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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문현미
민음사
릴케 번역을 하는 사람은 꽤 많은 듯 하고, 말테의 수기도 그런 것 같다. 더 세분화 되고 복잡해진 요즘에 태어났으면 릴케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과연 누구에게 자신을 이해받을 수 있었을 것인가...
말테의 수기 첫머리에서 이미 릴케는 우울하다.파리의 우울한 느낌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한다.
9월 11일 툴리에 가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출을 했다가 자선병원 몇 군데를 보았다. 한 남자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후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릴케 글자만 보면 사던 때가 있었던가. 두이노의 비가니 형상시집이니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르는 것을, 무엇에 그렇게나 매료되었는지 흠뻑 빠져서, 서점에서 산 것만 해도 스무 권이 넘고, 유별난 릴케사랑을 아는 친구가, 나에게 없는 <젊은 영혼이여 깨어있으라>를 구해 주기도 했는데, 제목만으로도 마음에 들어서 밤새 읽고 또 읽고 의미를 곱씹어보곤 했다.
뭣도 모르고 읽어대면서 릴케와의 영혼 교류를 왜 하려고 했던 것인가.
릴케 뿐 아니라 독일문학은 무엇을, 누구를 읽어도 다 재밌고 깊게 느껴져서 원서로 읽어야 겠다는 생각과, 싫은 이 땅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에 유학 결심까지 하고.
릴케를 전공하고 하면, 학위를 못딴들 언어는 남으니 원서로 번역 안 된
다른 것들도 실컷 읽을 수 있고 등, 그 때 내가 가진 릴케에 김재혁 번역이 있어서 어떤 경로인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이 받길래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땐 그렇게 직접적으로 저자와 통화가 가능했다. 남을 믿고 마음도 여유로운
아날로그 시절이었다. 지금은 릴케에 대한 내 감흥이 다 지났고, 그래서 그런지
그 통화가 그냥 과거 에피소드로 남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내가 아직 릴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더하여 다른 사람, 다른 시집에 릴케가 내 마음으로 부터 밀려난 탓이리라. 그렇더라도 한 때 깊이 사랑했던 사람, 사랑했던 시들인 것은 변함이 없으리라.
말테의 수기는,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는 하는데,
말테 브리케의 입을 빌어 릴케 자신의 얘기를 뒤섞은 독백같은 일기, 일기같은 독백,
매우 긴 시, 고백, 회상, 불안정 호소, 해 주고 싶은 말....
암튼 릴케는 이 책의 제목을 분명히 자서전이 아닌 수기라고 하였다. 말테의 수기.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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