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한 이야기였지만 수영은 한번 끊지도 않고 들었다.
주저하다 물었다. "그러니까 CPA보다 두 단계쯤 더 높다는 거지?" - P212

"내가 오히려 사내게시판에 올릴게. 우리 지점 안 주임께서 인감도 못 챙기던 어리바리계장 하나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사람 노릇 하게 만들어 주셨는지." 상수는 웃는 수영을 바라봤다. 정말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종현에게 지어 주던 그 광채 같은 웃음은 아니었지만. - P264

"진짜. 너한테는 다 얘기할 수 있거든. 잘난 거, 못난 거그런 생각 안하고, 이런 척 저런 척 안 해도 되고." 미경이떠올라 상수의 표정이 씁쓸해졌다가 다시 웃었다. "어설프게 척하면 당장 들키니까." - P263

작고 정갈해 보여서 가끔 일본 여자처럼이기도 하는 미경이 프랑스어 발음을 능숙하게 하면 상수는 넋을 잃고 바라봤다. 당장 침대로 업어 가고 싶었다.
그래도 오후까지 공부하며 저녁을 기다렸다. - P267

상수는 망연히 미경을 안고 있었다. 작고 연약한 몸의절박한 떨림이 전해졌다. 뜨끈거리는 눈물이 살갗에 툭툭떨어져 시트로 흘러내렸다. 식어 갔다. - P272

"안 받으려고 했는데, 여자 친구도 있고 부담스러워 못받겠다고 했는데 주고 가 버렸어요. 자기 쓰던 거라고, 싫으면 버리라고 하면서. 아직 한 번도 안 썼어요. 돌려주려고 가지고 있던 거예요." - P278

버스가 왔다.다버스가 갔고, 두 사람은 정류장에 남았다. - P283

"끝이지. 그게 끝인 거야." 수영의 손이 재빠르게 음들을 짚어 냈다. "한 번, 섬광처럼 반짝이지만 그대로 끝이나고 연극의 암전처럼 곡은 닫히지."
짧은 침묵이 있었다.
***
"크리시오 이런게 들으 거 처음이야 엄청나게 - P303

봄이 막바지인 것을 알리는 듯한 바람이 포근히 불던저녁, 두 사람은 신촌에 있는 상수의 대학교를 함께 걸었다. 무성하고 두꺼운 잎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흔들렸고 성당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에는 철쭉들이 가득히 피어 있었다.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자 아래쪽 운동장에서야구 하는 대학생들의 고함 소리가 멀찍이 들렸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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