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은 안다. 여자가 어떻게 지하철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막상 지하철만 타면 딴전만 부리다 결국 후회하고 만다. 무엇이 수진을 아는 대로 행하지 못하게 막는가. 인식과 실천을 잇는 다리는 대체 어디에서 끊겼는가. 싹싹 비는 수진을 보며,
얼굴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P123

‘잘못했어요.‘
수진이 싹싹 빈다.
‘용서해주세요.‘
"찍찍."
수진이 볼을 긁는다. - P127

"좋아! 내가 정확한 정의를 내려주지. 위험한 사람이란!"
안파 쪽 사람이 평파 쪽 사람에게 얼굴을 바짝 갖다댔다.
"네가 옆에 안 앉으려고 하는 사람. 어때, 심플하지?"
"심플? 대단히 복잡한데?"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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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뭘 본 거야?"
"몰라, 누가 있는 것 같았어. 다행이다."
다행이다.
뱀술은 열리지 않았고 내 비밀도 그대로였다. - P39

그로부터 3년 뒤, 금강산관광지구에서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중단된 지 12년이 지나도록 재개되지 않고 있다. - P39

사랑에 빠지는건 가짜에 속는 것사랑에 빠지는건 바보가 되는 것연연해 하는 건 철없는 망상믿음을 주는 건 어린애 장난ㆍㆍㆍㆍㆍ - P45

달 밝은 밤에 사랑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기분이 들 때에는 마음속 새엄마의 경고를 따라 부르며정신을 차렸다. 예스, 마더. - P45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술이 들어간다 쭉쭉 쭉쭉쭉 쭉쭉 쭉쭉쭉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 P53

어깨춤은 진화하는 춤입니다. 몇 년 전에 국립공원에서 불법 야영하는 캠핑족들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취재진의 마이크에 포착된 캠핑족 술 게임소리가 화제가 됐습니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거야"에 더해 "내 어깨를 봐, 탈골됐잖아"(Look at myshoulders, they are dislocated)를 붙인 겁니다. 어깨춤을얼마나 오래, 격렬하게 추었길래 탈골이 된 것일런지요. 이후로 장안에 술 게임깨나 한다는 사람들 레퍼토리에 일제히 ‘탈골됐잖아’가 덧붙여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깨춤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진화해왔을 것입니다. - P55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평생, ‘잘하지는 못하는데할 줄은 알아요‘ 같은 식으로 설명해왔다.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인쇄물 편집을 하고 로고를 만들기도 해요. 사진을 찍는사람은 아니지만 운 좋게 사진 일을 할 기회가 있네요.
잘하지도 못하는데 꼼수로 이렇게 하고 있다는 자책. 끝없는 연습이 필요한 일을 시시덕거리며 하고 있다는 죄책감. 진지하게 제대로 하고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 ‘잘‘ 하지만 ‘잘‘ 하지는 못하는 것들의 목록은 점점 길어졌다. - P61

연애 역시 잘해야 하는 것들의 연속이다. - P63

10년 전, 소설 쓰기를 배울 때 나는 코엔 교수에게이렇게 물었다.
"왜 글을 계속 쓰라고 하는 건가요? 세상에는 잘 쓴글이 이미 너무 많아서 의욕이 안 나요."
코엔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매일 아침에 점심 샌드위치 도시락을 쌉니다. 이 샌드위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샌드위치가 아닌데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샌드위치를 싸느니자살을 하는 편이 낫겠죠." - P64

스피크이지란다. 간판도 없고 들어가려면 그날의암호를 대야 하는. - P86

22살 마르코는 나보다 세 살 동생이었다. 대학생때 만나고 실망했던 형들 자리에 내가 들어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으로 나보다 이것저것에 대해 덜 알고 이런저런 경험이 적은 사람을 사귀게 된 것이었다. - P95

한국을 홍상수 영화로 배운 내 미국 시네필 친구들은 나더러 정말 한국에서는 소주를 저렇게 물 먹듯 먹냐고 물어본다. 나도 사실 홍상수 영화를 미국 아트하우스 영화관에서 처음 보았을 뿐, 정말 한국에서 저러는지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식에 의거해 답변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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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은 다이어리에 그런 걸 적는 사람이었다 - P122

그러나 그해 겨울 재인이 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빠진 것도 있었다. 이것은 균형이 맞는 것인가 아닌가, 재인은 자주 갸웃거렸다. 재인의 목록에서 빠진 것은 애인과 결혼이었다. 그 둘이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라는 것을 자주 곱씹었다. - P123

우리 서로 짠해하지 말자.
헤어지자는 말을 하며 재인은 그렇게 말했고 남자친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조금 과하게 울었다. 제발 자기를 짠하게 여겨달라는 것처럼 보여서 재인은 살짝 인상을 쓸 뻔했다. 한 명이 더 힘을줘 끌고 가는 관계는 언제까지나 반대편이 일 프로 정도는 함께힘을 실어줄 때 가능한 일이었다. - P125

마음은 마음이고 원칙은 원칙이었다. - P127

모르겠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었다. - P129

마음을 너무 붙이네요. 은영씨는 - P133

듣고 싶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었다. - P137

떨어지고 있구나. 나는 또 붙어 있고, 나는 예은을언제까지 붙들고 있을까.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은영은 언젠가 예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음을 너무 붙이네요, 은영씨는 그 목소리가 따뜻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 P142

돼요. 그거 안 될 분이 아니에요. 겁먹지 말고 몸을 확 넘겨야해요.
그럴까요? - P145

저 재등록하려고요. - P149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재인은속으로 ‘해본 것‘ 리스트에서 유독 도드라진 단어들을 읊었다. 독립, 절교, 파혼, 끊어진 관계들의 기록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어딘가에 아직 찾지 못한 근육이 있을 것이었다. 재인은 이제 겨드랑이 뒤쪽에 있는 그 근육의 이름을 알았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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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지겹도록 확인하겠지만, 일베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괴물이 아니다.

기사와 게시물은 삽시간에 퍼졌고, 급기야 문재인 후보 측에서 의자와 안경테 등에 제기된 문제를 하나하나 해명하기에이르렀으나 별다른 반향은 없었다. - P5

하지만 일베는 달랐다. 이들은 딴지일보www.ddanzi.com를 위시한 정치적 패러디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스스로 젊음을 ‘인증‘하며 자신들이야말로 깨어 있는 일등시민이라는 확신을 사방에 퍼뜨리고 다녔다. 보수 또는 극우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실존한다는 놀라움, 실존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심지어 젊다는반전, 그들의 행동이 자발적이라는 데서 오는 당혹, 특히 범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행해지던 비판과 풍자의 칼날이 정확히 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충격, 정의와 공정 같은 민주적 가치로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데 대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일베는 그 등장과 함께 한국 공론장에 거대한 혼돈을 불러온 진앙지가 되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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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의 가장 큰 매력은 혼자서는 절대 읽으려는마음도 먹지 않았을 책을 접하게 된다는 거다. - P197

제주도의 가장 시골 마을, 바람이 많이 부는 동네의 어둠속에서 한 여자가 노트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쓴다. 피곤에절은 얼굴인데도 눈빛만은 총총히 빛나는 한 여자가. 처음작업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던 순간이 생각난다.
참 좋았다. 해방감보다 안정감이 더 먼저 느껴졌다. 온전히나 혼자만 있는 시간을 가져 본 게 언제였던가. 작업실에 대해서오면 모드가 완벽히 전환되어서 좋다. 생활인이자 엄마강지혜에서, 시인이자 기획자 또는 강사 강지혜로 모드를바꾸고 기꺼운 마음으로 피로 속에 뛰어든다. - P202

해녀들은 물질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늘 바빴다. - P207

칠성판(관 밑에 까는 판자)을 등에다 지고한 길 두 길 들어가 보면저승 문이 눈앞이로다이어도 사나 이어도사나 - P208

"맴이 아프긴 무신. 그땐 다 그랬쪄. 살다보면 다살아점쪄." - P212

내가 심은 잔디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죽어 가는 것처럼 살아 있습니다살아 있는 것처럼 죽어 갑니다 말랐다 젖었다 말랐다 반복하며 조금씩 기어가며

분명한 건, 분명한 것. 확신에 찰 수 있는 것. 나는 내가시인이라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나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여자라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나는 내가 큰 개를 키우는사람이라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나는 낮에는 돌봄 노동과숙소 관리를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일상을 보낸다는 것에확신을 느낀다. 나는 내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확신을 느낀다. 내게 확신을 주는 것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면 확신을 느끼는 일에는,
기왕 하는 거 몰두하기로 한다. 그러면 제주나 서울, 그어디에서든 다 같은 오늘일 테니까. 그 ‘오늘‘들이 나를어디론가 데리고 가겠지.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 후회든기쁨이든, 잘 부탁한다. 내일의 나여! - P217

우리는 찰나와 같은 생을 이렇게 보내고 있네요.
어리석게, 때로는 씩씩하게. 저는 지금 제주인데요. 지금어디에 계세요? 그곳이 어디든, 단단하기를 바랄게요.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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