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히 반대했다. 왕손의 이름을 개똥이라고 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름이 거하면 인생이 이름에 잡아먹힌다. 그런데도 아내는 순우리말 이름을 고집했다. 1988년 자주민보 대신 ‘한겨레신문‘이라는 제호를 지지했던 것처럼. 첫딸의 이름은 김보미나래. 웬만한 인생 살아서는 이름값 하기 힘든 이름이었다. - P9
센터를 나오면서 아내는 분통을 터뜨렸다. "왜 남의 애 이름을 함부로 축약해?", 그러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다. "형, 우리 어떡해?" - P11
더이상 미누리들은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정신, 자아, 때론 몸까지 모두 아웃소싱한다. 우리는 주인 자격을 잃었다. 딸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결국 문의 말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었다. 딸들은 사랑하든 혐오하는 우리를 본다. 볼 수밖에 없다. 자식이자 주식-나는 딸의 100퍼센트 주주다―으로서의 운명이다. 하지만 나는후일담이나 꾀죄죄하게 늘어놓으며 추앙받고 싶진 않다. 처절하게 부정되고 가열하게 척결되고 싶다. - P20
해먹에게해먹, 너에게 도배 벽지가 웬 말이냐. 너에게 감겨 레게 머리를 하고, 외국 청년이 한 대 권하면 못 이기는 척, 그러나속인주의엔 유의하며, 마리화나를 피워 물어도 시원치 않을판에 미안하구나. 여기까지 와 아파트 해먹으로 살게 해서.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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