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바트 어만 지음, 강창헌 옮김, 오강남 해제 / 갈라파고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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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6
읽는데 한 달이나 걸렸는데 지루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 전에 침대에 엎드려 잠 올 때까지 읽었는데 고작 하루에 고작 `몇 페이지`밖에 진도를 못낸 걸 보면 뭐 흥미진진해서 잡은 즉시 밤새울 정도로 재밌었던 건 아니었나 보지만.

예수의 죽음부터 니케아 공회의까지, `인간`으로 나서 (어쩌면 자신의 의도와 다른) 신이 된 예수의 변모를 역사적으로(즉 과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시적이고 명확한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추적해서 보여주는 책.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학과 신학은 다른 영역이고 자신은 오직 역사적으로만 고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정답˝이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신앙인이었을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는 논리적-이성적으로 따져서 납득해야 하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러니까 그저 믿어야만 하고 ˝믿음이 곧 증거˝가 되는 류의 ˝사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신앙을 떠나서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에 별 생각없이 복종하였던 것 같다. 신앙의 본질이 그런 것 아닌가? 순종, 복종말이다.
하지만 진실한 신앙이라면 자신이 순종하는 대상을 잘 알고 분별해야 하겠지. 그래서 삼위일체의 문제가 그렇게 중요해진 거겠다. 하지만 예수가 오직 신적인 존재였는지 혹은 오직 인간일 뿐이었는지 하는 문제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 중 지극히 작은 이에게 네가 베푼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는 그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문제보다 중요할까? 신앙에 관한 한, 같은 것을 믿는다면 `어떤 의미에서, 왜` 그것을 믿는지를 굳이 물어야하는 걸까? `삼위일체`는 확실히 `인간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패러독스임에 틀림없다. 그런 패러독스를 `믿는 것이 보는 것`으로 밀어붙이면서 이웃을 사랑하기는 커녕 원수로 만들고 끝내는 죽이는 것이 과연 신앙일까?

요즘 우리나라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보면 신앙의 진정한 대상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건지, 목사/사제나 교회라는 `제도`와 그 `제도`의 기득권인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자기성찰은 물론 무슬림에게도 유대인에게도 똑같이 요구된다. 특히 그리스도교인과 무슬림과 유대인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이웃! 에서 끝나면 안 되나?

깊이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글을 써야하겠지만 몸에 밴 게으름을 어쩌지 못해 스맛폰에다가 이틀 동안 두들김. 다 읽고 나서 글을 쓰게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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