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내게 위로를 건넸다. 내가 당신의 슬픔을 다 이해한다거나 내가 가진 슬픔에 비하면 당신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신, 당신의 슬픔을 내가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당신이 혼자라고느끼지는 않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어, 찬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곧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위태롭고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사나워지던 계절들을 통과해올 수있었다. - P133

똑같은 형태의, 똑같은 무늬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뻔하고재미없는지. 새로운 것들은 멋쟁이 친구처럼 세련됐지만,
시간을 버텨낸 것들은 과묵한 친구처럼 듬직하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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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걸려 오는 전화는 좋았던 적이 없었다. - P166

"유머의 힘은 대단하군요. 근사한 재능인 건 맞지요."
"사실은 엄청 쫄았어요."
상우는 바로 어제 일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던 그 감각을 잠시 되새겼다.
"실은 저도 초등학생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 P171

"재벌 놈들하고 놀아주는 거 너무 지겹다. 아, 짜증."
영일 선배가 투덜대며 티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콜라캔을 집더니 꼭지를 땄다. 누운 채로 탄산음료를 마실 줄아는 무시무시한 사람. - P173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정중한 서신을 읽어 내려가며 상우는 영일 선배가 말한 ‘신선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렴풋하게 생각했다. - P178

그날 주차장에서 헤어지기 전, 상우는 그간 궁금했던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불쑥 물었다 - P190

"홍영란 그분공 치시나? 같이 필드 나가도 좋고"
남편이 뭐라 하던 갖고 싶은 장난감을 향해 돌진하는어린아이의 천진함, 영일 선배도 주원의 이런 급발진이 처음은 아닌지 멋쩍어하며 농을 던졌다.
"아무튼 우리 형수님 성격이 은근히 급해요. 맨입으로그러는 거 있기 없기?" - P201

뜻하지 않은 환경의 변화는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불러일으킨다. 집착과 상실감, 분노와 무력감, 불안과 의연함 같은 다양한 감정 속에서 우리는 붕괴하거나 정면 돌파하거나, 견디거나 놔버린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그 모든 분투에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이제 나는 안다. 그중에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직접 퇴로를 끊어버리는, 스스로에게 조금 잔인해지는 사람에게 특히 더 매혹을 느끼지만. 아무튼 우리 인생에서 어느 날 닥쳐오는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우리의 정신을깊이 뒤흔드는 모습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 같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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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히 반대했다. 왕손의 이름을 개똥이라고 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름이 거하면 인생이 이름에 잡아먹힌다. 그런데도 아내는 순우리말 이름을 고집했다. 1988년 자주민보 대신 ‘한겨레신문‘이라는 제호를 지지했던 것처럼. 첫딸의 이름은 김보미나래. 웬만한 인생 살아서는 이름값 하기 힘든 이름이었다. - P9

센터를 나오면서 아내는 분통을 터뜨렸다.
"왜 남의 애 이름을 함부로 축약해?",
그러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다.
"형, 우리 어떡해?" - P11

더이상 미누리들은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정신, 자아, 때론 몸까지 모두 아웃소싱한다. 우리는 주인 자격을 잃었다. 딸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결국 문의 말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었다. 딸들은 사랑하든 혐오하는 우리를 본다. 볼 수밖에 없다. 자식이자 주식-나는 딸의 100퍼센트 주주다―으로서의 운명이다. 하지만 나는후일담이나 꾀죄죄하게 늘어놓으며 추앙받고 싶진 않다. 처절하게 부정되고 가열하게 척결되고 싶다. - P20

해먹에게해먹, 너에게 도배 벽지가 웬 말이냐. 너에게 감겨 레게 머리를 하고, 외국 청년이 한 대 권하면 못 이기는 척, 그러나속인주의엔 유의하며, 마리화나를 피워 물어도 시원치 않을판에 미안하구나. 여기까지 와 아파트 해먹으로 살게 해서. - P31

"좋았어."
"뭐가."
"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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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규희가 사라지고나서야, 여기에 없고 나서야 규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너를이루는 조각과 내 조각들을 맞춰보고 비교한다. 화가 나서 던지기도 하고 소중하게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기이한 모양의 성을 쌓는다. 그게 규희가 떠난 뒤 내가 유일하게 몰두하는 일이다.

그리고 블로그. 나는 규희의 블로그를 통해 너의 블로그를 찾아냈다. 너는 블로그를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두 달에 한 번,
세 달에 한 번 불쑥 글이 올라오는 식이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난후에는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린 탓에 사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로 이직이 결정된 후, 출근을 기다리는 동안 너의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쫓기는 꿈을 꾼다. 건물에 갇혀 쫓기는데 건물은 내가 아는 건물인 것 같고 나를 쫓는 게 누구인지는모른다.‘ - P55

아주 가끔 울거나 짜증을 내겠지만 그것마저 전화를 끊은 후에 내색할 것이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서도네가 이곳에 계속 다니고 있을까? 이 작고 구질구질한 곳에 너는아마 육 개월 만에 이 회사에서 네 능력만큼 대우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 P47

이 동네가 익숙해진 게 신기해서.
천희를 만나게 된 옷가게는 그로부터 반년도 더 전에 취재 때문에 알게 된 곳이었다. 가야지 가야지 다짐하고 실제로 그 상영회에 간 것은 딱 두 번이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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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회장 형수가 알면 난리 날 일이 좀 있어서………… 아무튼 넌 별일 없었다니 그걸로 됐다."
상우는 서늘한 바깥공기에 잠시 진정되었던 속이 다시날뛰는 느낌을 받았다. 뭐라고 더 묻기도 전에 불러둔 택시가 도착했고, 영일 선배는 등을 떠밀어 냉큼 상우를 차에 태웠다. - P204

"여기, 문을 닫는다고요?"
상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 P182

‘분명히 이해해주실 거야?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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