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1 - 반지 원정대 톨킨 문학선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보원 외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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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번역으로 개정판이 책도 예쁘게 나와서 다시 읽는다. 내가 처음 읽은 <반지 전쟁>의 번역자들이 다시 나와서 왠지 더 좋다. 배긴스가 골목쟁이고 골드베리가 금딸기고 스트라이더가 성큼걸이고 리벤델이 깊은골이고... 등등 고유명사의 번역이 착착 붙는 건 아니지만 톨킨의 지침이 그러하다니 뭐.

아무래도 내 인생의 책이고 한번 잡으면 다른 일은 다 시시해진다...

“절망이나 어리석음이라구요? 절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절망이란 아무 의심 없이 종말을 확신하는 이에게만 어울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가능한 방법을 검토해 본 뒤 남는 필연을 인식하는 것은 오히려 지혜입니다. 거짓된 희망에 매달리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우둔하게 보이겠지요. 그러니 그 어리석음을 우리의 외관으로 만들어 대적의 눈을 피할 가림막이 되게 합시다! 왜냐하면 그는 매우 똑똑하니까 자신의 악의 저울로 모든 일을 정확하게 측정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척도는 욕망, 오직 권력을 향한 욕망 뿐입니다. 그는 타인의 생각을 모두 그런 척도로 판단합니다. 어느 누가 반지를 거부한다거나, 우리가 그 반지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반지를 파괴하기로 작정한다면 그는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p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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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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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댈러웨이 부인>을 다시 읽고, 이어서 읽었는데 어쩌다보니 조금씩 아껴서 읽은 셈이 되었다. 읽는다는 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작정으로 조용히 숨어서 일기를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줄리앤 무어의 역할이었던 로라 브라운의 꼭지들이 특히 그랬다. 소설을 읽고 나면 엄마 읽으시라고 갖다드리는데 아무래도 이책은 그냥 우리집에 둬야겠다.

덧) 표지의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뭔가를 골똘하다기보다 멍하게 생각하는 듯한 옆 얼굴)은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그림 속 여자들의 느낌이다. 특히 존 에버릿 밀레이의 오필리아.
덧덧) 번역에 큰 불만은 없는데 클라리사를 굳이 ‘클러리서’라고 쓴 것은 무슨 고집인지 아주 맘에 안 든다.

“그렇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 할 시간이다, 하고 클러리서는 생각한다. 우리는 파티를 열고, 외국에서 홀로 조용히 살기 위해 가족을 내팽개친다. 그리고 우리 재능과 무조건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터무니 없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꾸지 못할 책을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삶을 살아내고, 할 일을 하고, 그러고는 잠자리에 든다. 그토록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몇몇 사람은 창밖으로 뛰어내리거나 물에 뛰어들거나 알약을 삼킨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사고로 죽는다. 우리 중 대부분은, 절대 다수는 어떤 병에 서서히 잡아먹히고, 아주 운이 좋더라도 시간 자체에 잡아먹힌다. 위로할 거라곤 우리 삶이, 그 모든 역경과 기대를 넘어선 우리 삶이 활짝 피어 나 상상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어쩌면 아이들까지도) 그런 시간 뒤에는 필연적으로 그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시간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도시를, 아침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시간들이다.
우리가 그것을 왜 그렇게 사랑하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pp.32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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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감이여 -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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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레시피를 내놓으신 어르신 중 두 분이 유퀴즈에 나오셨던 것을 보고 책까지 주문했다.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 한 페이지, 구술하신 대로 자원봉사자들이 채록한 요리 이야기 한 페이지, 어르신이 직접 쓰신 손글씨 레시피 한 페이지, 그리고 자원봉사 온 학생들이 그린 그림 레시피 한 페이지. 가장 나이 많으신 분은 85세, 가장 적으신 분은 65세(학교를 멋 다녀서 못 배운 게 아니라 초등학교 들어가서 수업 안 들어가고 놀다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된 후 기회가 없었다는 50대 초반 한 분은 아무래도 예외로 해야할 듯 ㅎ).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가 비슷한 듯(전쟁 후, 가난, 많은 형제들, 여자는 배우면 못 쓰게 된다는 고대 가부장적 인식) 하면서도 다르고 그렇게 인생을 헤쳐 오신 후 글을 배우시고 비슷한 듯(자식들과 손주들에게 편지를 쓰고, 자서전도 쓰고, 시도 쓰고, 저승에서라도 다른 사람들 가르쳐도 주고) 다른 꿈들을 키워가신다는데 찡하지 않은 페이지가 없다. 특히 손글씨 레시피 페이지는 나도 모르게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게 된다.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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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성 샘터 외국소설선 6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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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다. 2탄의 무거움은 벗어버리고 유쾌함으로. 그렇다고 덜 심각한 사건을 다루는 건 아니지만 구십 년을 사신 존 페리가 인상을 조금이라도 쓰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기 때문에 무거워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음,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어, 뭐 이런 분위기?

(이하는 스포일러일 수 있음)
3탄에서 우리는 인류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유일한 집단(? 최고위층은 시리즈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의사결정구조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인 우주개척연맹이 인류의 위에서 우주와 다른 행성들과 외계인들이 대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거대한 게임판을 만들어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과 로아노크 개척민들을 게임판의 졸로 풀어놓는 것을 보게 된다. 졸이 게이머의 의도(예를 들어 상대편의 퀸을 잡기 위해 널 희생시키겠다)를 다 알게 되면 게이머의 의지에 저항할 수도 있으므로 졸의 저항을 부를 만한 정보는 전혀 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은 단서들을 모으고 짜맞춰서 게이머(우주개척연맹)의 속셈을 알아내게 되는데, 존 페리의 생각으로는 이건 졸인 자신들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멸망을 가져올 전술이었던 거다. 그래서 존 페리는 게이머의 졸이 되기를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게이머의 판을 뒤엎고 새 게임을 제안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정보’다. 만약 우주개척연맹이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다 알려줬다면 게임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승리하기만 하면 인류에게 최고의 이익/선을 가져다 줄 게임이고, 그들의 뜻대로만 되면 승리할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게임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졸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움직일 정도로만 정보를 제공한다. 우주개척연맹만 그러한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로아노크 개척지에서 관리관인 존 페리도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모든 개척민에게 푸는 것을 제한하려고 한다. 개척민들이 공연한 두려움으로 돌출행동을 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물론 개척민 대표자 회의에서 의논해서 결정하긴 하지만.

소위 ‘지도자’들이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정보 통제’가 아닐까. 정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해석’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해석이란 사람마다 가치관과 경험치와 지식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치와 지식 수준을 고려하면 어떤 정보는 수많은 서로 상충하는 해석들을 낳아 혼란만 가중시킬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성원들 중 최고의 경험치와 지식을 가진 지도자(또는 지도그룹)만 그 정보를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익일 수도 있다. 이렇게 그들은 정보의 통제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누가 누구에게 ‘졸’이며 대의를 위한 생사여탈권을 맡겼다는 것인가?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자신이 모르는 게임의 졸로 밀어넣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경험치와 지식이 부족해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때 나에게 필요한 건 내 대신, 그것도 나도 모르게 판단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함께 내 부족한 경험치를 메울 타인의 경험담과 더 많은 지식, 결국 더 많은 정보일 뿐이다. 게다가 사회 전체의 최고의 선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오만한 지도자(지도그룹)와 그 ‘최고의 선’-대의를 위해 무지하게 만든 사람들을 ‘졸’로서 이용하고 버리는 집단은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

*진짜 스포일러 주의*
로아노크의 지성을 가진 원주민일 수도 있는 ‘늑대인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었어요.”
리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런 소리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멀리 왔을 텐데요. 그래요, 연맹은 콘클라베와 심오한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고, 우리 같은 졸에게 어떤 게임인지 말해 줄 필요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제 연맹은 새로운 게임을 하고 있고 그 게임은 우리를 말판에서 치우는 데 달려 있어요.”
(p. 383)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라는 말이 어디에선가는 저주 아니었나.” (p.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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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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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개면서 심심해서 처음으로 전자책을 TTS로 들어봤다. 되도록 아무 생각 없이 읽을 / 들을 수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띄엄띄엄 보다가 완전한 내 취향은 아니라서 한 번에 못 읽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선택했는데 오, 생각보다 들을 만했다. (아마도) 기계음이 의문문의 끝부분만 살짝 올릴 뿐 시종일관 비슷한 솔 톤으로 따박따박 읽어준다. 오디오북은 들어본 적이 없고 들어볼 생각도 없는 게, 혹시나 낭독자가 성우처럼 자기 감정을 넣어 연기를 하면 어쩌나 싶기 때문이다. 앞으론 출근길이나 아침에 청소할 때 음악을 듣는 대신 책을 들을까 보다.

그건 그렇고, 처음부터 끝까지 젤리들이 튀어다니는 단편은 아니었다. 특히 오늘 아침 이<가로등 아래 김강선>을 듣다가 찔끔 울 뻔했다. 나는 그런 상상은 많이 한다: 몸의 숨이 끊어지고 나서 영혼이 아직 하늘이나 땅속으로 가지 않고 이 세상에 있을 때(그러니까 사십구제 전 같은 기간에) 늘 마음 속에 담아두었지만 실제로 만난지는 오래된 사람들을 찾아가 보는 것. 무슨 할 말이 있다기보다(정말 할 말이 있다면 대부분 미안해, 겠지. 고마와, 보다 미안해, 가 더 많은 삶이란...) 그냥 정말 그저 궁금해서. 대부분은 안은영처럼 귀신을 볼 능력이 없으니 내가 가도 알아채지 못하겠지. 하지만 죽은 친구가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는 안은영처럼 귀신을 보는 능력이 없으니 나를 찾을 이유는 없어 싶다가도, 내가 다른 사람을 그저 궁금해하는 것처럼 나를 그저 궁금해서 찾아올 수 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안은영처럼 귀신을 보는 능력이 없으니까.

정말 결정적인 건, 소설을 읽을 때나 이런 생각들을 해보는 거지 나는 몸과 분리될 수 있는 정신, 의식, 영혼, 등등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거다. 내 몸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걸 아니까 이런 소설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
다 읽었다! 문득 <공중그네>의 이라부 선생과 이라부 식 힐링이 떠오른다. 성격이 기득권이라고 뻔뻔스럽고 무례함을 자랑으로 여기는 문어같은 이라부 선생보다 천성이 수줍고 수수하지만 하필 귀신 보는 능력이 있어서 사서 고생인 안은영 선생이 칠백오십이 배 낫다.

————-

˝크레인 사고였어. 넘어오는데 그대로 깔려 버렸어. 멍청한 말이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 생기면 언제나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피하기는 무슨.˝
은영은 문득 크레인 사고 뉴스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되짚어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크고 무거운 기계가 중심을 잃고 부러지고 휘어지고 떨어뜨리고 덮치는 일이 흔하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고층부 작업하려고 최대한 늘였을 때 꺾였는데, 순식간이었어. 그때 날 그 아래서 끌어냈던 동료들이 오래 찬 바닥에 앉아서 보상금을 받아 줬어. 누나들은 그냥 포기하고 장례 치르려고 했는데 고마웠지. 큰누나가 염할 때 삼베 안 입히고 양복 입히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라. 양복 한 벌 못해 줬다고 우는데 내가 언제 양복이 필요했다고.˝
- p191. <가로등 아래 김강선>

선한 규칙도, 다른 것보다 위에 두는 가치도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특유의 탁함을 은영은 견디기 어려웠다.
- p210. <전학생 옴>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거절도 할 줄 아셔야 해요. 과도한 업무도 번거로운 마음도거절할 줄 모르면 제가 아무리 털어 봤자 또 쌓일 거예요. 노 하고 단호하게 속으로라도 해 보세요.
-p213. <전학생 옴>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저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인표가 은영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으므로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인표가 아니라 은영 스스로가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이어서,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 p264. <돌풍 속에서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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