력때문이라고 할 때, 이 소설의 주인공 고진은, 글쎄, 잘 모르겠다. 한 권만 읽고 판단하긴 이르다고 한다면, 나는 그만큼 매력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필립 말로와 너무 닮았다! 말로와 비교할 때 고진만의 무엇이 뭔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이유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인데, 이 사람의 생각과 느낌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자세하다. 그가 고진의 생각을 따라잡지 못하는 만큼 고진을 더 대단한 인물로 여기도록 강요당한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소설은 재밌게 후루룩 읽었지만 고진의 다른 이야기들까지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작가가 부럽다. 판사라는 직업이 엄청난 과로를 요구한다고 알고 있는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하는 틈틈이 (또는 여유시간에) 소설을 쓴다는 걸 어떤 인터뷰에서 봤다. ˝소설 쓰기가 일처럼 되게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도 했다. 나는 직업에 대해서라면 아침에 출근하는 것부터 힘들어서 다른 일은 거의 생각도 못하는데 (솔직히 물리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세상엔 어쩌면 이런 능력자가 있단 말인가. 내가 게으른 게 아니라 판사님이 지나치게 부지런하신 거라고, 믿고 싶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