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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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만에 읽은 한국단편소설(집). 순식간에 읽힌다. 그리고 결론은...

표제작인 <화이트 호스>는 썩 마음에 든다. 주인공 화자가 역시 여자 사람이긴 하지만 ‘여자’보다 ‘사람’으로서 드러난다. 짜임새도 내 취향(!)이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도 찾아서 듣는다.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다. 이 한 편만으로도 강화길이란 작가를 읽을 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단편들은...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냥 제껴버리면 안될 것 같을 만큼 현실에 딱 닿아 있는 이야기들. 특히 ‘여자’라면, ‘여자’이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문제 제기를 취향이 아니라고, 즉 불편하다고 별점을 안 줄 수는 없는 소설들이다. 특히 (두 번째... -.-) 앞의 네 편이 그런데 그 중에서도 <손>은 아주 신경을 북북 긁고, 긁힌 상태에서 황망히 끝나버린다. 대체로 폐소공포증을 자극하는 것 같다.

이것(사회문제를 환기하는 것, 그리고 신경을 북북 긁히는 것)은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아니다. 차라리 신문 기사나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다룬 책들을 따로 읽는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언제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피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는 그저 더 큰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소설들은 여전히 잘 읽지 않을 것이고. 결국 지극히 취향에 관한 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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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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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딴데로 새지 않고 한번에 읽은 책이다. 신나게 포스트잇으로 태깅하고 언급되는 책들 중 흥미로운 책들을 보관함(그리고 곧 장바구니 ㅠ)에 쌓으면서 말이다. 2주 전 시어머니 병상 옆에서 반 읽고 나머지 반은 2주에 걸쳐 찔끔찔끔 읽었지만. 그러니까 지난 2주 동안 읽은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일단 ‘읽는 직업’이란 게 부러울 뻔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되진 않았다. 아무튼 나에게는 저자가 보여주는 그런 집중력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끌고갈 만한 끈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일, 아니 끝이 있기나 한지 때로 알 수조차 없는 일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낫다고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언제나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이다. 이 정도가 꽤 오랜 세월 나의 자아란 놈과 타협한 결과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것이 결국 ‘일’이 되는 것은 내 생각엔 바람직한 것과 거리가 멀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정말 속속들이 알고 나면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도 있는 법이다. 취미로 즐길 때는 그런 걸 무시할 수 있지만 ‘일’이 된다면 그런 것도 다 감수해야만 한다. 오랫동안 그걸 감수하다 보면 사랑이 미움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아예 밥벌이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모험(!)을 시도할 생각은 없다.

모든 읽기의 끝은 결국 쓰기로 이어지는 건가.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라는 소설에서 심심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 여왕은 소설의 끝에서 이제 글을 쓰기 위해 여왕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선언한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여왕의 결정에 마치 내 일인 듯 설레었었는데 그건 나도 닥치는 대로 읽다 보면 언젠가는 ‘그래, 이제는 써야 해!’라는 순간이 닥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하고 쌓인 책들이 이제는 세기도 무서운 지경에 이르고 보니 괜찮은 독자로 남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뭐 나에게도 비밀이 있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읽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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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 논쟁으로 읽는 존엄사,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유영규 외 지음 / 북콤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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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도 연구서도 아닌 탐사보도의 확장판 보고서라 한 번에 읽힌다. 그만큼 깊이 있는 논의나 결론은 없지만 생각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다.

... 여러 가지 생각을 찍었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이라 이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길게 쓰려 하면 나로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말할 수 없으면 침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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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끝없는 투쟁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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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한 시간 동안 한 바닥 찍은 걸 한 순간 날림!!! orz.
전의 상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 대한 생각.

이긴 전투는 별로 없지만 2차대전이라는 전쟁에서는 승리.
그러나 전후 세계 질서 구축이라는 궁극의 전쟁에는 실패. 그가 천재였고 격렬한 인간이었으며 그만큼 동시대 인간들을 자기가 이끌어내 할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이라는 생각.

히틀러에 대해서도 읽어봐야 할 것 같고. 처칠이 쓴 제 2차 세계대전도 찍어서 보관함에 넣었음.

세간에도 알려진 처칠의 재치있는 유머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게 좀 아쉬웠다. 예를 들면, 매일 의회에 지각한다고 비난하는 상대에게 “그 의원님도 저처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면 알텐데요”라고 했다던가.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나 시민 의원의 절대적 • 이념적 원칙주의는 근본적으로 그에게는 낯설었다. “자신을 개선하려는 자는 변해야 하고, 완전해지려는 지난 매우 자주 변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토록 여러 번이나 관점과 입지를 바꾼 것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그가 이따금 던진 답변이었다. “ p136.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윈스턴 처칠 개인에게는 지옥이었다. 장관을 지내는 동안에도 그는 한 번도, 아니면 거의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일과 책임감으로 완전히 충족되지 못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불만스러워 하고 규율 없고,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를 지나 다른 모든 것으로 넘어가 간섭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p157.

“처칠은 타고난 전사임에도 매우 인간적이었고, 자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마치 정열적인 사냥꾼이 흔히 동물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인 것과 비슷하다. 더 약한 존재, 패배한 존재에 대한 잔인성을 그는 죄악처럼 싫어했다. 이런 종류의 잔인성은 히틀러의 성격 특성이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 안인희 역, <처칠, 끝없는 투쟁>, 돌배게.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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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리커버 에디션, 양장)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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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판 마르틴 베크 연작을 한 권으로 묶은 것 같다. 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해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더 서늘한 것이 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특히 홍콩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도 느끼듯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람 사는 곳. 지금 우리 사회도 큰 무리 없이 겹쳐져 보인다. 이런 소설을 자꾸 읽으면 희망 같은 걸 잃지 않기가 어렵지 않을까. 소설보다 더 한 도람푸라는, 2차 대전 이후 세계사에서 민주주의의 최대 악당도 목도하고 있는 현실까지 있는데.

홍콩 경찰의 생소한 계급명과 중국어 이름들(보통어 이름과 광둥어 별명들? 아무튼 러시아 이름보다 더 입에 붙이기 힘들었다) 때문에 초반엔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관전둬 하나만 붙잡고 끝까지 잘 봤다. 마지막 단편 <빌려온 시간>이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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