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미래의 고전 15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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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는 고려말 개경에 나타나 쇠를 먹어 치우고 조선이 세워지자 사라졌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코끼리 몸에 소의 발, 곰의 목에 사자 턱, 범의 얼굴에 물소의 입, 말의 머리에 기린의 꼬리를 단 모습이라고 한다.  

쇠를 먹어 치워서 무기로는 죽일 수 없는 동물이라고 불가사리(不可殺伊)가 되었지만, 오직 불로서 죽일 수 있는(可殺伊) 불가사리다. 탐욕스런 사람을 일컫는 말로도 불렸는데 나쁜 꿈을 물리치고 병이 들어오는 걸 막아 준다며 굴뚝에 불가사리 모습을 새기기도 했단다. 경복궁의 아미산 굴뚝에도 새겨 넣었고, 일반인에겐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전쟁을 싫어한 사람들의 염원이 불가사리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강숙인 선생님은 전해오는 불가사리 이야기를 한국판 사랑과 영혼으로 풀었다. 양인이면서도 천민처럼 살았던 향, 소, 부곡인들의 밑바닥 삶에 애정을 갖고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노비보다 못한 삶을 살다가 도망쳤지만 아버지는 잡혀가고, 엄마는 추위와 굶주림에 얼어 죽은 비참한 상황에 방치된 아이 장이를 데려온 연두 아버지 부쇠는 대장장이다. 일곱 살 장이와 여섯 살 연두는 오누이로 자라면서 정이 든다. 훗날 아버지는 둘을 혼인시키고 대장간을 물려주려는데, 앞 일은 아무도 모른다. 

연두아버지와 형제처럼 지낸 덕삼아저씨네. 어려서 엄마를 잃은 연두를 돌봐주며 달래는 친구로 검배는 오빠로 지낸다. 달래는 장이를 좋아하지만 연두가 좋아하는 줄 알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검배는 연두를 좋아하는데, 연두는 장이를 좋아하니 속이 쓰리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큼은 절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사람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듯, 선과 악의 대결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구도다. 나쁜 짓을 해서라도 한 밑천 잡으려는 사람이 있고, 불의와 손잡지 않고 의연하게 살려는 사람이 있다. 부쇠는 무기를 만들자는 양부자의 청을 거절하지만 결국 그의 음모에 걸려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검배는 자기 욕망을 위해 불의와 결탁하므로 아버지 같은 부쇠와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장이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졸지에 아버지와 장이를 잃은 연두의 슬픔은 입을 닫고 죽음으로 뒤따르려 맘을 먹지만, 장이가 남긴 불가사리 나무인형이 살아난다. 연두는 불가사리를 키우기 위해 살고, 불가사리는 강아지만한 크기에서 점점 자라난다. 왜구들의 잦은 침입에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 검배는 불가사리를 앞세워 왜구를 물리친다.  

강숙인 작가는 불가사리의 결말을 좀 더 극적이고 뭉클한 감동으로 남긴다. 전쟁이 끝나고 불가사리를 죽이려는 검배, 연두는 불가사리의 분노를 다스린다. 불가사리의 몸에 깃든 장이의 영혼은 복수를 접고 본래의 나무인형 불가사리로 돌아간다. 사랑과 영혼처럼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하나로 합해지는 그들은 죽음 너머 은하수에서 노란 초승달 배를 타고 노닐고 있으리라.  

그림책 불가사리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이 고려시대 민중과 함께 했던 강숙인의 불가사리를 보면, 등장인물의 마음에 깃든 사랑과 욕심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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