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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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무느무 재밌다. ‘재미’만으로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다. 액자 안의 추리소설도 재미있지만 그 소설 뿐이었다면 재미 외엔 남는 게 없다 그러니 별 넷, 했겠지만, 액자 바깥의 ’되고 싶은 나‘와 ’되어 버린 나‘ -셜록 홈즈를 라우헨바흐에서 밀어버린 코난 도일 경 같은- 의 이야기가 붙어 아주 새로운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이 작가의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은 그냥 추리소설일 뿐이었는데. 내친 김에 다른 책들-<죽요한 건 살인>과 <숨겨진 건 죽음>-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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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연구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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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프로젝트> 작가의 책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보자마자 데려옴(전자책이지만)(요즘은 책장에 빈 곳이 없어서 종이책은 정말정말 오래오래 망설이게 된다. 아무리 <블러디 프로젝트> 작가의 책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전자책)책장에 들여 놓은 지가 5개월이 넘은 지금에서야 읽었다. <블러디 프로젝트>처럼 부커상 쇼트리스트에 올랐다는 건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역시 굉장한 책이다. 리베카 스미스의 비망록을 읽으면서 딱 그 나이 때의 나에 대해, 낯선 지인 혹은 친밀한 타인을 생각하듯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 자아의 정의 혹은 정체, 사실과 진실과 거짓의 경계 또는 의미도. <블러디 프로젝트>보다 훌륭하다. 더 나은 소설은 쓴 작가가 부럽다.

*지난 달에는 무려(!) 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전 달과 일상이 특별히 달랐던 것도 아닌데. 이게 다 추리소설(캐드펠 신부
시리즈 다섯 권 포함)을 주로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스릴러로 분류해 놓았기 때문에 먼저 읽을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데 결코 가볍지 읺았다(캐드펠 신부님도 가벼운 건 아니었지만). 요즘은 다른 종류의 책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재미보다 의미가 우선인 책들을 잘 읽던 때도 있었고 여전히 그런 욕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진득하게 읽어내야 할 것들을 읽기에는 쳥온한 인내심이랄까 그런 게 없어졌다.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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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중임. 이야기는 나쁘지 않아서 계속 읽고 있는데…
문장이 너무나 평범하다. 문체랄 게 없다. 평범한 단어들이 반복되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나 ‘확신해’ 가 한 페이지도 몇 번씩 나온다. 특히 주인공-해리 쿼버트-의 사랑에 대한 부분들은 클리셰적인 단어들 범벅이다. 원문이 이런가? 번역의 문제인가? 원문이 이렇다면 절대 잘 쓴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개 자꾸 딴 생각을 하개 만들어서야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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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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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툼레이더가 떠올랐다. 그러다가 미하일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이어서 <황금나침반> 시리즈의 2탄 <만단검>. 특히 <만단검>과는 같은 혈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씨족이라고는 할 만하다. 다행히 전에 읽었던 책과 비슷하다고 해서 덜 재밌는 건 아니다! 일단 황금나침반 시리즈가 매우 훌륭한 이야기이고 이 책은 어설픈 모방품이 전혀 아니니까.

“The Written”에 가보고 싶다. 쓰는 것, 쓰여진 것이 힘을 갖는 나라. 그렇지만 틈-문을 찾아다니지는 않을래. 책들이 곧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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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민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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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나는 책에 대해 속물적 기질이 있다. 그러니까 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고전으로 인정받은 책이라면 일단 욕심부터 내고 본다. 특히 비평가들의 극찬이 붙으면 -상을 받았거나 고전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질러놓고 보는데, 이게 그냥 ‘좋은 책이라니까 읽어 보자’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훌륭한 책이라면 이렇게 훌륭한 내가 안 읽어줄 수 없지’라는 심리에서 하는 짓이라는 거다. 쓰고 보니 웃기네(네, 웃어 주셔요.. ^^;).
이런 나의 독서가 속물적이라는 더 정확한 이유는 내가 읽어내는 데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도 비평가들이 극찬을 하는 영화에 관람객 평점이 별로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소설도 비평가가 극찬한다고 해서 다 재밌는 것은 아니다. 비평가들은 영화나 책만 들이판 전문가로서 더 많이 알아서 더 넗게 더 깊이 보고 가치를 매기지만, 일반적인 관람객이나 독자는 대체로 작품을 보거나 읽는 일이 일상의 여러가지 일들 중 하나일 뿐, 그들만큼 지식도 없을 뿐더러 시간과 관심을 더 깊이 투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비교적 표면에 드러난 것들 중 관심을 붙드는 것이 없으면 책이든 영화든 지루해서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라고 생각-이라 쓰고 변명이라 읽어야 하나-하는 것이다). ‘대단한 소설’ 중 내가 포기한 건 한두 개가 아닌데,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좌절하게 했던 소설은 바로 귄터 그라스의 ‘양철 북’이다. 언젠가 (지금은 좀 이상하게 변하신) 서민 교수의 글에서 ‘양철 북’을 ‘끝도 없이 지루하지만 읽고 나면 와, 정말 다 읽었어! 라는 성취감이 큰 책이다’ 비슷한 구절을 읽었는데, 읽고 나서 어찌 되었든 ‘다 읽었다!’ 하나 남기려고 그 지루함을 견뎌내야 하는 거라면, 그건 진정한 속물에게도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이런 속물적 기질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불문학사는 물론 세계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자 고전이라는 이 책은, 1부 <스완의 집 쪽으로> 외에 우리말로 완역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찾기 시작했을 때는 아직 없었던 것이 몇 년 전 펭귄클래식에서 전권이 완역되어 나왔고, 비슷한 시기에 민음사에서 한 권 씩 순차적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나는 먼저 펭귄클래식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전권을 전자책으로 질렀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처음 열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의식이 꿈에서 현실로 서서히 넘어오면서 화자의 감각과 의식에 일어나는 일들을 세세히 묘사하면서 유년 시절의 콩브레(펭귄클래식 판에서는 꽁브레)의 기억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대여섯 차례는 시도했겠건만, 나는 번번이 ‘꽁브레’에도 이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민음사 판이 완간되고 펭귄클래식 판보다 번역이 낫다는 걸 어디서 보고는 또 민음사 판을 전자책으로 한꺼번에 질렀다(사실 1권은 종이책이 나왔을 때도 사서 읽으려고 했었지만… 역시 콩브레에 들어가지 못하고…).

2024년이 되었고, 올해의 목표 같은 걸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올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겠다고, 막연히 결심했다. 그리고 벌써 5월인데, 이제 첫 권을, 드디어 다 읽었다!

이 책을 읽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프루스트의 묘사가 장황할 만큼 길고 세밀한 데다, 문장이 대체로 엄청나게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표에 다다르면 주어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린다. 정말 천천히 집중해서 공들여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천천히 집중해서 공들여서 읽으면, 자연과 인물에 대한 그의 세밀한 묘사와 꿰뚫어 보는 시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물들-고모할머니, 레오니 아주머니, 프랑수아즈, 등등-은 읽다 보면 심술궂은 위트도 있어 마치 디킨스의 인물처럼 독특하면서도 전형적인 어떤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재밌다!

시작이 반이라니까, 절반이나 읽었다! 고 우길 수는 없고 13권 중 이제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억지로가 아니라 재밌게 읽고 있어서 다행이다. 가을이 오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을까? 다 읽고 나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이걸 다 읽고 나면, 속물 근성으로 달려들었다가 실패했었던 또 다른 책인,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을 테다. 훗.

덧)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랑스인들도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라고 들었다. 프랑스어 문장도 만연체이고 거기다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난해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외국인으로서 번역본으로 읽는 어려움은 여기에다 ‘번역자의 오지랖‘까지 더해진다. 딴에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붙여놓은 미주가 무려 213개. 그 중 절반은 마치 중고등학교 참고서 같은‘작품 해설‘용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문장은 이런 의미이다, 여기서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다, 등등. 심지어는 ‘스포(!)‘도 한다 - 이것이 이어져서 나중에는 어떻게 된다, 운운. 전자책으로 읽었으니 그나마 어깨번호만 누르면 바로 미주를 볼 수 있어 덜 번거로웠지만, 종이책으로 읽었다면 300여 페이지의 책을 읽는 동안 213번이나 책 뒷부분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의도하지 않게 복선을 노출하는 미주라면 아 뭐야, 싶은 것이다. 번역자가 너무나 많이 깊이 알아서 독자에게 자기가 느낀 것만큼 다 알려주고 싶다고 욕심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독자로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만큼,전문가보다 얕을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맞는 의미를 길러내는 즐거움이 또 있는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도 각주나 미주가 과한 책들이 있는데,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꺠번호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으.

덧2) 엄청난 각주는 펭귄클래식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펭귄클래식 판의 번역은 번역 자체도 더 정신없다. 두 책의 같은 페이지를 놓고 비교해 보니 분명하다, 적어도 일반독자인 나에게는. 뭐 괜찮아, 전자책이니까 부피를 차지하는 건 아니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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