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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아... 정말 간신히 읽었다. 맨부커라고 다 내 취향인 건 아닌 것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나마 주인공/화자에게 자기를 노예(노예 해방 전의 흑인 노예의 그 노예)로 받아달라는 호미니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수위/수준이 높은 풍자소설인 건 알겠다. 그러니 재밌어야 혹은 재밌게 읽어야만 한다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풍자 코미디에 동조해서 웃으려면 일단 풍자되는 대상에 대해 풍자하는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고, 문화적 배경 또한 비슷해야 한다. 나는 특별히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작가가 풍자를 위해 끌어온 온갖 미국 대중문화 레퍼런스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마치 마네의 올랭피아의 얼굴을 박공주로 바꾸고 <더러운 잠>이란 제목을 붙인 화가의 풍자를 미국인이 설명 없이 곧장 이해하길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주석의 안내에 따라 맥락을 짐작하려고 애를 썼지만 반은 알아들었나 모르겠다.
다름/틀림, 평등/분리, 기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말들은 그저 말들일 뿐이다. 말이 그저 말 뿐일 때 그 말은 실재의 무게를 과소평가하고 상대적으로 미화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해야 하나?)’의 자리는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LGBTQ, 장애인, 최저임금도 못 받고 위험한 일은 도맡아 하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등등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약자의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 평등하다고 ‘말만’ 하는 것은 실재하는 틀림의 낙인과 분리를 숨기고 더 깊게 할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니까 뭘 어쩌자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