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망고들을 사 온 초저녁이었다. 나는 퇴근길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호는 지루할 정도로 바뀌지 않았고, 눈앞의 과일 트럭이나 구경할까 하다가 트럭이 사과나 배나 대추가 아닌 망고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75

그렇다고 대답하자 언니는 그럼 자신과 같이 지내지 않겠냐고 물었다. - P76

휴지로 눈물을 닦아 주려 했지만 남자의 눈물은 일반적인 눈물과 달리 송진처럼 끈적끈적했고, 나는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와 닦아 주어야만했다. 하필이면 나는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약했다. - P79

그날 밤에는 어수선한 꿈을 꾸었다. - P81

수진, 미안하지만 지금 나오는 이 노래는 내 취향이아니야. 중얼거리게 된다. - P87

영화 속에서 패트와 매트는 바비큐를 해 먹으려다 집을 태웠고 준비한 닭고기는 환풍구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가 창문 밖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웃었다. 울어도 될 법한 상황들이었지만 자꾸만 웃음이 났다. 집이 불탔어도 바비큐가구워져서 행복한 패트처럼 부서진 침대로 해먹을 만든매트처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두 번째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서너 명의 관객들이 들어왔다. - P103

언니도 정상은 아니네. 여자애는 거울을 보며 긴 머리를 매만졌다. 머리 정돈이 끝난 다음 여자애는 내게 인사했다. 다음에 또 봐요.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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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1999년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 - P9

예언가들이 저마다의 성장배경과 지적능력에따라 1999년을해석했듯이 우리도 각자만의 1999년을 경험했다. - P11

하지만 다행히 지민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대답을 했다. 둘이 있을 때와 달리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를 잘드러내지 못하는 게 지민의 성격이었다. - P13

"이게 뭐죠? 당황스럽네. 줄거리가 꼭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무슨 미래를 예언해?"
외삼촌이 물었다.
"올 여름방학에 우리도 동반자살을 할 계획이거든요."
나와 외삼촌은 동시에 지민을 쳐다봤다. - P17

그 마지막 문장이 내 마음에 와서 박혔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 P19

그리고 놀란다. 이토록 놀랍고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만났던 것인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둘은 오랜 잠에서 번쩍 눈을 뜬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처음 서로를 마주봤을 때와마찬가지로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이제 세번째삶이 시작된다. - P23

"과거는 제가 분명히 겪은 일이지만, 앞으로 이 친구와 결혼한다는 건 가능성일 뿐이잖아요." - P29

"뭐라고 했는데?"
"신은 그냥 붙인 이름일 뿐,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몸이 없는 집단적 의식으로, 미래에서 왔습니다." - P33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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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들 것 같아요. - P70

나는 오늘 밤 구를 떠날 것이고 심야 버스에 오를 것이다.
다시 노래를 부르고 다시 망하거나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변에서 멀어지는 동안에는 지선 씨가 보았을빛, 단 한 번의 빛만을 생각할 것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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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괴로움을 온전히 대면할 시간이 필요하다." * 임현

"문장에 소리가 있으면 좋겠다.
소리를 닮은 문장이 아닌, 소리가 들리는 듯한 문장이 아닌,
실제로 소리가 깃든 문장이 있으면 좋겠다." 정용준

아무 때나 잠들고 아무 때나 일어나는 내가, 누가 보는 데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못하는 내가 노동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행위들을 통해 적은 임금이라도 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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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울 낙樂에 수컷 웅雄.
즐거운 수컷, 그게 내 이름이다. 이름을 지을 때 어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걸까? 우스운 일은 성격이 정말 이름 뜻 그대로라고 주변의 평가를 받곤 한다는 것이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여자친구가 하는 말은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사랑에 선행되어야 한다면, 헤어지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체념이 들었고 더는 잡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해줄까? 여름방학이면, 주변동네 초등학생들한테 티켓이 꽤 팔리거든.
방학 숙제로 ‘미술관 가기‘가 꼭 있잖아. 미라보다 더 잘 팔릴 게 뭐 있겠어?"

"그럴 것 없어. 한껏 사랑받았던 여자야.
남편이 자기 저고리도 덮어주고 편지도 써서관에 넣어줬던걸, 그 당시 양반가 사람이면얼마나 팔자 좋은 거야? 낙웅 씨랑 나보다훨 낫지. 양반도 장티푸스는 못 피했지만 말야."

휴, 나란 남자, 어떻게 귀신까지 실망시킨걸까.

"그 파경이 맞긴 한데, 요즘은 부정적인느낌의 말이 되어버렸지만 옛날엔 꽤 낭만적인 풍습이었어. 연인들이 헤어질 때 거울을쪼개어 한 쪽씩 증표로 나눠 가졌던 거지."
"네? 저 두꺼운 금속을 쪼갠 거예요?"
".………아니, 저건 원래 저렇게 주물한 거지.
설마."
"아."
"사랑이 없었다면 함께 묻히지 않았을 물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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