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d Worth Killing Peter Swanson (2015) / 노진선 역 / 푸른숲 (2016)2016-9-26팬시한 제목에 끌려 집은 책. 두 시간짜리 영화라면 재밌게 봤을 만하다. 특히 작가가 바라는 대로 마이클 패스빈더, 에이미 아담스, 제니퍼 로렌스, 크리스 프랫, 조셉 고든 레빗이 뭉쳐서 나온다면 (각 배우의 이미지가 등장인물의 면면과 매우 잘 어울린다)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런데 영화관 나와서 밥 뭐 먹을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잊어버렸을 것 같은 그런.
Brat`ya KaramazovyFedor Dostoevskii (1879 ~ 1880) / 이대우 역 / 열린책들 (초판 2000; 세계문학판 2009). E-book. 2016-9-24작가 연표를 다 읽느라고 하루 더 소요. 기독교적 인간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똘스또이 읽는 기분이었다. 도스또예프스키가 품었던 인간에 대한 희망이 결국 기독교적 인간이었던 거라면 알료사에 대한 본격적 전기까지 완성하였어야 했다. 이 소설은 알료사에 대해서라면 고작 도입부에 불과하므로. 더하기 드미뜨리 표도로비치와 이반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라는 인물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그려져 있으므로. 역자 해설에 도스또예프스키의 인간이라기보다 사상과 신념의 결정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아니 그렇기 때문인가?) 책 바깥으로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덜해지지는 않는다.
Brat`ya KaramazovyFedor Dostoevskii (1879 ~ 1880) / 이대우 역 / 열린책들 (초판 2000; 세계문학판 2009). E-book. 2016-9-17그냥 읽기 시작했는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다. 처음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인지 대학교 때인지 모르겠는데 그 때는 그저 압도당해서 헉헉거리면서 힘들게 읽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좀 머리가 트었는지(?) 힘들다기보다 작가와 등장인물의 흥분과 절박함에 동화되어 함께 달리는 느낌이다. 진정한 고전은 어쩌면 나이가 좀 들어서 읽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세계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지나 해석하고 싶다는 어떤 단계에서?
Oliver TwistCharles Dickens (1838) / 김옥수 역 / 비꽃 (2016)2016-9-16존 어빙의 <사이더 하우스>의 주인공인 고아 호머가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 바로 이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사이더 하우스>에서 호머가 자란 고아원의 원장은 남자 고아들에게는 남자 고아 이야기인 <올리버 트위스트>를, 여자 고아들에게는 여자 고아 이야기인 <제인 에어>랄 되풀이해서 읽힌다. 그 소설을 읽고 나서 (<제인 에어>야 내 인생의 책이니 바로 찾아볼 필요는 없었는데) <올리버 트위스트>는 믿을 만한 완역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디킨스의 다른 고아 이야기인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었었다. <위대한 유산> 다음으로 만난 디킨스였고, <올리버 트위스트>는 <두 도시 이야기>에 이은 네 번째 디킨스이면서 그의 가장 초기작이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디킨스의 `이야기`는 막장 아침드라마와 많이 닮아있다. 선한 주인공이 악당들을 만나 끔찍한 고생을 하면서도 선함을 잃지 않고 살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마침내 행복을 찾게 된다는. 그런데 그 `막장`의 정도가 가장 심한 것이 이 소설이다. 초반에 어린 올리버가 겪는 고난-특히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에 입각한 구빈제도의 잔혹함-은 작가의 생생한 묘사 덕에 어찌나 읽기가 괴로운지 결국은 해피엔드란 걸 몰랐다면 (그러니까 읽다가 할 수 없이 결말의 장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완전히 책을 덮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올리버의 행복도 엄청난 행운의 우연의 연속으로 찾아오는데, 첫 번째 은인은 알고보니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두 번째 은인은 이모였다는 식이다. 하지만 디킨스를 읽는 즐거움은 역시 이야기의 신파를 훨씬 뛰어넘는 인물과 시대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있다. 특히 선한 사람보다는 악당과 악당이라 불리기에도 부끄러운 어리석은 인간 군상에 대한 가차없는 묘사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인상을 지푸리거나 웃거나 소름을 쓸어내리게 한다. 시대는 또 어떤가. 산업혁명이란 괴물이 빈부의 격차를 극대화하고 `공리주의`란 것이 개인의 행복과 불행의 종류와 질을 따지지 않고 기계적으로 계산해서 그 격차를 더욱 공고히하는 것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산업혁명` 대신 `신자유주의`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도 충분히 읽힌다. 호머에게,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우연이 난무한 이 소설보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또 하나, <사이더 하우스>에 대해서는 정작 기억하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헐. 존 어빙을 읽을 때마다 열에 들뜬 기분이었는데 어쩌자고 기억하는 건 이렇게 적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