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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 |
2018.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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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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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간서치,
현자 이덕무의 청언소품을을 모아 엮은 [선귤당농소]와 [이목구심서]의
일부를 우리말로 옮기고 하단엔 정민 선생의 평이 달려있다.
매미와 귤의 맑고 깨끗함을 사랑하여 자신의
당호를 ‘선귤당’이라 쓴 이덕무의 [선귤당농소]는 자연과 사물의 아름다움과 꿰뚫어보는 관심이 잘
드러나 [이목구심서]는 눈,
귀, 입, 마음을 조심하고 닦는 자세를 담아낸
글을 여러 일화와 자신의 일상에서 보여준다.
인상 깊은 구절
어찌 내[한서]이불과
[논어]병풍이 창졸간에 한 것임에도 반드시 경사를 가지고 한 것만 같겠는가? 한나라 왕장이 쇠덕석을 덮고 누웠던
것이나, 두보가 말안장을 깔고 잔 것보다야 낫다 할 것이다 –
이목구심서편 131쪽 인용
책 제목이 되는 한 구절이다. 제목이 함의하는 바는 뭘까 궁금했는데 정민 선생이 제목을 잘 뽑았다.
간서치 이덕무의 삶이 저 제목에 압축되어
나타난다.
을유년
11월 28일 매서운 바람이 쏘듯이 들어와 등불이 다급하게 흔들리는 엄동설한에 [한서]로 이불 삼고
[논어]로 병풍 삼아 책으로 겨울을 견딘다.
하니!
그의 가난이 얼마나 찢어지는지 읽는 이도 슬픈데
담담하게 두보나 왕장보다 낫다고 쓰고 있는데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은 이덕무를 잘 보여주는 백미의 글이다.
동생 정대와의 대화글에 귀속에서 쟁글쟁글 울리는
소리가 무슨 물건과 닮았는지 어린동생 정대에게 묻자
그 소리는 별같이 동글동글해서 눈으로 보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형상을 가지고
소리를 비유하다니, 이는 어린아이가 말없는 가운데 타고난 지혜다.
옛날에 한 어린아이가 별을 보더니만 ‘저건 달가루예요”라고 하였다. 이 같은 말은 곱고도 예뻐서 속된 기운을
벗어났으니, 세속에 찌든 사람이 감히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목구심서편 135쪽
어린 동생의 천진한 말을 세심하게 들으며 아이들의 순수함을 포착하고 있다. 별을 달가루로 표현한 옛사람의 일화가 너무도 아름다워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따뜻하고 경이로운
마음이 이는 글이다.
소리를 형상으로 묻는 이덕무에겐 풍부한 시적 정서가 깔려있는데 그의 정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이와의 대화도 예사로 넘어가지 않고 포착해서 이치를 발견한다.
감상
조선시대에 이덕무는 마음을 닦고 절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려는 마음.
벗이 멀리 있고 이웃들간의 거리도 있었을 터인데 말을 한다면 얼마나 할 것이며 39살까지
궁핍했던 그가 절제할 음식이 어디 있었을까? 눈이 어지럽고 말이 쏟아지며 형형색색의 음식들에 군침을
흘리며 연애인들의 먹방을 시청하는 현대인들을 이덕무가 본다면 뭐라고 할까?
300년 전 사람의 삶이라 그 세월만큼의 단절이 있지만 정민 선생님의 다리로 이덕무의 향기나는 글을 읽고
있어 참 기쁘고 간만의 호사를 누린다.
이 책에 실린
[선귤당농소]론 이덕무가 사물을 바라본 방식을
[이목구심서]론 어지로운 외부세계에 반응하여 시끄럽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색에 젖게
한다.
중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온화하고 화평한 말기운으로 나로
하여금 거친 마음을 떨쳐내어 말끔히 없어지게 하고, 평정한 마음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발광할 뻔했다던 이덕무가 공자의 논어편을 읽고 화평해졌듯 나는 이덕무의 글로
정신이 맑고 시원해진다.
이 덕무는 책에 미쳐있었지만 지식에 대해 늘 경계하였으며 겸손하였고 이성이 잘
발달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높은 공감능력과 어린 아이 같은 천진한 정서와 조화로워 성정이 따뜻하고 차분함을 알 수 있다.
이덕무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향기나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절제하고 경계하지만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평하지 않고 여러 이면을 살폈던 맑은 정신의 소유자! 그의 글을 항상 가지고 다니고
싶다.
아쉬운 점은 원문에 한글을 밑에 달았으면 원문을 큰 소리로 낭송할 수 있을
텐데 한자만 표기해서 한자를 잘 모르는 나 같은 독자는 읽을 수가 없고 읽으려면 일일이 한자들을 찾아내야 한다