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이란 무엇인가 - 동서양 치유의 역사
파울 U. 운슐트 지음, 홍세영 옮김 / 궁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현대에 (서양)의학은 자연과학, 생명과학의 한 분과이고, 의사는 과학자이다. 과학자로서 의사는 엄격하게 '과학적인 근거', 즉 많은 관찰과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세운 '가설'이 실험을 통해 재현하는 것이 관찰과 경험에 일치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실험을 통과한 '가설'은 이제 '과학적 사실'이 된다. 물리학이나 화학의 연구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의학(의료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은 또한 기술이기도 하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 과학자가 밝힌 사실에 근거에 기술자가 기계를 만들고 운용하듯 의사도 생명과학-의학에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치료법을 고안, 개발하고 인체에 적용하게 된다. 복잡한 기계를 맨구석의 가장 작은 나사 하나부터 이해하듯, 일단 '정상' 인체의 구조와 기능, 작동 원리를 낱낱히 이해하고, 오작동하는 기계를 손볼 때 기계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찾아서 그 부분을 손보듯, 인체가 '이상'을 보일 때 어느 부분, 어느 장기의 이상인지 찾아서 그 장기의 기능을 가능한 한 정상에 가깝게 돌려놓는 것이 의사가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과학자와 기술자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 독립적이라면, 의학에서는 기초의학 연구에 더 집중하는 의사와 임상 치료에 더 집중하는 의사로 나눌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의사가 과학자의 생각과 기술자의 일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계적인 것에 적용되는 과학/기술과 의학은 결정적으로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첫째, 기계의 '정상'상태는 고정된 한 가지이고 비교적 환경과 독립적인 반면, 인체의 '정상' 상태는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안에서도 환경과 끊임없이 뭔가를 주고 받고 있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고 넓은 '정상 범위'가 있을 뿐이다. 둘째, 기계는 그 기계의 제작을 가능하게 할 과학과 기술의 발달 전에는 아예 존재할 수 없고, 일단 만들어진 기계는 완전히 인간의 손에 있는 '매뉴얼' 대로이지만, 인체는 그렇지 않다. 인체와 질병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 전에도 있었고, 병에 걸리면 그 실체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일단 개입해야만 한다. '현대 의학'이라는 것이 인체의 세부적인 구조와 기능과 작동원리를 하나씩 과학적 사실로 파헤쳐 가는 동안에도 아직 과학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그런 부분에서 발생하는 질병에도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방으로 더듬거리며 들어가듯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만들거나 적용해 놓고 나중에 그 원리를 찾아 매뉴얼을 만든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예를 들면 수혈 같은 것이 있다. 심한 출혈을 보이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피를 넣어주었을 때 소생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하자. 그러나 수혈이 모든 과출혈 환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수혈을 시작하자마자 거의 즉각적으로 사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이 혈액형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되기 전까지는 누구의 피를 어떤 사람에게 주어야 살거나 죽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하지만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수혈을 무조건 금지할 수 있었을까?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면역계의 많은 것들이 연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사실들, 일부는 이전에 예측했던 것과 정반대의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는 와중에, 골수 이식같은 치료는 어떤 사람은 완전히 회복시키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식편대숙주반응을 심하게 일으켜서 원질병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비참한 상태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면역계의 모든 것을 인간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골수 이식 치료를 하지 말자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는 자연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성립된 이후의 지식과 기술만으로도 엄청난 양을 거의 주입식으로 학습해야 한다. 당장 임상이라는 전장에 나가기 위해 총 다루는 법 익히는 것도 빠듯한 것이다. 그래서 의학의 '자연과학' 이외의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도 못하고 졸업하게 된다. 그렇게 교육받은 의사가 자연과학의 관점과 방법론에 입각하여 인간을 '인체'라는 '기계'로 보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적용하고 평가하는 틀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현대의 의학이 '자연과학 - 생명과학'의 한 분과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진단과 치료 행위 일체를 '과학적'으로 하려고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대로 '인간/인체'를 다루는 의학이라는 학문은 '자연과학' 속에 통합될 수 없는 아주 넓은 부분이 존재한다. 그리고 매일의 진료에서 의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당연히 의학의 이런 비-자연과학적 측면이다.

저자 서문의 일부이다.  

   
  이 책에는 서양과 동양의 의학사상이 전개되어온 흥미진진한 과정이 담겨 있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당대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의학 사상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양 문명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놀랍게도 서로 다른 두 문화 사이에는 2천 년에 걸친 전통의 유사성이 폭넓게 존재한다. 유럽문화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이 19세기와 20세기에 중국에서 그토록 열광적으로 환영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학'은 역동적이고 독립적인 형태의 대안요법으로서 앞으로 중국과 서구에서 장기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의학사상의 전개를 방향짓거나 규제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의료정책으로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의학이론체계만을 지정해 주어도 좋은 것일까? 세계화는 의학사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 책의 내용은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교육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연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아닌 의학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한의학은 분명 관찰-가설-실험-증명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는 자연과학이 아니다. 다만 음양과 오행이라는 선험적 틀이 있고 인체의 어떤 현상이든 그 틀에 맞추어 설명할 수 있다. 틀은 하나이지만 적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일 수 있다. 게다가 그렇게 제각각 적용하면 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데도 다 옳다! (한의학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의학은 '과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의학'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효과를 보인다(이중맹검 시험을 하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과학이 아니니 이런 시험이 필요하지도 않겠지만). 그래서 동서양 의학의 역사를 비교한다는 이 책을 읽으면 이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책의 내용은..? 아주 꽝이다. 
'의학'의 '역사'를 말할 때, '의학'은 현재의 좁은 의미의 의학, 서양의 자연과학의 전통 위에 과학적 방법론을 표방하고 발전하고 있는 의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의학이 그 좁은 의미의 의학 밖에 없어서 더 당황하고 짜증났다 (그래서 저자는 '의학'의 역사라기보다 '치유'의 역사라고 부제를 달았는데 그걸 빨리 알아채지는 못했다). 하지만 겨우 '의학'이란 개념에 적응한 후에도 이 책이 꽝이란 건 변하지 않는다.
첫째, 중언부언. '누가 "의학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어떤 계기와 어떤 추동력으로 고안해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3천년전의 역사로부터 그 대답을 찾는 논의부터 시작하는데, '자료가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런 정도를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질문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료가 부족하다, 따라서 확실한 것은 없다', 이런 식으로 거의 200 페이지 가까운 중언부언이다.

(그나마 근대에 관한 서술에서는 좀 낫다. 자료의 양이 좀 나아져서 그런 건가?) 

둘째,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도 지지부진하다. 마치 1차 자료를 정리하면서 자료의 여백에 자기 느낌을 써놓은 것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묶어서 책으로 펴낸 것 같다. 반어적 의문문("왜 하필 '그 사람'이 '그 시대'에 '바로 그 생각'을 했을까")에 하나마나한 대답이 수도 없고, 강조의 느낌표 남발에, 어색한 비유(창살 하나를 바꾸는 것은 쉬웠다!)들. 그냥 설명을 하지 비유가 더 어렵다.

셋째, 번역도 엉망이다. 원저는 독일어인데 영어로부터 중역한 책이라고 한다. 원저가 이렇게 딱딱 끊어지는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해서 어쩔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독해집이라니. 주어 서술어도 제대로 맞추지도 않고, 대명사도 도대체 얘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건지도 애매한 문장이 한둘이 아니고. 문장은 그렇다 쳐도, 한 문단을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어도 중심어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번역이다. 내가 지식이 짧아서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룬 것이 분명히 아니다. 왜 독일어 전문번역자가 번역을 하고 한의사에게 감수받는 형식으로 하지 않고, 한의사가 영어로부터 중역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하다. 

첫째, '의학사상', 즉 인체와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과 틀은 동양은 동양대로, 서양은 서양대로 당대의 정치경제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경향은 놀랍게도 최근까지 -그러니까 자연과학의 분과로서의 의학이 확립된 현재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중의학은 기능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면서 발전해온 반면, 서양의학은 (형태학적) 세부구조를 규명하는데 관심을 가져왔다.

셋째, 에너지 위기나 환경오염, 점차 비인간화 되어가는 기술 중심 의학 등 여러 가지 도전 속에서 현대인들은 (과학 중심의 서양) 의학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음양오행과 순환적 세계관의 '타당성'을 지닌 중의학이 그 대안으로서, 비유기체적인 것을 지양하고 생명체적인 기에 집중하며, 따뜻함과 공감, 그리고 조화로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의학은 (특히 치유의 측면에서) 한번도 순수과학인 적이 없었으며 늘 '현실'과 '타당성'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번째까지는 그렇다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고. 네번째 결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이 책에서는 동서양의 각각의 의학사상의 변화 발전을 논의하면서 '현실'과 '타당성'을 계속 대비시키고 있다. 여기서 현실과 타당성 각각에 해당하는 원문 단어를 모르겠는데, 읽어가면서 보면 '현실'이란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현실'의 깊이는 자연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깊어진다. '오염된 물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한다'는 '현실'은 콜레라균이 입증됨으로써 '오염된 물의 콜레라균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한다'는 더 자세하고 세부적인 '현실'이 된다. 이에 비해 '타당성'이란 '말이 되는 것', 즉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만한 설명 쯤의 뜻인 것 같다. 따라서 '타당성'이란 '현실'이 아닐 수도, 또는 아직 발견되거나 증명되지 않은 현실일 수도 있다.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반드시 자연과학적 증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의학과 음양오행설은 확실히 자연과학이 아니라 생각의 틀, 철학 체계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현대의 의학에서 이미 자연과학적으로 그 원인과 경과가 규명되어서 그것을 응용한 치료법까지 나와 있는 질병을 치료할 때도 이런 한의학과 음양오행설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긴. 생각해보니 그런 질병은 원인균이 증명된 세균에 의한 질환밖에 없구나. 지금 인류를 가장 괴롭히는 병인 암과 기타 만성질환(에이즈도 아직 골칫거리지만 그 병은 원인 바이러스가 규명되었으니 더 나은 치료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니 빼고)은 그 복잡한 기전이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니 '타당성'의 영역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결론적으로, 다 읽어내는데 두달이나 걸렸고, 몇번이나 시간 아까와서 집어치우려고 했지만 그래도 끝부분에 서문에서의 질문에 대한 무슨 답이 있을까 싶어 끝까지 참고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 저자가 서문에서 내건 질문에 대한 온전한 대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다 읽은 후에 아무런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 책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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