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는 2020년 2월 25일, 그러니까 코로나19대유행으로 인해 뉴욕시에 봉쇄 조치가 내려지기 몇 주 전에출간되었다. 당시에는 그런 식의 봉쇄가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한사람도 거의 없었고, 확산되는 전염병이 우리 국경은 절대로침범하지 않을 것처럼 다들 태연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책이 나온 뒤 일주일 후, 나는 재직하는 대학의 연구실에 나가있었다. 그날 나는 기내용 여행가방을 가지고 출근했는데,
강의가 끝나면 책 홍보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비행할 예정이었기때문이다. 그런데 담당자가 전화로 북투어가 취소됐다고 알려왔다. 그 뉴스를 미처 제대로 소화할 틈도 없이 서둘러 강의실에갔더니 한 학생이 대학 전체가 그날 밤에 폐쇄될 거라는 뉴스가휴대폰에 떴다고 했다. - P9

바로 이 불안하고 사나운 시기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내책을 읽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내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독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마이너 필링스』는 2021년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줌으로 북토크를 할 때면사회자들은 기막힌 타이밍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즉 아시아계미국인들이 현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아시아인에 대한인종차별 급증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언어를 찾으려고 애쓰던 때에 시의적절한 책이 나왔다는 것이다. - P11

사회에 존재하는 그런 흑인에 대한 반감을 지적하고 다른 인종간에 서로 어떻게 연대를 꾸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평등을 위한 미국 흑인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 부모님을비롯한 수많은 가정이 미국에 이민 올 기회조차 누리지 못했을것이다. - P13

심리치료사의 작고 어둡게 조명된 대기실에는 무릎 꿇은여인이 거대한 카라 꽃바구니를 부여잡고 있는 디에고 리베라의그림포스터를 끼운 액자가 걸려 있었다. 부들이 꽂힌 밤색 꽃병,
캐러멜색 가죽 안락의자, 죽어가는 산호의 색깔을 띤 양탄자.
대기실 전체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리베라 그림과 비슷한컬러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 P21

자기를 혐오하는 아시아인은 내 세대를 끝으로 사라질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가르친 세라 로런스 칼리지의 학생들은 맹렬하여-자율적이고 정치적 참여도 열심히 하고 똑똑했다-참 다행이다,
이 학생들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시아인 2.0이다,
고함을 내지를 준비가 된 아시아 여성들이다, 라고 생각했다.
또 그러다가도 다른 대학교 강의실에 가보면 머리만 예쁘게매만지고 아무 말없이 생쥐처럼 얌전히 앉은 아시아 여학생들을만나는데, 그럴 때는 닦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너 입 좀열어라! 안 그러면 저들에게 완전히 짓밟힌다고!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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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앉아, 자리 맡아뒀어.
외양은 사뭇 달랐으나, 눈썹 문신을 같은 곳에서 했는지 두 사람 모두 눈썹산이 지나치게 높고 색이 진했다. 후에 온 할머니는보행기를 교실 뒤에 세워둔 뒤 나와 헌진에게 늦어서 미안하다 재차 사과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정까지 트로트 경연 방송을 보다늦게 잠들었다며 어제가 진짜 중요한 날이었다 덧붙이기도 했다.
옆에서 여우 목도리 할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난 임영웅 무대만 보고 잤어. - P239

할머니는 격자로 된 깍두기 노트에 헌진의 말을 꼼꼼히 받아었다. 줌인은 ‘주민‘으로, 슬로모션은 ‘슬로모시기‘로 소리 나는대로 적거나 흘려 쓴 비문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닌데도 그녀는 종종 필기를 멈추거나 난처해하며 내게 ‘해상도가무언지, ‘로 앵글‘과 ‘하이 앵글‘은 어떻게 다른지 질문했다. - P242

이이는 마스크 사면 다 도시 사는 아들한테 보내. 저는 쓰던 거쓰고, 또 쓰고,
뭘 그런 걸 말해. 주책맞게. - P245

긴다. 나는 늘 그런 모녀가 부러웠다. 남편에 대한 험담에서부터불운한 과거사까지 필터링 없이 털어놓는 엄마, 그런 엄마를 가련하게 여기며 해우소 역할을 자처하다 결국 부아를 내는 딸. 남들은 클리셰라고 부르는 모녀상이 내게는 생경하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그런 것들이 결핍되어 있다. 애절하고 끈적이는 것. 분노와역정, 유치한 언쟁, 연민이며 사랑 따위. - P350

인물을 잘 모르면 서사는 매끄럽게 나아갈 수 없습니다. - P353

엄마의 말은 언제나 행간이 넓다.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감정을 짚어내는 건 내 몫이다. - P357

안중정이 눈엣가시와 같은 말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반장은 사흘을 사 일이라 우길 정도의 무식자였는데, 그런가 어떻게 안중정이란 점잖은 멸칭까지 꿰고 있었는지 알다가도모를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전에 없이 치열하게 마음을쓰고 머리를 굴리는 모양이라고 가만히 짐작할 뿐이다. - P364

주제는 없습니까?
우리 이야기를 써봐. 개의치 말고 맘껏 싸그리 다.
우리 이야기. 알쏭달쏭함과 막연함을 숨긴 채 겨우 몇 자 적었다. - P372

언니는 말했다. 그래서 자신은 글을 쓰기로 했다고 잘려나가고감추어야만 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기 위해.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셋이라 다행이야. 내 문장에 확신도 안서고 불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계속 쓰다보면 생기지않을까. 미약한 용기라도 - P381

단단한 어금니로 길게 이어진 사과 껍질을 씹는다. 누구도 먹지않는 그것을 아삭아삭아삭 - P394

소설가가 되면 내가 잘 아는 것들에 대해 쓰겠거니 했으나, 세상이나 사람의 마음은 알면 알수록 어려워 결국에는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쓰고 있는 것 같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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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요. 우리말로 가족. - P136

아이능 꼭 한국인추룩 생경짐기도 물에 시쳐 먹고 국시도 못먹네이………… - P147

마을 어귀는 고요했다. 초입에 고씨 성을 가진 팔촌이 살았는데, 그 집 앞에 트랙터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들어가인사드리자는 것을 겨우 말렸다. 제주 고씨 군자 마을의 노인들은 대부분 ‘고씨 삼춘‘으로 불렸다. 볼레낭 집 고씨 삼춘, 도세기키우는 고씨 삼춘, 갈치 배 타는 고씨 삼춘, 교장 하시던 고씨 삼춘……… 우리 아버지는 박사 똘둔 고씨 삼춘이었고, 당숙은 (마을사람들끼리의 은어였지만) 재혼한 고씨 삼춘이었다. - P151

기럼 저거이 누구 묘입니까?
누게 묘긴 다 헛묘여, 헛묘.
헛묘…………가 뭐입니까?
게나네, 시체가 어성 임시로 맹긴 묘 것이 헛묘. - P152

아버지, 이걸 어떻게 마셔요.
마루에 앉아 손부채질을 하는 삼촌과 그 옆에 멋쩍게 앉아 있는재종숙 부부를 힐끗대며 아버지는 주술 외듯, 최면 걸듯 중얼댔다.
우리집 술은 괜찮다. 문제어서. - P157

삼춘, 야이가 거 어떻합니까. 이는 박사 아니라, 박사 - P163

부군은 연거푸 술을 들이켠 뒤, 떠듬떠듬 사정을 설명했다. - P165

그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부군이 삼촌과 아버지를 향해 무릎까지 꿇을 줄, 부인이 그 곁에서 서툰 한국어로 형님, 조카 불러가며 빌게 될 줄, 삼촌이 노발대발하며 기어이 고야가 든 잔을엎는 순간, 아버지가 이때까지 마신 술을 전부 게워낼 줄을. - P168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한낮이었다. - P171

오수는 기록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 P175

괜찮다 괜찮아. 또 좋지 못한 꿈을 꿔서…………그는 목에 인공후두기를 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말을 할 때마다 성대에서 묘한 기계음이 났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이 쳐졌다.
한 세기를 살아온 사람. 그때까지 나는 그렇게 오래 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두려운 일처럼 여겨졌다. - P181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역시도 실크 원단의 아르마니 셔츠를입고 있었다. 주위를 살피며 재킷을 벗은 뒤,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그들 사이에 끼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 P186

암, 자네가 전문가인데 믿고 맡겨야지. 그저 솔직하게만 말해주게. - P197

영식 삼촌에게서 카톡이 왔다.
-두루 잘 사냐? - P211

너 슈바인스학세 먹어봤냐? 난 이번에 처음알았다. 대한민국엔 정말 배달 안 되는 음식이 없더라. - P216

관성이다. 이것도. - P233

이쁘네.
그지? 눈동자가 맑은 게 까풀도 지고.
할아버지는 현진과 내게도 사진을 보여주었다. 손주 사진이라도 보여주는 줄 알았더니 웬 송아지가 가는 다리로 엉거주춤 서있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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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뭐 해요."
수진이 회전하는 젓가락 끝을 보며 심상히 말했다.
"뭐 하는데?"
수미가 청경채를 우적우적 씹으며 물었다.
"소설 써요."
"소설?"
"네, 밤에요." - P173

"취해 살지 말어."
원장이 고개를 뒤로 꺾곤 그대로 다시 누워버렸다. - P173

사랑에 투여되던 우리의 에너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랑이 불러일으킨 우리의 흥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P183

만일 ‘살인자들의 무덤‘이 있다면,
그곳은 두 곳으로 나뉠 것이다. 여자를 죽인 자들이 묻힌 A구역과 남자를 죽인 자들이 묻힌 B구역. 나는 살인자들의 묘만을 모아둔 묘지공원을 상상하며 내가 그곳에 묻힌다면 어디에 묻히고 싶은지 매일 생각한다. - P187

더 나은 못자리를 지향하라! - P190

* 흔히 대중매체에서 언급되는 ‘아무도 찾지 않는 여자‘ ‘가족도 찾지 않는 여자‘
같은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비극성을 중화하고자 필자가 직접 개발한 표현으로, 향후 상기의 표현이 널리 퍼질 경우를 대비해 최초의 발원지가 여기임을밝혀두는 바이다. - P191

겨울이 오면 사장은 와인이 아니라 뱅쇼를 건넸다. 누구나 창문을 두드리면 따뜻한 술이 나왔다. "과일은 한살림 팔각과 정향은SSG." 뱅쇼 재료를 내려놓으며 사장이 말했다. "내 뱅쇼 만들 때도같은 데 거 써. 내 입이라고 상질 쓰고 남의 입이라고 하질 쓰고 그런 짓 안 해. 사람 입에는 같은 걸 똑같이 넣자는 주의라. 동일 개구開口, 동일 퀄리티 quality 랄까?" 보이와 나는 노숙자의 입에 들어가는 술에 값비싼 유기농 과일을 쓰는 것이 몹시 아깝게 느껴졌다.
우리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 P197

사장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상상해본 적 없어? 일요일 밤에 재활용 쓰레기를 잘 분류해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뒤도는데 앞에 그 사람이 있는 상상.
보는 순간 아 왔구나, 묘한 안도감이 드는 그래,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가 나를 죽인다면 나도 인정, 쌉인정, 하며 편해지는 마음." - P209

달리면서 고개를 든다. 천장이 길게 찢어져 있다. 터진 하늘에서고개를 내민 여자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눈물을 흘린다. 그 너머로 뒤집힌 무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 P213

어느 날 세 명의 아이 앞에 성모님이 나타나셨고 기후 위기를걱정하며 피눈물을 흘리셨다. 그것이 M이 성지로 인정받아야 할이유였지만, M에서 성모님이 흘린 피눈물은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가 머물 무렵 어디서나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M이 공식 성지가 되지 못한 까닭은 서유럽이아니기 때문이었다. - P221

우리는 그들 주위를 날아다니는 ‘갈라진혓바닥‘의 귀여운 날갯짓을 보았다. 우리는 더위를 먹은 줄 모르고더위를 먹었고 헛것을 보면서도 헛것인 줄 몰랐다. 우리는 오줌이마렵지 않도록 물을 조금씩 마셨다. - P227

"율리, 마약 해요?"
"아니."
"그런데요?"
안젤라 아줌마가 입술을 삐죽대며 말했다. - P242

그들이 도착한 곳은 고가도로 밑으로, 인도도 차도도 아닌 그곳에는 주차된 차들만 가득했다. 불법 차고지인 그곳에는 온갖 차가있었는데, 흙먼지를 뒤집어쓴 덤프트럭과 촌스러운 커튼이 달린관광버스와 러시모어산의 큰 바위 얼굴을 닮은 근사한 ‘추레라’와온갖 톤의 탑차와 이 거대한 차들 사이에 있으니 아기처럼 보이는봉고가 있었다. 늙은 개처럼 기름을 뚝뚝 흘리는 탱크로리도 있었다. 머리 위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진동에 작은 물웅덩이들이일제히 흔들리고, 그 속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까만벌레가 휘돌았다. - P246

우리는 개를 생각했다.사람이 뿌린 물 한 바가지에 소스라치게 놀라 떨어지는 개들.
흘레붙다 떼어진 그들의 분노를 한몸인 듯 느꼈다. - P261

"너희는 클 거야. 자랄 거야. 그럼 너희도 다른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을 수 있어. When I was a child, I used to talk as a child,
think as a child, reason as a child; when I became a man, Iput aside childish things. 어릴 적의 일은 뒤로하고. 우리는 죽는날까지 죄의 항상성을 향해 나아간단다." - P264

본래 목경이 카페에서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나 만나곤 한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목청껏 말하는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라 카페의 모든 사람이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는 듯 심하게 거들먹대는 사람을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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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7교시가 끝날 무렵, 두통의 문자를 받았다. 하나는 성과 상여금 등급이 A*라는 문자, 다른 하나는 금촌동 집에서 뮤직비디오를찍어도 되냐는 아들의 문자였다. 아들에게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며 교무실에 내려가보니 아니나다를까, 죽상을 한 채 담화를 나누는 이들과 눈치를 보며 업무를 보는 이들로 이미 파가 갈려 있었다. 성과급 내역이 통지되는 날이면 으레 냉담하고 어색한 기류가교무실 안을 떠돌았다. 한동안 피곤하겠네. 파티션에 몸을 숨기며중얼댔다. - P99

좋을 대로 하세요.
감사하다는 말을 내심 바랐지만, 아들은 끝까지 그 말을 아꼈다. 인류학과까지 나온 놈이 어째서 살갑진 못할까. 통화를 마친뒤, 홀로 늦은 저녁을 챙겨 먹었다.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카레는겉은 뜨겁고 속은 생각보다 찼다. - P105

그래, 주의하마.
네, 앞으론 그런 말 쓰시면 안 돼요 아저씨.
나이키가 말했다. - P119

그 부부는 당숙의 먼 친척이었다. 촌수로 따지면 남이나 다름없었으나, 아버지는 구태여 내게 그들을 재종숙이라 부르라 했다.
족보를 거슬러올라가다보면 그들도 여지없이 한 뿌리씩은 걸쳐있을 테고, 그 정도면 당"이나 진배없다며, ‘숙부‘와 ‘숙모‘는 너무 친밀하게 여겨지고, ‘아저씨‘ ‘아주머니‘는 예의에 어긋나는 듯해 고심하다 나는 그들을 ‘재종숙 부군‘과 ‘부인‘,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아버지는 중앙아시아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태 전 횡사한 당숙 외엔 한국에 마땅한 일가친척이 없다는 재종숙 부부의 사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 P129

그해 여름, 나는 구에서 주관하는 주거 사업의 세입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독거노인의 남는 방을 청년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세주는 하우스 셰어링 사업이었다. 입주 희망 신청서에는 값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대신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거나, 스마트 기기 사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코혼자 오래 살았던 어르신들이라 성미가 까다로워요.
신청서를 작성하는 나를 보며 구청 직원은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 P277

적적하거나 사람 손이 필요해서 세입자를 들인 게 아니라 이걸하면 보조금이 나온대서, 그래서 하는 거다. - P285

할머니가 아니라 오즈 그게 내 이름이야. - P298

이건 돌양지꽃, 이건 자주괭이밥, 이건 목백일홍하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잎이 뭉개진 꽃이나 햇볕에 말라버린 꽃들을 모아 돌담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마치꽃 무덤 같았다. 꽃을 다 줍고 자리를 뜨기 전, 할머니는 그 무덤에 대고 무어라 혼잣말을 했다.
"뭐라고 한 거예요?
물어봐도 그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 P317

그분은 어떤 분이셨어요? 정액을그가 물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 상기할수록 머릿속이뿌예졌다. 한 사람을 온전히 알아가기에 두 계절은 너무 짧았던걸까. 흐릿해지는 기억 속에서 나는 오직 한 단어만을 건져올렸다. 내가 정말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
.……………강한 사람. - P334

선이 어떤 문양으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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