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와 나는 집으로 돌아와 베란다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다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비싼 것 먹어도 돼. 먹고 싶은 것 맘대로 시켜"라고 했더니,
정하는 고작 비프카레를 시키면서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라며 즐거워했다. - P99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감동과 환희가 온 나라를 붉게 물들였던 그때, 나는 구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과감하게 홀로서기를 했다. - P95

"거짓말하지 말아요. 한국말 아는 거 다 알아요. 남자도다 한국말 하는 거였어요." - P84

일단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번역을 시작했으면 번역료가 박하든 후하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객 혹은 독자나 관객이 이해하고 수긍하는 번역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일이 들어온다. 그래야 번역료도 올라간다.
번역회사하고 7 대 3으로 나눠 갖는 말도 안 되는 번역료받고 열심히 일하려면 짜증날지도 모른다. 이 번역료에이만큼만 해도 된다고 자신도 모르게 대충 하고 있을지도 - P77

3 글을 많이 써보자. 글은 쓸수록 는다. 고기도 먹던 놈이 잘 먹는다고 하는데, 글도 쓰던 놈이 잘 쓴다. 지금까지는 글 쓸 기회가 별로 없었더라도 이제부터 매일 써보자.
블로그든 SNS든 쉽게 글 쓸 공간 많지 않은가. 어디 신춘문예 응모할 것도 아닌데 어깨 힘 팍 주고 각 잡고 쓸 필요없다. 그냥 그날 하루 기뻤던 일, 열받았던 일, 그때그때의느낌, 책 읽은 소감 등 자질구레한 일상을 일기 쓰듯 쓰는습관을 들여보라. ‘누가 와서 보면 창피하잖아요‘라고 생각한다면 비공개로도 충분히 쓸 수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마시고. 그리고 제발 관념어나 미사여구 남발하는 멋 부린글은 자제하기 바란다. - P71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한번 짜깁기 책을 기획해봐야겠다!‘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은저작권 때문에 마음대로 이런 짓 하면 잡혀갑니다요.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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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십 년이 지났다. 더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일본소설을 고를 땐 권남희란 역자의 이름을 보고 고른다며 찬양해주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권남희가 한 번역은 절대 보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하는 독자도 있다. 독자들의 머릿속에 ‘일본문학 번역가 권남희‘란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적어도 이십 년4046 90(20이란 세월이 그냥 흐르지 않았구나 싶어서 뿌듯하다. - P17

, 셋째, TV 삼매경보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지내는 게덜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어른들은 책을 들고 있으면 공부하는 줄 알고 취직해라, 시집가라, 이런 잔소리를 안 한다. - P31

물론 섭섭했지만, 그 말씀도 지당했다. 하지만 작업할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낸다면 내경력은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경력이 없는 나는 계속 대리 번역만 해야 하는 건가? - P36

기획 얘기 하다 뜬금없지만, 인생은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 같다. 누구의 인생이든 말이다.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든 실패한 인생이든 관계없이. 어쩜 그렇게 곳곳에 절묘한 복선을 장치하고, 사건을 만들고, 희로애락을 심어놓는가. 살아가면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시기별로분류하여 적재적소에 데려다 놓고. 이보다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완벽한 시나리오도 없을 것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 책을 사러 갔던도쿄에서 운명의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을, 게다가 그로부터 6개월 뒤에 결혼하게 될 줄을, 그리하여 일본에서 신혼생활을 보내게 될 줄을 말이다. - P49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가 나오며 무라카미류의 인기에 서서히 물이 올랐다. 잇따라 『오디션』도 나왔다. 그러나 같이 구입해온 그의 다른 책들은 빛을 보지못했다. 검토서를 돌려봤지만 SM과 마약, 섹스를 주로 다루는 그의 소설은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듬해부터무라카미 류가 엄청나게 인기를 끌며 그가 쓴 소설이란소설은 모두 출간되더라. 나, 번역계의 이상 맞나 보다. - P60

"그만한 열정이 있으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어요. 열심히 하셔서 꼭 원하는 꿈 이루시기 바랍니다. ^^"
참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스러운 멘트이긴 하지만,
원하는 대답이 그것이라면 그 말 한마디 못 해주리. - P65

앞서 얘기한 ‘번역 공부‘도 공부라고 생각하면아마 작심삼일 만에 지겨워질 것이다. 책은 지하철 오갈 때나 집에서 빈둥거릴 때 한두 페이지라도 읽으면 되고, 글쓰기는 시간 날 때 틈틈이 블로그에 끼적거리면 되고, 원서 번역은 하루에 한 줄이라도 옮기면 되고, 스크랩 번역은 날 잡아 한꺼번에 해도 되고…………. 설마 이 정도의 노력도 하기 싫어하면서 번역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닐 테지요!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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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불을 켜둔 채 무대 구석에 목도리를 베개 삼아누웠다. 주머니에 뭔가가 거치적거려서 꺼내 보니 머리핀이었다. 나는 머리핀을 다시 꽂은 다음 생각했다. 머리핀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내 또래였을까. 그 여자는머리 길이가 어디쯤 올까. 생각하다보니 무서워졌고,
나는 악귀 같은 여자라도 들어와 내 배위에 앉아 주길바랐다. 진이나 한 잔 마시면서. - P204

간밤에 알래스카 꿈을 꾸었다. - P207

‘복수를 꿈꾼 뒤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백수는 킬러가, 스터디플래너는 계획 일지가,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오피스텔은 비밀 기지가 되었다. - P209

여자가 쳐다볼 때마다 천장은 분명조금씩 뚫리고 있었고, 이렇게 빨대 두 개가 우리집 바닥을 뚫고 올라오기까지는 꼬박 석 달이 걸렸다고 했다. - P210

구박과 외로움은 내게당연했다. 끔찍한 인간들 사이에서 나는 유일한 고양이니까.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편안했다. - P213

거리에도 나무에도 공간이 더 생겨나는 계절. 찬바람을 맞으니 마음이 단순해져서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내 입김과 유의 담배 연기가 그럭저럭 비슷한 모양으로 흩어졌다. 음 - P217

온통 새하얗게 뒤덮인 집안, 2인용 소파에 유와 꽉 들어맞게 앉아 있자, 나는 어쩐지 우리가 알래스카 설산의 조난자들처럼 느껴졌다. 나는 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P232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것이다.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체하고, 급하게 챙긴 짐에는 무언가 빠져 있기 마련이고, 급하게 죽어 버리면 제대로 죽지도 못하니까.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어제 새벽 나는 급하게 죽어 버리는바람에 이승을 떠돌게 되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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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기도로 나는 이렇게 또 한 살을 먹는다. - P141

저게 도대체 뭐지?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저런 게연기라면 나도 하고 싶었다.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고 전공을 다섯 번이나 바꾸고 나서야 ‘내가 하고 싶은 건 연기’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선생님을 찾아갔다. 몇 번을망설였으나 용기 내어 찾아간 덕에 사랑했던 배우님은그렇게 나의 연기 선생님이 되었다. - P146

안선경 감독님의 영화 연기 수업에서는 연기는 기술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안에서 하는 것이라는 겸손을 배웠다. - P151

현실의 나는 미숙했지만 무대 위에서는 다르게 존재할수 있다. 다르게 사랑할 수 있고, 다르게 화해할 수 있다. - P153

실제로 스물일곱에는 다니던 치과를 때려치우고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도 했다. 벚꽃이 한창이던오사카의 4월 첫 수업시간에 "村上龍仁会以来九(무라카미 류 씨를 만나러 왔다)"라고 나를 소개하기도 했다. - P159

다행히도 문학은 지난한 시간을 통해 작은 소망이 가진 힘과 그것을 지키는 힘을 길러주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는 가지 않게 했다. - P161

몸과 마음의 가난을 조금 통과한 지금의 나는 쿨하게안 받는 사람 말고, 받고만 싶어하는 유약한 사람 말고, 그냥 먼저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간 내가 받아보지 못했던 것들까지 주고도 깨끗이 잊을 정도로 넉넉한 사람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 P173

프리랜서로 일상을 꾸리면서 내가깨우친 제1의 법칙은 ‘의심하고 걱정할 시간에 그냥 하자‘
였다. 그리고 일단 ‘해야 한다면 무조건 해낸다는 생각 외엔 모두 버리자’ 이 단순한 문장 한마디가 생각보다 힘이세다. - P178

그럼에도 매일 불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소원을 비는나를 보며 메리를 떠올린 적이 많았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모두 중독되어 있는 게 아닐까. 커피와 술에, 일과 성과에, 사랑과 희망에, 무엇보다도 끈덕지게 질긴 이 삶에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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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취한 살과 뼈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마음대로 이어 붙였다. ‘읽기‘는 자주 ‘일기‘가 되었다. 밑줄을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도무지 해결되지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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