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행성 샘터 외국소설선 6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정말 재밌다. 2탄의 무거움은 벗어버리고 유쾌함으로. 그렇다고 덜 심각한 사건을 다루는 건 아니지만 구십 년을 사신 존 페리가 인상을 조금이라도 쓰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기 때문에 무거워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음,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어, 뭐 이런 분위기?

(이하는 스포일러일 수 있음)
3탄에서 우리는 인류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유일한 집단(? 최고위층은 시리즈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의사결정구조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인 우주개척연맹이 인류의 위에서 우주와 다른 행성들과 외계인들이 대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거대한 게임판을 만들어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과 로아노크 개척민들을 게임판의 졸로 풀어놓는 것을 보게 된다. 졸이 게이머의 의도(예를 들어 상대편의 퀸을 잡기 위해 널 희생시키겠다)를 다 알게 되면 게이머의 의지에 저항할 수도 있으므로 졸의 저항을 부를 만한 정보는 전혀 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은 단서들을 모으고 짜맞춰서 게이머(우주개척연맹)의 속셈을 알아내게 되는데, 존 페리의 생각으로는 이건 졸인 자신들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멸망을 가져올 전술이었던 거다. 그래서 존 페리는 게이머의 졸이 되기를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게이머의 판을 뒤엎고 새 게임을 제안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정보’다. 만약 우주개척연맹이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다 알려줬다면 게임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승리하기만 하면 인류에게 최고의 이익/선을 가져다 줄 게임이고, 그들의 뜻대로만 되면 승리할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게임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졸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움직일 정도로만 정보를 제공한다. 우주개척연맹만 그러한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로아노크 개척지에서 관리관인 존 페리도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모든 개척민에게 푸는 것을 제한하려고 한다. 개척민들이 공연한 두려움으로 돌출행동을 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물론 개척민 대표자 회의에서 의논해서 결정하긴 하지만.

소위 ‘지도자’들이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정보 통제’가 아닐까. 정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해석’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해석이란 사람마다 가치관과 경험치와 지식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치와 지식 수준을 고려하면 어떤 정보는 수많은 서로 상충하는 해석들을 낳아 혼란만 가중시킬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성원들 중 최고의 경험치와 지식을 가진 지도자(또는 지도그룹)만 그 정보를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익일 수도 있다. 이렇게 그들은 정보의 통제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누가 누구에게 ‘졸’이며 대의를 위한 생사여탈권을 맡겼다는 것인가?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자신이 모르는 게임의 졸로 밀어넣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경험치와 지식이 부족해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때 나에게 필요한 건 내 대신, 그것도 나도 모르게 판단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함께 내 부족한 경험치를 메울 타인의 경험담과 더 많은 지식, 결국 더 많은 정보일 뿐이다. 게다가 사회 전체의 최고의 선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오만한 지도자(지도그룹)와 그 ‘최고의 선’-대의를 위해 무지하게 만든 사람들을 ‘졸’로서 이용하고 버리는 집단은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

*진짜 스포일러 주의*
로아노크의 지성을 가진 원주민일 수도 있는 ‘늑대인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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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선택권이 없었어요.”
리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런 소리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멀리 왔을 텐데요. 그래요, 연맹은 콘클라베와 심오한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고, 우리 같은 졸에게 어떤 게임인지 말해 줄 필요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제 연맹은 새로운 게임을 하고 있고 그 게임은 우리를 말판에서 치우는 데 달려 있어요.”
(p. 383)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라는 말이 어디에선가는 저주 아니었나.” (p.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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